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하여 가슴을 연 여름
별물
국찬성 시인은 미소를 띠고 바라보는데
어서 그대 먼저 창문을 여시라는 말 같다
국찬성 양정린 팀은 눈빛으로 얘기하네
" 시이론에서 항용의 존재란 주어진 삶을, 주어진 세계를 충실히 사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시적인 삶이란 항용의 삶을 보다 새로운 삶으로 전이, 치환, 변용함으로써 이때까지의 삶을 극복, 지향, 승화, 초월시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엔 상상력을 빌린 세계가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상상력을 빌어 승화 초월한 새로운 세계를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추구한 새로운 세계는 한낱 가공의 세계에 머무르고 맙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3년만 시에 미치면 시가 무엇인지 실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은 믿음을 뒷받침하고 단순한 의지와는 다른 체험적 신념이 됩니다.
시에 미친다는 말은 맹목적으로 미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시에 집중하는 절대집념을 의미합니다
일상적 삶을 시적으로 미적 세계를 빌어
좀더 고상한 세계로 상승시킨다는 뜻이라 합니다. 저 사람 시인 같다 라는 뜻은 그의 생활이 시적 관심 시적 생활로 넘친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시에 경도되어야 시를 가까이 하고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않고선 시를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고 시인이 된다해도 겉도는 항용의 시인 밖에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달 부터 열심히 시에 경도되어 뛰어 다녀보며 시평론도 시와 붙들고 씨름하듯 해보니 뭔가 빛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모여 시에의 접근을 가능케 할 것 같다는 희망의 빛을 보는 것 같네요! 여기서 멈추면 또 원래로 돌아가니 계속 지금처럼 희망을 가지고 해보시면 틀림없이 눈이 뜨일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양정린 시인이 열정적으로 시의 의미성을 부각시키자 개념이 밝아지며 더욱 희망적으로 되었다.
공감과 감동의 박수소리가 시냇물처럼 흘러나왔다.
국찬성 시인이 김 영 랑 시인의 '내 마음을 아실 이' 시를 낭송하고 시평론에
부딪쳐 보기로 했다
"
내 마음을 아실 이
김 영 랑 시인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
현대시의 초기의 대표시인 중의 한 분인 김 영 랑 시인은 거의 정형시에 가까운, 약간의 변격만을 사용하였지만 거의
7•5조, 3•4조의 운율을 사용하여 거의 노래말로 써도 될 것만 같애요 . 최근에 올수록 운율에 대한 관심이 엷어지고 언어의 이미지의 측면에 집중하게 되지만 원래 언어자체엔 리듬감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자유시라도 언어 자체의 운율감으로써 시 같은 느낌이 살아나고
훌륭한 현대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었으며 그러기까지 현대시의 초기의 김 영 랑 시인 같은 대표시인님들의 노력과 애쓰심이 눈에 보일듯이 가이 추측이 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는
바로 서정적 자아인 시의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 줄 평생의 반려자를 가리키는 것 같애요! 그러므로 김 영 랑 시인의 시의 주인공만의 고민이 아닌 점점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동서양의 모든 젊은이들의 고민이며 감정이며, 어쩌면 나이 드신 분도 느끼실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며 나아가서는 살아가는 전 기간에 누구나 느끼는 감정으로 해석되어(애기가 우는 것도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호소로 해석) 세계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명시일 것 같습니다. 우리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외국에 서점에 비치하여 외국 독자에게 감상할 기회를 선사하는 일도 뜻 깊은 일이 될 것 같애요. 감사합니다. 좋은 시를 읽고 나니 김 영 랑 시인의 다른 시도 기다려집니다. "
사방에서 박수가 아낌없이 쏟아져 나왔다. 국찬성 시인의 평론으로 우리 대표시인들의 작품이 더 읽고 싶어지고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국찬성 시인의 시해설은 시인들의 인식의 정원을 더 넓게 해주셨다. 양정린 시인이 영시 한편을 마저 낭송했다
"
The House of Poets at Hometown(고향에 있을 시인의 집)
한물
Forty years plus five years ago my remembrances begin
A stream was flowing in front of the house, not so wide
There were always small fishes in water playing with children
Eatings were made of rice, potatoes, beans, and pumpkin etc
But memories are still no less sweeter than any other meals
Aunt's performance of food was so much special
to my reminiscence
Cousins were very fond of me and my brother
So we have no mine and thine but enjoyed everything together
Perhaps as if in primitive age we all lived our life barefoot
Brothers and sisters become older gradually as time passed
They made all their family preparing the seats for grandchildren
Time flow like river showing us goodness gives birth to goodness
In old hometown there's still be flowing the stream singing with birds
Also there shall be a house of poems beside the stream
On the evening the bright moon will shine on top of the mountain
Even if old brothers have gone to other cities, our poets
Would arrange a quiet house learning poems and writing
How shall the life be graceful to enjoy the work of sympathy
사십 하고도 오년 전으로 기억은 거슬러 오르면 그리 넓진 않지만 작은 시내 집 앞을 흐르고 시냇물 늘 첨벙거리며 노는 아이들과 고기들
쌀과 감자, 콩과 호박 같은 식물성 음식이었지만. 어느 다른 먹을 것보다 더 달고 맛이 있었네. 숙모님 음식 솜씨야 말로 추억 속에 남아 있네.
