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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필요한 것은 오직 고요한 마음 뿐...아이 앰 댓 (I AM THAT) 하권
문: 저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좀 약한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M: 건강하지 않은게 누군가? 자넨가, 몸인가?
문: 물론 제 몸이지요.
M: 어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럼 좋지 않았던 건 뭔가?
문: 몸입니다.
M: 몸이 좋을 때는 즐거웠고 몸이 안 좋을 때는 언짢았는데, 하루는 즐거웠다가 하루는 슬픈 그 놈은 도대체 누군가?
문: 마음입니다.
M: 마음은 아는 자가 아니야, 아는 자를 아는 건 누군가?
문: 아는 자가 그 자신을 아는 게 아닙니까?
M: 마음은 계속 될 수가 없어. 그건 계속해서 나타났다 지워졌다 하는 거야. 꿈을 꿀 때나 기절을 했을 때나 넋이 나갔을 때에는 마음이라는게 없지 않아? 그런 식의 불연속성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문: 마음은 기억을 합니다. 이것이 계속성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M: 기억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믿을 수가 없는 것이라 무상한 것이야. "내가 있음" 즉, 의식 속에 편만해 있는 주체성(identity)을 기억이 설명해 주지는 못해.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의 뿌리에 있는 것을 찾아보도록 하라구.
문: 아무리 깊이 바라보아도 마음밖에는 모르겠습니다. 마음 너머라고 하는 선생님 말씀은 저에게는 아무런 실마리가 안 됩니다.
M: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한 마음을 넘어설 수가 없어. 넘어가려면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서 마음의 내용물을 바라봐야 해.
문: 어느 방향으로 봐야 됩니까?
M: 방향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야. 난 지금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구.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에게 거리감을 두고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에게 그것들을 돌려보내야지. "내가 있음"이라는 것은 방향이 아니야. 그건 모든 방향을 부정하는 것이야. 궁극적으로는 "내가 있음"이라는 것도 없어져야 해. 왜냐하면 명백한 것은 계속해서 주장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마음을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으로 가져가는 것은 마음을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돌리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문: 그 모든 것이 저를 어디로 이끌어 줍니까?
M: 마음이 뭔가에 빠져 있지 않게 되면 조용해지지. 그 고요를 방해하지 않고 그 속에 머무르게 되면, 마음은 자기가 예전에 결코 알지 못하던 빛과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알게 돼. 그때에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일단 한번이라도 이런 체험을 겪고 나면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어. 통제되지 않은 마음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마음의 시야를 흐릴 수 있지만 계속적인 노력이 있으면 반드시 본래자리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리되면 결국 모든 장애가 해체되고 착각과 집착이 끝나서 인생이 지금 현재에 집중되어 아주 충실하게 살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는 것이야.
문: 그런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다줍니까?
M: 그리되면 더 이상 마음이 존재치 않아. 오직 움직임 속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지.
문: 제가 거기에 이르게 되면 그 상태를 어떻게 의식할 수가 있을까요?
M: 그리되면 두려움이 없어.
문: 불가사의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에 둘러싸인 제가 어떻게 두려움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M: 자네 자신의 작은 몸뚱이도 불가사의와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자네가 그걸 무서워하지는 않지 않나? 그건 몸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야. 자네가 지금 모르고 있는 것은 온 우주가 바로 자네의 몸이기 때문에 그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개인적인 육신과 우주적인 체라고 하는 두 개의 몸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개인적인 몸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우주적인 몸은 언제나 자네와 함께 있는 걸세. 전 생명체가 바로 자네의 우주적인 몸일세. 자넨 지금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에 정신이 팔려서 우주적인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야.
이러한 맹목적인 자세는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아. 아주 기술적으로 그리고 교묘하게 해체될 수밖에 없지. 모든 착각이 이해되고 포기되면 더 이상 실수가 없고 완벽해져서 개인적이고 우주적인 것 사이에 전혀 분간이 없는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되는 거라구.
문: 저는 한 사람의 개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속에 제약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주 적은 공간밖에 차지하지 않고 아주 짧은 시간 속에 있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영원하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M: 그렇지만 자넨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질 않나? 만약 자네가 자신의 본성을 찾아서 자기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자신의 몸은 아주 작고 기억은 매우 짧은 반면에, 저 광대한 삶의 바다가 바로 자네의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거야.
문: "나"라는 말과 우주적이라는 말은 모순되는 말입니다. 하나가 맞으면 다른 것은 틀려야 되지 않습니까?
M: 그렇지 않아, "나"라는 느낌은 보편성 속에 퍼져 있는 점들일세. 잘 찾아보면 자기 자신이기도 하면서 그보다 무한히 더 큰 우주적이기도 한 존재를 발견하게 될거야. 어쨌거나 세계가 자네 속에 있는 것이지 자네가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시작하도록 하세.
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단지 세계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만약 거울처럼 비추는 반영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어떻게 전 세계가 부분 속에 포함될 수가 있단 말입니까?
M: 바로 자네 말이 옳은 말일세. 자네의 개인적인 육신은 놀랍게도 그 안에 전체가 반영되어 있는 부분일세. 그런데 자네에겐 말이야, 우주적인 육신도 있다네. 자넨 이미 언제나 그것을 보고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난 모릅니다라고 해도 그건 틀리는 말이야. 일단 그걸 두고 세계라고 지칭을 하게 되면 벌써 그걸 두려워 한다는 말이야.
