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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예수의 결론은 아래의 34절로서 예수를 더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와 자식간에 원수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가 원한 것은 가족간의 불화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결합하는 기본 단계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지배층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없애고자 했고 그래서 혼인을 못하게 하는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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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왜 예수는 이렇게 이야기 했을까요? 쉽게 생각해서 아비가 빚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그 여자와 딸과 아들들이 그 빚을 이어 받기 때문에 그 아비를 비난 할 것이니 원수가 되고 그 어미는 과부가 되어 창기가 되니 부끄러워 하여 외면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화평이 아니라 죽이는 검을 가지고 왔다고 당당히 이야기 한 것이고 36절에서 사람의 원수는 예수가 아니라 너희 집안의 식구라고 책임을 회피 한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확실하고 분명하게 예수가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예수를 사랑의 예수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예수교도들의 사악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한결 같이 사탄을 찬양했고 재물을 빼앗고 창기가 될 것과 창기와 하나 될 것을 이야기 했음에도 예수를 따른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사탄을 숭배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 입니다.
가족간의 사랑도 인정하지 않는 예수가 이웃간의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5장 43절 이후의 내용을 보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너희가 들었지만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내용은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외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는 예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예수는 이에 멈추지 않고 이어서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느냐며 떠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을 사랑해 봐야 소용없으니 네 이웃과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 개 같은 망나니 예수가 아직도 사랑의 예수로 보이십니까?
예수는 나아가 세리들을 봐라 그들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산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세리들은 친구와 이웃에게서 세금을 걷고 사채빚을 통해 친구와 이웃의 피를 빨아 먹는 자들이였습니다. 다시말해서 세리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채업자는 결단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였던 것이죠. 그러한 세리가 잘먹고 잘 산다며 이웃을 사랑해 봐야 소용없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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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세상 모두가 악하다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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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
예수에게 영생과 천국을 묻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가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답은 기본적인 이야기로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고 이야기하며 선한 사람은 오직 한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들은 악하다는 이야기이고 바리새인들도 악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계명을 지켜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고 유대인의 율법을 비웃기 위한 준비 과정 입니다. 예수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는 대부분 마지막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계명을 이야기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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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 19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계명은 유대인의 율법입니다. 부자 청년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다며 그래도 제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까? 라고 재차 묻습니다. 왜 저 청년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데 새로운 다른 내용이 있냐고 묻겠습니까? 예수가 다음의 할 말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도들이 그렇게 작성 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에 나옵니다.
<사랑보다 재물 바칠 것을 주장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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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어떤가요? 결국에는 모든 재물을 바쳐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라고 말하시면 여러분은 아직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한 것 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예수는 재물을 빼앗았으면 남자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씨를 말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라고 말을 하고 예수를 따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 청년은 예수의 실제 모습을 모르기에 예수를 따라가면 훗날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지만 예수는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는 짧은 기간에 죽어 천국에 갔으니 예수를 따라 그 남자도 천국에 가는 것이며 결국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유대인의 율법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들었지만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19장은 누가복음 12장과 같이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며 누가복음에서는 명확하게 예수와 서기관의 사랑에 대한 개념이 다름을 이야기 합니다. 먼저 마태복음을 보면 율법사가 나오는데 율법사는 서기관을 의미 합니다. 아래의 누가복음을 보면 서기관이 예수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랑에 관해 예수에게 묻는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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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예수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서기관이 예수에게 사랑에 관해 묻습니다. 위의 40절에 보면 예수의 답변이 율법과 선지자의 두 계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율법과 강령이 아닙니다. 예수와 유대인의 율법의 관계를 아래의 누가복음은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서기관에게 혼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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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장> 30 (예수가 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 33 ...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
먼저 예수는 야훼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큰 계명이다고 합니다. 이는 유대인의 율법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진심은 이것이 아니였죠. 그래서 서기관이 참지 못하고 32절에서 한 마디 합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재물을 바치는 것 보다 중요합니다.'고 말 합니다. 서기관이 재물을 바치는 것 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는 사랑 보다 재물을 우선시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뒤의 말이 생략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이웃간의 사랑 보다 재물을 원하십니까?'라고 서기관이 말했고 예수는 '세상에 선한 사람은 천국의 아버지 뿐이고 너희도 악한 자들에 불과하다. 잘난 척 그만하고 죽어라'라는 말이 생략 된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부자 청년에게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 했고 그 다음에는 재물을 바치라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혹시 '재물을 바치라'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라고 했다고 변명 하시면 앞의 문서들을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예수와 사도들을 의미하며 그 증거를 적어 놓았습니다.
서기관은 재물을 바치는 것 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을 했고 예수는 사랑보다 전 재산을 바치고 예수를 따라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 핵심 입니다.
