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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크루즈 성지순례 기행문<日記>
海山 金萬淵 암브로시오 씀
2011년 4월 27일 水<순례 제1일> 날씨 흐림 약간의 비
<가톨릭신문사 주최, 싼타크루즈 주식회사 주관, 이스라엘 관광청과 이탈리아 관광청이 후원하는 부활절 기념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
새벽4시에 일어나 크루즈 성지순례 출발즉전 여행 가방에 넣을 물목을 적어가며 확인한 다음 잠그고 벨트로 트렁크를 †자로 묶었다.
그러고선 內子와 같이 다음 내용의 순례자 기도를 올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초에 빛을 있게 하시고 당신 말씀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성지순례의 길을 출발하면서 당신께 의탁하오니
당신 아들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저희부부를 인도하소서.
성서 안에서, 전례 안에서, 가르침 안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이제 성지에서 새롭게 뵙고자 하오니
저희로 하여금 신앙과 사랑을 다하여
당신의 구원의지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하여주소서.
좋으신 아버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오늘 출발하여 5월12일에 귀국하는 순례기간동안에 항상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며, 앞으로의 모든 날이
이 순례의 은혜로 인도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진리 안에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또한 저희 부부가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영육 간에 건강하도록 은혜 주시옵고
우리의 길을 안내할 모든 이들도 축복하여 주소서.
아멘.
內子가 준비한 음식으로 7시경 둘이서 식사前 기도하며 조찬을 하고
안산 푸르지오7차A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8시발 인천공항行 직행리무진에 승차하여 출근시간대라 비도 조금 내려 다소의 체증이 있어 9시반경에 로마행 수하물 탁송場 앞에 도착하였다. 이미 巡禮團 일행 95명중 절반정도가 나와 있었으며 잠시後 어제 경주에서 딸네 집에 와서 자고, 수원에서 공항버스로 李鳳燮바실리오 & 鄭喜淑세레나 同壻부부도 도착하여 너무나도 반가워서 동서간 자매간 서로 뜨겁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지도 신부
이성도 안드레아 가톨릭신문사 사장 신부님
변승식 요한보스코 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님
홍성남 마태오 서대문구 가좌동성당 주임신부님
강송수 에디지오 동작구 사당5동성당 주임신부님
※인솔자
1호차 장근호 요셉 가톨릭신문사 010-4125-4521
2호차 이정호 마르띠노 가톨릭신문사 기획조정팀장
010-5296-4354
3호차 이동준 미카엘 가톨릭신문사 010-2886-2452
카타르 항공 조정래 안드레아 가톨릭신문사 010-4335-8798
싼타크루즈(주) 남기희 대표이사 010-3324-8823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12시경 전문식당가 ‘전통 뚝 베기 집’에서 同壻부부와 마주앉아 앞으로 보름동안 된장 구경 못할 것이라며 된장찌개로 오찬을 하였었다. 1시경 로마행 KE 927에 탑승하여 1시35분에 이륙하였다. 창 측으로 47H.J.K좌석에 필자와 內子 그리고 부산시 서구 암남동 소재 소년의집 수녀님과 셋이 나란히 앉았다. 수녀님은 부산소년원 출신 여행사 사장이 매년 10명을 이렇게 성지순례 초청을 해준다며 자신을 소개해주었다.
內子는 옆에 앉은 소년의집 강 헬레나 수녀님과 끝없는 대화로 지루한 줄을 몰라 하기에 무척 반가웠다. 수녀님은 金永五 필레몬 서구청장이 암남동 소년원에 자주 들리셨다고 하자 아내는 후배구청장이었어요 하니 무척 기뻐하며 점점 깊이 있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수녀님은 갖고 오신 ‘ 소중한 당신’ 5월호를 읽어보시라며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필자는 운동을 겸해 기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同壻부부를 살펴보니 왼쪽 창 측에 다른 싱글 자매와 셋이 나란히 앉아 정답게 담소하고 있어 매우 기뻤었다.
15:40경 비빔밥으로 점심식사. 21:10분경 해물요리양식의 저녁식사 등 두 차례의 기내식을 하고 TV도 시청하며 잠도 자는 동안 어느덧 이탈리아 미라노 공항에 착륙하였다. 기내에서 낮이 길어지는 시차 7시간을 조정하였었다. 비행기에 주유도 하고 청소하는 40분 동안 승객들은 모두 내려 미라노 공항 대기실과 면세점에서 잠시 쉬었다가(Transit) 19:50에 다시 탑승한 다음 21:20에 로마공항에 착륙하여 입국수속을 하고 22:10에 짐을 찾았다. 대기하고 있는 3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숙소인 Rome Marriott호텔로 갔다. 4星호텔방에서 內子와 둘이서 12시간 비행 끝에 안전하게 무사히 도착하여 감사의 저녁기도를 하고 마치 신혼여행 온 기분으로 로마의 첫 밤을 보냈다.
4월 28일 木<순례 제2일>날씨 개임 약간의 구름 기온 섭씨17~22도
5시에 모닝콜 후 옆방에서 묵은 이봉섭 바실리오 同壻가
아침 문안을 와서 함께 호텔 밖을 동행하자고 하여 잠시 산책 후
<버스에 오르는 장면> <필자 內外가 변승식 신부님을 모시고서>
변승식 요한 보스코 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님이 운전기사 뒤편 1번 자리에 앉아서 오늘 순례 시작 기도를 인도하시고 통로 건너, 옆 자리엔 인솔자로 이정호 마르띠노 형제가, 그 옆엔 현지 가이드인 장영희 글라라 자매가 앉았다. 그 뒤에 필자는 內子와 나란히 앉고 모두들 질서 정연하게 승차하였었다.
현지 가이드 장영희 글라라 자매가 자신과 운전기사(MaurizioFornari) 를 소개하자 우리는 금방 배운 이탈리아어로 문조르노(안녕하십니까?) 라고 화답하였다.
이탈리아는 민주공화국으로 세계에서 삶의 질 지수가 8위인 선진국으로 국내 총생산 세계7위. 유럽연합의 창립회원국에 인구 6천백만. 首都인 로마는 서울의 2배 면적에 인구 3백만.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90%. 화폐는 유로(EUR)를 사용하는 등 국가개요설명에 로마 2천년의 역사를 설명 들으니 학창시절 서양사 공부한 것이 어렴풋이 머리에 떠올랐다.
9시10분경 Birra Moretti 휴게소에 정차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 달려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끝없는 푸른 밀밭과 초원에서 노니는 양 들. 성당. 마을 풍경 등을 바라보며 설명 듣는 가운데 어느덧 11시경 아시시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지난 겨울방학 중(10.12.24~11.1.9)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 (34명)이 평화의 사절로 유럽의 대성당을 순회연주 하였을 때 손녀손자(김성희 엘리사벳&김창섭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이미 순례 다녀간 곳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귀국 후 손자손녀와의 깊은 대화를 위해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았다.
천사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도착하여 11시에 순례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최초의 공동체가 있었던 포르치운쿨라(가장 작은 곳)와 그 위에 세워진 이 대성당에는 성인께서 선종하신 장소. 흰 비둘기. 가시 없는 장미가 있는 정원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작은 경당 포르치운쿨라(4m 7m)는 작은 형제회의 못자리요.
