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심화 문제 ❷
[01~ 0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삼 년 동안 나는 타락했네.”
하였다.
“타락이라니? 난 자네의 세계가 넓어지고 커졌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판인데…….”
조운은 얼굴에 또 복잡한 표정이 서리더니, 잔에 술을 부어서 먼저 들이마시고 빈 잔을 석에게 건넸다. 잔은 왔다 갔다 하였다.
석은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거나해 간다. 한 달 만에 접구*하는 것이라 좋은 안주에 술맛을 한결 돋우었다.
말하기 꼭 좋았다.
“나는 이를테면 넓은 데서 좁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옴짝달싹 못하고 기진맥진하고 있는 터이지마는, 자네야 넓은 세계에 활활 날아다니는 셈 아닌가? 작품 세계가 커지고 힘차리라고, 오늘 자네를 대할 때부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네.”
㉡“작품?”
“그래!”
잠깐 머리를 푹 숙이었다가 조운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벗어 못에 걸어 놓았던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것을 끄집어냈다.
“이걸 보게.”
내미는 종이 꾸러미를 펴 보고 석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거기에는 새것인 검정 넥타이 위에 흰 봉투가 놓여 있는 것이 나타났다. 봉투에는 ‘조운 선생님’이라고 틀림없는 여자의 글씨가 단정하게 씌어 있었다.
[중략 줄거리] 석이 펴 본 편지는 간호 장교가 되기 위해 떠난다는 미이의 편지였다. 석은 조운을 따랐던 미이를 기억해 내며 전쟁 전 문학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던 조운,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던 미이, 그리고 문학의 꿈을 지녔던 자신의 삶 등 세 사람의 과거를 떠올린다. 조운은 전쟁 이후 3년 동안 피난 온 부산에서 자동차 사업으로 큰돈을 번 이야기와 미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미이가 전쟁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문학의 꿈을 접은 채 자신의 사명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미이의 가족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네. 그러나 미이와 자주 만나는 사이 처음의 순수했던 생각보다도 야심이 더 앞을 섰다는 것을 고백하네. 술과 계집이 마음대로였던 내 생활이라, 미이에 대해 밖으로 나타나는 태도도 좀 다르다고, 미이 자신이 눈치챘을 것일세.
㉢나는 다방을 하나 차려 줄 것에 생각이 미치었네. 이것이면 내 힘으로 자금 유통도 되고, 미이의 명랑성도 센스도 살릴 수 있고, 수입 면도 문제 없다고 생각했네. 이 계획을 말했더니,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듣고, 얼굴에 희망의 불그레한 홍조까지 떠올리던 미이였으나, 다음 날 5일간의 생각할 여유를 달라는 것이었었네. 더 생각할 여지도 없는 일일 터인데 망설이는 것이 수상쩍었으나, 그러마 하고 나는 동아 극장 옆에 있는, 마침 물려주겠다는 다방 하나를 넘겨 맡기로 이야기가 다 되었었네. 그 닷새 되는 날이 오늘이고, 정한 시간에 연락 장소인 다방엘 갔더니, 레지가 내민 것이 이 종이 꾸러미였었네. 펴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 ㉣ 다른 길과 달라 간호 장교이고 보니, 생활 방편을 위한 것이 아님이 대뜸 짐작이 갔고, 더욱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 검정 넥타이였었네. 그러면 미이가 첫날 다방에서 ‘사명 운운’ 했던 것은 그 길을 말함이었던가? 나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네. 검정 넥타이를 들고, 나는 비로소 삼 년 동안 내가 정신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었네. 미이가 말하는 그 사명을 찾는 길, 사명을 다하는 일을 나는 사변이라는 외적인 격동 때문에 포기하고 만 것일세. 가장 잘 생각하는 체하던 나는 가장 바보같이 생각했고, 부박하다고 세상을 모른다고 여기었던 미이는 사변에서 키워졌고 굳세어졌고,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일세.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굴러 떨어지는 듯했네. 구르면서 걷어잡으려고 한 것이 친구의 구원이었네. 자네를 찾은 것은 이 때문일세…….
조운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난 석은, 여기 올 때까지 그렇게 호기심을 끌었고 기대의 대상이 되었던 그에게는 이젠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고민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석의 뇌와 마음은 강렬한 미이의 인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미이가 조운의 마음에 던져 준 충격 이상의 충격을 석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안주가 좋아서만이 아니었다. 그 강렬한 배갈도 석을 취하게 하지 못했다.
㉤역시 마음이 미이로 말미암아 팽팽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운의 차로 집에 돌아와서도 석은 큰소리를 탕탕 치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 얌전하게 자리에 들어가 가족들을 들볶지 않았다.
그의 엄숙한 태도에 가족들은 또 술을 먹었다고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자리에 드러누워 그는 생각하였다.
‘조운의 말대로 조운은 사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했고, 사변을 통하여 미이는 용감하게 시대 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며 석은 중얼거렸다.
“사명을 포기치도 그것에 충실치도 못하고 말라가는 나는? 나도 사변이 빚어 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
- 안수길, ‘제3인간형’
*접구: 입에 댄다는 뜻으로, 음식을 아주 조금 먹음을 이르는 말.
