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뭇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내가 이 땅에서 높임을 받는다.
[시편 46:10]
인간은 누구나 '실존적 불안'을 갖고 있다.
거기에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품게 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인간을 진일보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 '두려움'의 노예가 되면, 그의 삶을 피페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똑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도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두려움이나 이 세상의 환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 근거는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1)'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이 거저 피난처와 힘과 구원자가 되시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인 줄 아는 이들(10)'에게 그는 피난처와 힘과 구원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인 줄 어떻게 알 것인가?
시편의 시인은 '잠깐 손을 멈추라'고 한다.
분주한 일상을 내려놓고, 잠시 멈춤, 즉, '묵상(기도)'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기만의 골방에서 잠시 멈추어 서라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고,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동틀녘(새벽)에 그를 도우신다(5).
새벽은 저녁과 아침 사이의 시간이므로 '모든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고,
긴 밤을 지새우듯 깊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시간일수도 있다.
새벽, 동틀녘은 내가 멈추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다.
내가 멈출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신다.
자신의 삶은 능동적으로 살아가되 하나님 앞에서는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라.
폭력이 만연한 세상이므로 아무리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도 좌절하기 마련이고, 도처에서 악인들의 형통을 목도하고, 고통당하는 선한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그 두려움 속에 갇혀 절망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한다.
그래, 그 하나님은 이런 모든 부조리를 해결해 주실 분이시다.
이런 인식을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한다.
긴 밤이 지속되는 것 같을 때,
악인들이 승승장구 하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만 같을 때,
그 때,
자기만의 골방에서 잠시 손을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