이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가장 사랑했던 이곳은 그만큼 그 분과 초기 동료들. 작은 형제회의 삶에 있어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성당 전면은 프레스코화로 되어 있으며 위쪽에는 “프란치스코야 너의 청을 받아들인다.”라고 적혀 있고 아래쪽에는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문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12시30분경 DAL MONO식당에서 현지 식으로 점심을 먹고
2시경 성녀 글라라 성당을 순례하고 이어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순례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대 성당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스바지오山의 중턱에 펼쳐지는 중세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 아시시의 명물이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엘리아 수사가 설계하여 건축하였는데 2층에 성당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청빈. 청결. 순명을 나타내는 지오또의 프레스코화가 아름다웠다. 이 성당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와 유품인 떨어진 옷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모든 신앙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큰 포목상을 경영하는 상인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났었다. 청빈을 모토로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관심을 쏟고 살아온 프란치스코의 생활에 감화를 받은 12명 제자가 교황에게 수도원 인가를 청원하여 <작은 형제 회>라는 이름의 수도원으로 인가를 받았었다.
그를 따르는 형제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분원을 마련하게 되었고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女제자들을 위하여 제2회 글라라회를 또한 세속에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제3회를 설립하였다.
1224년 그가 라베르나山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께로부터
주의 상처와 같은 오상을 받게 되어 그 후 2년간 예수님의 고통을 체험하며 죽을 무렵까지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가난 속에서 주님의 뜻에 알맞은 생활을 하였다.
아시시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글라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화되어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글라라회’를 창설하였다.
글라라는 ‘빛’이라는 뜻이며 글라라 성당은 성 프란치스코 大성당 위층을 모방하여 지었는데 유물전시관에 글라라 성녀의 머리카락.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성인이 입던 옷.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말씀하신 다미아노 십자가가 모셔져 있었다.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16년
가톨릭 액션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성녀 글라라의 무덤이 있었는데 700여년前의 모습을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성녀 글라라는 아시시의 공작 스띠피 집안에서 태어나 18세 때 아시시의 거리에서 우연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화되어 프란치스코 성인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프란치스코의 첫 女제자가 된 글라라는 아시시 근교의 낡은 집에서 ‘글라라회’를 창설하여 침묵. 청빈. 단식을 통한 기도생활을 했다. 글라라 성녀가 수도하고 선종하신 성 다미아노 지하 성당에는
실물 유해가 있고 그녀의 머리. 수도복. 유품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7시경 LA Piazzatta Di Pratolungo Listorante 식당에서
피자와 마카로니 등 현지 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9시경 다시
로마 Marriott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며 쿠르즈 船標를 작성하고
하루 더 묵었다.
4월 29일 金<순례 제3일> 날씨 맑음
아침 6시30분에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조찬을 하고 7시30분에 Check Out해서 모두들 8시에 배정된 버스(EG594CB SACAR)에 승차하니 운전기사(Maurizio Fornari)가 이틀째라 낯이 익었다고 우리말로 잘 잤나? 라고 인사하기에 필자는 그래 너도 잘 잤니? 라고 화답해서 일행은 크게 웃었답니다.
버스에 오르자 변승식 신부님의 기도로 오늘의 순례가 시작되었다. 쭉쭉 뻗은 명품(一品) 소나무 가로수를 보고 일행은 탄식을 하자 장영희 현지가이드는 로마 대제국을 상징하는 수 백 년 묵은 아름다운 소나무들이지요. 하며 달리는 버스 양쪽의 풍경을 신나게 설명 소개하였다.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의 왼쪽 길 건너에 있는 건물이 성 계단 성당이라고 하였다. 이 성 계단 성당은 예로부터 성삼일 금요일에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순례지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 하였으며 이곳에 예수님이 올라가셨던 계단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를
성 계단이라 부르며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있던 본시오 빌라도 로마 총독관저에서 옮겨온 것이라 하였다.
모두 28개의 대리석계단 위에는 아직도 몇 군데에 예수님께서 흘리셨던 핏자국이 보관되어 있는 곳에 일행들은 입맞춤을 하였다.
9시에 라테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이어서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과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순례하였다.
그리고 성물 방에서 일행들은 묵주 등 성물을 구입한 후 韓人 鄭스테파노 사장이 경영하는 한식당(佳人)에서 점심을 먹고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치비타베키아 항구로 달렸다.
양쪽의 푸른 밀밭과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오후2시경 'Shop Toilett Totalerg' 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을 취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 佳人식당의 鄭스테파노 사장이 처가 쪽 海州鄭씨드라 하니 정태희 미카엘라&정희숙 세레나는 반가워하였다. 버스는 계속 달려 3시20분에 Civitachia Rome Interport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카타르 항공편을 이용 後發한 일행 35명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과 강송수 에디지오 신부님을 모시고 조정래 안드레아 형제가 인솔해 왔었다. KAL로 먼저 온 일행과 함께
우리 일행 130명 순례단이 정답게 손에 손잡고 전 세계에서
8번째로 큰 14만 톤급 크루즈 선박인 Royal Caribbean 마리너號에 승선하게 되었다.
모두들 승선서류 검열과 보안검사를 받고 Mariner Of The Seas 룸 키를 받아 예약 배정된 房으로 찾아가니 문밖에 여행 가방이 놓아져 있었으며 크루즈 선상에서 13일간 묵을 여장을 풀어 정리해놓고 안내방송에 따라 4시에 Deck4 광장에서 구명동의 착용 방법 등
비상 훈련을 받고 5시20분에 나폴리港으로 향해 출항해서 기분 좋게 어름위에 미끄러지듯 흔들림 없이 지중해상을 달려가는 크루즈 선상 Deck11 식당에서 6시 반에 유리창 밖, 넓은 바다 위의 일몰광경을 감상하며 선상에선 처음으로 아메리칸 뷔페식 만찬을 즐겼다.
저녁8시에 2층 컨퍼런스 룸에 우리 순례단 130명이 모두 모여
3대의 버스에 나누어 승차할 조 편성을 새로이 하고난 뒤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相見禮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김만연 암브로시오&정태희 미카엘라와 이봉섭 바실리오&정희숙 세레나 두 Couple 함께 일행들 앞에 서서 정기 구독하는 가톨릭신문을 보고 지난 3월1일 암브로시오의 喜壽(77세)생일기념으로, 또 처제 세레나의 辛卯(음3월3일)생 회갑기념으로 자녀들이 예약해주어 同壻간에 함께 참여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고 공손히 인사 들였다.
同壻는 부모님이 독실한 가톨릭신자였으나 필자는 1954년 당시 안동성당에서 김수환 스테파노 주임신부님으로부터 독일어를 배운 사제지간 인연으로 가톨릭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소개 들였다.
네 분 신부님을 모시고 각자자기소개의 시간이 끝난 다음 호기심에서 바다위의 아파트단지라 불리는 크루즈 선박 1층에서 15층까지 샅샅이 둘러보고 12층 조깅트랙에서 한 바퀴 걷고 Deck8 655호 룸으로 돌아와 內子와 함께 크루즈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4월 30일 土<순례 제4일>날씨 흐림 약간의 비
6시 반에 선내 11층 식당에서 아메리칸 스타일로 조찬을 하고 밤새 운항해 와서 나폴리港에 정박해있는 크루즈에서 8시30분에 하선하여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분승 기항지 순례의 길에 올랐다.
