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여든한 번째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요? 모르니 모르는 척하고 머쓱히 있거나 지나가는 말투로 ‘안녕하세요’하고 말을 걸 수도 있을 겁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지를 평가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성숙한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말을 건네고 다가가면 우리네 삶이 더 다채롭고 풍성해진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눈인사라도 주고받고, 간단한 인사말도 건넵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 상대가 그렇게 대해면 우리는 대꾸하는 데 익숙하지 못해 우물쭈물하기 일쑤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했을까요? 아마도 경계하며 자기 영역 안으로 무단 침입한 사람에게 적대감을 드러냈을 겁니다. 마치 강아지들이 낯선 개를 만나면 그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남자라는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며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십니다. 그러고 그녀를 아담에게로 데려다주십니다. 아담이 처음 만난 하와를 보고 그랬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물론 부부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시는 대목이라고 생각해 보면 창조주의 창조 목적이 드러납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으니 ‘너는 나야’ 그러니 ‘나 없이는 너 없고, 너 없이는 나 없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 살라 했으나 우리는 욕망으로 인해 그리 살지 못합니다. 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구원救援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