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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행자가 보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이니그마
팩트박스: 2023년 10월 7일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전쟁은 194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아래 기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중동정세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이스라엘 정착민"이라는 단어를 볼 때가 있을 겁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일까요?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땅으로 건너 온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였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반드시 유대인이 아니라고 해도 "시오니스트"임을 선언하면 이스라엘은 국민으로 받아줍니다.
그리고 기존에 정착해 있던 이스라엘 민병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빼앗고 새로 들어 온 정착민들에게 헐값에 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재산을 강탈해서 시오니스트임을 선언한 자들에게 헐값에 분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마같은 짓거리를 '발푸어 선언...1917년' 그리고 1936년 이후 계속 해 온 이스라엘입니다.
옛날에는 중동 외 지역에서는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세계인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작전에서 하마스의 정교한 SNS 활동으로 인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사태의 본질을 깨닫게 되고 "팔레스타인 지지, 이스라엘 규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세계 각 지의 이러한 시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를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 스타벅스는 수익금의 일부를 이스라엘에 지원합니다. 당신이 마신 커피 한잔의 값중 일부가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를 학살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https://www.presstv.ir/Detail/2024/10/07/734750/factbox-didnt-begin-oct7-israeli-genocidal-war-palestinians-started-1948
팩트박스: 2023년 10월 7일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전쟁은 194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PRESSTV : 월요일, 2024년 10월 7일 오후 12:44 [ 마지막 업데이트: 월요일, 2024년 10월 7일 오후 12:44 ]
Press TV 웹사이트 직원 제공
오늘, 10월 7일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점령지의 해방을 위한 장기간의 투쟁을 새롭게 정의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마스 저항 운동이 이끈 전례 없는 군사 작전에 이어 텔아비브의 정착민-식민지 정권이 미국에서 공급한 무기를 사용하여 일련의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미국의 대량 학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현재 약 42,000명에 달하며,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이고, 이 지역에 거주하는 20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여전히 집을 떠나 피난민이 되고 있습니다.
서방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2023년 10월 7일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량 학살은 수십 년 전에 시작되었고 알-아크사 홍수는 수년간의 억압에 대한 합법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곤경은 역사, 즉 그들의 땅을 강탈, 그들의 집을 파괴, 그들의 권리를 박탈, 그리고 광범위한 인종 청소에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점령과 억압은 1917년 발푸어 선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발푸어가 영국 시오니스트 공동체의 수장인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편지에는 팔레스타인에 소위 "유대인 땅"을 건설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적이고 강제적으로 몰수하여 시오니스트 정착민에게 넘기자, 대규모 아랍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1939년 말, 영국과 동맹을 맺은 시오니스트 집단은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본격적인 십자군 원정을 개시하여 팔레스타인인을 공격하고, 그들의 마을을 파괴하고, 그들이 땅을 버리도록 강요했습니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국가 분할을 촉구하는 소위 '결의안 181'을 통과시켰을 때 유대인은 시오니스트 국가로 알려지게 된 국가의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주측이 되어서 한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유대인의 나라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현 이스라엘 국민의 약 20%는 아랍인들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대인이 아니라고 해도 시오니스트임을 선언하면 이스라엘은 국민으로 받아줍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나크바 사건으로, 수백 개의 팔레스타인 마을과 도시가 불타고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원주민이 대규모 인종 청소로 살해되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땅의 거의 80%가 시오니스트 세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몰수되었고, 마침내 1948년 5월 15일에 시오니스트 국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https://www.presstv.ir/Detail/2024/08/01/730512/Factbox--300-days-of-Israeli-genocidal-war-on-Gaza-and-3,457-massacres
팩트박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대량학살 전쟁 300일과 3,457건의 학살
PRESSTV : 목요일, 2024년 8월 1일 오후 6시 33분 [ 마지막 업데이트: 목요일, 2024년 8월 1일 오후 6시 33분 ]
나크바 - 재앙
1948년 여름, 시오니스트 세력은 팔레스타인 땅의 약 80%를 점령하고, 약 530개의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적어도 15,000명을 학살하고, 나아가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즉 전체 인구의 약 80%를 인종 청소했습니다.
