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鼇山大穴寺廣寒樓(금오산대혈사광한루) 금오산 대혈사 광한루
길재(吉再, 1353~1419) 조선 전기의 학자.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는 충절(忠節). 1387년 성균학정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를 거쳐 성균박사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에 이방원이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김숙자를 비롯하여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 등이 학맥을 이었으며 청풍서원에 제향되었다. 문집에는 《야은집》·《야은속집》,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이 있다.
竹色春秋堅節義 죽색춘추견절의
溪流日夜洗貪婪 계류일야세탐람
心源瑩靜無塵態 심원영정무진태
從此方知道味甘 종차방지도미감
대나무색 사계절 절의를 굳게하고
흐르는 냇물은 밤낮으로 탐욕을 씻어 주네
마음 근원은 맑고 고요해 티끌 없으니
이제야 바야흐로 도의 달콤함을 알겠네
婪(람) 탐할 瑩(영) 맑을 從(종) ~부터
야은(冶隱)이 선산(善山)으로 돌아와 은거하던 시기에 금오산 대혈사 광한루에서 지은 시로
그곳의 자연 공간이 정신수양의 도구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 살든 정신을 수양할 수 없는 곳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