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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대국어 갑골문자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비
玄 검을 현
감다, 가물거리다, 까마득하다
玄의 금문 玄의 고문 玄의 전문
玄의 금문 자형은 세로로 길게 그린 8자 모양인데, 이는 ‘가물거리다, 까무락거리다, 까물대다)’라는 배달말을 시각화 시킨 것입니다. 전문 자형은 위에 幺(작을 요), 糸(실 사) 등과 구별을 위한 표시로 亠(해 두)를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亠는 짧게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을 의미하여, ‘가물가물, 까물까물’의 어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문 자형의 경우는 아래위로 겹쳐 있는 사각형의 가운데에 점이 있는데, 이는 시각적으로 멀리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합니다.
玄武巖(현무암), 玄夜(현야), 玄米(현미) 등에서 玄이 색명으로서 ‘검다’로 풀이되긴 하지만, 黑(검을 흑)과는 다른 ‘캄캄하다, 까마득하다’의 어기(語氣)를 가집니다. 특히 玄武巖(현무암)에서 玄은 ‘감다(/석탄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고 짙다)’의 어기로 영어의 白(흰 백)에 대응되는 黑(검을 흑)과는 다른 개념의 뜻을 가집니다.
玄地(현지 ; 깊숙한 벽지, 머나먼 곳), 玄旨(현지 ;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미묘한 뜻)에서 玄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까마득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玄祖(현조 ; 5대조), 玄孫(현손 ; 손자의 손자)에서 玄자 자체에 ‘5 세대’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으로 ‘까마득하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배달말에서 관용표현으로 ‘까마득한 할아버지’나 ‘까마득한 후손’에 대한 중국어 상의 오역이 ‘5대조’와 ‘5대손’의 뜻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何草不黃 何日不行 …, …, 何草不玄 何人不矜 『詩經·小雅』
어느 풀인들 누렇게 되지 않으랴, 어느 날에 돌아다니지 않으랴. …, …, 어느 풀인들 거뭇해지지 않으랴, 누구인들 괴롭지 않으랴.
상기 시경 구절에서 풀에 대한 형용으로 黃(누를 황)과 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黃에 대응되는 사람의 고달픔은 行[行旅(행려 ; 떠돌아다님)]을 쓰고 있으며, 玄에 대응되는 사람의 고달픔은 矜(창자루 긍)[哀矜(애긍 ; 가련하다)]을 쓰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달픔에는 黃으로 누렇게 뜬 사람을 나타내며, 심리적인 고달픔에는 玄으로 ‘까맣게 타다’의 배달말 고유의 비유적인 표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天玄而地黃. 『易經』
하늘은 까마득하고, 땅에 누리다.
상기 주역(周易)의 문장은 ‘하늘은 검고, 땅은 노랗다’라고 일반적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실제로 玄은 ‘까마득하다(/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이 희미하다)’의 뜻이며, 黃은 ‘누리다(/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玄도 黃도 색명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異形離心 交喩異物 名實玄紐 貴賤不明 同異不別. 『荀子』
형(形)이 다르면 마음이 떠나는데, 다른 사물에 맞대어 비유하면 이름과 실상이 까마득히(/≒감감히) 틀어져 귀천이 명확하지 않고 같음과 다름이 구별되지 않는다.
상기 문장의 玄은 일반적으로 ‘깊다, 깊숙이 숨다’ 등으로 풀이하지만, 이 역시 배달말에서 ‘아주 심하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까마득하다(/≒감감하다)’로 쓰인 것입니다.
현대국어에서 ‘감감/깜깜’은 ‘감감/깜깜무소식’의 예에서처럼 ‘아주, 전혀, 완전히’ 정도의 어기를 가집니다. 玄이 바로 그런 의미로, 玄紐는 ‘아주/완전히 틀어지다’ 정도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以玄默爲神. 『漢書』
감감하고 묵묵함으로 신령(神靈)하다.
상기 문장의 玄은 ‘고요하다’로 풀이하여, 黙(묵묵할 묵)과 같은 뜻입니다. 이는 배달말의 ‘감감(/멀어서 아득한 모양)’에 대한 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炫 빛날 현
까불거리는 불꽃, 부시다
炫의 전문
炫의 전문 자형은 火와 玄의 합자이며, 玄의 ‘감다’와 불꽃[/의 움직임]을 합하여, ‘가물거리다(/작고 약한 불빛 따위가 사라질 듯 말 듯 움직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炫의 전문 자형은 光의 축약인 火와 玄의 합자이며, 玄의 ‘가물거리다’가 불꽃의 일렁임을 나타내는 ‘까불거리다’로 쓰여, ‘까불거리는 불꽃’에서 ‘부시다(/빛이나 색채가 강렬하여 마주 보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전문의 玄 자 부분이 다른 자형에서는 위로 솟은 곡선인데 비하여 炫에서는 짧은 가로획[①]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다른 자형에서는 이 직선의 짧은 가로획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후세에 사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추정됩니다.