문: 저는 저의 작은 육신은 아는 것 같습니다만, 과학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다른 것은 모릅니다.
M: 자네의 작은 육신이야말로 불가사의와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것이라 그건 자네가 알지 못해. 거기서는 과학이라는 것도 단지 안내자에 불과하지. 해부학과 천문학, 모두가 바로 자네 자신을 설명하는 거라네.
문: 제가 우주적인 육신에 관한 선생님의 이론이 옳은 이론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제가 그걸 어떻게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겠으며 그게 또 제게 무슨 소용입니까?
M: 자기 자신을 그 두 몸 모두 속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안다고 해서 상실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그리되면 전우주가 자네의 관심사가 되고 모든 생명을 사랑해서 아주 포근하고 현명하게 도와줄 수 있게 되겠지. 그리되면 자기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이해관계라는 분열이 없게 돼. 착취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게 된다구. 그리되면 모든 행동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모든 움직임이 축복이 되는 것이야.
문: 그 말씀은 아주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제가 저의 우주적인 존재를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 나가야 합니까?
M: 두 가지 방식이 있어. 하나는 자신의 마음과 심정 모두를 자기 발견에 쏟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 말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야. 달리 말하면 전적으로 자기에게 관심을 쏟든가 전적으로 자기에게 무관심해지든가 해야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전적으로라는 말이야. 초월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은 일단은 극단적이 되지 않으면 안 돼.
문: 저처럼 작고 한계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높은 것을 열망할 수가 있습니까?
M: 자넨 말이야, 모든 것이 자네 자신의 의식의 큰 바다 속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이건 어렵지 않아.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는 주의 깊은 태도가 조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자네 자신의 의식 밖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문: 세계에는 제 의식 속에서 발생한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사건으로 가득합니다.
M: 그렇게 말한다면 자네의 육신도 자네의 의식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 온갖 사건들로 가득해. 그렇다고 해서 자기 몸이 자기 게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 지금 자네가 세계를 알고 있는 방식도 자신의 육신을 아는 방식과 완전히 똑 같아. 결국 감각을 통해서가 아닌가? 지금 세계를 자네의 피부 밖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자신과 대립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자네의 마음일 뿐이야. 이것이 바로 두려움과 미움을 만들어서 인생의 모든 비참함을 낳고 있는 것이지.
문: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의식을 넘어선다는 말씀입니다. 말은 이해하겠는데 도저히 상상이 안갑니다. 결국 선생님도 스스로 모든 체험은 의식 속에서 발생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M: 자네 말이 맞아. 의식을 넘어서면 체험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냥 존재한다고 하는 체험도 있다네. 의식 너머의 상태가 있어. 그것은 무의식도 아니야. 어떤 사람은 그걸 두고 초의식이라든가 순수의식이라든가 또는 초월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그러니까 그건 모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떠난 그냥 순수한 자각이라고 볼 수 있어.
문: 저는 신지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 말씀과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확실히 신지학은 심령현상만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주와 우주 내부의 모든 상응하는 존재자에 관해서 아주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온갖 레벨의 물질이 있고 그에 따른 체험의 수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넘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는 말씀은 모든 체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체험할 수 없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왜 하는 것입니까?
M: 의식은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고 하기 때문에 중간에는 틈이 가득하지. 하지만 동일성의 계속이라는 것이 있어. 만약 의식 너머에 있는 무언가 때문이 아니라면 이러한 동일감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나?
문: 제가 마음 너머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 자신을 바꿀 수가 있습니까?
M: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어디 있나?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언제나 바뀌고 있는데.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나. 마음을 가라앉히면 그걸로 충분해. 마음이 고요해지면 넘어갈 수가 있어. 마음을 이런저런 일로 계속 바쁘게 하지 말라구. 마음을 정지시키고 그냥 있어 봐. 그것에 휴식을 주면 마음은 가라앉아서 그 순수성과 힘을 회복하게 되지. 계속 생각을 해대면 마음은 피폐해진다구.
문: 저의 참된 본성이 언제나 저와 함께 있다면 어떻게 제가 그걸 모를 수가 있습니까?
M: 왜냐하면 본성은 아주 섬세한데 마음은 거친 생각과 느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끗하게 만들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 수가 있어.
문: 제가 제 자신을 알려면 마음이 필요합니까?
M: 자네는 마음 너머에 있지만 아는 건 마음으로 아는 거야. 지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특성은 명백히도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에 달려 있어. 자신의 도구를 개선하면 지식도 향상된다구.
문: 완전하게 알려면 완전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M: 조용한 마음으로 충분해. 일단 마음이 고요해지면 다른 모든 일은 저절로 일어나는 거야. 떠오르는 해가 세계를 활발하게 만들 듯이 자각이 마음속에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킨다네. 조용하고 침착한 자기 이해의 빛 속에서 내면의 에너지가 각성하면 스스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더라도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구.
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대단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까?
M: 바로 그거야. 자넨 이미 깨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나. 자신의 운명에 거역하지 말고 그에 협조하도록 해. 거기에 맞서서 일을 망치지 말고 그것이 스스로의 일을 완수하도록 내버려 두게나. 해야 할 일이라곤 바보 같은 마음이 낳은 여러 가지 장애를 잘 지켜보는 일 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