수백만의 무슬림과 수십만 명의 기독교인을 포함한 이들 추방된 사람들의 후손들은 오늘날 6개 대륙에 살고 있지만, 시오니스트 정권은 그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불법 점령, 파괴, 인종 청소 외에도 시오니스트 테러리스트 집단은 나크바 기간 동안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잔혹한 학살로 기억됩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 격동의 시기에 나중에 정권군을 형성한 이스라엘 민병대가 최소한 34건의 학살과 기타 무차별 폭력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24건은 북부에서, 5건은 중부 지역에서, 나머지 5건은 팔레스타인 남부에서 발생했습니다.
데이르 야신 학살
1948년 4월의 다이르 야신 학살은 시오니스트 단체가 점령한 땅에 불법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해 팔레스타인 무슬림에 대한 인종 청소를 시도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1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당했는데, 집에 있던 어린이, 여성, 노인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학살은 하가나의 지원을 받은 시오니스트 민병대인 이르군과 레히가 예루살렘 서쪽 외곽의 데이르 야신 마을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민간인 주택에 수류탄과 기관총을 사용하여 온 가족을 죽인 후 나중에 생존자를 찾아 돌격하여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생존자들은 시오니스트 민병대가 어머니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죽이고, 여성들을 다치게 하고, 강간하고, 살해했으며, 항복한 사람들을 묶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여러 남자들을 트럭에 태워 도시를 가로질러 행진시킨 후 채석장으로 끌고 가서 죽였다고 증언했습니다.
국제 적십자 위원회의 예루살렘 알쿠드 점령지 수석 대표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이르 야신 마을 주민들은 고의로 냉혈하게 학살당했습니다.
이르군 장교인 예후다 라피도트와 같은 시오니스트 참가자들은 학살의 목표 중 하나가 아랍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이 학살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더 광범위한 인종 청소 작전의 전환점이었고, 주변 아랍 국가들이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https://www.presstv.ir/Detail/2024/05/15/725622/nakba-never-ended-continues-as-seen-livstreamed-gaza-today
'나크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가자에서 생중계되는 것을 보면 계속되고 있습니다.'
PRESSTV : 수요일, 2024년 5월 15일 오전 10:11 [ 마지막 업데이트: 일요일, 2024년 5월 19일 오전 5:32 ]
아부 슈샤 학살
데이르 야신 학살 사건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아부 슈샤 마을에서 또 다른 끔찍한 학살 사건이 발생해 약 7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람레 지역의 마을은 기바티 여단에 의한 시오니스트 민병대의 공격을 여러 번 받았고, 주민들이 집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짧은 포로 생활 동안, 하가나 군인 한 명이 20세 여성 포로를 두 번이나 강간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을이 함락된 지 일주일 후, 지역 주민들은 강제로 이주당했고, 같은 날 람레의 아랍 당국은 아부 슈샤에서 "유대인들이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하고 적십자의 개입을 촉구했습니다.
1995년에는 팔레스타인 마을 사람들의 유골 52개가 묻힌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탄투라 학살
아부 슈샤 학살 사건과 같은 달, 지중해 연안 마을인 탄투라에서 더 규모가 큰 학살 사건이 기록되었는데, 최소 2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인구 1,500명 정도의 작은 어촌 마을이 시오니스트 알렉산드로니 여단의 공격을 받았는데, 장비가 부족해 전혀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탄투라 주민들은 점령군에게 항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당했고, 생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당국은 수십 년 동안 그 사건을 부인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변 휴양지 밑에서 그들의 무덤 3개가 발견되었습니다.
https://www.presstv.ir/Detail/2024/05/15/725615/76-years-nakba-revisiting-catastrophe-dispossession-occupation
76년의 나크바: 강탈과 점령의 재앙을 다시 살펴보다
PRESSTV : 수요일, 2024년 5월 15일 오전 8:54 [ 마지막 업데이트: 수요일, 2024년 5월 15일 오전 10:41 ]
리다 학살 사건
리다 학살은 그 해 7월에 일어났는데, 시오니스트 세력이 시민들이 집이나 예배 장소에 머물면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한 뒤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입니다.
