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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고(太古)
1) 태양문화
인류문화의 공통된 근원, 즉 그 이전의 문화형식을 찾을 수 없고, 전세계에 걸쳐 공통적으로 발견
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 고대사에서는 환국(桓國)을 말하고, 중국 문헌에서
는 상고시대(上古時代)를 말하며, 히브리인들은 에덴동산을 전하고 있으며, 그리이스인들은 신들
의 세계인 올림포스를 묘사하고, 또 플라톤은 전설의 고향인 아틀란티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같은 세계를 다르게 부른 이름일까, 아니면 각기 다른 문명의 각기 다른 역사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두는 같은 것이다. 아득한 옛적에 인류는 하나의 뿌리문명에서 출발하였
으니, 그 시원문명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다. 이 하느님 나라는 여러 민족의 신화속에 남아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 실존했던 이상세계와 그 주민들인 신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
세계는 한마디로 태양의 나라로 표현할 수 있다. 태양의 나라는 태양을 진리의 상징으로 숭배하고,
태양의 성품을 본받으려 노력하며, 태양의 영토인 하늘에서 자연과 인생의 법칙을 발견하여 세상
을 이롭게 하려던 초인들의 세상이다.
다른 여러 나라와 민족들도 그 문명을 이어받아 발전해 왔으나, 그 문명의 최고진리와 직계혈통은
바로 한겨레가 이어받았다. 이 사실은 그동안 몇몇 종교인들에 의해 주장되었지만, 그 사실을 입증
할 이론을 갖추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결국 민족주의자들의 구호 이상의 의미는 부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근거자료를 발굴할 필요도 없이, 이미 있는 자료들을 관점만 약간 바꾸어
생각하면 고대의 모든 역사와 종교기록들이 풍류의 증빙자료로 둔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대의 제정일치사회를 지배하던 집단이 풍류의 주체세력인 동이족이었고, 그들이 개척한 진리
체계와 사회제도를 이어받지 않고서는 그 어떤 집단도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런 세월이
수천년간 지속되었으며, 그 기간동안 풍류의 정치문화는 세계 모든 나라의 기본제도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 결과 풍류의 통치체제는 붕괴했으나 그 문화는 주체세력만 바뀐 상태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풍류의 주체세력의 후예를 판정하는 문제는 풍류의 해설과는 다른 문제이다. 풍류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풍류의 정통맥을 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려면 몇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 전제조건들을 검토하는 것도 이글의 주제 중 하나
이다.
그 맨 첫 번째 출발점으로 잡은 것이 바로 '환(桓)풀이'로서의 태양문화의 유습이다. 그리고 태양
문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나침판으로 십자도상(十字圖象)을 선택하여 보자.
2) 십자도상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한 문양을 찾는다면, 첫째가 원상(圓相)이요 둘째가 십자도상(十字圖象)일
것이다. 이 둘은 모두 태양신의 상징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오늘날 그것들이 태양의 모습에서 유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특히 십자도상이 태양의 형상을 본뜬 것이라고 말하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하신의 연구는 십자도상과 태양신과의 관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하신은 [신의 기원]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여러 장식도안 중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십자
도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달비엘라(D'Alviella)가 지은 <부호의 전파(Micration of symbols)>
라는 책을 인용하여, "여러 십자도형들이 공통된 모체인 태양을 의미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십자도형의 두가지 기본적인 도안으로 십자(十字) 모양과 거메디언(Gammadian) 즉 만자(卍字)
모양을 소개하고, 고대의 도안들을 총결하여 논리적으로 대체적인 변천순서를 나열하고 있다.
<달비에라 심벌의 이동(부호의 전파)에서 발췌>
하신은 이 두가지 도안, 즉 십자와 만자 도안을 모두 태양빛이 사방으로 방사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탁월하고 우수한 견해이다. 여기에 덧붙일 내용이 있다면, 이
부호들이 후대에 오면서 태양신 뿐만 아니라 태음신(달님)과 태자신(별님)까지를 합친 삼황신
(三皇神), 이책에서 삼한신(三韓神)으로 부르는 삼신(三神)의 표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이 십자와 만자는 신석기시대로부터 철기시대의 초기에 이르는 수천년 동안 걸친
유적지에서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고, 이 사실은 고대에 전세계적으로 태양신을 숭배하는
태양신 신앙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부호들은 지금 인류가 신앙하는 대부분의 고등종교들의 중요한 상징도안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유교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불교의 만자(卍字; 부처의 가슴에 있는 길상의 표시),
기독교의 십자가(十字架), 밀교의 만다라(曼茶羅; Mantra), 도교의 팔괘도형 등이 모두 이 부호들
이거나 그 변형이다. 또 이런 종교들이 국교로 신봉되었던 나라들이 이 부호들을 변형시켜 자기네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의 도안으로 삼음으로써, 이 부호들은 불멸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부호들은 태양문화의 유물 중에 아직도 살아남은 가장 두드러진 것인만큼, 이 도상들로 상징된
태양신 신앙이 풍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몇 개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풍류와 다른 종교들
간의 관계는 저절로 밝혀진다.
