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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 산소
오직 사랑밖에 없습니다
요일 4:7-12, 18-21
김삼환
우리가 찾는 것이 많이 있지만 사랑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길 잃은 나그네요 실패자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사랑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사랑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와 하나되신 사랑입니다.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바로 그 사랑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최고의 복음이고 기쁨이며 소망입니다. 이 사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가슴은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유일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있는 에로스나 필리아나 스토르게 같은 사랑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사랑은 오래 못 갑니다. 변합니다. 이기적이고 부작 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참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변함없는 사랑이며 거룩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 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찾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와 국가와 가정의 문제는 바로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가정이 붕괴되고 청소년들이 갈 바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주님의 사랑
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나와 너와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나 인류의 어떤 문제든지 사랑으로 풀어야 합니다. 경제 문제나 교육문제나 정치 문제나 어느 것이라도 사랑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면 길이 있습
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담겨져 있을 때에 비로소 에로스의 사랑도 살고 필리아의 사랑도 살고 스토르게의 사랑도 삽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
니다. 성도의 행복이 여기 있습니다. 성도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등에 한번 업혀 살아보십시오. 주님의 손을 한번 잡아 보십시오. 주 예수의 흘리신 보혈 의 그 크신 사랑을 한번 깨달아 보십시오. 사랑은 언제나 최고의 능력입니다. 어느 것
도 따를 수 없는 최고의 거룩함이 사랑입니다.
명성교회목사
유익한 휴식
막 1:32-39
김재남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
여 왔노라 하시고 (막1:35-38)
선사가 마당을 열심히 쓸고 있는 동자승에게 말합니다. “녀석아! 호보림산이요, 심조불산이라.” 동자가 궁금히 여겨 묻습니다. “선사님! 그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한참 후 선사가 말합니다. “건너 산을 쳐다보아라! 산림보호 산불조심이라지 않느냐!” 허리를 굽혀 정신없이 일하다가 지치기 쉬울 때에, 한번씩 허리를 들고 먼 산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모든 휴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먹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몸에 유익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3가지 유형의 휴식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엘리야의 경우인데, 쉬면서도 내내 불평하고 갈등합니다.
둘째는 노아의 경우입니다. 홍수심판 후에 자기 텐트에서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지냅니다. 자식들 앞에서의 부끄러운 휴식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경우인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건강한 휴식을 보여주십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절) 백수의 왕 사자는 절대로 과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먹이감이라도 추격할 때에 자기 힘에 벅차면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고 헐떡거리면서 숨을 고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장이 파열되고, 허파가 터질 때가지 뛰는 경우를 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휴식을 화려하게 보내는 헤롯왕과는 달리 아주 검소한 자리에서 취하고 계십니다.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훨씬 영적인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내일을 위한 준비로서 시간일 뿐만 아니라, 기도하시고 일어난 자리는 정결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나라 살림이 어렵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너도나도 해외로 나간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여름 휴가 한 철을 보내고 나면 이 나라 강산이 쓰레기통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번 휴가철은 정말 주님의 제자다운 건강한 휴가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동산교회목사
그리스도인의 자유
사 61:1-3, 요8:31-32
서은성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할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책감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말씀하고 있습니다. 구 약에서 계약을 체결할때는 동물을 잡아서 둘로 쪼개고 그 사이를 계약 당사자들이 함께 지나가면서 계약을 체결합니다. 둘 중에서 계약을 어기면 이 동물과 같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계약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죄인입니다. 율법을 범한 인간이 피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셨습니다. 이피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가운데 있지 않고 생명의 성령가운데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과거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실패와 과거의 아픈 마음의 상처와 과거의 부끄러
운 모습이 우리를 얽매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십니다. 새 은혜를 주시고 새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가운데 사는 자들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생각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4:6-7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 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 생각을 벗어나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용서와 수용과 사랑은 내생각을 벗어날 때 가능합니다. 생각에 매여 사는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로 열어야 할 것입니다.
연동교회목사
신앙을 즐기자
신 12:5-14
장성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긴 여행 중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임시적이고 일회적입니다. 그러나 주거 생활이 안정되면 제 좋은 대로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본문은 오늘에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주거와 생활의 안정을 이루면 반드시 행해야 할 생활 원칙입
니다.