도시 수비대는 처음에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탄약이 고갈되어 점령군이 도시에 진입하여 모든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총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 마을의 400명 이상의 주민이 학살당했는데, 그 중에는 대모스크와 다흐마시 모스크라는 두 개의 모스크로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비드 벤구리온의 지시에 따라 생존자들은 추가로 추방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라말라를 향한 끔찍한 여정 동안 갈증, 탈수, 지쳐 죽었습니다.
살리하(Saliha)와 알 다와이마(al-Dawayima) 학살
그 해 10월에 일어난 살리하와 알다와이마 학살 당시, 시오니스트 범죄자들은 비슷한 잔혹 행위를 저질러 모스크를 폭파했고, 그곳에서 숨어 있던 민간인 120~150명을 살해했습니다.
알-다와이마 마을의 수비대는 무장한 군인 20명을 넘지 않고 저항을 시도했으나 시오니스트 군대에 의해 금세 압도당했습니다.
마을 모스크에서는 수십 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주로 노인들이었고, 거리에는 수많은 남성, 여성, 어린이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알-다와이마에서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결과, 280명이 남자이고 나머지는 여자와 어린이로 총 455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48년 나크바 이후의 학살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은 나크바 기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파괴를 남겼습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일어난 주요 학살로는 키비아 학살(1953년 10월), 카프르 카심 학살(1956년 10월), 칸 유니스 학살(1956년 11월),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1982년 9월), 알아크사 학살(1990년 10월), 이브라히미 모스크 학살(1994년 2월), 제닌 난민 캠프 학살(2002년 4월) 등이 있으며, 목록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해자 중 누구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띄는 정치적 역할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된 하가나, 이르군, 레히 테러 집단의 지도자였던 다비드 벤구리온, 메나헴 베긴, 이츠하크 샤미르는 나중에 이스라엘 정권의 총리를 지냈습니다.
후자의 집단에 속한 용병인 예후다 페데르는 데이르 야신 학살에 가담했고, 나중에 점령된 예루살렘 알쿠드에서 리쿠드 지부 의장을 지냈으며, 2001년에는 "예루살렘 유명 시민"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2년 전에 초연된 "Tantura"라는 제목의 비평적으로 호평받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시오니스트 대량 살인범 Amitzur Cohen은 Tantura 학살에서의 자신의 통치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1948년에 내가 죽인 아랍인의 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살인자였고 포로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를 세어본 적이 없습니다." 코헨은 폭소를 터뜨리며 고백했습니다.
학살에서 아랍 팔레스타인인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지 않았어요. 250발의 총알이 달린 기관총이 있었어요. 몇 명인지는 말할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끔찍한 범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권은 아무런 처벌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코헨은 작년에 비냐미나 정착촌에 있는 그의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https://www.presstv.ir/Detail/2023/03/25/700433/Amitzur-Cohen-Palestinians-murder-dead-?ht-comment-id=9326341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자랑했던 '탄투라의 도살자' 사망
PRESSTV : 토요일, 2023년 3월 25일 오후 6시 33분 [ 마지막 업데이트: 토요일, 2023년 3월 25일 오후 6시 33분 ]
대량학살은 계속된다
나크바 이후 오늘날까지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시오니스트 단체가 가자지구와 점령된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동일한 정책을 계속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권은 2023년 10월 7일 이래로 일련의 학살을 저질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알 아흘리 침례교 병원 학살, 그리스 교회 학살, 자발리아 난민 캠프 학살, 샤디아 아부 가잘라 학교 학살, 플라워 학살, 알-시파 병원 학살, 알 나세르 병원 학살, 월드 센트럴 키친 학살, 라파 텐트 학살,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 학살, 알 마와시 학살, 데이르 알-발라흐 학살 등입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48년에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들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시오니스트들이 벌인 대량 학살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