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내던 진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지인이 말을 건낸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좋은 일이 있나보군요?"
"좋은 일이 뭐.. 그저 하루가 오는 게 좋은 일이죠.^^"
"그런가요.. 어디 좋은 데 가시나봐요?"
"절에 갑니다.^^"
"절에는 왜 가시는데요?"
"절하러 갑니다.^^."
"절하러 절에 가신다구요?"
"네^^"
'절하러 절에 간다'..
언뜻 문장이 이상한 것 같은 데.. "책사러 책방에 간다"는 문장처럼 전혀 이상하거나 잘못된 문장이 아니다.
절은 절이란 행위를 뜻하고, 다른 뜻으로 절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그러니 절이란 행위[拜]를 하러 절이라는 장소[寺]에 간다는 것.
요새 '한동운이 한동운했네'는 말이 유행하는 데.. 비슷한 문장 구조이지만 뜻은 다른 것 같다.
아무튼 절은 절하는 곳이요, 절에 가면 절을 해야한다.
이렇듯 한국인으로 불자라 하면 절을 해야만 하는데.. 절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요?^^
다 자알 알고 하고 있겠지만.. 노파심에서 절하는 법을 적어 본다.
바르게 절하는 법.. 허리를 고추 세우는 것에 주의
1. 일어서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2. 몸을 똑바로 세우고, 숨을 내쉬며 몸이 가라앉듯 곧바로 내려 무릎을 바닥에 댄다.
3. 두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한다.
4.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하고 속삭이면서 바닥에 댄 손바닥을 뒤집어 귀밑 부분까지 올렸다가 내린다.
5. 잠시 절한 상태로 머물다.. 웃 몸을 일으켜 합장을 한다.
6. 몸의 중심을 두 발꿈치와 허리에 모으고, 허리를 반드시 세우면서 합장한 채
7. 엉덩이에 힘을 모아 물에서 솟아오르듯 빠르게 일어난다.
절은 이마, 양 무릎, 양 손이 땅에 닿게 하는 절이라 해서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하는데..
혹 티벳인이 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그들은 몸을 구부려 절하는 게 아닌 몸 전신이 바닥에 닿게 절을 한다.
그것도 오체투지라 하는데.. 이때 오체는 몸 전체가 된다.
절은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부터 있었는데..
그 당시 절은 유교에서 가르치듯 웃 사람에게 아랫 사람이 공경 또는 복종을 표시하는 예절이었다.
그에 반해 절에서 절은 상대가되는 부처님에게 복종한다는 의미 보다 자신을 낮추는 예법임을 알아야 한다.
그게 그그 아닌가 할 수 있는데.. 불교의 주체는 나임을 잊으면 아니된다.
불교의 중심인 부처님은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할 목표[성불]다.
내가 합장하고 존경과 사랑으로 절하는 부처님은 앞으로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미래 내 모습이다.
미래에 부처가 되기 위해서 지금 나는 오만이나 건방이 아닌 겸손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을 내어야만 한다.
겸손은 힘들다고 했다.
자본주의라는 생존경쟁 사회에서 나를 지키려면 오만은 아니더라도 겸손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절 밖에서는 절 안에서 와는 전혀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가 적지 않다.
아니 절에 오면 마음가짐이 절 밖에서 와는 철저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절 밖 사회에서는 서열이 있어 상명하복이 있고, 빈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절 안에 오면 서열이 사라지고, 빈부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닌 게 된다.
모두가 환한 마음으로 미소를 짓고 따뜻한 말들을 나눈다. 힘든 일 겪는 이가 있으면 진심으로 위로하며 하나가 된다.
절 안에서는 모두가 부처님이 되려는 하심의 겸손한 제자가 되어 어울려야 한다는 것.
절 밖 사회에서는 지금도 약육강식의 야망과 탐욕과 사기와 절도, 마약 온갖 치열과 악행이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그런 곳에서 겸손인 하심은 자칫 강자의 먹이가 될 수 있다.
불자는 절 안에서 마저 서열이 있고 빈부 차이가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만일 불국정토인 보살 세상이 펼쳐진다면.. 그곳에서는 겸손이 미덕인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 겸손과 보시는 절 밖이 아닌 절 안에서 미덕일 뿐이다.
절에서 절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서는 겸손으로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하는 다짐이 담겨 있다.
요새 절에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네요 하는 푸념이 있는데..
그 이유가 절에 와도 절 만의 따뜻한 온기와 정을 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지..
겸손 보다 약육강식의 서열을 뽐내고 자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절에서"
절하려 바라보는 부처님
미소로 화답하는 부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