이관술 비안네 현지 가이드는 충북 곤지암이 고향으로 로마에 와서 16년째 거주하며 아들이 이곳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자기소개와 아울러 BJ 280WE 관광버스운전기사 ‘루이지’를 소개하며 박수를 청했다.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古代 마냐 그레치아의 식민국가로 탄생하여 중세 6세기 동안에는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수도로 군림하기도 한 유서 깊은 도시라고 설명한다. 흔히 이탈리아를 만자레(먹다). 칸타레(노래하다) 아마레(사랑하다)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 말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역이 Napoli라고 소개하였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음식의 대명사인 피자와 스파게티가 이 지방의 전통요리이고 벨칸토라고 불리는 싼타루치아. 마레키아레.
후니쿨리 후니쿨라. 오 솔레 미오 등이 모두 이 지방의 민요이다.
그리고 나폴리는 ‘시드니’& ‘리오 데 자네이로’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져 있다. 1860년 이탈리아 왕국의 통일과 함께 이탈리아에 편입된 나폴리는 잠정적인 首都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고 기념비적이고 예술적인 수많은 유산들 덕분에 현재는 밀라노. 로마에 이어 이탈리아 제3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하였다.
12세기 노르망족에 의해 재건 후 아라공족이 복원하여 현재는 각종 전시회와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는 계란城을 둘러보고, 1600년대에 지어서 17세기부터 1946년까지 나폴리를 지배했던 권력의 산실인 왕궁에는 대리석으로 된 ‘영광의 계단’이 유명하였다. 궁에는 화려한 바로크풍으로 장식된 방들 사이에 박물관이 있어 왕가에서 쓰던 가재도구와 여러 비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3세 국립도서관도 있었다.
시가지 벽보판에는 대형 사진이 인쇄된 선거벽보가 수 없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는데 가이드는 저것들이 무엇일까요? 하였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서슴없이 도적놈들의 사진이에요.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도 정치인들은 인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플레비시토 광장의 중앙에는 바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大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페르디난도 1세가 십수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왕국을 되찾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봉헌한 것이라고 하였다.
1737년에 건설된 성 카를로극장은 1817년 개막식을 한 이후 수많은 오페라가 이곳에서 공연되어 이곳을 찾은 명사들 또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였다.
3천석 규모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 하였다.
‘마리나의 문’과 빌라 수부르바나. 아폴로 신전. 바실리카. 포로(공회장)광장과 카피톨리움(주노 신전).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라르 퍼블리시 성역. 마첼룸. 극장들과 검투사의 막사. 루파나르. 피스트리움(빵집). 베티의 집. 파우노의 집. 공회장의 공중목욕탕.
비극 시인의 집. ‘소 박물관’ 등지를 순례하였다.
이때 아폴로 신전 광장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한 뒤 1925년생 老 자매가 노래 두 곡을 선사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여 일행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필자는 크루즈 성지순례 신청할 때 고령이라 염려했었는데 老자매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 10년은 더 가고 싶은 곳에 여행하며 멋지게 살아야지 하는 용기를 갖게 하였답니다.
11시에 폼페이 신도시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순례기간 중 매일 네 분 신부님이 교대로 미사집전하시고 해설사회와 독서도 3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한 호차 순서에 따라 몇몇 교우가 교대로 봉사하였었다.
폼페이 신도시엔 해마다 5월과 10월이면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도처에서 몰려오는 순례 객들로 인해 장사진을 이루는데
특히 5월 첫 주일과 10월 첫 주일은 폼페이 성모님의 특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더욱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곳이 바로 폼페이의 성모 마리아 성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화’는 천사들에 둘러싸인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성모님은 두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남자수도자에게,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카타리나 성녀에게 묵주를 건네주는 장면이다.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 대 성당 중앙 제대 위에 이 성화가 모셔져 있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山의 경사가 평야로 내달리고 바다와 사르누스江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용암이 흘러내려 돌출한 곳에 세워진 도시이다.
원시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와 장소로서 일찍부터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다고 전해진다.
폼페이는 인류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지만 서서히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화산으로 덮여버렸기에 당시 로마시대 도시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고고학적 중심지가 되고 있다.
1시30분경 티베리우스 식당에서 현지 식 스파게티로 오찬을 하였다.
서기 79년8월24일로 추정되는 폼페이 최후의 날. 베수비오 화산은 용암과 화산재로 에르콜라노와 스타비아 두 도시와 함께 폼페이를 삼키고 말았다. ‘미제노 곶’에서 이 대참사를 지켜본
‘일 플리니오 조바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소설화한 것이
영국 문인 ‘리턴 발워’의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도시 내부는 동서로 난 두 개의 길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도시 중앙의 포로 광장은 시민생활의 중심지라고 설명하였다.
‘마리나의 문’과 빌라 수부르바나 : 기원전 2세기경에 건설된 마리나의 문은 폼페이를 둘러싼 성벽에 나 있는 문들 가운데 가장 보전이 잘된 것이었다. ‘바다’라는 뜻의 ‘마리나’는 이 문이 바다를 면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문을 통해 비너스 신전과 아폴로 신전 그리고 바실리카를 거쳐 바로 중앙광장인 포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폴로 신전 : 기원전 6세기 이 지역에서의 의례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장소로서 현재와 같은 모습은 삼늄시대와 로마제국시대에 완성된 것이라 하였다.
바실리카 : 포로광장 남서쪽에 위치하여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5개의 출입구로 이루어진 가장 크고 오래된 공공건물이었다.
중앙에 법원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3면에 위치한 회랑은 市場이 열리던 장소였다. 따라서 시민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거나 상거래에서 발생한 시비를 가리기 위한 재판소 역할도 한 폼페이 시민들의 경제와 사법의 중심지였다고 설명하였다.
화산재 속에서 발굴된 폼페이 유적지를 두루 관람하고 5시경 크루즈로 돌아와 샤워하고 정장으로 갈아입고선 6시 반에 Deck4
Dining Room 정찬식당 459지정 Table에 同壻부부와 넷이 앉고
옆 좌석에 앉은 의사선생 교우께서 위스키 한 병을 쏘는 것을 반주로 하여 세계최고의 요리를 골라가며 정찬을 즐겼다.
이를 두고 뭇사람들은 지상천국이라고 하는가봐!
룸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헬스센터에 가서 조깅과 자전거 타기 등 약간의 운동을 한 뒤 가볍게 사우나를 하고 10시반경 취침하였다.
5월 1일 日<순례 제5일> 날씨 맑음 <全日 航海>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순례단 130명이 2층 컨퍼런스 룸에 모여 6시에 주일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는데 호차 순서에 따라 수원교구 구성성당의 송봉근 베드로 형제의 Wife인 자매가 해설사회를 필자가 제1독서 및 화답송을 낭독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일행은 11층 뷔페식당으로 가서 朝飯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2층 컨퍼런스 룸에 다시 모여 9시부터 10시 반까지
변승식 신부님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談 강의를 들었다.
