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故國) 산천(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감 상)
나는 이제 가는구나 삼각산아 다시 보자구나 한강물아
내가 우리나라를 떠나가고 싶지는 않지마는
이 시절이 원체 어수선하니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김상헌 (金尙憲, 1570 ~1652) 선생의 자(字)는 숙도(叔度), 호(號)는
청음 (淸陰)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전시에 치른 과거시험에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왔다. 그후로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임금을 모시며 조정의 중책을
맡아 국론과 시대사상을 이끌어 갔다. 광해군 시절에는 조정의 원로
정인홍 (鄭仁弘) 선생을 규탄하였고, 인조 반정 후에 조정에 다시 나오
면서 반정의 일부 세력들을 비판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
선생의 화의(和議)와 항복 의견에 맞서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다.
그 후에,
1639년 청나라의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의 미움을
사서, 당시 70세의 연로한 몸으로 심양까지 끌려가서 6년을 고생하고
돌아왔다.
이 시조는 공께서 청나라로 끌려가며 나라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지은 것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 준다. 선생은 이미 앞에 소개한
김상용 선생의 아우이며, 그 강직함과 충심(忠心) 그리고 깊은 학문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어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