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학위복
원준연
정년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장서를 처분하는 일이었다. 집이 넓어서 연구실을 집안으로 옮긴 것처럼 꾸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니 하는 말이다. 수천 권의 서적을 사랑하는 딸들을 시집보내듯 애틋한 마음으로 여기저기로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디든지 새로운 곳에 가서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서 도서관으로, 중고서적으로 때로는 폐휴지수집상으로 서책이 새 주인을 찾아서 떠나는 것을 담담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연구실 한편에 있던 캐비닛 옷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오래전 학생들이 모꼬지를 갈 때 마련해 준 학과 점퍼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점퍼가 외롭지 않도록 학위복도 걸려 있다.
벌써 3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학위복은 박사학위를 받을 때에 맞춘 것이다. 빌려 입고 학위식을 치러도 되지만, 나는 굳이 맞춰서 입었다. 미래에 반드시 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에도 지금처럼 취업이 쉽지 않았다. 특히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대학으로의 진출은 더욱 그랬다. 박사학위는 대학으로 진출하는 하나의 기본 요소이지, 학위가 있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교직이 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는 판단을 하고, 국공립이나 사립의 대학 문을 정성껏 열심히 두드렸다. 차선책으로는 중고교의 교사도 염두에 두었었다. 운이 좋게도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면, 학위복이 자주 쓰일 것으로 생각하여 일찌감치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물론 큰 역할의 보직을 맡아야만 학위가운이 더욱 빛을 발하겠지만.
학위를 받을 때에 가운을 입는 전통은 서양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학사복이나 석사학위복과는 달리, 박사학위가운에는 소매에 특유의 세 줄이 새겨져 있고, 사각모의 술이 금색인 것 외에도 후드가 두드러진 특징이다. 후드는 뒤에서 보면 사각형의 방패모양으로 소중한 자유를 지킨다는 의미가 들어 있단다. 대학의 역할 중에 자유의 수호가 큰 덕목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후드에는 전공 특유의 색깔이 들어있다. 후드의 색을 보면 곧 그 사람의 전공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의 후드를 보면 짙은 노랑을 넘어 옅은 갈색을 띠고 있다. 농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고유의 색이다. 그 색은 옥수수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후드 색을 결정할 무렵의 미국 농업은 그 효용성이 널리 알려진 옥수수가 대단위로 재배되었던 까닭이 아닌가 한다. 썩 예쁘지도 않은 옥수수 색깔보다는 차라리 기름진 흙을 의미하는 짙은 고동색으로 표현을 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30여년을 뒤돌아보니, 애석하게도 나의 학위복은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평교수로 정년을 맞이하다 보니 어쩌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옷장에서 나와 더러 바람을 쏘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린다고 해서, 결단코 감은 저절로 떨어지지 않았다. 자연에서는 어쩌다 더러 떨어지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그마저도 없었다. 긴 장대를 이용하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 따야하는데, 융통성이 없는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평교수로 지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름대로는 보람도 있고 즐겁게 보낸 시간이었다. 한번은 동료 학장이 졸업식에 참여해야 하는데, 학위복을 빌려 달라는 것이다. 같은 농학박사여서 나는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내 학위복이 가장 호사를 누렸던 유일한 행사였던 것 같다.
학위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고이 챙겨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데,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곧바로 드레스 룸에 걸어 두었다. 눈길이 스칠 때마다 안쓰럽다. 고지식한 나를 질책하는 듯도 하다. 학위복의 상태는 아직도 멀쩡한데, 첫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이다. 새로운 주인을만나서 활발하게 쓰일 수 있도록 기증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서를 기증할 때와 똑같은 마음이다.
모교의 대학원 학생회와 연결이 닿았다. 흔쾌히 기증을 받겠단다. 고마웠다. 많은 훌륭한 분들의 학위식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기를 바라면서, 마중 나온 원생에게 기꺼이 학위복을 건넸다.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돌아서서 나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첫댓글 30년을 함께 한 학위복을 모교에 기증하셨네요.
감회가 남다르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