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과응보를 강조한다. 인과응보는 운명은 변하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선이다.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 했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착한 일을 계속해서 하면 복이 자신과 후손에게 미친다는 말이다. <춘추전>에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1. 양나라 무제와 국사인 지공스님과 대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양무제가 지공 스님에게 자신의 전생을 알고 싶다고 했으나 스님은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자 양무제는 다시 간절히 청하면서 “제자는 과거의 인연을 매우 알고 싶습니다.”고 하였다.
지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은 전세에 나무꾼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때 오래된 절이 있어 보니, 낡고 허물어져 산문(절)이 몰락한 것이었습니다. 지붕도 다 허물어져 절 안에 오래된 불상이 비바람에 젖어 있었으며 공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 나무꾼은 착한 마음을 발하여 자기의 대나무 삿갓을 벗어 불상의 머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꾼이 자신의 삿갓을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어렵고도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 덕분에 인간이 되고, 왕의 몸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왕께서 전세에 이렇듯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러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송나라 범중엄(范仲淹) 무주상 보시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범중엄(范仲淹)은 강소성 소주인(蘇州人)으로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절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한번은 농사일을 하는데 밭을 갈다가 한통의 금은을 발굴하게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다시 묻어버렸다. 나중에 출세하여 신분이 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절의 스님께 알려 그 금은을 파내어 절을 짓는데 사용하였다. 그는 소주에서 “범씨의 집”을 건축하여 각종 사회복리사업을 하고, 300여 집의 빈궁한 집안사람을 도왔다.
소주에 남원(南園)이 있는데, 풍수가의 말을 따르면 만약 그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반드시 현귀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그는 마침 승상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그 땅을 사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집안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은 한 현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하면서 그곳을 사서 집을 짓기 보다는 소주서원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의 자손들도 이와 같이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아들인 범순인도 재상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이 근 천년을 내려오면서 결코 집안이 쇠락하지 않았다.
3. 정명공주의 생명에 대한 귀중함
조선 선조의 첫째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년 5월 19일-1685년 8얼 10일)의 어머니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되었다.
이 정명공주가 병자호란으로 강화도로 피신을 가면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배에 싣고 갔다. 왕의 후손으로 금은보화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청나라가 쳐들어와 수 많은 백성들이 강화도로 건너는 배를 타려고 발버둥을 치자 정명공주는 배에 싣고 가던 금은보화를 모두 버리고 사람을 싣고 갔다. 이를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정명공주의 후손은 번창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실제 정명공주의 후손은 번창을 했다. 정명공주의 이런 행위가 바로 선업이다. 선업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을 말한다.
정명공주는 모후 인목대비가 폐비되어 혼기를 놓치고 스무 살이 넘어서 풍산홍씨 가문의 홍주원과 혼인하였다. 공주의 후손이 번창하여 영, 정조시대의 홍봉한, 홍인한 형제, 홍국영, 혜경궁 홍씨, 벽초 홍명희가 태어났다.
4. 머슴 제사를 지낸 준 어른 이야기
충청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머슴살이를 온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이 머슴이 밥상을 받자 먹지 않고 한쪽 벽쪽으로 놓고 먹지를 않는 것이다. 이를 본 주인이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머슴은 "오늘이 아버지 제사인데 머슴 사는 주제에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이렇게 서라도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말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머슴 아버지를 위해 제사를 잘 지내주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모습인가. 주인의 이런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하늘과 땅이 어찌 무시하겠는가? 이런 결과로 주인의 자녀들이 대대손손 매우 번성하였다고 한다.
5. 하늘이 알아주는 일을 한 양영(楊榮) 가족
양영(楊榮)은 명나라 때 복건성 건영현 사람으로 집안 대대로 강에서 배로 행인들을 건네주는 일을 했다. 어느 해 홍수가 나서 제방이 무너져 민가가 온통 물에 잠겼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물살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 오자 다른 배 주인들은 모두 떠내려 오는 재물을 건지는 데만 힘썼다. 그런데 유독 양영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사람을 구하는 데에 힘쓰고 재물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었다. 물건을 챙기지 않고 사람만 구하다니 언제 가난에 벗어나겠나. 한심 하도다.
이에 양영 중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이 일을 그 누가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 하늘은 알아 줄 것이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도 후손들은 잘 살것이다."
양영의 아버지가 태어날 때에 이르러 집안이 점점 부유해졌다. 어떤 보살(신선)이 도사로 변장해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그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음덕을 많이 쌓아 자손들이 틀림없이 부귀영달을 누릴 것이니 저 곳에 묘를 쓰는 것이 좋겠소.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곳에 묘를 썼는데 과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줄줄이 벼슬을 했다.
양영(楊榮)은 어릴때 부터 천자총명(天資聰明)하였으며 글 공부를 열심히 하여 20세 때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삼공(三公)은 태위(太尉), 사도(司徒),(사공)司空을 일컫는다.
‘부모에게 안부 전화하면 복을 받는다.’고 할 때 부모가 신통한 능력이 있어 복을 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전화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고 고와서 천지가 감동을 하여 복을 내리는 것이다.
나무꾼이 착한 마음을 발하여 그 결과로 임금이 되고, 한 집안의 인재보다 현에서 인재가 나오길 바라면서 집 대신 서원을 지어 후손이 부귀하고, 정명공주가 생명을 살리는 행위로 후손이 대대손손 번창하고, 머슴의 제사를 지내 준 주인의 따듯한 마음 덕으로 자손이 번창 하고, 물건보다 생명을 먼저 구해 준 갸륵한 마음 덕으로 집안에 큰 인재가 바오는 것은 우주법계(천지)도 감동을 하는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을 물러가게 하는 것은 따뜻한 봄 기운이다.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따뜻한 마음은 옆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