4. 삼한과 삼신(三神)
1) 간추림
삼한(三一)은 풍류의 최고 핵심개념이다. 삼한의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지적할 사실은
'삼한'이 상고시대에 동이족이 쓰던 순우리말이라는 사실이다. 이 우리말을 주변문화권에서 빌려다
쓰고, 빌려 쓴 문화권에서 새 의미를 첨가하고 그 첨가된 새 의미를 우리가 재수입하는 과정이 반복
되면서, 무수한 갈래로 분화된 말이 '삼한'이다. 그 삼한의 원초적 의미는 삼일(三一)이니, 셋이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시원경전 중 두 번째로 거론되는 <삼일신고
(三一神誥)>는 '삼한신고'가 본명임을 알 수 있다. 이 삼한의 다른 표기는 여럿이 있지만 그 중에서
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검(桓儉)'이다. 박용숙 선생은 삼(三)과 태(太)와 검(儉)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삼.일신고>는 檀君(단군)의 이름을 桓儉(환검)이라 기록하고, 桓儉을 桓因(환인), 桓雄(환웅)에
이어 세 번째 자리에다 배열하고 있다. 즉, 이들 三神 중에서 桓儉을 세 번째의 신으로 모셨다는
사실이다. ...... <사기>의 봉선서(封禪書)에는 삼.일신(三.一神)은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
(太一)인데, 그 셋 중에 태일(太一)이 가장 귀하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太가 곧 삼(三; sam)이며,
이때의 太는 우리말의 [클, 큼]이 된다. 즉, 큼은 다시 kum, gum(儉)이 되는 것이므로 퉁구스어의
saman이라는 말이 터어키 . 몽고어의 kam, gam(監)과 같은 뜻의 말이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이다. 즉, sam과 gam은 모두가 三을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桓儉은 saman이며, 이때의 桓儉은 saman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의 saman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儉 앞에 桓, han이 붙기 때문이다. 이때의 桓은 곧 天을 뜻하며, 天은 또한
신들이 사는 곳이므로 檀이 된다.
우리는 이미 '桓'이 '하늘'로서 '햇님'과 '신(神)'과 '으뜸'의 뜻을 가진 글자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삼한이나 한검이 모두 삼신의 뜻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아래와 같은 <태백일사>의 기록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표훈천사>에서 말한다. "대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찍이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분의 상제
시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이시라(表訓天詞云 大始
上下四方 曾未見暗黑 古往今來只一光明矣 自上界 却有三神卽一上帝. 主體卽爲一神 非各有神也
作用卽三神也 ......). <태백일사(太白逸史) . 삼신오제본기>
생각컨대 저 삼신을 '천일'이라하고, '지일'이라하고, '태일'이라한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교화를 주관하느니라 ...... 크도다. 삼신일체의 원리됨이여! 만물
원리의 덕이여, 지혜여, 힘이 됨이여!(稽夫三神 曰天一 曰地一 曰太一.天一主造化 地一主敎化 太一
主治化 ...... 大矣裁 三神一體之 爲庶物原理而 庶物原理之 爲德 爲慧 爲力也 ......)
위의 인용문을 볼 때, 삼한이나 삼일의 본래 의미가 삼신(三神)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삼신의 뜻 중에서 "셋이 합쳐 하나가 된다" 는 뜻을 분리시켜,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원리인 서물원리(庶物原理)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이 삼일의 본맥은 수운 선생의 동학에 의해 삼교합일사상으로 되살아나고, 삼일 독립운동으로
새시대의 지평을 열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대한
(大韓)의 대(大)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세 개의 획으로 구성되었고, 앞에 소개된 검
(儉: gum)을 통해 삼(三)과 연결되는 것이다.
삼한의 본래 의미는 이미 말한대로 삼신(三神)이다. 삼한의 '한'을 절대자이며 으뜸가는 초월존재
를 뜻하는 신(God)으로 이해한 것이 삼신이다. 이 삼신과 삼한의 어느 쪽이 먼저 생겨난 말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된다.