설문(說文)에서는 ‘爓燿也[불꽃이 빛나는 것이다]’라고 자원(字源)을 설명하고 있으며, 衒(자랑할 현)과 동자(同字)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배달말의 ‘부시다’에 대한 중국어식의 풀이입니다.
炫煌(현황 ; 炫煌)에서 炫이 ‘부시다’의 뜻입니다.
殿下從公議, 則萬善俱新, 光彩炫燿矣, 何得過之有? 『成宗實錄 23年 8月 22日』
전하께서 공의(公議)를 쫓으신다면 만 가지 선(善)이 갖추어 새롭게 되며, 광채(光彩)가 부시도록 빛나니 무슨 허물을 얻음이 있겠습니까?
상기 문장의 炫이 ‘부시다’의 뜻입니다.
[현재의 국역본에서는 ‘炫燿’를 ‘환하게 빛나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眩 아찔할 현
눈이 가물가물, 아찔하다, 어지럽다
眩의 전문
眩의 전문 자형은 目과 玄의 합자이며, 玄이 ‘가물가물(/작고 약한 불빛 따위가 사라질 듯 말 듯 자꾸 움직이는 모양)’로 쓰여, 눈앞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에서 ‘아찔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眩氣症(현기증), 眩惑(현혹), 眩亂(현란 ;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어수선함) 등의 성어에서 眩이 ‘아찔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眩彩(현채 ; 적에게 발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주위의 빛깔과 같이 채색하는 일)에서 眩은 ‘아질아질(/[북한어]공기 따위가 보일 듯 말 듯 하게 움직이는 모양)’의 뜻입니다.
敬大臣則不眩, 體群臣則士之報禮重. 『禮記』
대신(大臣)을 존경하면 어지럽지[아찔하지] 않게 되며, 여러 신하들을 제 몸처럼 여긴다면 선비들의 보답의 례가 중해질 것이다.
상기 문장의 眩은 ‘현혹(眩惑)되다, 갈피를 잡지 못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는 ‘아찔하다’에서 유사한 어기를 가지는 ‘어지럽다(/사회가 혼란스럽고 질서가 없다)’로 쓰인 것입니다.
衒 자랑할 현
가물가물 일렁이다, 까불다, 딸랑이다
衒의 별체 衒의 전문
衒의 전문 별체 품행(品行)이나 행실(行實)의 뜻을 나타내는 行과 言의 합자입니다. 言은 훈(訓) ‘말하다’에서 속의 것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며, ‘겉으로 드러내어 일렁이다’는 것에서 ‘딸랑이다(/침착하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衒의 전문 자형은 行과 玄의 합자로, 行은 배달말의 ‘일렁일렁’ 정도의 소릿값을 나타내며, 玄의 ‘가물가물’과 더하여, ‘까불다(/위아래로 흔들리다/가볍고 조심성 없이 함부로 행동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재는 두 글자로 衒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는 배달말에서 ‘딸랑이다’와 ‘까불다’는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衒學(현학 ;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여 뽐냄), 衒言(현언 ; 자만하는 말) 등의 성어에서 衒은 사전적인 정의에서는 ‘자랑하다’로 새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딸랑이다[/까불다]’로 쓰인 것입니다.
衒玉賈石(현고옥석 ; 옥을 진열해 놓고 돌을 팔다)에서 衒은 결코 ‘장사하다, 팔다’로 풀이될 수 없습니다. ‘옥을 딸랑이며[/까불며] 돌을 판다’의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衒賣(현매)도 기존의 풀이는 ‘자랑하며 팔다’로 하고 있지만, 衒의 실제 뜻은 ‘딸랑이다[/까불다]’로 장사치가 판촉을 위하여 행하는 손짓, 몸짓, 소리 등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妖夫曳衒 何號于市 「屈原·天問」
요부(妖夫)는 끌고 딸랑이며[/까불며], 저자에서 무엇을 부르짖었는가?