이제 그나마 제대로 된 사랑에 관한 예수의 이야기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래의 내용이 이웃간의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면 예수를 잘못 이해 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가 그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역시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르구나 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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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33 ... 내가(예수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먼저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는 유대인들이 예수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곳은 천국입니다. 이 만큼 예수는 처음부터 유대인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랑에 대한 새로운 계명을 말 합니다. 이는 유대인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계명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웃간의 사랑이 아닌 예수와 사도들끼리의 사랑이며 제자들끼리 사랑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라고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의 새로운 사랑은 인류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른 것임은 분명 합니다. 정확히 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예수의 사랑은 예수의 제자임을 알게 하는 사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추측 할 수 있으니 유대인들이 예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나쁜 행위에 대해서 비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비난 받을 수록 예수와 천국의 아버지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난 받을수록 예수는 제자들을 믿을 수 있었고 예수와 천국의 아버지는 비판을 받지 않고 재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의 요한복음 13장 33절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은 예수가 가는 천국에 올 수 없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신의 나라와 예수가 이야기하는 천국은 다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요한복음의 내용으로 15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에서도 예수가 말하는 사랑은 제자임을 알게하는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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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8 ...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못 찾으셨나요? 요한복음 15장 8절 제일 처음에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5번]에서 설명한 예수의 제자임을 알게 하는 사랑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인들끼리 사랑하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고 더 정확히는 예수에게 재물을 많이 바쳐 피지배자들로 부터 비난을 많이 받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 예수는 사탄도 망하지 않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교도들의 사랑은 사탄을 위한 사랑이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예수가 말한 사랑의 전부 입니다. 그 어디에도 예수는 이웃과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을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오히려 이웃과 부모와 자식간에 원수가 되라고 말했고 그 이유는 서로에게 사채빚을 권유하기 위함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있으니 세리들이였고 그래서 세리들은 잘 먹고 잘 산다고 예수가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오로지 돈 뿐이였습니다.
이번에는 예수의 실제 고향사람들과 친척들이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예수는 베를레헴에서 태어나자 마자 다른 지방으로 숨어 지내게 됩니다. 그 이후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는 예수를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가 나사렛에서 자신을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주장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며 세례요한의 흉내를 내기 시작 합니다.
따라서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의 고향 사람들과 친지들은 예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는 고향사람들을 매우 싫어 했고 그래서 그들의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갈릴리 예수라 칭해야 예수를 위한 정확한 호칭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은 예수를 갈릴리 예수라 칭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버나움은 갈릴리에 있고 갈릴리는 갈릴리왕 헤롯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갈릴리 예수는 이치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예수교도들은 갈릴리예수 보다 이치에 맞진 않지만 나사렛 예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고향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예수를 어떻게 평가 했고 예수는 그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향에서 배척 받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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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마가복음 6장 1절, 누가복음 4장 22절, 요한복음 4장 43절] |
우리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서에서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윗 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예수가 나사렛에서 결코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며 둘째 예수는 나사렛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으니 그 핑계가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셋째로 이 글들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글로서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뒤집어 말을 해서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네번째 예수의 실제 고향을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방인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합해 보면 예수는 나사렛이라는 거짓 지명을 만들고 거짓 족보를 이용하여 유대왕이 되려 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이방인일 수 있다는 것은 저의 가설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이 논란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먼저 다른 내용들을 예수교도들은 반박하고 그 반박을 예수교도들이 이겼을 때에 이 문제를 토론 하거나 연구 할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살기 시작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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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가버나움에 있는 헤롯의 신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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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46 ...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살게 된 이유는 먼저 성경을 통해 보면 예수는 선지자로서 고향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 아니였기에 아무도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가짜이유이고 실제 고향은 가버나움일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땅이였고 갈릴리왕 헤롯이 다스리는 영토이며 헤롯의 신하들도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헤롯의 측근들을 이용하여 활동하기가 쉽고 안전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친족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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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의 친척들이 예수를 미쳤다며 그를 붙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부분 역시 예수가 결코 선지자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음을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선지자로서 태어나 자랐다면 고향사람들과 예수의 친척들이 저러한 행동을 했을리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겠습니다. 이는 실제로 이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에 이렇게 적은 것은 예수교도들에게 부모와 가족간의 사랑 보다 천국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예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위의 [1번]에서 본 부모와 자식간에 원수가 되어라라고 가르친 것과 같고 가족보다 예수에게 수종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족 보다 예수를 따르라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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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
<장사를 지내지 않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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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
이 모든 글의 핵심은 예수에게 유대인들의 가족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며 유대인들의 가족이 단결하여 유대 민족을 형성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인들이 죽은 그들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기를 바랬고 그 시작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였습니다. 제사를 통해 민족을 생각하는 민족은 민족정신이 높아 지고 독립심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제사에 대한 예수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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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를 명확하게 적어 놓았으니 죄인을 위해서 이고 의인을 없애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죄인은 세리들이며 이들이 정상적인 세리의 일을 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온 것 입니다.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관계는 어렵지만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 목적은 유대인의 민족정신 말살이며 그 증거가 마태복음 3장 9절의 이야기 입니다.
<아브라함의 관계를 없애려는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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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9 (세례요한이)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화평이 아닌 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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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그렇다면 예수에게 가족의 정의는 무엇이였을까요? 예수에게 가족은 유대 민족이였습니다. 너희는 민족 보다 예수를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목적 중 하나였던 것이며 민족의 최소 단위를 예수는 파괴하고자 했던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의 최소 단위인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 해야 하며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다른 민족을 멸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족이 자신을 지켜 주고 자신의 민족이 자신의 가족을 지켜 주고 자신의 국가가 자신의 민족을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가 민족을 민족이 가족을 가족이 개개인을 죽이고 멸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로 부터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죽이고 그의 여자들은 창기로 그의 아이들은 노예로 만들게 된 것으로 이는 과정일 뿐이였습니다. 예수의 최종 목표는 유대민족을 멸족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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