신부님이 강의 끝부분에 순례기간 동안 우리 모두는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자’ ‘비교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자’
‘서로 수용하고 사랑하자’로 멋지게 마무리 해주셔서 순례 길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 시간 변경 線을 통과하게 되어 시계를 한 시간 늦추어 조정하였다. 2시부터 4시까지 Deck5 로터스 홀에 모여 호차별 모임을 갖고 즐거운 Recreation 시간을 보냈었다.
<정찬식당 계단에서 필자內外> <동서. 필자내외. 처제. 홍설유 의사> <필자 내외>
그들은 늘 이렇게 신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5층 상가 통로 가장자리에서 일행들은 조를 짜서 선장을 가운데 세워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 사진을 4층 포토샵 앞 벽에 꽂아두어 희망하는 사람만 인화料를 지불하고 찾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필자도 內子와 선장 셋이 찍은 사진 한 장을 19$주고 찾아왔다.
밤9시부터 10시까지 휘트니센터에서 운동을 한 뒤 온탕에서 물마사지 하고 룸으로 돌아와 곤히 잠에 들었다.
5월 2일 月<순례 제6일> 날씨 쾌청 아테네 기온 섭씨22~27도
아침 5시에 일어나 11층 트랙에서 조깅하고 맨손체조를 한 뒤 샤워하고 6시30분에 11층 식당으로 가서 아메리칸 스타일 조찬 뷔페를 즐겼다. 그러고선 7시30분까지 2층 회의실에 집결하여 그리스 피레우스 항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하선하였다.
대기하고 있는 2호차(IB08678)에 오르니 현지가이드인 金美京 씨가 먼저 자신과 운전기사(콘스탄티누스 고스타)를 소개하고선 대형 그리스지도를 운전석 앞에 붙여놓고 그리스에서 25년간 살은 경력으로 유창하게 또 신나게 설명 안내하였다.
기원전 4세기 이후 오랜 기간 타민족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는 1830년에 터키로부터 독립했다.
그리스는 그 나라 말로‘명예의 사람’ 또는 ‘귀족’이라는 뜻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나라를 ‘헤라스’라 하고 자기나라 국민은 ‘헤레네스’라고 부른다. ‘신화와 태양의 나라’ 신전 등 고대유물이 많고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기원전 2천년부터 도시국가가 나타났고 기원전 5세기 때는 아테네의 전성기였다. 철학과 과학 예술분야에서 서부문화의 기원이 되었고 올림픽 게임의 탄생장소 올림피아가 위치한 나라. 무엇보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정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다.
세계 제1의 해양국가로 국민의 70%가 관광 해운업에 종사하며 관광객이 年천6백만에 이르며 GNP는 2만유로. 유럽의 宗家임을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스 말로‘시가 시가’는 ‘천천히’를 뜻하며 행동은 느리되 말은 빠르다고 하였다.
유럽 동남부에 위치하는 그리스는 首都가 아테네로 인구는 천백만. 종교는 그리스정교가 98%였다. 코린토 운하를 관광하고선 이동하여 코린토 최초의 교회(성당)앞에서 10시 반에 이성도. 변승식. 강송수 세분신부님의 보좌로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이 야외미사를 집전하셨다.
야외 돌 제대 앞에 개가 누워있었는데 그리스에선 어디를 가나 사람을 보고 짓지도 피하지도 않는 살진 들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동물애호가들이 먹이를 잘 주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를 보고 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문득 머리를 스쳐간다.
코린토는 그리스 본토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건너오는 길목에 위치한 해발 566m의 돌로 된 언덕도시다.
12시20분까지 아고라. 신전. 겐그리아 항구 유적지 등 코린토 제2차 바오로 사도 전교 여행지를 순례하며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서 前그리스 한인회장 (김기석)이 경영하는 한식 귀빈식당에 가서 맛있는 한식으로 오찬을 즐겼다.
오후에는 아테네 지역의 파르테논신전. 아크로폴리스. 니케신전. 디오니소스극장. 아레오파고스. 소크라테스 감옥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크루즈를 향해 버스는 달리는데 바다의 수호신 ‘성 리콜라오 성당’을 지나 5시 반경 크루즈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4층 정찬식당에서
6시 반부터 갖가지 요리의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이봉섭 바실리오와 같이 14층 카페에 들러 바다위의 야경을 한껏 감상하고선 11층 풀장 트랙을 한 바퀴 돌고 10시경 사우나를 가볍게 하고 룸으로 돌아와 취침하였다.
5월 3일 火<순례 제7일> 날씨 맑음<두 번째 全日 航海>
5시에 모닝콜 하여 6시에 컨퍼런스 룸에 모두모여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님 집전으로 새벽미사를 봉헌하였다.
7시 반에 조찬을 하고 각자는 크루즈 선내 갖가지의 놀이場을 찾아 즐기고선 10시부터 한 시간 45분 동안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의 재미있는 강의를 들었다.
홍성남 신부님은 58세까지 살아오신 자신의 소개를 유머러스하게 하시고 고스톱과 골프. 자매님들 심리 상담을 소재로 정말 재미있게 강의하셔서 계획시간 15분을 넘기며 모두들 배꼽 빠지게 웃었답니다.
결론은 하루일과를 마치고 매일 밤 자기 전에 거울을 보고 자기를 마음껏 칭찬해주라는 것이었다.
11:50부터 순례단은 Deck4 라운지에 도열하여 여권을 회수보관하고 이스라엘 입국 비자를 발급받은 후 11층 식당으로 가서 오찬을 했다.
<선상 해수욕장에서 폼 잡은 처제> <올리브나무그늘에서 內子. 처제. 필자> <필자의 암벽등반 시도 장면>
15층 바이킹 라운지에서 수영장을 내려다보니 온 세계에서 몰려온 쭉쭉 빵빵 남녀관광객들이 수영하며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들이 마치 해운대해수욕장을 방불케 하였다.
同壻 이봉섭 바실리오의 도움을 받아 13층에서 암벽등반을 시도하였으나 3개월째 저린 왼쪽 팔로는 줄을 힘껏 당길 수 없어 중간지점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그래도 77세 나이로선 장하다며 암벽 등반한 기념으로 크루즈 룸 키에 별 모양의 구멍을 뚫어주기에 룸 키를 새로 하나 더 발급 받아왔었다.
6시 반부터 정찬식당에서 만찬을 즐기고선 룸으로 돌아와 옆방 同壻부부의 방으로 초청받아가서 두 커플 넷이서 마태오 신부님의 강의내용을 실습하는 고스톱을 한 시간 정도 즐기고선 10시경
우리 방으로 돌아와 단잠을 잤다.
5월 4일 水<순례 제8일> 날씨 쾌청. 낮 최고 기온 30도
5시에 모닝콜 하여 6시부터 11층 식당에서 동서양 온갖 음식이 마련된 뷔페식 조찬을 마음껏 즐기고 7시 반에 2층 회의실에 집결하였다. 하선명령을 기다리는 여유시간 틈새를 활용해 필자는 마이크를 잡고 공자님이 74세에 돌아가실 때의 말씀인 70而從心所欲 不踰距를 인용. 공자님 보다 3년을 더 산 필자의 말에 다소 실수가 있더라도 양해를 구하며 몇 가지의 조크를 했었는데 반응이 좋아 홍성남 마태오신부님이 극구 칭찬해주셨답니다.