1. 가족이 즐거워야 합니다. 본문 7절 중간에 보면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땀을 흘리고 일하는 것이고 그 일의 대가로 즐기는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불행한
가정을 보면 일을 안해서가 아니라 그 대부분이 가장들이 그 노동의 대가를 가정으로 가져오지 않고 친구들이나 엉뚱한 곳에서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챤 가정들이 대부분 행복한 것은 남편들이 가정적이어서 일의
열매를 가정으로 가져와서 함께 즐기기 때문입니다.
2. 교회를 정해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원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하였고 5절에서는 “오직 너희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자녀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가서”라고 하셨고, 14절에서는 “여호와의 택하실 그 곳에서 너희 번제를 드리고 또 내게 명하신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할 때는 이 교회 저 교회를 드나들면서 마음대로 했지만 안정되면 그렇게 하지 말고 자기 교회를 정해서 신앙생활
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신앙을 즐겨야 합니다. 12절에서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들은 대부분 두려움이나 율법적인 동기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 것은 미신과 외상신앙을 낳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동기의 신앙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신앙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을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시고 광야 40년의 길에서 인도하시고 먹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즐기라고 하시고 오늘 의 우리에게는 죄와 사망과 두려움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즐 기라는 것입니다.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라 이웃과 수하의 노동자들과 즐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때문에 그분에게 영광
을 돌리는 신앙생활을 즐겨야 합니다.
면목교회목사
주님을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요 12:1-8
김삼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만물을 만드실 때 그 속에 ‘사랑’이라고 하는 귀한 선물을 넣어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모든 세포와 유전자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 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큰 일을 한 지도자들은 지식과 영도력을 갖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큰 사랑과 뜨거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있어야 사람이 부유하고 무엇이 있어야 사람이 잘 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마음의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토록 과격하고 쉽게 흥분하고 서로에게 미움과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오늘 이 사회를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황홀하게 합니다. 사람을 가치 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왕이십니다. 주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만 왕의 왕이 되시는 주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그 품안에 안아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깨닫고 감사할 때 인간은 이 세상에
서 복되게 살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은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상처뿐입니다. 그때는 좋았지만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도 이 세상의 사랑을 좇아 아버지를 떠나 갔지만 결국은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은 믿을 수 없습니다. 만
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참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왕이 함께 하는 삶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힘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할지라도 주님의 사랑의 손을 잡을 때 영원히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할 때 이 나라는 풍요롭게 되고, 가정은 행복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 문은 열려지게 되어 하는 모든 일에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복있는 사람
시 1:1-6
김재남
프랑스 민담에 “황금 쥐와 사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황금 쥐를 만납니다. 그는 사력을 다해서 그 쥐를 잡습니다. 손에 잡자마자 황금 쥐는 황금으로 변해 버립니다. 황금으로 변한 쥐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러자 같이 길 가던 친구가 그것을 만져보던 중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러자 황금 쥐는 살아서 달아납니다. 달아나는 고양이가 그 쥐를 삼키고는 황금빛을 띱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죽음 힘을 다해 쥐를 삼킨 고양이를 뒤쫓습니다. 고양이를 잡자마자 고양이는 묵직한 황금덩이 로 변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땅에 내려놓자 고양이는 살아서 황금빛을 띠며 달아 납니다. 달아 나는 고양이를 이번에는 사자가 삼킵니다. 이 나그네는 사자를 향해서 우렁차게 소리칩니다. “너 이 놈 거기 서거라! 내 손이 네 몸에 닿기만 되면 너는 죽어 황금 덩어리가 되는 줄 모르느냐!” 그러자 굶주린 사자는 그 나그네도 삼켜버렸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허망한 생각에 내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복에 대하여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복(barak)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을 그 어떤 일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저 일방적으로 주시는 복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수고하고 노력해서 받는 복(asar)이 있습니다. 이 복은 우리가 노력하고 애쓴 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시편의 첫 편을 여는 복,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복은 우리가 애쓰고 노력해서 얻을 복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자의 삶은 악을 멀리합니다. 악과 타협하며 살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중히 여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성령 안에서 즐기며 만족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 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절) 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복 있는 자는 믿음에 굳게 서는 자를 말합니다. 오늘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참고 견디면 선한 열매를 얻을 하나님의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약속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아름다운동산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