사촌 형제들은 모두 나와 동생을 좋아 하였고 우리는 니 것 내 것 없이 모두 함께 즐겼다. 아마도 원시시대 아이들 처럼 맨발로 뛰었나 보다
형제와 누이들은 세월과 함께 나이 들어가겠고 손자 손녀 키울 자리도 마련하고 있겠지.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善이 善을 낳는구나
옛 고향 마을엔 새 우는 시냇물 아직 흐르네. 그리고 시냇가엔 시인의 집도 열리겠지. 저녁엔 환하고 둥근 달님이 동산에 비치겠지
옛 형제들 다른 도시로 이사하여도 우리 시인들은 조용한 집을 마련하여 시와 글쓰기 배우겠지. 고향에 동정(sympathy)을 즐기는 우아한 인생의 삶이여.
"
양정린 시인도 항상 느낌을 살리며 낭송했다. 세련된 영어리듬으로 정적인 시의 흐름을 흥미롭게 살리는 양정린 시인은 영시도 같이 공부하고 싶은 희망의 빛도 보여준다.
" 한물 시인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전원시를 그림으로 그리며 어릴 때 시내에서 물을 첨벙거리고 놀던 기억과 숙모님이 만들어 주시던 먹거리의 재료와 서로간의 조합으로 탄생한 음식의 잊혀지지 않는 맛 그리고 시냇물을 건너는 버스가 지날 수 있는 다리, 뒷마당에 심어 놓은 채소들의 이름 같은 정다운 시어들이 가득합니다. 그 곳은 영덕이라는 곳인데 대게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합니다. 교통도 옛날과 달리 빠르고 편리하니만큼 언젠가 우리 별물문학팀도 한번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군요! 아마도 이런 바램을 가지도록 한물 시인이 영문과 우리말로 상세하게 시를 지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양정린 시인의 시평론은 시원스런 박수를 받고 마치 인수분해를 통해 수식을 간단히 하듯이 원인과 결과를 통쾌하게 이해하게 하였다. 원형상징 속의 원형상징처럼 고향을 찾아가도 그 고향속에서 옛날 고향을 찾는 일은 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고향을 한번 다녀가면 어지간한 향수병은 일단 치료가 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일행은 여행 예정지들 안에 영덕도 넣어 놓기로 했다. 그러면서 간단한 식사도 하며 차와 커피와 아이스
크림으로 입가심도 했다. 열심히 하는 시인들에겐 촌음도 가치가 있었다. 또 내일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기도 해야 한다. Bye bye, Let's see again, Farewell to us all 하면서 팀별로 헤어졌다. 폴라 선생님과 서국서 시인도 모두에게 인사하고 버스로 연희동으로 건너왔다. 폴라 선생님 댁 가까이 모셔드리고 인사하려는 서 시인을 폴라 선생님은 포옹하고 다독여 주셨다. 덥지만 서국서 시인에겐 꿈같은 순간들이었다. 너무 고마워 눈물도 났지만 꾹 참아 보았다. 폴라 선생님은 헤어질 땐 어머니 같고 여성이 되었다. 폴라 피터슨 선생은 서국서 시인을 가슴에 안고 얼굴을 파묻게 하여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포근한 여인의 가슴은 서 시인을 옛 고향집의 뜰로 데리고 갔다. 더 같이 오래 있고 싶었지만 중용을 지켜야 한다.
" Thank you Sir Paula! I guess we may well go home Sir! See you tomorrow! I confess I love you to the height of that hill top, Sir. "
서국서 시인이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 You become like a baby, but I still more fancy the time and I confess too following you that I'm yours and I love you Poet Seo Sir! Don't worry because I am always beside you Sir! " 폴라 선생님은 얘기하시며 다시 한번 포옹해 주셨다. 서 시인은 잠간 과일을 사와서 들려드렸다. 마침 캐시 디킨슨 양이 문 앞에서 폴라 선생님을 모시고 들어 갔다. 돌아 보시며 Bye bye 하셨다. 폴라 선생님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