고대에 우리민족이 신(神)을 '한'으로 읽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
이다. 신라의 왕호(王號)였던 마립간(麻立干)이나 거서간(居西干)의 '간(干)'이나 몽고의 왕호인
칸(징기스칸) 등을 고려할 때, 고대에 신의 칭호로 '한'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삼한을 조상신의 이름으로 쓰고 있는 민족은 아마도 한겨레 뿐일 것이다. 그리고 삼한의 소리를
딴 샤만(shaman)이 무당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현실정을 생각할 때, 이미 외래종교를 받아
들여 뇌수술을 끝낸 사람들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니, 한겨레의 국조삼신은 분명히 환인 . 환웅 . 단군왕검,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는 한님 . 한울님 . 단군한검으로서 삼한(샤만)이 분명하다. 그러나 외래
종교인들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삼한이 모든 외래종교에서 절대자로 모셔지는 바로
그분 이시기 때문이다.
삼한의 셋째 뜻은 삼신이 다스리던 강역을 표현하던 말로서, 역사기록에 진한(辰韓) . 마한(馬韓) .
변한(弁韓)으로 나타나는 바로 그 삼한(三韓)이다. 이때의 한(韓)은 우리말 '한'을 가장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로 옮긴 것으로서 조(朝)와 꼭같은 뜻이며, 환(桓)과 함께 인(人)을 이루던 두 나라 중의
하나였다(이 내용은 별도로 설명하자).
이 삼한은 오늘날의 얼치기 사학계(史學界)에서 말하는 것과같이, 한반도의 한쪽 구석에 몇몇 미개
종족들이 모여 사방 백리 정도의 영토를 확보하고 나라라고 일컬으면서, 해마다 봄 가을로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고성방가나 일삼던 그런 시시한 나라가 결코 아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한반도와 기후조건이 비슷하였던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에 천국을 건설하여
호천금궐을 짓고, 주위 사방에 사대평원(동쪽의 중국평원 . 남쪽의 인도평원 . 서쪽의 서남아시아
평원 . 북쪽의 시베리아 평원)을 봉토지로 관할하면서, 열국의 조공을 받으며 만방(萬邦)을 교화하던
초강대국이었다.
바둑을 둘 때, 90집(혹은 100집) 이상을 이기면 '만방'이라고 하는데, 이정도 집차이가 나려면 '사귀
생 통어복(네 모퉁이와 중앙을 모두 차지하는 것)' 을 해야 한다. 즉 이긴 사람의 집모양이 만(卍)자
를 그려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몇몇 오지(奧地)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다스리던 삼한의 영토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삼한의 넷째 뜻은 이 삼한을 통치하던 세명의 군주(君主)였던 삼황(三皇)이다. 중국 고대사에 등장
하는 정체불명의 천황 . 지황 . 인황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을 정체불명이라 하는 이유는 국어 사전
에서 찾아보면 삼황을 복희 . 여와 . 황제라고도 하고, 복희 . 염제 . 황제라고도 하고, 황제 대신에
수인씨(燧人氏)를 일컫기도 하는 등 정설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삼황의 정체는 한국(삼한)을 나누어 다스리던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이다.
풍백은 진한왕(辰韓王)인 천황이 되어 제사장과 씨내리를 겸하고, 우사는 마한왕(馬韓王)인 지황이
되어 영토권과 씨받이를 관장하고, 운사는 변한왕(弁韓王)인 인황이 되어 봉토권과 조공권을 관장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 . 환웅 . 단군의 삼신은 삼한의 체계가 자리잡히기 이전의 성인들을,
상계의 주신(主神)인 삼신이 강림하시어 나라의 기틀을 열어주신 것으로 보고, 숭배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따라서 단군성조 이전에는 환국(桓國)이나 한국(韓國)이었다가 고조선에 이르러 비로소
삼한의 체계가 완비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고조선은 환국(또는 한국)의 제도를 자국의
체제에 흡수하므로써 제정일치의 완성된 국가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삼한의 다섯째 뜻은 삼황의 대리인으로서 그 칭호가 아직도 살아있는 샤만(shaman), 즉 무당이다.
우리 역사에서 무당은 그 옛날 삼황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아 왔기 때문에, 이 이름만큼은 무당맥
의 전승과 함께 아직도 만주벌판의 오지에서나마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다섯가지의 뜻 중에서 어느 하나를 삼한의 뜻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 뜻들을 모두 나타내는 '삼한'이라는 우리말을 대표어로 확정하여 쓰고, 어느 특정분야에 해당
하는 뜻임을 밝힐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한자를 괄호속에 넣어 표기하도록 하겠다.
이제 지금까지 요약 정리된 내용들을 하나씩 상설(詳說)하여, 고대사 최고의 수수께끼인 삼신산의
정체를 밝히고, 삼신산의 주인들의 홍익인간 도술인 풍류의 실상을 파헤쳐 보자.
2) 삼신산(三神山)과 고분(古墳)
'삼한'의 개념을 분석하면 '삼'과 '한'이 된다. '한'은 신의 이름인 동시에 왕의 이름이요, 우리말
에서 찾아지는 의미는 절대진리의 상징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삼'이라는 말에도 풍류의 핵심
내용을 이루는 많은 뜻이 있고, 이 뜻들을 살펴보므로써 삼신산의 유래와 실체를 알 수 있다.