7시40분에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하선하여 130명 일행은 대기하고 있는 3대의 버스에 올랐다. 필자부부를 태운 2호차의 현지가이드는 이스라엘에서 10년간 거주하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 30살의 이범수 君이었다.
<안녕하세요: 샬롬. 정말 안녕하세요: 샬롬 샬롬. 감사합니다: 토다.
정말 감사합니다: 토다 라마>의 이스라엘 말 몇 마디를 가르쳐주고 운전기사(암자드람)를 소개하며 박수를 청하고선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소개를 해주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의 동쪽 맨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시나이 사막에 접해있다. 성지(The Holy Land)는 약 만4천 평방마일의 작은 땅이지만 인류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고대에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이집트에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량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이곳이 3개의 일신교의 탄생지이고,
3개 대륙의 교량 역할을 하는 중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항상 평온한 날이 없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 남아있고 예로부터 東과 西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많은 예언자들이 태어났고 예수가 탄생한 곳으로서 그분들의 불멸의 가르침과 율법을 통해 3大 일신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회교가 일어나 인류가 선과 도덕에 눈뜨게 된 곳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곳이 경전의 땅이고 과거의 영광이 있는 땅이며. 그리스도 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사셨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적을 목격했던 땅이고.
회교도들에게는 예언자가 하늘에 올라간 땅인 것이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순례자들이 세계각지로부터 이 역사와 믿음의 땅.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이곳을 직접보기위하여 온갖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오고 있다. 믿음과 사랑의 이 땅은 또한 전쟁과 피와 고통의 땅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전쟁과 폭동이 끊일 날이 없어 이 성스러운 땅은 피로 물들어져 왔다. 세계 어느 곳에도 이 성지보다 더 극적인 역사를 지닌 곳은 없을 것이다.
首都는 예루살렘이며. 언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쓰며. 인구는 약800만에. 면적은 22평방km. 지중해성기후에. 종교는 유대교가 77% 이스람교 16%. 유대인이 80%. 國花는 올리브라 소개하며 나자렛으로 향해 달리는 버스 양쪽의 광경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건물마다 설치된 지붕위의 물통은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시설이며 흰색은 유대인 검은색은 파레스타인 집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도시인 텔라비브는 인구 200만.
다음 예루살렘은 70만. 3번째 하이파 45만. 국토의 대부분이 돌산으로 되어 있으며 그나마 북쪽 지방엔 물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땅이 비옥하여 작물을 재배한다고 하였다.
순례일정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순례는 하이파 항구에서 시작됐다.
나자렛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서울의 長男 楨珉 요셉으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었다. 산위의 소도시인 나자렛은 인구 35,000에 대부분 아랍인이 거주한다 하였다. 성지 중의 성지 나사렛은 해발 370m의 산속에 위치하여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이곳 성모영보성당에는 예수님탄생예고동굴이 있었다.
이곳에서 예수는 다른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와 언덕에서 뛰어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요한 1,14)” 여기서 예수는 커서 성인이 되었고 그의 생은 다른 이들과 별로 구별됨이 없이 은둔생활 30여 년을 보냈다.
요셉이 목수 일을 하던 작업장과 또 예수님이 요셉으로부터 목수 일을 배웠던 곳으로 알려진 성가정성당에서는 유년시절의 예수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을 받은 곳에 세워진 성모영보성당은 성녀 헬레나 황후 이후 수차례 파괴와 재건이 이루어졌었다. 중앙 제대 위에는 백합꽃을 거꾸로 세운 듯 한 모습의 탑이 있고 원뿔 모양의 천장을 통해 내려오는 빛은 마치 천사가 성모님께 잉태를 알리는 듯 제대를 아름답고 환하게 비춘다. 대성당 위층과 앞뜰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보내온 성모상과 모자이크가 있었다.
10시30분경 성 요셉 성당을 순례하였다. 요셉이 목수 생활을 하던 집터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성모영보성당 옆에 붙어 있었다.
비잔틴 시대에 성당이 처음 세워졌으나 지금의 성당은 191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갈릴래아 지역으로 이동 11시에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 성당에 도착했다.
이곳 성당에서 가톨릭신문사장 신부님의 주례집전으로 우리 일행 130명 중 싱글로 온 형제자매는 하객이 되고 커플로 온이는 뜻 깊은 혼인 갱신 식을 거행하였다. 커플들은 손을 맞잡고 신부님 앞에서 새롭게, 한 평생의 사랑과 신의를 맹세하게 되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12시 반에 갈릴래아 호수가의 Capar Nahum Restaurant에서 베드로 물고기(St. Peter Fish)로 점심식사를 하고난 후 모두들 즐겁게 휴식을 취하며 갈릴래아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同壻부부와 우리내외는 조금 전 혼인 갱신 식도 거행하였기에 새신랑새신부가 된 기분으로 한껏 멋을 부려가며 갈릴래아 호수를 배경으로 결혼기념촬영을 했었다.
1시40분에 빵의 기적 성당. 2시10분에 베드로 수위권 성당을 순례하고 3시에 카파르나움 예수 마을로 가서 베드로 집터 8각 성당에서 부활 제2주간 5월4일 수요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필자의 독서하는 장면>
5시경 갈릴레아 호수 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행복선언 성당
(‘진 복 팔 단 성당’이라고도 함)으로 가서 순례하고 6시 반에 크루즈로 돌아와서 7시경 정찬식당에서 오늘 순례한 성지와 성당을 소재로 환담하며 만찬을 즐겼다.
8시반경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가볍게 운동한 후 샤워하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5월 5일 木<순례 제9일> 날씨 맑음
이스라엘 아스돗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아침 6시에 조반을 먹고 7시30분에 2층 회의실에 집결하여 하선 수속을 밟았다.
서울의 손자손녀(昌 燮&星禧)에게 어린이날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고 8시에 하선하였는데 우리 巡禮 團이 승선한 크루즈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 2천여名이 하선하였다.
항구 마당에는 약50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에 따라 승차하여 베들레헴으로 이동하는데 정녕 우리를 태울 버스는 없었다. 무려 2시간을 의자도 없는 부두 마당에 서서 기다리는데 인솔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간 巡禮 團을 태울 버스는 보안검열로 부두 마당에 들어오지 못해서 우리 일행(가톨릭 130명 3대. 개신교 60명 2대)만 무료하게 기다린 것이 흠이었지요.
이유인 즉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5월1일 사살당해서 경계경비가 강화되어 그렇다는데(?) 다른 외국 순례 객은 46대의 버스가 들어와서 태워갔는데 한국에서 간 순례 객이 탈 5대의 버스는 제때에 들어오지 못했으니 쉬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려 뒤늦게나마 우리를 태우러 온 버스를 반가이 맞이해서 호차별로 버스에 올라 베들레헴으로 이동했다. 이범수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차장에 들어오려고 위병소에서 양쪽출입구를 6번이나 왕래하며 애를 태웠고 버스기사가 팔레스타인인에, 오사마 빈라덴의 5월1일 사망으로 경계경비 보안등급이 상향 조정되어 위병소 통과하느라 늦어서 죄송하게 되었다는 사과의 말을 듣고서야 모두들 이해를 했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7~8km 떨어진 팔레스타인의 중앙산맥. 死海까지 계속되는 ‘유다의 광야’의 끝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연변에 있는 마을이 베들레헴이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정 후 1995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되어 이스라엘 통치권과는 상관이 없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향 하에 있다.
