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유월절(출11-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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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구약 다시 읽기 제1부, 『부조와 선지자』를 따라서 오늘은 제24장 '유월절'이라는 제목으로 출애굽기 11장과 1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젊을 때 몇 분을 모시고 집에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월절을 가르치는데 어떤 분이 노트를 쓰는 것을 보니, 아라비아 숫자 6에 달 월(月) 자를 써서 6월의 절기인 것처럼 '6월절'이라고 적으시더군요. 유월절(Passover)은 6월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어의 'Pass over', 즉 '넘어간다(넘을 踰, 건널 越)'는 뜻입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13)라고 하셨습니다. 재앙이 지나가고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이 있기 전, 출애굽기 11장에 아주 의미 있는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출애굽기 11장 4절입니다.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성경의 책 이름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Exodus)'입니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는' 책입니다. 출애굽기 12장 유월절을 지나 12장 후반과 13장에 이르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애굽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늘 이 부분을 설명할 때마다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들어가신 사건, 이것이 바로 기독교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유월절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곳에 들어가시고,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 4:22-23).
이 말씀은 모세가 바로를 만나기 전인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실 때 맨 처음 주셨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이니 보내라. 그러나 바로가 거절할 것이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맨 처음 주신 경고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맨 처음에 받았던 그 첫 경고가 결국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열 번째 재앙은 경고 순서상 열 번째가 아닙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의 경고는 가장 처음에 주어졌습니다. 맨 처음 주어졌던 경고를 아홉 번째 재앙에 이를 때까지 끝내 듣지 않았기에, 처음에 경고하셨던 그 심판이 실현된 것이 바로 열 번째 재앙입니다.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표상적입니다. 기념적이라는 말은 과거를 기억한다는 뜻이고, 표상적이라는 말은 미래를 예표한다는 뜻입니다. 『부조와 선지자』 277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표상적이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베푸실 더 큰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출애굽기 11장과 12장에서 구속의 경륜의 대원칙이자 십자가의 대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이 큰 역사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양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양을 잡아야 했습니까? 출애굽기 12장 5절에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일 년 되었다는 것은 다 자란 성숙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하며, 베드로전서 1장 19절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기록합니다.
저는 60여 년 세월을 살면서, 저 자신을 포함하여 이 땅에 흠 없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부조와 선지자』의 저자도 "어떤 영적 거인도 죄 없는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에 죄에 대한 명시적인 기록이 없는 인물로 다니엘이나 요셉 같은 인물이 있지만, 그들이 완전히 죄 없는 삶을 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록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흠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살아서 승천한 에녹조차 세상에서 일하다가 잠시 물러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던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온전한 삶을 사신 분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분이 아무리 흠 없고 점 없는 삶을 사시고 우리에게 탁월한 교훈을 남기셨다 해도, 우리가 단순히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양이 죽어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 9:22).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교훈의 종교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도 훌륭한 사상과 가르침을 남긴 훌륭한 스승들입니다. 그러나 그분들 중 누구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교훈을 넘어선 구원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스승을 넘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수많은 종교적 가르침이 인류에게 훌륭한 '명답'은 주었을지 몰라도 사람을 살리는 '정답'은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참된 정답은 오직 흠 없는 어린양의 대속적인 죽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곧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이 양을 언제 잡았습니까? 출애굽기 12장 2절에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이 유대력으로 첫 달(아빕월/니산월), 즉 한 해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으로 백성들의 역사가 새롭게 출발합니다. 1월 10일에 양을 취하여 준비해 두었다가, 14일까지 간직한 후 해 질 때에 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양을 잡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으로 발랐습니까?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발라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우슬초는 아주 낮고 비천하며 겸손한 것을 상징합니다. 식물 가운데 지극히 작은 풀이기에 성경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왕상 4:33)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가장 낮고 겸비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슬초는 정결케 하는 도구였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시 51:7). 『부조와 선지자』 277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피를 뿌릴 때에 우슬초는 정결의 상징이었으며, 나병 환자나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가장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우슬초 묶음에 피를 적셔 문 인방(윗문설주)과 좌우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문 아래쪽인 문지방에는 왜 바르지 않았을까요? 문지방을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지방 바로 앞 바닥에 홈을 파거나 그릇을 두고 거기서 양을 잡았기 때문에 문지방은 이미 피로 적셔져 있었습니다. 결국 문 전체가 피로 둘러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단번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분의 피가 내 믿음의 문에 발리지 않는다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277쪽의 말씀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했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개인의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의와 공로를 내려놓고, 우슬초의 겸비한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개인의 삶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바로 나를 구원하신 '나의 구주'가 되셔야 합니다.
양을 잡고 피를 발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났습니까? 세 번째 조건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22절입니다.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살육의 천사가 지나가는 그 밤, 아침이 올 때까지 반드시 피가 발린 집 문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278쪽은 "어린양을 잡았더라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았거나, 집 밖으로 나간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한번 예수 믿고 고백했으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가 아닙니다. 영원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안에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감격이 있지만, 아직 최종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않았기에(Already, but not yet) 거룩한 긴장감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피 발린 집 안에 거하면서 "내가 여기 머물러 있으니 내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문에 발린 피의 공로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 구원의 3대 조건입니다.
흠 없는 어린양이 죽어야 한다- 십자가 신앙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발라야 한다- 믿음의 적용
아침까지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 재림을 기다리는 참 신앙의 인내
이와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첫째, 무교병(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8절은 "악독하고 추악한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 권면하며,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누룩 없는 빵은 죄 없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애굽에서 겪었던 쓰라린 종살이의 고통을 회상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죄 된 세상에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험을 상징합니다.
셋째, 양의 고기를 먹되 뼈를 꺾지 말고 불에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뼈가 꺾이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표상합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조와 선지자』 277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그분의 성품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소화하여, 이것이 생활과 행동의 원동력이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매일 먹듯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소화해야 영적인 힘을 얻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날 준비를 갖추고먹어야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든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할 구원의 채비를 갖추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성도의 삶의 태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8절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가르쳐 주셨던 그 유월절의 도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온전한 복음으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유월절의 참된 의미가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의 표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유월절(Passover)과 복음의 본질: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셨듯이(출 11:4),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열 번째 재앙의 의미: 장자의 죽음 재앙은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실 때 이미 주어졌던 첫 번째 경고였으며, 끝까지 순종을 거절한 결과 첫 경고가 최후의 심판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유월절 구원의 3대 조건:
어린양의 죽음: 흠 없고 온전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십자가).
피를 문설주에 바름: 우슬초와 같은 겸비한 심령으로 보혈의 은혜를 각자의 영혼에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믿음.
아침까지 문안에 머묾: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보혈의 품 안에 끝까지 인내하며 머무는 신앙.
유월절 식사의 영적 교훈:
무교병과 쓴 나물: 죄를 버리고 순전한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
고기를 먹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소화하여 삶의 동력으로 삼음.
채비를 갖추고 먹음: 진리의 허리띠와 복음의 신 등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출애굽을 준비하는 깨어 있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