우선 '삼'은 숫자로서 기수 '셋'과 서수 '세째' 의 뜻이 있고, 이 뜻은 다른 모든 의미에 우선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이다.
둘째, '삼'은 상수학, 즉 음양오행설에서 동방(東方)과 관련된 모든 의미를 대표한다. 봄 . 창조 .
생명 . 해뜸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생명'의 뜻은 지금 쓰고있는 '삶' . '사람' 등의 말과 통하고,
'해뜸'의 뜻은 아래의 여섯째 뜻인 샘(泉)과 통한다.
셋째, '삼'은 삼극(천.지.인)에서 승계한 음양지중(陰陽之中)의 상징성을 가진다. 중(中) . 인(人) .
왕(王)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왕'은 '큼(大)' 이라는 말을 매개로 '군(君)' . '감(監)' . '금(金)'
등의 글자와 연결된다. 신(神)을 뜻하는 우리말의 '감' 과 일본말 [gami]도 이 계열에 속한다.
넷째, '삼'은 셋에서 유래한 삼각(三角), 즉 '세모' 또는 '세 뿔'의 의미가 있다. 이 중에서 '세뿔'은
여린소리로 발음하면 '세 불'이 된다. 이 '세 뿔'과 '세 불'은 우리말에서 수도(首都)를 나타내는 말
인 '서울'의 역사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낱말이 된다.
다섯째, '삼'은 '쇠(金)'의 뜻이 있다. 땅속에서 파낸 금속광물을 뜻하는 쇠는 이 '삼'에서 유래한
것으로, '셋 - 세 - 쇠' 의 변천과정을 거친다는 주장이 있다.
여섯째, '삼'은 샘물의 뜻이 있다. 풍류에서는 이 뜻이 '삼'의 가장 원초적인 뜻이라고 생각된다.
박용숙 선생은 샘(泉)이 샤만이라는 말의 뿌리가 되는 말임을 전세계의 여러 언어들과 비교하여
밝혀내고 있다.
'泉'은 '白水'로 나누어지는데, '白'은 해나 달과 같이 밝은 것을 뜻하며, '水'는 머리, 무리. 말
(言, 馬) . 물이(海神. 河神. 澤神 즉 龍王) 등의 어근이 된다. 白水는 우리말로 '흰물'이 되는데,
'흰물'을 '해마리'로 바꾸어도 된다면 '해가 처음 뜨는 곳' 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해마리' 의 뜻을 찾아 볼 수 있는 다른 글자들이 '海(바다) . '湖(호수)' . '河(큰강물)' 등이다.
이 글자들이 모두 소리는 '하(ㅎ에 아래 ㅏ)' 계통으로 나면서 물을 뜻하는 삼수변이 붙어있음을
볼 때, 그 본래뜻이 '해마리 신전'을 나타낸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곱째, '삼'은 '시립(始立)', 즉 '처음으로 서다'는 뜻이 있다. 우리말에서 '셋'의 다른 꼴인 '섣'
이 그것으로, 세모뿔이나 삼발이의 곧추선 모습에서 확장된 뜻이라 하겠다.
여덟째, '삼'은 위의 둘째와 다섯째 뜻의 다른 표현인 '새롭다'의 뜻이 있다.
아홉째, '삼'은 '산(山)'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리고 이 뜻이 위의 여덟가지 뜻을 종합해야 나오는
개념이면서, 위의 모든 뜻을 유기적으로 조직화시켜 삼신산과 연결시켜 주는 뜻이기도 하다.
위에 설명한 '삼'의 뜻 중에서 넷째 뜻인 '세모'와 일곱째 뜻인 '서다'가 합해서 '산'이 되고,
여기에 둘째 뜻인 '동방의 일출' 이 더해지면서 '해돋는 산'의 의미가 형성된다. 그런데 이 과정
에서 또 하나의 의미가 끼어드는데, 그것이 바로 '불(火)'이다.
고대 갑골문의 불 화(火)자는 불을 뿜는 화산의 모양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청동기의 명문(銘文)
에 나타나는 火자는(오른쪽), 좌우에 점이 찍혀 있을 뿐 오늘날의 산(山)과 글자모양이 거의 같다.
뫼 산(山)자의 고대 모습은 오른쪽 그림과 같아서, 옛사람들이 산과 불이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런 관점의 밑바닥에 깔린 것이 바로 삼신산인 것이니, 삼신산은
'삼(물)'과 '불'과 '산'의 개념이 하나로 종합된 표상인 것이다.
