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26~49 용서의 십자가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서 웨슬리를 신사적인 양심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는데,
그는 반듯한 목사가 되어 처음에는 주로 교화적인 목적의 설교를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실패를 거듭하였고, 그러던 어느날, 올더 스테이드가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예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듣게 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믿음에 대하여 들을 때, 그는 자기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박해한 사람들을 위하여 힘을 내어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때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웨슬리의 사역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 되었고, 사역의 질이 달라졌고 세계를 교구로 삼고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다. (웨슬리의 일기)
예수님은 죄없는 자신을 욕하고 매질하고 침뱉고 조롱하고 죽이는 자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저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셨는데,
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두고,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고,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참음으로 아버지께 용서해달라고 하셨다.
벧전2:22~24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로마서를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대속제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를 대속제물로 내어 주신 기이한 대제사장이신 것이다. 또한 레위기를 보면 죄의 전가를 말하고 있는데, 전가는 죄를 죄인에게서 분리하여 제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레위기에서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자신과 모든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제물을 죽여 불사르고, 피를 지성소 법궤 뚜껑에 일곱 번 뿌리고, 염소 한 마리에 자신과 모든 사람의 죄를 전가하여 광야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제물을 다 불사르는데, 이는 죄의 완전한 대속과 죄를 분리하여 멀리 보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기는 피가 죄를 속한다고 말하는데,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죄인들은 이 도리를 붙잡는 것밖에 없다. 믿음으로 살고, 죄를 회개하며 사는 것이다.
히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새언약식을 하셨는데,
눅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안셀름이라는 신학자는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는가’라는 저서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죄가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의 영예를 더럽히고 그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우주에 도덕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죄를 간과할 수 없으셨다. 그러므로 뭔가 만족스러운 일, 곧 죄를 상쇄할 수 있는 일이 이루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안셀름의 속죄론은 만족설로 알려져 있다. (교회사 100대 사건)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웨슬리는 그 후에도 자주 여러 가지 시험으로 몹시 괴로웠는데 용서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때마다 큰 소리로 외쳤더니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시험은 자주 되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웨슬리는 눈을 들어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았는데, 웨슬리는 깨닫기를 죄와 평화에 대한 승리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죄는 자신의 죄든 타인의 죄든 거듭나도 남아 있는데,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사망의 몸이라고 표현하며, 오로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말하였는데,
롬7;21~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꼭 눈에 보이는 죄를 지어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죄인인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용서도 그렇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신 말씀을 보면,
요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의 대속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원래 내가 죽어야 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께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길 바라셨으며, 예수님은 성부의 뜻에 순종하셨다.
마26:42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대속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셨고, 우리는 이 일로 인하여 죄를 용서받게 되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지금도 그렇다.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용서하신 예수님, 지금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평화를 누려야 한다. 율법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요8:32~3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율법만 생각하면, 샅샅이 살피는 형사처럼 정죄와 복수의 종이 될 수 있다. 조용기 목사님은 4천명을 용서했다고 한다. 물론 경계하고 예방하고 정죄하는 것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대신 심판과 저주와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용서를 바라봐야 한다.
벧전2:19~24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