11시 반경 예수 성탄 성당을 순례하였다. 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베들레헴에 순례를 와서 예수 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을 참배하고 그 위에 성당을 짓게 한 것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장소는 은으로 만든 별을 새겨놓아 정확한 위치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라고 라틴어로 써 있었다.
12시에 성 카타리나 경당으로 이동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성탄 대축일 미사가 전 세계에 중계되는 곳이 바로 이 성당이라고 하였다.
St. George Restaurant로 가서 양고기와 닭고기 등 현지 식 오찬을 하고난 다음 2시10분에 출발하여 2시25분에 예루살렘에 入城하였다.
入城 前 무장한 경찰과 군인 두 사람이 버스에 올라 검문을 하였다.
예루살렘에는 올리브 산의 겟세마니 동산. 성모성당. 시온 산의 통곡의 벽 등이 있고 신시가지에는 ‘신 헤브라이’ 같은 문화기관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베타니아 동산에서 오시어 예루살렘을 돌아보신 후 멸망할 것을 아시고 우셨는데 그곳이 ‘주님 눈물 성당’이다.
3시15분에 예수 승천 경당 순례. 3시45분에 예수 나귀에 오르심 기념 성당(벳파게 성당)순례. 4시에 겟세마니 성당순례. 4시 반에 예루살렘城 안 골고타와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5월5일을 예루살렘의 날이라고 하여 온 세계에서 몰려든 순례 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1년 중 가장 복잡한 날이 오늘이라고 하였다.
古稀기념으로 부천시 원미구에서 참례한 유병태 베드로 형제께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잘 인도해 주셔서 참으로 고마웠다.
제1처부터 9처까지는 시장 상가 골목에 위치하고 제10처부터 14처까지는 성 무덤 성당 내부에 위치하여 밖에서 장궤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6시30분에 주님무덤성당을 순례하고 7시40분에 크루즈에 승선하였다. 룸에 들러 복장을 갈아입고 11층 식당으로 가서 뷔페식 저녁식사 때 육해공 맛있는 고기에 온갖 신선한 야채로 철판구이를 직접 만들어 포식을 하였답니다.
부두에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2시간을 허비하여 계획했던 성지와 성당을 모두 순례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게 생각되었다.
오늘은 강행군 순례를 한 탓으로 꽤 피로하여 샤워하고선 곧장 잠자리에 들었었다.
5월 6일 金<순례 제10일> 날씨 맑음 (3번째 전일 항해)
아침 6시 반에 기상하여 12층의 조깅트랙을 한 바퀴 돌고선
7시 반에 11층 뷔페식당으로 가서 조찬을 하였다.
8시30분에 2층 컨퍼런스 룸에 모두모여 ‘사제의 길’이란 題 하의 변승식 신부님의 진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변 신부님은 5월8일 이스탄불에서 로마로 가서 바티칸회의에 참석하고 별도로 귀국하게 된다는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10시에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스 입국을 대비하여 4층 정찬식당 라운지에서 여권을 반납하고
12시에 오찬을 하게 되었다. 內子는 준비해온 반찬(멸치조림과 고추장. 깻잎)을 갖고 同壻내외와 11층 식당으로 가고,
필자는 홍 설유 프란치스코 의사선생과 같이 정찬식당 지정좌석(459)으로 가서 갖가지 고급요리의 오찬을 즐겼다.
오후2시부턴 동서 부부와 필자내외 네 사람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3층 스튜디오에 가서 크루즈에서의 기념촬영을 하고 선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찾았다. 그리고 5층 옷가게와 기념품점에 들러 손자손녀들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구입했었다.
3시 반부터는 3층 SAVOY대극장에서 가진 새린孃의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했었다. 대극장을 나와 4층 나이트클럽과 카지노에도 들러 구경하고선 룸으로 돌아와 쉬었다.
저녁식사는 세 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6시반경 11층 뷔페식당으로 가서 준비해간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룸으로 돌아와 스포티한 옷으로 갈아입고 11층 피트니스 센터 앞 무대에서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에어로빅에 內子와 妻弟도 가세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스케치했었다. 이봉섭 바실리오 동서와 필자는 14층 바이킹라운지에서 ‘하이네 캔’ 맥주와 피넛을 사서 들고 지중해 바다위의 밤하늘을 한도 없이 감상하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고선 약간 취한 듯이 룸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5월 7일 土<순례 제11일> 날씨 맑음
밤새 巡港하여 그리스 로도스(Rhodes)항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아침6시에 기상하여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솟은 일출광경을 구경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6시 반에 11층 뷔페식당으로 가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바다와 맑은 하늘을 소재로 한 대화를 나누며 조찬을 즐겼다.
8시20분에 2층 회의실에 집결하여 주의사항을 듣고 하선하여 대기하고 있는 버스(ZKY723)에 승차 8시40분에 바오로 사도가 도착한 린도스(Lindos)로 향해 출발했다.
5월2일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현지가이드 金美京씨에게 주려고 세레나 처제가 뷔페식당에서 식품포장용 비닐 팩에 정성스레 담아온 포도비스켓. 바나나. 요크루트. 사과 등을 건네주니 무척 반가워하였다.
9시20분부터 ‘성 요한 기사단과 성채’ 및 ‘기사단의 거리’와 ‘사도 바오로 도착 기념 성당’을 순례하였다.
1309~1523년까지 로도스를 지배하며 실질적으로 성벽요새를 만든 장본인들은 성 요한 기사단이었다.
로도스성벽의 가장 큰 특징은 성벽에서 크게 돌출해 나온 일명
‘포탑 또는 성채’라고 불리는 구조물이었다.
12시40분에 크루즈로 귀선하여 선내 뷔페식당에서 오찬을 했다. 오후에 다시 하선하여 ‘싼 타 마리아 성당’으로 가서 2시에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4시경부터는 소크라테스 거리를 관람하며 쇼핑을 했다.
5시경 크루즈로 귀선하여 6시 반에 정찬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저녁 8시경 11층 피트니스 센터로 가서 자전거타기 운동을 조금하다 사우나에 가서 찜질하고 나와 10시경 룸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5월 8일 日<순례 제12일> 날씨 맑음
터키 쿠사다시 항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아침5시에 기상하여 6시에 조반을 먹고 7시 반에 2층 회의실에 모였다.
가톨릭신문사장 이성도 신부님과 싼타크루즈 남기희사장의 특별한 배려로 아름다운 카네이숀 꽃을 미리 준비해 와서 순례단 일행 모두의 가슴에 한 송이 씩 달아주니 크게 효도를 받는 것 같아 너무나도 감격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감격적인 효도를 받아가며 순례단 모두는 환한 얼굴에 기쁜 마음으로 8시에 하선하였다.
대기하고 있는 2호버스(35ATT45)에 오르자 현지가이드는 36세의 ‘김동현 사도 요한’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서울출신에 이곳 가이드 경력12년째라 하였다.