상기 굴원의 시에서 衒을 ‘팔다, 장사하다’로 일반적으로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첫 구절 ‘요부(妖夫)가 끌며(/힘겹게 다니다) 장사를 하다’와 다음 구절 ‘저자에서 무엇을 부르짖다’와의 관계가 모호해집니다. ‘딸랑이다[/까불다]’가 정확한 풀이입니다.
旣議諸大臣, 而加恩乎衆人矣, 何可因一儒自衒而遽收成命乎? 『端宗實錄 1年 4月 26日』
이미 모든 대신과 의논하여 뭇사람에게 은혜를 가하였던 겐데, 어찌 한 유생(儒生)이 스스로 딸랑거림에[/까불거림에] 인하여 성명(成命)을 급거 거둘 수 있겠습니까?
상기 문장의 衒은 ‘딸랑이다[/까불다]’로 ‘침착하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於戲! 秉耒隨牛, 非爲文具以自衒, 務農重穀, 尙知予意之所存, 嘉與南畝之民, 共享太平之樂, 故玆敎示, 想宜知悉. 『성종실록 6년 1월 25일』
오호! 쟁기를 잡고 소를 따름은 문구(文具 ; 꾸며 갖춤)로써 스스로 딸랑임이[/까불거림] 아니라 농사에 힘쓰고 곡식을 중히 여겨 더욱이 나의 뜻 둔 바를 알고, 가상하게 남묘(南畝)의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태평성세의 즐거움을 함께하리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니 의당 다 알릴 것을 생각하라.
상기 문장의 衒이 나타내는 바는 ‘딸랑이다[/까불다]’입니다.
泫 흐를 현
가랑가랑, 그렁그렁
泫의 전문
泫의 전문 자형은 衍(퍼질 연)의 축약인 水와 玄의 합자이며, 玄의 ‘가물가물(/물체가 보일 듯 말 듯 자꾸 희미하게 움직이는 모양)’에서 물이 움직임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에서 ‘가랑가랑, 그렁그렁’의 뜻을 나타냅니다.
涕泫(체현 ; 눈물이 줄줄 흐름), 泫沄(현운 ; 물이 솟아서 흘러나오는 모양), 泫泫(현현 ; 이슬이 매달려 있는 모양/눈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 등에서 泫이 ‘가랑가랑, 그렁그렁’의 뜻입니다.
太上王使敬順宮主爲尼. 宮主, 李濟之妻也. 臨剃髮, 泫然泣下. 『定宗實錄 1年 9月 10日』
태상왕이 경순궁주(敬順宮主)로 하여금 비구니가 되게 하였는데, 궁주는 이제(李濟)의 처이다. 머리 깎을 때에 임하여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흘렸다.
殿下憐臣愚直, 察臣無罪, 天顔慘默, 泫然涕下. 『正宗實錄 1年 8月 3日』
전하(殿下)께서 신의 우직(愚直)을 가련히 여기시고 신의 무죄를 살피셔 천안(天顔)이 참하도록 묵묵하시며,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흘립니다.
상기 두 문장의 ‘泫然’을 기존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 있는 모양. 또는 눈물을 흘리며 운 모양’라고 풀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泫은 ‘그렁그렁(/눈에 눈물이 넘칠 듯이 그득 괸 모양)’의 뜻이며, 然은 형용사 어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袨 나들이옷 현
감는 옷, 덧옷, 나들이옷
袨의 전문
袨의 전문 자형은 衣(옷 의)와 玄의 합자이며, 玄이 ‘감다(/두르다, 걸치다)’로 쓰여, 외출 시에 입는 ‘덧옷(/겉에 덧입는 옷)’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대국어에서 ‘감다’는 낮잡는 뜻으로 ‘옷을 입다’의 뜻으로 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옷이나 옷차림새를 보고 ‘감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름으로 멋들어지게 입은 차림새에 대한 표현으로 ‘감다’가 쓰인 것인 것이며, 이로부터 ‘나들이옷’의 뜻도 나타냅니다.
鉉 솥귀 현
감아놓은 쇠붙이, 솥귀
鉉의 전문
鉉의 전문 자형은 金과 玄의 합자이며, ‘솥 귀고리’의 훈(訓)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玄이 ‘감다(/두르다)’로 쓰여, 솥의 귀에 감겨져 있는 고리에서 ‘솥귀’의 뜻을 나타냅니다.