01 <보기>를 참고하여, 작품 제목 ‘제3인간형’에 담긴 의미를 적절하게 추리한 것은?
<보기>
6․25 전쟁으로 인한 등장인물의 삶의 변화
조운: 문학에 대한 사명을 느끼며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지닌 작가
→ 문학의 길을 버리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어들이며 경제적으로 성공함.
미이: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명랑한 소녀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우며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님.
→ 집안의 몰락으로 문학의 꿈을 접고 생활인으로 변모하지 만 끝내 자신의 사명을 찾음.
석: 문학을 마음의 지주로 삼고 있고, 문학을 삶의 목표로 여기는 문학 청년
→ 생계를 위해 교편을 잡음. 생활과 문학 사이에서 공허해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함.
① 가장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를 평가할 때는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로군.
② 인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미래는 상상하지 않은 제3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뜻을 담고 있군.
③ 인간은 눈앞에 펼쳐진 길만 보며 걸어갈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제3의 방향을 모색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군.
④ 뚜렷한 두 방향 그 어느 쪽도 아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석’과 같은 현대인의 유형을 드러내려고 한 말이로군.
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제3자와의 소통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로군.
02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지난 3년 동안의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② ㉡: ‘작품’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기에 보이게 된 반응이다.
③ ㉢: ‘미이’에게 접근하기 위해 속물적인 태도를 숨겼음을 고백하고 있다.
④ ㉣: ‘미이’가 사명을 위해 간호 장교의 길을 택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⑤ ㉤: ‘미이’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아 내면이 꽉 차오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도움자료
[2014 EBS 수능특강 B]
심화 문제 ❷ 01 ④ 02 ③
안수길, ‘제3인간형’
해제 : 이 소설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문학을 꿈꾸던 사람들의 변화와 고뇌를 제재로 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조운, 석, 미이 세 사람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그들은 각각 무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결국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고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다. 지식인의 변모와 전쟁의 구체적인 체험들이 뒤섞여 꿈과 현실 사이에서 충분히 고민함으로써 삶의 방향을 모색하게 해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 6·25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세 지식인의 모습
전체 줄거리 : 6·25 전쟁 후 생계를 위해 교편을 잡은 ‘석’은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조운’을 만난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문인이었던 조운은 전쟁 중에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석을 찾아온 조운은 석과 술을 마시며, 석도 알고 있는 미이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가 보낸 편지를 보여 준다. 검정색 넥타이가 함께 들어 있는 편지에는 조운의 호의를 거절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이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명랑하고 쾌활한 문학소녀로 전쟁 전에 조운을 무척 따랐다. 그러나 전쟁 중 집안이 몰락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취직자리를 구하던 중 우연히 조운과 재회하게 되었다. 조운은 그녀에게 다방을 차려 주려고 했으나 미이는 새로운 사명을 찾아 간호 장교를 지원했다는 것이었다. 미이는 사명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비해 자신은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조운은 고백한다. 석은 미이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사명을 포기하지도 않고 그것에 충실하지도 못한 자신도 전쟁이 빚어 낸 한 타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01 작품의 내용 파악 답 ④
이 문제는 등장인물의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품의 내용을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답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석’
이 글의 중심인물인 ‘조운’과 ‘미이’의 삶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지극히 세속적으로 변해 버린 ‘조운’과 사명을 찾아 자신의 꿈도 버리고 떠나가는 ‘미이’의 삶이 작품 속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제3인간형’이라는 의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로 고뇌하고 있는 ‘석’이라는 또 다른 현대인의 유형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Ⅰ (2) 문학 활동 (가) 문학의 수용
② 섬세한 읽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감상하며 평가한다.
문학Ⅱ (2) 문학과 삶 (다) 문학과 문화
② 문학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심미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안목 을 기른다.
02 구절의 의미 파악 답 ③
이 문제는 문맥을 바탕으로 특정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답지] 속물적인 태도
조운이 미이에게 다방을 하나 차려 주려고 한 것은 자신의 속물적인 태도를 숨기고자 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다방을 차려 준다는 것 자체가 속물적인 생각이요 제안이었던 것이다. 조운은 미이의 명랑한 성격을 되찾고 수입도 좋을 것 같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이었기 때문에 다방을 차려 주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자신의 삶을 ‘타락’이라는 말로 단정하는 것으로 보아, 조운의 부정적인 인식을 느낄 수 있다.
② “작품?”이라고 되묻는다는 것은 그 말이 생소하게 들릴 만큼 ‘작품’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④ 미이가 간호 장교로 간 것은 생계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사명 때문임을 깨닫고 있다.
⑤ 사명을 찾아 굳은 신념을 보여 주고 있는 미이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아 자신의 내면이 꽉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Ⅰ (1) 문학의 성격 (나) 문학의 역할
① 문학이 인간과 세계의 이해를 돕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정서적ㆍ미적으로 삶을 고양함을 이해한다.
문학Ⅱ (2) 문학과 삶 (가) 문학과 자아
② 문학을 통하여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