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章 密敎밀교
아자 본불생
『대일경』을 중심으로 한 태장만다라와 『금강정경』을 중심으로 한 금강만다라는 각기 독특한 수행 관법을 가지고 있다. 태장계의 것은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 금강계의 것은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이 기본을 이룬다. 전자는 공사상에 그리고 후자는 유식사상에 뿌리를 둔 관법觀法이다. 오자엄신관은 수행자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을 상징하는 다섯 글자를 자기 몸의 각 부분에 배대시켜서, 자기 몸과 대일 법신을 하나로 관하는 수행이다. 예를 들면 "아a阿"자는 오대 가운데서는 땅을, 몸의 위치는 단전 밑을, 의미는 본생불本生佛을 나타낸다. 다른 글자들도 배꼽, 심장, 미간, 정수리를 나타내서, 몸의 각 부분은 그대로 수행의 대상이 된다. 몇 년 전 대학 입학 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얻은 학생이 자기가 공부한 노트를 책으로 펴 냈다고 한다. 학생들은 꼭 정리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공책이나 벽에 기록해 두고 자주 본다. 그런데 여기 밀교 수행자는 몸 자체에 갖가지 상징적 의미를 붙여서 마음을 모아 관한다. 수행자 자신이 항상 보고 직접 움직이는 자기 몸을 공책의 상징으로 이용하나 참으로 대단한 수행 아이디어 아닌가. 오자어신관 즉 자신의 몸에 다섯 글자의 깊은 의미를 부여해 관하는 수행에서 아자阿字, 본불생관本不生觀이 가장 중요시 된다. 본래 태어남이 없다는 말 자체가 태장계 만다라의 고향인 공사상의 분위기를 확 느끼게 한다. 『대일경』은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텅 비었다는 것, 존재 한다는 것, 그리고 특별히 태어남이 없다는 것이다. 세가지로 분류하기로 했지만, 같은 내용을 달리 말했을 뿐이다. 텅 빈 상태로 존재한다는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 텅 빈 상태라고 하더라도 존재하는 상태에 있음은 분명하다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 텅 빈 상태와 존재를 양립시키기 위해서 새롭게 태어남이 없이 본래 존재한다고 중도적으로 표현한는 것이 내용과 같다. 그래서 아자의 뜻을 본불생으로 압축할 수 있는 것이다. 밀교에서는 예로부터 저 아자 본불생에서 각가지의 의미를 읽어 왔다. 먼저 『대일경』의 기본을 드러내는 삼구三句를 본생불과 접목시킨다. "본本"자는 "보리심을 씨앗으로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불不"자는 "큰 자비를 뿌리로 한다."것을 나타내며, "생生"자는 "방편을 궁극의 경지로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자 본불생을 관하는 것은 그대로 삼구를 관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본생불은 또 밀교의 궁극 목표인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 즉 자기의 마음을 여실하게 아는 것을 뜻한다. 온 세상은 바로 자기의 마음이다. 무엇이 일어나면 있다고 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본래 그대로이다. 새롭게 생기고 새롭게 없어질 것이 없다. 항상 그대로 있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은 존재의 진실한 모습이다. 이것을 보면 본생불의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된다.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뜻도 있다. 밀교에 있어서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공부가 깊거나 얕거나 법신의 몸이 안닌 것은 하나도 없다. 삼라만물 일체중생이 본래 모두 법신이다. 법신은 태어남과 없어짐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래서 본불생은 바로 우리가 본래 법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라는 것은 우리가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뜻한다. 현상적으로 중생과 부처, 미혹한 이와 깨달은 이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모두 다 법신이다. 지금 타고 있는 장작이나, 앞으로 타게 될 장작은 태워서 화력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중생이 법신불과 차이가 없다는 말은, 법신불의 호적과 청정성을 처음부터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아자 본불생을 관하는 것은 『대일경』, 태장만다라, 아니 불교 전체를 관하는 것이 된다.
2017년 9월 11일 慧命 합장
[지명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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