鼎鉉(정현 ; 세발솥의 손잡이)에서 鉉이 ‘솥귀’의 뜻이며, 鉉席(현석)이 ‘삼공(三公)의 지위’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쇠귀를 잡다’가 관용표현으로 ‘맹주가 되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처럼 비유적인 표현으로 쓰인 것입니다.
弦 시위 현
시위를 켕기다, 타다, 튕기다
弦의 전문
弦의 전문 자형은 彈(튀길 탄)의 축약인 弓과 玄의 변형[① ; 亠가 제외된 현] 합자입니다. 이 변형은 ‘감다’의 소릿값이 기존에는 ‘검다’의 의미를 나타낸 반면 여기서는 ‘감다(/어떤 물체를 다른 물체에 말거나 빙 두르다)’로 쓰인 것을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탄력이 생기도록 팽팽하게 감아 놓은 줄에서 ‘시위(/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의 뜻을 나타냅니다.
玄이 ‘위로 매달려 있는’ 형상인 반면 弦에서는 두 개의 원을 마치 하나의 선에 꿰어 놓은 모양입니다. 이는 배달말의 ‘켕기다(/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를 시각화시킨 것이며, ‘시위를 켕기다’로 ‘타다(/악기의 줄을 퉁기거나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다), 튕기다(/다른 물체에 부딪치거나 힘을 받아서 튀어 나오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上弦(상현 ; 음력 매달 7~8일경에 나타나는 달의 형태. 둥근 쪽이 아래로 향한다), 下弦(하현 ; 음력 매달 22~23일에 나타나는 달의 형태. 활 모양의 弦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에서 弦을 기존에서는 ‘반달, 초승달’로 직접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는 ‘시위를 켕겨 놓은 활’로 달의 모양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弦脈(현맥 ; 가야금 줄을 누를 때와 같은 느낌을 주는 맥)에서 弦이 나타내는 바는 ‘켕기다’입니다.
絃樂器(현악기), 絃歌(현가 ; 거문고 따위의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彈絃(탄현 ;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 술대로 안에서 밖으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방법) 등에 보이는 絃(줄 현)은 전문 자형에 없는데, 후대에 ‘활의 시위’와 ‘악기의 줄’을 구분한 것입니다.
昔者 舜作五弦之琴 以歌南風. 『禮記』
옛날에 순(舜)이 다섯 시위의 거문고로써 남풍(南風)을 노래하였다.
상기 문장에서 弦은 ‘시위’로 ‘현악기의 줄’을 의미합니다. 이는 弓이 彈의 축약임을 의미합니다. 현재는 絃(줄 현)[전문 자형 없음]자로 대체되었습니다.
弦脈(현맥 ; 활줄에 닿은 것처럼 팽팽한 맥), 弦琴(현금 ; 거문고를 연주하다) 등에서 弦은 ‘타다, 튕기다’의 어기를 담고 있습니다.
有一將立納哈出之傍, 太祖射之, 應弦而倒. 『太祖實錄 總序 41』
한 장수가 나하추(納哈出)의 곁에 서 있으므로, 태조가 쏠 지니 시위소리에 응하듯이 넘어졌다.
是宜播之聲詩, 被之絃歌, 傳之罔極, 俾聞者知聖德之萬一焉. 『太祖實錄 2年 7月 26日』
이것은 마땅히 성시(聲詩)로 전파할 지며, 현가(絃歌)에 입힐 지며, 망극(罔極)에 전할 지다. 듣는 자로 하여금 성덕(聖德)의 만분의 일이라도 알게 할 것이겠다.
상기 두 구절에서 弦과 絃이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走弦 급히달아날 현
켕기다
走弦의 전문
走弦의 전문 자형은 走와 弦의 합자이며, 弦의 ‘켕기다’가 ‘쫒기는 상태’를 나타내어, 두려움으로 마음이 불안한 상태로 달아남의 뜻을 나타냅니다.
娹 지킬 현
켕기다
娹의 전문
娹의 전문 자형은 姿(모양 자)의 축약으로 자세나 태도의 뜻을 나타내는 女와, 弦의 합자이며, 弦의 ‘켕기다’가 ‘마주 버티다’의 뜻으로 사용된 글자입니다.
‘요즘은 그녀와 켕긴 상태로 지내다.’, ‘그들은 서로 켕기어 양보할 줄 모른다.’에서의 ‘켕기다’의 뜻입니다.