이 사실을 수긍하려면 다시 샘(泉)을 알아야 한다. 샘은 물줄기(하천)의 출발점이면서 그 물줄기의
가장 위쪽에 있게된다. 따라서 샘의 다른 이름이 우물(웃물; 윗물)이 되는 것이다. 물은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으뜸가는 요소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신성시되었고, 그 때문에 샘물은 그 자체가
신전이 되는 풍습이 있다. 지금도 무당들은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 폭포와 소(沼)를 찾아가 용왕제를
지내는데, 그 풍습의 뿌리도 여기서 찾아진다.
그런데 이 우물이 또 연금술과 직결된다. 금속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광석을 채취해야 하고, 광석을
얻으려면 땅을 파야한다. 광맥을 따라 땅을 파면 우물이 생기게 되므로, 연금술과 우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되고, 고대에 야금(冶金)은 신전(왕실)에서 관장하였으니, 신전은 물과 불이
하나로 묶어진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불과 산을 묶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을 묶어줄 동앗줄은 태양이다. '해돋는 산'
에서의 태양은, 산위에 불덩이가 얹힌 모습이므로 화산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이 땅에서는 산이다. 그래서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을 산마루에 짓고, 그곳을 '밝터(明堂)'
라고 불렀던 것이다. 우리말에서 '산'의 고대어가 '받(박)' . '달(닥)' 등으로 나타나는 유래도
여기서 찾아진다.
그 중에서도 신성시 되었던 곳이 화산이다. 화산은 산꼭대기에 불이 있으니 태양의 집으로 여겨
질 수밖에 없는 장소인 것이다. 고대의 신전이 산악지대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화산대 주위에
분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 신전의 건축양식이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이유도 이런 관점을 수용하면 쉽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풍류의 발상지 중
에서 많은 지역이 화산활동에 의해 매몰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제 삼신산은 완전히 해설된 셈이다. 신(神)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설은 없었지만, 앞에서
태양신이 신(神)의 원초적 개념임을 밝혀 두었으니, 여기서 몇가지 설명을 덧붙인 정도로 만족
하기로 하자. 다음의 과제는 삼신산과 고분의 관계이다.
오늘날 주로 쓰이는 '고분(古墳)'이라는 말의 뜻은 '오래된 무덤' 특히 '옛날의 왕들을 매장한 큰
무덤'이다. 그러나 박용숙 선생은 '고분'이 단순히 오래된 무덤이 아니라 풍류의 중심무대인 신전
으로서, 삼신산의 별칭이라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고분이라는 단어 중에서 '고(古)'는 이미
소개하였고, 남은 것은 '분(墳)'인데, 선생의 논문 중에서 발췌하여 요약해 보자.
1) ㉠ 古者 墓而不墳 (註)土之高者曰墳 <禮記 檀弓>(옛날에는 무덤을 분이라 하지 않았다. 분은
높은 땅이다. <예기 단궁>)
㉡ 三墳分也 論三才之分 天地人之始也 <白虎通>(분은 세가지가 있으니 삼재의 구분이라 논하는
것으로 천지인의 시초이다. <백호통>)
㉢ 伏羲 神農 黃帝之書謂 三墳言大道也 <孔安國 商書序>(복희, 신농, 황제의 글에 이르기를
삼분의 말이 대도라 한다<공안국 상서서문>)
2) 예문 ㉠에서 높은 땅이 분이며, ㉡에서 분이 세 개로 나뉘며 그것이 각기 천지인 삼재의 시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예문 ㉠의 주(註)에서 높은 땅이 분이라 하였으니, 이때의 분을 산과 동일한 모양으로 볼 수 있다.
<수경주>에 있는 "①진(秦)에서는 천자(天子)의 총(塚)을 가리켜 산(山)이라고 말하는 까닭으로.
② 한(漢)에서는 능(陵)을 산릉(山陵)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로 보아 산이 분의 특수한 명칭임을 알게된다.
4) 山에 대한 은대(殷代) 문자는 앞에서 소개한 불 화(火)자 그림과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은대적(殷代的)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山을 나타내는 삼각형이 세 개라는 점이고, 산의
모양이 완만한 곡선으로 표현되지 않고 거의 기하학적인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5) 세 개의 삼각형은 각기 삼신(天地人)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것이 곧 삼신산의 모델임을 말해주고
있다. 분의 모양을 삼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례는 이집트의 피라밋을 비롯하여, 고아시아(古 Asia)문명권에서 발굴되는 지그랏트, 마야(Maya). 잉카(Inca) 문명지, 심지어는 고구려 시대의 광개
토대왕묘에서도 발견된다.
6) 중요한 점은 산(山)의 은대적 표현이 그대로 이집트의 피라밋을 본뜨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은
은대문명이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문명과 관련되고 있음을 말해주며, 한국의 고대문명이 수메르 (Sumer) 문명과 관련있다는 학설에도 유리한 증언이 된다.
