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치
신정을 시작하신 후에 내외 사무를 나누어 신하들에게 맡기니 각각 그 직분을 다하여 일함으로 거룩한 치적이 국내에 유행되었다. 내치는 아드님 부여에게 위임하여 백관을 지휘함에 범백 유사들이 맡은 바 직분을 잘 지키어 국내가 평안하였다. 고시(高矢)에게 농사를 맡겨 토지를 개척하고 오곡을 심으니 우순풍조하여 백곡이 풍성하고 먹을 것이 넉넉하여 백성들이 고시의 은덕을 노래하였다. 또 육축(六畜)이 번성하며 상마(桑麻)가 무성하여 늙은이나 어린이를 기르기에 유감이 없었다. 또 신지(神誌)에게 교육을 맡겨 백성을 가르치니 교육은 물론 종교적이다. 하늘에 제사하는 것과 곡 명 병 형 선악의 오(五)교를 가르치며 신도를 지켜 어기지 말라는 것이오. 문자는 전함이 없으니 알 수 없으나 일반 종교적 신념을 오래도록 변함이 없었다. 위에 말함 같이 천부삼장은 백성들이 다 지켜 행하고 동시에 오(五)교를 여행하니 인사와 천시가 다 합하여 복록이 무궁하였다.
또 국내 교통은 팽오에게 맡기는 팽오는 지리를 잘 아는지라. 나라의 지경에 북으로 오소리 흑룡강과 남으로 바다와 서으로 지나 산동성과 동으로 창해까지라. 도로를 정리하여 백성들의 교통이 편리하였고 그 때는 전차도 없고 기차도 없는 때라 다만 사랑과 우마만이 다닐 때라. 남방의 곡식을 북방으로 운수함과 북의 목재를 남으로 운수하기에 도로가 정리 되었다. 산을 뚫고 골은 메우고 거대한 힘이 들었다. 이 도로의 치적이 완전함으로 외국 사람까지 불편이 없도록 자주 왕래하였고 또 군신의 예를 정하고 또 머리털을 건우는 것과 또 머리 위에 쓰는 것을 만들고 옷 깁는 제도와 집짓는 제도까지 정하고 거처와 의복이 다 법을 따라 되었고 또 각종 문화가 점점 발달되어 동방의 해와 같이 조금도 어둠이 없는 사방의 이웃나라에 조선의 문명을 듣고 조수같이 몰려 들어와 사는 자 많았다. 지경에 있는 나라들이 와서 조공을 바치고 하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