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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B 우르시누스, 기도란 무엇인가?
천이다 추천 5 조회 282 24.06.21 08:32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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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6.21 09:23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타종교나 불신자도 하는 것이 기도이므로, 기독교 성도의 입장에서 정리한 기도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 24.06.21 14:36

    네, 공감합니다.

  • 24.06.21 14:38

    바울은 여기서 공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것, 특히 공기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가 여러 단어를 사용하여 기도를 표시하지만(1절),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현저하게 나타나는 두 가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은 감사를 포함시킨 것과 주제의 광범위함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기 원할 뿐만 아니라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2절).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의로운 통치자와 그렇지 못한 통치자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간주한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다(2절).

    『IVP 성경주석: 서신서』, “디모데전서2 장”.

  • 24.06.21 14:50

    좋아요. 독자들이 주석을 읽고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 24.06.21 17:25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

  • 24.06.21 14:44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차원이 타종교와 큰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필요한 것을 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하며,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마음을 토로하고 회개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 등의 많은 고급 활동들이 기독교 고유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사심을 나타내시고 기도에 응답하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 24.06.21 14:46

    네, 핵심을 잘 짚어 주셨어요. 매우 공감합니다.

  • 24.06.21 14:51

    코람데오님의 할렐루야에 아멘입니다. 댓글 내용에 매우 공감합니다.

  • 24.06.21 14:53

    “기도”,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해서 신자들이 취하는 하니님과의 교제 (communication)의 한 형태를 말한다. 따라서 기도는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간구(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를 포함함)•불평(예.욘 4 : 1-3)•찬양•감사•고백•저주(예. 민 16 : 15 ; 시 69 : 22-28)•무언의 영적 교통(롬 8 : 26)•방언(고전 14 : 14-15)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기도는 신자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며 그가 하나님께 대해서 믿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내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향상 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기도에서 중심을 이루는 두 요소는 찬양과 간구이다. 여기에서 간구는 하나님께서 간구되어지는 것들을 들으시고 돌보아 주시며 간구에 응답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기도는 거의 보편적인 종교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동일한 전제들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믿고 그들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 24.06.21 14:53

    그러나 성경은 다른 신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제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거부에 근거해서 참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다른 신들에 대한 기도 사이의 차이점들을 밝히고 있다. 차이점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성이며(왕상 18 : 25-38 ; 마 6 : 7-8),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특징이 되고 있다. 나아가 찬양은 하나님이 창조주시요(시 104편) 그분 백성들의 구원자(대상 16 : 8-22)로서 찬양을 받으실 만한 분이심을 전제로 하고 있다. (→찬송)간구하는 기도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하나님의 공의를 비는 기도가 첫번째이자 최상의 기도이다(마 6 : 9-10, 25-33 ; 눅 18 : 1-8).
    여기에는 또한 성령을 받기 위한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11 : 13).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하는 기도(마 6 : 11-13)와 '마음의 소원들'(시 37 : 4)을 비는 기도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행위이며 그 때문에 대개 집단적인 행위의 하나로 경험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역사를 보면서,

  • 24.06.21 14:53

    모든 상황에서 개인적인 기도가 가능했으며 실제로 응답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의 여러 전환점에 앞서 종종 개인들의 기도가 선행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창 18 : 22-32), 야곱(32 : 9-12), 모세(출 32 : 11-13 ; 민 14 : 13-19), 기드온(삿 6 : 36-39), 한나(삼상 1 : 10-11), 엘리야(왕상 18 : 36-37)의 기도가 그와 같은 중요한 기도에 속한다. 복음서에 의하면 특별히 예수님은 친히 기도를 드리시고(예. 막 1 : 35 ; 14 : 35-39 ; 눅 5 : 16 ; 6 : 12 ; 22 : 32 ; 요 17장),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셨으며 (예. 마 6 : 5-15 ; 눅 11 : 1-13), 기도의 효력을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막 9 : 29, 또한 그것을 약속하셨던 분이시다 (예. 마 6 : 6, 8 ; 7 : 7-11 ; 18 : 19 ; 21 : 22 ; 막 11 : 24 ; 요 14 : 13-14).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구약 공동체는 특정한 장소들을 향해-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이었다(왕상 8 : 28-30)-집단적으로 기도를 드렸다.

  • 24.06.21 14:54

    또한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성전을 재건했던 공동체도 집단적으로 중요한 간구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 사실은 스 9 : 6-10 : 5과 느 9 : 1-38에 기록되어 있다. 포로기 이후에 유대인들은 다시 한번 성전을 갖기도 했지만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흩어졌기 때문에 주로 각 지역의 회당에서 집단으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건물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드리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또 다른 '기도처'를 이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행 16 : 13).
    한편 기도를 포함한 초대 교회의 활동들은 주로 예루살렘에 있던 특정한 개인들의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1 : 13-14 ; 12 : 12 ; 참조. 2 : 2).
    하지만 교회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믿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기도가 드려졌다(참조. 행 18 : 7 ; 롬 16 : 5 ; 고전 16 : 19 ; 골 4 : 15 ; 몬 1 : 2).
    기도할 때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예.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왕상 8 : 54 ; “손을 들고....몸을 굽혀”, 느 8 : 6 ; “서서", 6 : 5 ;

  • 24.06.21 14:55

    눅 18 : 11, 13).
    그러나 어떤 특정한 자세가 결코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기도에 관한 어떤 약속들은(예. 마 18 : 19 ; 요 16 : 23 ; 약 1 : 5 ; 요일 5 : 14-15) 종종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즉 계속해서 간구하는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는 것이다(참조. 눅 22 : 42 ; 고후 12 : 7-9).
    그런데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이다(마 26 : 39 ; 롬 8 : 26-27 ; 요일 5 : 14).
    약속들은 신자들이 기도와 생활의 제일차적인 목표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내(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마 18 : 20 ; 요 14 : 13-14 ; 15 : 16 ; 16 : 23-24, 26) 바로 그와 같은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일한 근거에서 믿음(마 21 : 22 ; 히 11 : 6)과 의(요 9 : 31 ; 약 4 : 3 ; 5 요일 3 : 22)도 기도 응답의 요건으로 언급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미 다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6 : 8, 32).

  • 24.06.21 14:56

    그렇다면 과연 신자들이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여기에서 생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7 : 7-11), 오히려 용기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근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물론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사랑을 위해서도 좋은 것들을 주신다. 하지만 그 사람은 기도에 대한 응답, 즉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결과나 증거로서 그러한 좋은 것들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는 생각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관계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행위이다. 사실 기도는 자유로운 인간과 능력의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가 믿음 위에 기초할 때에만 진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부분은 (눅 11 : 5-13 ; 18 : 1-18)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필요에 반응하시는 사랑의 방법이 인간의 사랑이나 정의와는 다르다는 데 오히려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기도문)

  • 24.06.21 17:27

    @장코뱅 풍부한 자료네요. 잘 읽어 보겠습니다.

  • 24.06.23 20:31

    @장코뱅 좋은 설명의 첨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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