7) 고분의 어원과 역사를 통하여 확인되는 사실은 '古'가 종교적인 숭배물이며, 그 종교가 유교나
불교와는 다른 종교이고, 적어도 공자시대 이전 까지는 중국쪽에 존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던 '古'가 어떤 이유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금의 한반도 쪽으로 이동되었다. 일연(一然)의 표현법에
따르면 이 '古'의 종교는 '紀異(기이)'에 속하며,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고대의 신화, 전설이
모두 이 '紀異'의 풍속으로 통한다.
8) <고조선> 기사에서 일연은 단군이 도읍한 '아사달(阿斯達)'에 주(註)를 달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사달을 '無葉山(무엽산)', '弓忽山(궁홀산)', '方忽山(방홀산)'
이라고 한 부분은 특별히 주목된다. 무엽산은 글자 그대로 "잎사귀가 없는 산"이므로 피라밋이나
지그랏을 연상하기에 알맞다. 궁홀산의 '弓'은 '세모 꼴'의 뜻이고, 방홀산의 '方'이 '네모꼴'의
뜻이다. 이는 피라밋의 형태가 네모 바닥에 세모꼴인 것과 일치한다.
9) 또 <한단고기>에 "환인의 나라가 파나류산(波奈留山) 밑에 있었고 ......"라는 기록이 있는데,
파나류의 글자 뜻이 '태양신의 눈에서 나오는 영혼의 빛이 머무르다' 라는 뜻으로서, '지구를
비추는 태양빛' 이라는 뜻의 피라밋(Pyramid)과 같은 뜻이 된다.
이 인용부분들의 내용들과 앞에서 설명된 풍류의 뜻을 합쳐보면, 고대의 태양신 숭배문화의 전체
유적이 풍류와 연결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고분을 삼신산으로 보는 것이 아무런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고대의 고분들이 모두 삼신산이고 그 삼신산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종교의
신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인류문화의 기원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고분이 지상으로 솟아나오면 한옥이 된다. 한옥의 기와지붕은 피라밋을 양쪽 옆으로 길게 늘여,
사각뿔의 형태가 가지는 여러 가지 제약들을 극복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약이란 산기슭에
터를 닦을 때, 가로로 길고 세로로 짧은 터가 생기게 되므로 정사각형의 피라밋을 지으면 면적이
작아진다는 결점이다. 피라밋의 지상부는 지붕에 다락방을 넣어 해결하였고, 지층부는 그대로
썼으며, 지하부는 지하실을 넣어 삼층으로 만들었다.
3) 삼한과 삼황
① 삼한(三桓)
일연의 <삼국유사>는 환인(桓因)의 혈통을 이어받은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을 한겨레의 첫나라
로 기록하고 있다. 김부식(金富軾)도 <삼국사기>[신라본기 시조 혁거세 거서간조(新羅本紀 始祖
赫居世 居西干條)]에서 "...... 이보다 앞서 조선의 유민이 산곡사이에 나누어 살아 여섯 마을을
이루었으니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라고 하여, 한겨레의 뿌리를 조선으로 기술
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뿌리가 고조선인 점은 확실하다.
그런데 <환단고기>에서는 '환인(桓因)'과 함께 '환국(桓國)'을 명기하고 있고, 삼국유사의 '환인
(桓因)'을 '환국(桓國)'으로 표기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않을 뿐 아니라 '인(因)'이 '국(國)'보다 더
큰 개념인 세계국가를 말한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조선의 뿌리는 다시 '환국'에 가서 닿는다.
아무튼 이 환국과 관련하여 우리 국조삼신인 환인 . 환웅 . 환검(단군왕검)의 호칭이 등장하는데,
이 세분을 앞으로는 '삼한' 이라 부르기로 한다. 임승국 선생은 환인 . 환웅 . 환검도 모두 하늘을
나타내는 '한'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글쓴이의 입장도 이와 같다.
특히 '환검'이라는 표기는 <제왕운기>에 단군의 칭호로 명기되어 있고, 박용숙 선생도 그 이름이
원칙이라고 한다. 다만 '환'이라는 글자도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가 있고, 한자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쓰던 글자인만큼 고유명사는 그대로 쓰고, 대명사로 쓰이는 경우에는 가능한한 '한'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때에도 다른 뜻과 혼동될 여지가 있는 때에는 한자 표기를 함께 쓸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라고 하여, 환인과 환웅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
부터 해설하려는 주제는 바로 이 두분(환인 . 환웅)에 단군왕검을 합친 삼한과, 중국의 고대문헌에
인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삼황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삼황의 뜻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② 삼황
삼황(三皇)에 대하여 사전에서는 "중국 고대의 천자로서 복희씨 . 신농씨 . 황제 또는 수인씨.