弦心 급할 현
마음에 켕기다
弦心의 전문
弦心의 전문 자형은 弦과 心의 합자이며, 弦의 ‘켕기다’가 심리적인 상태로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해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㡉 베이름 현
켕겨 놓은 베, 개키다, 개다
㡉의 전문
㡉의 전문 자형은 ‘베’의 뜻을 나타내는 巾과 弦의 합자이며, 弦의 ‘켕기다’가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로 쓰여, ‘켕겨 놓은 베’에서 ‘개키다(/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겹치거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개다), 개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설문(說文)에는 ‘出東萊[동래에서 산출된다]’라고 설명합니다. 특정한 지방에서 산출되던 켕긴 듯이 아주 빳빳한 질감의 베를 의미합니다.
伭 패려궂을 현
켕기다
伭의 전문
伭의 전문 자형은 人과 玄[변형]의 합자입니다. 人이 자형의 요소로 쓰여, 유다른 성격(性格)의 뜻을 나타냅니다. 性(성품 성)은 사람과 사물이나 상황 모두에 해당되지만, 人으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人性(인성)’의 뜻으로만 쓰입니다.
玄[변형]의 ‘켕기다’가 ‘맞당기어 팽팽하게 만들다’로 쓰여, 반응이 매우 급하고 공격적인 성격을 나타냅니다.
胘 밥통 현/처녑 현
연속된 밥통, 처녑
胘의 전문
胘의 전문 자형은 胃(밥통 위)의 축약인 肉과 玄[변형]의 합자이며, 玄[변형]의 두 개의 둥근 모양을 밥통에 비유하여, 밥통이 연속되어 있는 소의 밥통을 나타내며, 제3위(胃)인 ‘처녑(/소나 양 따위의 반추 동물의 겹주름위)’의 뜻도 나타냅니다.
胘 자의 경우는 소릿값과는 무관하며, 글자의 생긴 모양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牽 끌 견
꼬물꼬물 감다, 감치다, (끌다)
씌우고 감다, 끌다, 뒤말다
牽의 갑골문(爭과 동자)
牽의 전문
牽의 갑골문 자형은 牛의 축약된 형태[①]의 아래위로 손을 대고 있는 모양으로 실제로는 爭(다툴 쟁)자이며, 牽으로 가차된 것입니다.
전문 자형은 玄의 중간을 冖(덮을 멱)[②]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 牛[③]자가 놓여 있습니다. 牛는 特(유다를 특)의 축약으로 ‘강세’의 뜻을 나타내며, 玄이 ‘꼬물꼬물 감다(/어떤 물체를 다른 물체에 말거나 빙 두르다/[북한어] 어떤 마음이 서리게끔 하다)’로 쓰여, ‘감치다(/잘 풀리지 않을 정도로 세게 감아 붙들다)’의 뜻을 나타내며, 이 ‘감치다’로부터 ‘끌다’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牽引(견인)의 경우에는 ‘끌고 당기다’, ‘감치고 당기다’로 모두 풀이가 가능하지만, 牽制(견제)에서는 ‘끌어서 제압하다’로는 풀리지 않으며, ‘감쳐서 제압하다’로 풀립니다.
牽合(견합 ; 서로 끌어당겨서 합쳐짐), 牽束(견속 ; 견제하여 행동의 자유를 속박함), 牽曳(견예 ; 끌어서 당기다) 등의 성어에서도 牽이 ‘감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故君子之敎喩也, 道而弗牽, 强而弗抑. 『禮記』
그러므로 군자의 가르치고 일깨움이란 이끌되 감치지 않는 것이며, 굳세되 억압하지 않는 것이다.
상기 문장의 牽은 단순하게 ‘끌다’의 뜻이 아닙니다. 앞의 ‘道[導(인도할 도)]’에 이미 ‘이끌다’가 나왔는데, 다시 牽으로 ‘끌다’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며, 여기서의 牽은 ‘감치다’의 뜻입니다.
學者牽於所聞. 見秦在帝位日淺 不察其終始 因擧而笑之 不敢道 此與以耳食無異. 『史記』
학자는 들은 바에만 씌우고 감겨[뒤말다] 진시황의 재위가 일천한 것만 보고 그 종시(終始)를 살피지 않고 다만 거론에 비웃을 지고 진실은 감히 다루지 못하니, 이는 귀로 먹는 것에 비하여 다름이 없다.
상기 문장의 牽이 ‘씌우고 감기다’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牽制(견제)와는 또 다른 어기이며, 이 경우는 ‘뒤말다(/함부로 마구 말다/어지럽게 뒤범벅을 만들어 놓다)’의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