에페소 지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터키는 아시아 서쪽에 위치하며 首都는 앙카라. 인구는 7천7백만. 종교는 이슬람교. 政體는 공화제. 나라꽃은 튤립이라고 소개하였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11세기 중앙아시아로부터 투르크족이 이주해오기전 많은 나라의 문화교류가 있었고 흥망성쇠가 교차했다. 고대 오리엔트문명에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까지 5천년역사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동서양 문명 융화의 용광로이다.
우리가 흔히들 지중해의 나라. 한국과는 兄弟之義국가라고도 부르는 터키가 6,25동란 때 자원병 15,000명을 파병하여 그 중 3,500명이 사상당하여 유가족들이 매년 한국의 부산시 남천동 UN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또 터키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두 번이나 訪韓 참배한바 있는 터에 참여정부 때 유럽 순방 중 독일에서 노무현(유스또)대통령이 터키엘 비공식 답방하여 한국을 짝사랑하는 터키를 달래주었다고도 소개하였다.
9시에 에페소 교회를 순례하였다. 초대교회 사도 바오로가 제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잠시 머물렀고 제3차 전도여행 때에는 2년3개월 동안 머물면서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며. 바오로는 로마 옥중에서도 이곳에 편지를 보냈으며 로마에서 순교한 후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부탁하신 말씀에 따라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살면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간’을 저술하였고. 그 후 이교도들에게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 ‘요한 묵시록’을 저술하였다.
성모님이 사셨던 에페소의 집터 우물에서 자매님들은 성모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받고자 聖 水(1L*2)를 길러오기도 했답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을 순례한 오늘이 마침 어버이날로 붉은 카네이션을 모두들 가슴에 달고 자신들의 부모님을 기억하며 또 부모가 된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 마음모아 미사를 봉헌했었다. 성모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언한 것이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였다. 는 것을 되새겨볼 때 에페소 성모마리아의 집에서 성모성월 그것도 어버이날에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우연’이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을 순례할 때 장남 김정민 요셉으로부터 손녀손자 성희&창섭이를 평화방송소년소녀합창단교실에 데려다주고 어버이날 어머니 아버님께 전화 드립니다. 하는 국제전화를 받고 더욱 기뻤었다.
계속해서 야외원형극장. 아고라(시민광장).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공의회를 순례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Hitit Boutique Restaurant로 이동하여 1시 반에 카페테리아 식 오찬을 즐기고선 오후3시경
‘성 요한 성당’을 순례하였다. 이곳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당신의 제자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셨다.
요한은 성모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옮겨와서 지금의 에페소 시내 ‘성모 성당 터’에서 살았고 죽어서는 에페소 서쪽 언덕 뒷산에 묻혔다.
오늘 순례를 마치고 크루즈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동현 가이드는 터키는 군사강국이며 육군은 세계 제1을 자랑하고 EU에 가입하라 해도 들어가지 않고 미국에는 눈밖에 나있지만 중동에서는 인기가 대단하고 지난 5년간 급성장하여 G20에 가입되어 살기 좋은 나라로 외국인도 터키에서 5만평까지는 땅을 매입할 수 있다고 소개하였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4시30분에 크루즈로 귀선하였다.
同壻내외와 같이 6시30분에 정찬식당에서 만찬을 즐기고
15층 채플라운지에 가서 기도하며 순례 때 메모한 것을 정리하고 룸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5월 9일 月<순례 제13일> 날씨 맑음
크레타 섬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8시에 2층 회의실에 집결 하선하여 셔틀버스 편으로
Chania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선 자유 시간을 갖고 베네치안 부두. 구시가지. 재래시장 등을 관광하며 기념사진도 찍어가며 悠悠自適 忙中閑을 즐겼다.
12시에 크루즈로 귀선하여 1시에 오찬을 하고 조별모임을 갖는 등 자유스럽게 선내를 구경하다가 4시에 2층 회의실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잠시휴식을 취한 뒤 6시30분에 만찬을 즐겼다.
저녁9시경 피트니스 센터로 가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선 동서내외의 룸에서 고스톱도전장을 보내와서 한시간정도 치매예방게임을 했었다.
스코아는 네 사람 모두 본전이라고 하였다.
10시에 날짜 변경선 통과로 1시간 앞당겨 시계를 맞추었다.
5월 10일 火<순례 제14일>날씨 맑음. 네 번째 全日 항해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4층 대극장에 모여 강송수 에디지오 신부님 집전으로 새벽미사를 봉헌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들 성지순례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그리고 트렁크와 가방에 달 꼬리표도 작성했다.
<웃음박사 홍성남 신부님의 강의 장면> <홍성남 신부님과 필자>
강의를 듣고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말씀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화날 때 내뱉는 말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수준과 자신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라.
현실적인 나(Real Self)를 잘 받아드리고 대화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몸과 마음을 항상 웃게 하라.
10시10분부터 4층 라운지에서 맡겨둔 여권을 찾고 12시에 11층 뷔페식당으로 가서 오찬을 즐겼다. 1시부터는 각자 자유스럽게
5층 상가에서 쇼핑을 하는데 內子는 손녀의 핑크색 티셔츠(16,95$)와 손자의 가방(Multi Use Tote 19,95$)을 샀다.
그리고 포토샵에서 사진도 찾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6일에 이어 두 번째로 명동가톨릭고교출신의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새린’孃의 공연을 관람하고 같이 기념촬영도 했었다. 6시30분에 정찬식당에서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신나게 즐겼다. 이때 800명 크루즈 종업원 중 유일한 한국사람 이 호 준 씨가 선장을 대리하여 여러분 한국인 크루즈 선객을 위해서 특별히 한국김치를 정성스레 준비해서 제공하게 되었다는 인사말을 하자 큰 박수로서 답례하였다.
9시에 3층 대극장에서 Galac Show를 감상하고 룸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여 트렁크와 핸드캐리 가방에 넣어 †자로 묶어서 꼬리표를 달아 복도에 내어놓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5월 11일 水<순례 제15일> 날씨 맑음. 낮 기온 26~27도C
로마에서 80km 떨어진 치비타베키아 항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뷔페식 조찬을 하고 7시 반에 3층 Savoy대극장에 모여 하선수속을 밟았다.
여기에서 카타르항공편으로 홍성남&강송수 신부님을 모시고 조정래 안드레아 형제가 인솔하여 아시시를 순례하고 하루 늦게 귀국할 팀들과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별도 4호차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하시는 모습을 보고 2주간의 크루즈 생활을 아쉽게 생각하며 8시10분에 정든 마리너호에서 완전히 하선했다.
크루즈에서 잘 내려다놓은 트렁크와 가방을 각자 찾아 챙겨서 자기가 승차할 버스 아래 칸에 실었다.
2호차(DN999ZK)에 오르니 현지 가이드 申政華 선생이 자기소개를 하며 8시30분에 로마로 향해 출발했다.
신정화 가이드는 이탈리아 대학에 유학하여 로마에서 가족과 함께 17년째 거주하고 있다하며 부산시 남구 문현동이 고향으로 가끔 부산에 간다고 하였다.
6차선의 공항진입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밀밭을 바라보며 申선생은 한반도의 1,5배인 국토에 4계절이 뚜렷하여 한국과 유사하며 음식. 축제. 놀이문화. 패션. 장신구가 발달하였고 특히 축구를 좋아하며 지중해성기후로 따뜻하나 땀은 나오지 않아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이탈리아를 소개하였다.