일설에는 포희씨 . 여와씨 .인황씨. 또 일설에는 천황씨 . 지황씨 . 인황씨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전의 설명은 중국의 역대 왕조와 삼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으나, 삼황
의 위업이 너무나 혁혁하여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자신들을 삼황의 후예로 자처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로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정통 사서(史書)인 <서경(書經); 상서(商書
)>에는 위의 어느 한 인물도 자신들의 선조(先祖)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칭호가 중국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따라서 사마천이 참고하였을 삼황에 대한 기록은 모두 <고기(古記)>였
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때의 <고기>는 단순히 오래된 서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태고(太古; 盤古)'
나 '삼고(三古)'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그 이전에는 신전에만 감추어져 있었던 기록을
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들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은 한제국(漢帝國)의 건국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상 최고의 폭군 중의 하나로 일
컬어지는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한제국이 성립하기 직전에 일어났고, 이때 진시황이 대대적으로
동이를 정벌했다는 사실은 <고기>들의 유출경로에 대한 해명이 되는 것이다. 진시황이 불태운
자료들은 동이의 세계지배를 기록한 서적들이요, 남겨둔 실용적인 자료들이란 역사기록과는 무관
한 책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기록들은 동이족의 중심신전이 동쪽으로 옮겨가서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을 세운 뒤에, 지부(支部) 신전에 거주하던 동이족들이 세간에 유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왕조들과 삼황과는 실제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고, 삼황은 동이족의 통치자들
이었다는 추론이 성립한다. 실제로 태호복희를 비롯한 삼황으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모두 동이족
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사학계의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동이문화, 즉 풍류에서의 삼황은 어떤 존재였을까? 풍류에서의 삼황을 밝히려면 먼저
동이와 조선에 대해 해설해야 한다. 그러니 이 부분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초점을 바꾸어 삼황
이 천황 . 지황 . 인황이고, 이 삼황이 본래는 환인 . 환웅 . 단군이었지만 삼한(三韓)의 체계가
완성된 후에는 풍백 . 운사 . 우사가 된다는 사실과, 이 삼황이 바로 중국사에 등장하는 복희 .
신농 . 황제헌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로 하자.
③ 삼황(三皇)과 삼한
먼저 삼황과 삼한(三桓), 즉 국조삼신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삼황은 천황(天皇) . 지황(地皇) .
인황(人皇)이며, 이때의 황(皇)은 광(光)과 같은 뜻이 된다. 빛나는 세명의 신이 삼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천 . 지 . 인으로 되어있는 것은 <천부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보여진다.
<천부경>에서는 역학의 원리가 나오는데, 그 역학의 원리를 압축한 그림이 하도이다. 하도가
고분의 설계도와 같은 것이므로, 삼황은 앞에서 설명된 고분에 거주하는 신들이다.
그렇다면 삼황은 각기 햇님 . 달님 . 별님에 해당하는데,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삼황의 거주지
자체가 고궁(古宮), 즉 하늘 집인 신전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황은 국조삼신이라는 말이 되므로,
여기서 부터는 삼황과 삼한을 같이 설명하는 것이 편리할 것 같다.
이 삼황은 고대사회의 중심업무를 셋으로 나누어 관할하였으니, 천황은 제의(祭儀), 지황은 태교
(胎敎), 인황은 조공(朝貢)이었다. 즉 천황은 종교적 업무를, 지황은 영토권을, 인황은 통치권을
각각 관장하였다. 영토권과 통치권을 분리한 것이 의외로 생각될지도 모르나, 고대사회에서
영토권을 가진 부족장들이 왕을 선출하여 정치를 맡기되, 나라에 재앙이 닥치면 왕이 덕이 없는
탓이라 하여 잡아죽인데서 알 수 있듯이 영토권과 통치권이 처음에는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업무분담은 어느 정도는 역사적 변천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국가형성의 순서가 처음
에는 종교집단이 사회를 지도하였고, 종교가 사회를 어느정도 발전시킨 후에는 생산활동에
필요한 토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어 무사(武士)집단이 질서를 유지하였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자
무사집단이 늘어나고 그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해야할 필요에 의해 합의기구가 생기고, 무사집단
들의 권한 일부를 위임한 조정자(調整者)를 선출하여 통치권을 부여하였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각 집단의 역학(力學) 관계가 반영되어, 여러 가지 제도가 고안되기도 하고
폐지되기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종교 - 무사 - 조정집단의 기본골격은
변함없이 유지되었을 것이며, 그 골격이 통일된 체제로 제도화된 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古朝鮮)'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삼국유사>나 <한단고기>에 나오는 조선 전사(前史)인 환국과 배달국(倍達國)은 각기 종교집단
과 무사집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조선국이 환국과 배달국의 체계를 그대로 이어 받았음
을 중층적 삼한개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층적 삼한개념이란 우리 역사에서 '삼한'이 삼한(三桓)
과 삼한(三韓)의 두가지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먼저 삼한(三桓)은 조선의 유래를 신통(神統)에
입각하여 밝힌 것으로서 '윗삼한'으로 부를 수 있으니, 곧 삼신일체의 신앙체계이다.
