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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 및 명찰기도순례 37차 오대산 월정사,상원사,적멸보궁을 다녀와서(2005.6.12.)
녹차 한웅큼 집어넣고 뜨거운 물 가득히 부어 우린 엷은 연두색녹차물이 온몸에 뜨거운 기운을 내뿜어며 전율을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2005.6.12. 06:50경 대구반월당 지하철옆입구에 도착했다.
차량8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330여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53선지식 겸 재학생들의 상반기 정기순례 행사를 같이 하는 날이다.
전병효님은 핸드마이크를 들고 각 차량에 실어야 할 용품등에 대한 설명,지시,통제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순간의 모습이 그대를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어쩌겠는가.
그대가 중심에 서 있는 것을, 그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그 순간의 모습이 그대는 아름다운 것이다.
방관자적인 자세로 나오거나, 물러서려고 하거나,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일때는 그 아름다움은 빛바랠 것이다.
이와같은 그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지, 빛바랜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1호차량 인솔자 이이용님,소명섭님,집전 전병효님, 2호차량 서상덕님,홍양표님,집전 이석정님, 3호차량 도기대님,박만택님,집전 정병관님, 4호차량 강병렬님,장종영님, 집전 정임택님, 5호차량 이미화님,서지현님,집전 서지현님, 6호차량 김장수님,정종국님,집전 김풍길님, 7호차량 우희삼님,권오경님,집전 박배의님, 8호차량 이경태님,정은환님, 집전 정은환님 이다.
07:10경,
차량8대에 회원330여명을 태우고 순례지인 오대산 월정사로 출발했다.
그러나 5호차량은 집전담당 서지현님 부부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차량을 붙드는 바람에 약10분 늦게 출발했다. 차중집전할 책무까지 지닌분이니.........
차량은 서대구IC를 통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있었다.
6호차량은 삼덕행,심진성,반야심이 부지런히 참석한 회원들에게 사찰안내유인물,생수,떡,오이등을 나누어 준다.
차량내에서는 김풍길님 집전에 따라,
53선지식의 차중법회 기본프로그램인 천수경,예불문,이산혜연선사 발원문,관세음보살 릴레이 정근,반야심경을 경건하게 독송하여 빠져들게 한다.
김장수님의 월정사,상원사 사찰안내등에 대한 설명, 차량에 탑승한 회원 전원이 1분스피치를 통한 인사 겸 자기소개를 한다. 회수를 거듭할수록 많이 좋아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학번,이름정도만 이야기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날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을 가미시켜 소개하는 회원이 많아졌고,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이것은 작은 소득이다.
김상수님은 인사말을 통하여 53선지식에서 지켜야 할 불문율인 음주금지, 가무금지, 차량내에서 돈 거출행위 금지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주지 시킨다.
11:40경,
공식적인 법회등 일정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김상수님의 목탁 진행에 따라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을 회원들이 돌아가며 11회 독송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편도1차선 국도로 접어들었다.
국도변에는 하얀꽃이 핀 감자밭이 즐비하게 늘려있다.
11:50경,
월정사 들어가는 입구 식당에 도착했다.
지정된 식당2곳에서 회원들은 미리 준비된 비빔밥으로 전원 점심 공양을 마쳤다.
12:20경,
월정사 입구에 차량이 도착했다.
월정사는,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일천사백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그 뒤로 유동보살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 -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았다. - 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십일 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 정암 스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하였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비록 몇 차례 화재와 전화로 많은 성물(聖物)과 문화재를 잃긴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당우들이며 국보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 이상은 월정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내용임 -
12:40경,
월정사내 법륜전에서 회원 전원이 참석하여,
전병효님의 집전에 따라 삼귀의례,반야심경,우희삼님의 발원문,사홍서원을 올리는 순서로 사찰내 법회의식을 마치고,
총동문회장겸 53선지식 단장인 오성자님, 총학생회장 오동주님,53선지식집행위원장 김상수님 순서로 인사말씀에 이어서,
김상수님의 집전에 따라 108배 대참회 의식을 경건하게 올렸다.
더운 날씨로 인하여 참회의 땅방울이 옷을 흥건하게 적신 회원들이 많이 보인다.
13:30경,
108배 참회의식을 마친 회원들이 법륜전앞에 있는 시원한 감로수를 마시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었다.
월정사내 경내를 잠시 돌아보는 자유시간을 갖었다.
14:20경,
회원들을 태운 차량은 상원사로 올라가는 비포장길을 따라 울창한 숲길을 진행하고 있었다.
계곡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아름답다.
14:50경,
차량은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상원사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중앙에 위치한 중대 적멸보궁으로 회원들은 올라갔다.
