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해변에 눈 시린 햇살이 가득 쏟아진다.
치렁치렁 감기는 바닷 바람과 아슴아슴한 파도의 푸른 눈빛 따라 해변의 길손이 되어 한없이 걷는다.
모래들은 빛나고 파도소리들은 싱싱하게 푸르렀다.
눈 시린 풍경에 녹아드니, 발걸음 뒤에 두고 온 세상 풍경들이 절로 잊혀진다.
이렇듯 현실이 지워지는 환각幻覺 같은 시간의 가루 속을 걸어가는 해변 길은 꿈 같은 길이 된다.
√☛. 트래킹 코스: 달바위 선착장 - 죽바위 소공원 - 달바위 바다역 - 고사리골 - 어류골 - 목섬 - 하늬깨(하늬포)해변 - 국사봉 - 다싯물 선착장 - 큰말해변 - 독바위 - 장골해변 - 달바위 선착장.(16km, 약 5시간 반)
10여 년 전, 서해의 소야도를 향하는 뱃머리에서 바라본 자월도紫月島의 물빛은 그윽이 깊었다.
오늘은 세월 너머 두고 온 깊은 물빛 따라 길을 나선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훼리호를 타고 하얗게 파도를 가른다.
약 한 시간만에 자월도紫月島 "달바위 선착장"에 첫 발을 딛는다. 선창엔 두 개의 초승달을 형상화한 자색빛 붉은 달이 길손을 환하게 맞는다.
물빛은 변함없이 그윽이 깊었다.
뭍에 대한 그리움을 숙명적으로 안고 사는 바다역이다. 밤이면 이 달바위 바다역 위로 자색빛 달이 떠오른다.
목섬으로 가는 길섶의 밀밭이 바람에 일렁인다.
그곳 어류골에 비바람에 시달려 옹골찬 뼈대만 남은 촛대바위가 서 있다.
이윽고 목섬에 이른다. 목섬은 아름답고 외롭게 떠 있었다.
섬이 외롭게 바다에 떠 있는 것은 육지를 그리워하는 숙명성 때문일 터.
이 목섬은 자월도 해변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의 하나다.
하늬바람이 많이 부는 하늬깨 해변이다. 하늬깨 마을은 목섬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터를 잡고 있었다.
국사봉(166m) 봉우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국사봉 하산길에서 만난 폐가다. 이 집을 비운 사람들은 무엇을 채우기 위해 어디로 떠났을까 싶다.
다시 해변 길을 따라 "큰말 해변"으로 걷는다.
금빛 모래는 곱고 부드러웠다. 신발을 벗고 조가비 같은 몸매를 따라 걷고 싶었다.
해변의 모래톱은 수평선 너머 하얀 파도를 기다리는 가슴 아득한 시간,
다시물 선착장엔 어선들이 한가로이 오수를 즐긴다.
걷다가 지치면 홀로 앉아 섬이 된다. 기실 요즘 들어선 내 몸이 언제까지 오늘 같은 자유로움이 허락 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든다.
길은 다시물 선착장에서 큰말 해변을 거쳐 장골해변으로 이어진다.
장골해변의 독바위다. 텅 빈 갯벌의 부각이 쓸쓸한 맛을 던져준다. 폐부를 드러낸 갯벌은 생의 쓸쓸함과 허무를 보는 듯하다. 이래서 서해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으면서도, 때론 삶의 위로와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달바위 선창에 다시 도착한다. 오늘도 하늘아래 허물없는 하루가 설핏하다. 나른한 몸을 커피로 적시며 발아래 물을 품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니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듯 한량없는 마음이다.
뭍으로 돌아갈 시간,
곧 노을이 지면 자색의 달이 뜰 터인데, 하룻밤 안면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뒤돌아보니, 멀어지는 자월도가 저만치서 붉은 손수건을 흔든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네를 만날 수 있을까. 오랫도록 잊지 못할, 자월도여~! 안녕~~!!
자색 달빛의 섬, 자월도 트래킹, 5월 어느날, 석등.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