관광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모두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느긋하게 살아가고 대부분 소형차를 이용하고 짐 싣기 좋은 Wagon형 차를 즐긴다고 하였다.
10시에 카타콤베(지하무덤)를 순례하고 11시에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순례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가톨릭신문사장 신부님은 무척 감격해하시면서 우리 모두는 크게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순례의 길에서 마주친 신앙의 자리들, 예수님과 성인들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의미들을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녹여내고 실제적인 사랑으로 표현되어 질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셨다.
12시경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호차별로 승차하여 고로세움. 전차경기장. 대 목욕탕. 마리아 성당. 옛 왕궁 터. 원로원 터.
진실의 입. 베네치아 광장. 로마시청사 등을 관람하고 1시에 佳人식당으로 가서 비빔밥으로 맛있는 오찬을 하였다.
2시부터 가톨릭신자들의 정신적 首都인 바티칸시티를 순례한 다음 입장권을 구입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가서 신정화 선생으로부터 수신기를 지급받아 설명을 들어가며 비교적 상세히 관람했다.
4시경 세계에서 가장 큰 베드로 대 성당을 순례하며 그 웅대한 규모와 모든 것이 최고급예술품으로 장식되어있음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가 베드로 무덤위에 세운 작은 경당으로 비롯해 1626년에 지금의 대 성당 모습을 갖춘
베드로 大성당에는 8萬명이 입장할 수 있고 광장에는 10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톨릭신자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라고 설명하였다.
<1995.3.4~6일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박물관에서 필자 內外>
5시경 성물 점에서 쇼핑을 하고 6시에 Romantica 이탈리아식 식당에서 스파게티 등으로 만찬을 즐겼다.
로마에서 마지막 만찬이라며 홍 설유 프란치스코 의사선생이 우리나라에서 10만 원짜리인 와인 5병을 쏘아 반주로 하여
식당 측에서는 통기타연주로 ‘안녕히 가십시오. Rome’ 싼타루치아 등 이탈리아 민요 다수 곡을 선사해주었다.
이때 일행 중 어머니를 모시고온 두 자매는 신이 나서 통기타 연주하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팁까지 주며 함께 노래하고 춤도 추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었다.
이렇게 대구와 창원에 사는 엘리야 두 자매는 순례기간 이따금 유머와 노래를 선사하여 일행을 기쁘게 해주었으며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 메달’이라는 말을 실증해주었으며 이와 같이 순례마지막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였답니다.
저녁7시에 로마공항으로 이동하여 현지가이드 申政華 선생의 석별 인사말을 듣고 탑승권을 받아 짐을 탁송하고 8시 반에 보안검색 및 출국심사를 받고 9시에 Tram에 승차하여 Gate GO3로 가는 도중 면세점에 들러 同壻 부부와 같이 딸 며느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그러고선 밤10시20분에 탑승하여 11시에 로마공항을 이륙하였다.
5월 12일 木<순례 제16일> 날씨 맑음
24:30에 기내식 비빔밥을 먹고 새벽 1시를 아침8시로 시계를 조정하였다. 그런 뒤 기내 통로를 한 바퀴 돌아보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 16일간의 성지순례를 다음과 같이 결산해봤다.
①지구촌 모든 나라 누구든 생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지중해 연안의 성지순례 길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라 일컫는 크루즈 여행의 장점을 활용하여 여유로운 휴식과 더불어 온전히 체력을 보전하면서 은혜와 축복과 감동이 넘치는 성지순례까지 경험하는 멋진 여행을 年中 최고의 여행적기에 훌륭한 신부님
네 분을 모시고 더 늦기前에 부부함께 성공적으로 다녀오게 되었음을 주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②16일간의 순례기간 예수님과 성모님 또 12제자들이 살고 활동하셨던 곳을 현지답사순례하고 왔기에 이제 성서를 읽더라도 이해가 한층 쉽게 되어 지극히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③130명 순례단이 주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한 사람 낙오 없이 무사히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음을 충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 속에서 더욱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
④우리는 4개국을 순례하는 동안 자동차 Klaxon소리를 듣지 못하고 기다리고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기계, 물질보다는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여유를 갖고 천천히 느긋한 자세로 상대를 배려하고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 영적으로 성숙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본답니다.
⑤그들은 하나의 성당을 건립하는데 150년간이나 소요된 곳도 있었습니다. 보판도 돌로 깔아 10년前이나 백년前이나 그 모습 그대로이드군요. 그래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어 관광객이 몰려가는 것입니다. 이젠 우리도 빨리빨리 졸속을 탈피하고 낭비를 줄이고 합리적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들의 자세를 배워야만 할 것입니다. 삶의 속도가 빠르면 모든 관계가 붕괴되고 가난한 제3세계가 삶은 더 풍성해지고 경제성장보다는 환경. 공동체와 조화롭게 사는 게 더 중요한 삶의 유형을 발견했다는 ‘슬로라이프 운동’ 이론가인 ‘쓰지 신이치’(辻信一)교수의 말이 실감나게 하였다.
⑥마지막 소감으로선 그렇게도 가지 않겠다던 內子와 처제는
이번 크루즈 성지순례 다녀와서 내년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몰타 방향으로 크루즈 성지순례 갈 계획을 미리부터 세우고 있는 것이 큰 수확이라 하겠습니다.
14:50에 해물洋式으로 기내식 식사를 하고 16:20에 인천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16:30에 입국수속을 하고 16:50에 탁송한 짐을 찾아서 巡禮 團 가족들이 마중 나와 빨리 귀가하길 희망한다고 해서 解團 式을 생략한다기에 이성도 신부님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남기희사장과 이정호 마르띠노 기획조정팀장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內子가 지난 20개월간 정성을 다해 키워온 외손자를 두 딸이 데리고 마중 나왔기에 이모와 이모부에게도 인사하고 승용차 안에서 외손자의 재롱을 보아가며 안산으로 무사히 즐겁게 귀가했었다.
2011년 5월 25일
수원교구 안산시 상록구 대학洞성당 김만연 암브로시오 씀
myk353@hanmail.net 031-502-4503.010-3877-1322
※5.12 귀국하자 15일에 재경안동향우회 참석. 17~18일 안동에서의 사범학교동기동창회 참석. 19일 춘천에서의 은퇴자 야유회 참석 등으로 기행문 작성이 늦었습니다.
이성도 신부님&홍성남 신부님과 마르띠노 형제의 監修를 받아 수정보완 후 가톨릭신문에 게재코자 등기 우송해드렸더니 가톨릭신문사 총무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개인이 쓴 장문의 기행문을 신문에 게재는 어렵다고 하셔서 동행한 교우들 중 희망하시는 분에게만 우송해드리고 있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同行 하기로 했던 沈宇永(前경북지사.총무처장관). 姜聖中(前부산금성고교장) 두 후배교우 Couple에게 來年의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엔 꼭 참례하길 희망하는 뜻에서 열심히 일기체로 스케치해 와서 기행문을 작성했답니다.
※6월1일에 의왕시 내손1동 포일자이아파트 211-2201호<우)437-758>로 移徙가게 됨을 알려드립니다.(본당: 포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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