시멘트길을 따라 약20분간 올라가다가 보면 계단으로 된 오르막 길이 나온다.
땀을 많이 흘리는 회원들, 힘에 겨워 헐떡 거리는 모습들.
그 길은 돌고 돌아서 굽이쳐 올라가는 푸른 숲길이다.
마음을 맑게하는 청정한 공기, 나무숲 사이로 부는 맛깔스런 시원한 바람이 목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방을 씻어 날아간다.
도시에서는 접할수 없는 느낌들........
16:00경,
작은 산 봉우리에 위치한 적멸보궁을 마주한다.
작은 법당안에는 회원들이 꽉 들어차 절을 한다.
법당옆 노천에서 자리를 깔고 3배를 올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오이,참외를 깍아 나누어 주고 있는 그 손길이 아름답다.
16:40경,
상원사경내 도착했다.
상원사는,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일찍부터 월정사 산내 암자에 그치지 않는 명성을 누려 오고 있다.
특히 사람이 자주 다니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데도 깊은 산사의 숙연한 분위기가 매우 뛰어나, 참선수행으로써 본래의 참면목을 깨우치려는 눈 푸른 수행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 이었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내면서 마침내 오류성중(五類聖衆)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이 때의 창건 설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 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 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였으며 오대에 나아가 공경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이 때, 신문왕의 후계를 두고 나라에서 분쟁이 일자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하였는데 보천태자가 한사코 돌아가려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효명이 사람들의 뜻을 좇아 왕위에 올랐다. 그가 성덕왕(聖德王)이다.
왕이 된 효명태자는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 보이던 곳에 진여원을 개창하니 이 곳이 지금의 상원사이다.
고려시대에는 상원사가 어떠한 중창의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밝히는 자료는 없으나 이색(李穡)의 ' 오대 상원사 승당기(五臺上院寺僧堂記) ' 에는 고려말 '나옹스님의 제자라고 알려진 영로암(英露庵) 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중창하였다' 고 적혀있다.
고려말부터 일기 시작한 척불(斥佛) 정책은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거세어져 불교는 극박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태종은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고 11종(宗)이던 불교 종파를 7종으로 통합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으나 만년에는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또 나아가서는 권근(權近) 에게 명하여 '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佛恩) 에 젖게 하라 ' 고 하였다.
이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행하였으며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세조는 오대산에서 두 번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병이 나았고, 상원사 참배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가 그것이다. 이렇듯 세조와 상원사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근세에는 방한암 스님이 오대산으로 들어온 뒤로 상원사에서 이십칠 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도 정진하였으며 수련소를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선남선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불교 성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경내에 상원사 동종(국보36호), 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등 국보 2점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을 비록 보물 2점이 있으며 ,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다.
- 이상은 월정사 카페에서 인용한 내용임 -
회원들은 상원사내 법당에서 3배를 하고, 사진을 촬영 하고, 보물인 동종을 살펴보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그 모습들이 아름답다.
17:00경,
아쉬움을 남기면서 맑고,청정한 적멸보궁,상원사,월정사를 놓아두고 인간들이 다투는 도시로, 도시로 향하여 차량은 움직이고 있었다.
18:00경,
김상수님의 집전에 따라 회향법회를 마쳤다.
적명님등이 보시한 불교용품으로 각 차량에 탑승한 회원들을 상대로 추첨하여 나누어 주었다.(각 차량마다9점)
작은 선물이지만 담첨된 회원들은 즐거워 한다.
회원들의 유대를 증진하고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한 옆사람에게 어깨,목등으로 기 불어 넣기, 최근 미국,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웃음으로 건강과 행복 찾기를 실시했다.
웃음은 박장대소가 가장 좋단다.
그래서 회원들은 단체로 박장대소 웃음으로 하루의 무거운 주제를 일시에 날려 보냈다.
소감발표하는 시간을 갖었다.
소감은 당일 순례에서 느낌,좋아하는 시, 성현의 말씀등 다양하게 표현할수 있으며, 자신없는 회원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미리 공지했다.
이미 이런 행사를 수없이 해 왔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미리 준비해 오는 회원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정토야님 수술을 통한 관세음보살님 가피등에 대한 설명,
최경분님 나에 살던 고향을 합창으로 유도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요리전문가로서 짱아찌를 가장 맛있게 담그는 법등의 설명.
이분이님 40-50대의 삶에 대한 좋은글 낭송.
김장수님 휘파람 연주,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웃지못할일등에 대한 설명.
김방자님의 가곡, 박영희님의 육조혜능대사의 글을 붓글씨로 직접 쓰온 작품을 낭송하고, 그 글을 추첨하여 회원들에게 시상하고, 천년바위 따라하며 같이 배우기.
