2006-10-18 15:17
고교시절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요즘도 잊혀지지 않고 문득 옛사랑처럼 생각난다
같은배에서 나온 자매지만 한놈은 흰색털에 얼굴이 두덕두덕한데
그와 다르게 또 한놈은 밤색털을 입고 얄상했다
족보있는 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스럽게(?) 생기지 않았다
하얀개는 화사해서 이쁘고 마호가니색은 세련되어 보이는
두놈 다 욕심이 날만큼 내눈에는 품위도 있는 용모가 준수했다
아는 아주머니 손에 들려왔는데 주저하는 엄마를 내가 조르고 졸라 우리집에 있게 되었다
엄마는 늘 바쁘고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신데도
키운다고 허락해주신것이 더욱 신이 났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밤토실 같이 앙증맞은 그녀석들의
매력에 엄한 엄마도 그만 넘어 가신것 같다
그렇게 우린 만나 이름도 내가 지어 주었다
"진"이라 작명한것을 부르다 보면 "찐"이라 발음하게 된다
두녀석이 다 제 이름인줄 알아 둘에 공동 이름이었다
애호박만한것이 사랑스러워 품고 다녔는데
금방 자라서 성견이 되어버렸다
짧은 미니스커트 입고 "진"이와 산보를 하면 수줍게 선배 오빠가 인사를 했다
강아지가 이쁘다면서.
그런데 그녀석들은 참으로 귀찮은 고질병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료를 먹이지 않고 집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주었는데
식성이 별나게 꼭 비린것이 들어가야 식사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식투쟁였다
한이틀 굶기며 버릇을 고치려해봐도 고집불통
절대 밥에 입도 안대었다
덕분에 생선가게에 부탁해 부산물들을 얻어와 끓여주는 수고로움을 해야했다
아님 식구들과 고기반찬을 나눠 먹던가.
끼니마다 그렇게 챙겨야하는것이 "진"을 가장 사랑하는 입장의
나는 엄마에게 공연히 면구스러운 마음이었다
하여튼 입맛 까다로운 녀석들 때문에 늘 고생하셨다
장마비가 밤새 내리는날은 비가 들이칠까 걱정이 되어
자다 깨어 일어나 어두운 마루밑 개집을 살펴보면 침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의지하는것 같아
어린소녀에게 모성애를 느끼게한다
빨래들을 물어 뜯어 놓거나
신발을 씹고 있는 말썽쟁이지만
누군가 그녀석들에게 핀잔을 주면 내마음이 언짢아진다
"발" 그러면 얼른 앞다리를 내주는 재롱둥이 편이기 때문이다
저 이뻐하는것은 기막히게 알아
나나 밥주는 엄마나 씩씩하게 이뻐해주는 남동생에게는 펄펄뛰며 안기고 핥고
비비기도 하며 애정표현으로 정신없는데
개를 질색하는 여동생에게 만은 짖어대며 심술을 부린다
감기들어 코가 마르기도 하고
털갈이한다고 온통 마당에 녀석들 털이 돌아다닌다
암놈인 두녀석에게 짝이 되겠다고 드디어 우리집 대문앞에는
숫놈들이 킁킁대며 기웃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틈엔가 두녀석이 모두 배가 불러오고 새끼를 가진것 알게되었다
"진"이 제 털색깔 닮은 사랑스런 새끼를 오글오글 낳아
젖을 먹이니 날마다 실해지며 오동통 여물어진다
모두 우량아들이라 힘차게 젖을 빨고
반면에 어미인 "진"이는 날로 수척해져갔다
영양분을 굵은새끼에게 빼앗기고 도저히 못견디겠는지
새끼들이 못 올라오는 옥상으로 피신해 달아나기도 한다
계단밑에서 어미에게 가겠다고 강아지들이 끙끙거리고 아우성이다
젖을 떼야하는 시기였나보다
포동포동한 새끼들을 보면 귀엽지만 그래도 마음쓰여지는것은
제몸 내어주고 초췌해진 어미였다
"진"의 연인들처럼 우리집 대문앞에서 서성이던 그사람에게
나도 시집을 가고 얼마후 친정에 오니
엄마가 식구들 마음 아플까 아무도 없을때
"진"의 가족들을 모두 어디론가 보내셨다 한다
그녀석들의 대한 내사랑이 얼마나 진한줄 알기에
엄마는 더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다
나도 아린마음이 되어 차마 사연을 묻지 못했다
순하기만 했던 두녀석들이 어디로 갔을까..
해가 가고 수십년이 흘렀는데도
강아지들을 보면 내가 그토록 정을 주었던 스쳐간 "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