동화사팔공다회 부회장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 성정분님의 재미있는 이야기, 이영미님의 법구경 이야기등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22:00경 대구반월당에 도착했다.
다음달 53선지식 및 명찰순례는 2005.7.10.07:00경 경남 창원 봉림사(구산선문)으로 떠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지다.
2005년 6월 15일
多禪(鄭鍾國)기록하다
0. 본 순례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기획위원회 단장 오성자님,집행위원장 김상수님,김장수님,전병효님,정병관님,김풍길님,신군자님,김정자님,정은환님, 정임택님,정병관님,서지현님등에게 감사 드립니다
0. 보시내역등은 결산보고를 통하여 자세한 내역이 공개될 것입니다.
0. 2005.6.12. 월정사,상원사,적멸보궁 53선지식 및 명찰기도순례 겸 대구불교대학 성지순례에 참석한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존칭은 생략합니다)
1호차
이이용,소명섭,이현경,김명혜,김금자,전병효,송덕희,김광령,선윤화,김정수,유복희,이기숙,김정희,오경자,한경자,진명자,김정숙,구수현,배현순,황명연,황명연지인,노정림,강명자,정귀자,문윤남,송희숙,김해숙,이영숙,이재만,허희순,최주희,김인숙,이옥석,이봉자,윤판임,최외자,김원이.
2호차
사상덕,이석정,임형선,최화산,조윤자,최미정,현명웅,김관수,송대섭,송점순,김미영,신태희,허남숙,장순자,남선희,노순희,서옥분,노미현,박청작,신순자,손정복,김외향,이성희,조훈님,강혜숙,장명식,최미향,강희숙,최희순,김상길,곽수자,김매화,김매화지인,현정희,김순자,이영숙,허선,조정욱,박양섭,홍양표,이춘옥.
3호차
도기대,정병관,박만택,정진남,박희국,김순홍,김영찬,김영찬지인,주정자,곽득용,이정숙,김곽자,김윤태,하재옥,이수경,신영화,이기동,유춘보,박윤옥,박명숙,김광효,김명수,장찬윤,장옥희,곽소영,최재자,윤효순,송미화,최득영,정덕선,이근희,승현숙,안재홍,김명숙,임성조,박정훈,최호탁,임금희,진태호,김낙범,최희윤.
4호차
성시영,정임택,장종영,심의찬,김숙란,주효숙,오희숙,박현정,박현정지인,정경순,김성미,강정실,강정실지인,정연섭,박성하,천계순,강정실지인,박영조,남재갑,김미경,김미경지인,박옥애,장옥순,안병국,정명순,김희정,권우철,이순,이현주,서영화,이우자,장옥순,유병선,조영순,배윤덕,이광옥,김순자,김내순,이선희,심현철
5호차
오성자,이미화,이대원,김반수,이숙교,박해관,김영태,설동득,이성한,김경희,배경진,정영희,허운자,김영이,이수조,이갑연,정무영,오성문,하은순,정경자,김상욱,이영한,윤종수,배경수,김경수,서지현, 서지현 남편,
서정기,서정기지인,권정섭,윤위영,박순옥,김갑준,서상일,최주영,우숙이,김소선,박진수,심범관,서정기지인,박정자,권정성지인,신수영,서정범.
6호차
김상수,정선자,성정분,심현섭,김장수,김풍길,정상환,한석봉,이춘생,정종국,김애경,성기태,이분이,최병학,김태규,김방자,김숙기,손천순,박영희(46야),김영희,류을희,신군자,조정희,김갑덕,이정희,이영미,이영미지인,김춘하,이정현,최경분,박인영,박인영지인,김기철,최용수,이왕근,김양섭,김성주,정관식,장춘원,서순옥,김점순,신옥금,정성태.
7호차
우희삼,권오경,윤영란,유창태,최군자,우임연,정순이,오연,최영자,김일분,한정자,박봉우,박영일,이순임,이정은,김경란,김경란지인,유화야,최순기,이정호,박배의,윤명남,김태순,구명화,배경순,안해순,권석교,안성희,노영이,황순이,노도열,김춘자,곽명자,이송희,이두목,원삼순,박정남,우희삼지인,구명화지인,이정은지인.
8호차
오동주,이경태,임숙이,정은환,이명자,김욱영,서태대,이금실,정영진,장선희,우용노,김복희,이태순,유금자,진순분,이종희,김태윤,오흥숙,신장철,김광진,서귀숙,유귀분,허귀숙,윤성순,홍명순,박영희(48야),김영희,정영순,김민주,지정미,오점숙,장복례,방종열,김영봉,박영순,이석해,한정애,노무순,송이헌,현태홍,유정희,윤석배,조추용,김정희,정수환,손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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