다음으로 삼한(三韓)은 조선의 통치체제이니, '아랫삼한'이라 할 수 있다. 이 아랫삼한을 다스리
던 사람들이 바로 삼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그들이 바로 풍백 . 운사 . 우사 이다.
따라서 삼황을 태양신과 그 식솔(달님과 별님)의 뜻으로 사용하는 특수한 경우에는 삼황이 곧
삼한(三桓)이 된다. 그러나 삼황을 조선국의 세 통치자로 보는 경우에는 삼황이 삼한(三韓)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구별에서 '韓'의 핵심개념은 아무래도 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韓'은 우물
구덩이를 뜻하는 '간(乾의 '乙'이 없는 글자)' 에다가 에워싼다는 뜻의 '圍(위)'의 생략형인 '韋
(위)'를 더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자의 본 글자는 '위(우물井자를 에워싼 ㅁ)' 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에 중점이 놓여지는 윗삼한은 신전의 빛을 뜻하는 '桓'으로 쓰는
것이 옳고, 풍류의 봉건제도(神政)에 중점이 두어지는 아랫삼한의 경우에는 이 '韓'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이제 삼한(三桓)은 삼신으로, 삼한(三韓)은 삼왕으로 칭호를 바꾸어 '삼한 = 삼신 + 삼왕' 으로
용어를 정립하도록 하자. 지금까지 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 역사의 이해에 많은 혼란이
있었으나, 이렇게 정리해 두면 혼란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④ 삼신과 삼황
여기서 다룰 주제는 삼신의 뜻풀이에 해당한다. 삼신이 햇님 . 달님 . 별님으로 이해될 때, 우리
고대사가 세계사의 시원에 대한 기록으로 재평가 될 수 있음을 박용숙 선생은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고대사의 상징과 사회제도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삼신을 재조명 하므로써, 삼신의
여러 칭호를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저 환인(桓因)은 '햇님' . '하느님'을 뜻하는 순우리말로서, 태양신의 이름이다. 상고시대의 각
종족들은 태양신을 시조신으로 숭배했는데, 그 풍습이 우리 역사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가 환인에 대해 '제석천왕(帝釋天王)'이라고 주(註)를 달고 있는 것도 같은 뜻이다.
이 주에 대하여, 일연이 승려였기 때문에 조상들까지 인도의 신으로 둔갑시켰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제석천왕이 인도 브라만교의 최고신인 '인드라(Indra)'로만 생각한데서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Indra(인드라)를 한자로 옮길 때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말 중에서 뜻이 비슷한 말을 골라 썼다는 사실을 생각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帝釋天王' 이라는 네 글자는 모두 태양신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먼저 '帝'는 태양신을 제사하는
제단(祭壇)의 모습이다. '天'은 본래 태양을 나타내는 글자였다. '王'은 '皇'과 같은 글자로 쓰였
으니 이 또한 태양신의 뜻이다. 그렇다면 '釋'자만 풀어내면 제석천왕의 정체도 드러나는 셈이다.
[釋]은 '釆(변)'과 '目(목)'과 '幸(행)'을 합친 글자이다. '釆'은 "씨를 뿌리다"는 뜻이고, '目'은 '눈'
이며, '幸'은 본래 뜻이 "일찍 죽는 것을 면하다"는 뜻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뜻을 한단계 더
추구 해 보면, '釆'의 씨를 뿌린다는 뜻은 변한(弁韓)의 다른 표기인 '번한(番韓)'의 '番'과 같은
글자이다. 즉 풍류의 씨뿌리기를 나타내는 글자로서, 동이족의 혈통을 뜻한다. 다음으로 '눈(目)'
이 나타내는 뜻은 군왕(君王)이다. <천부경> 수리에서 눈이 군왕을 상징함은 박용숙 선생이 밝힌
바이다. 마지막 '幸'은 풍류도의 중요한 목표인 장생불사와도 연결되지만, 글자 자체가 '천자'의
뜻이 있음을 '총행(寵幸; 제왕이 여자를 사랑하여 침석에 들게 함)', '행행(行幸; 천자의 행차)' 등
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釋'은 고대 임금의 별칭 중의 하나였다.
이 사실은 '석전(釋奠)'이라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비슷한 글자인 '석존(釋尊)'과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석전'은 "선성선사(先聖先師)의 제사. 한(漢)나라 이후에는 공자의 제사만을 이름" 으로
풀이되어 있는 말이다. 이 해석과 "복희가 上古요, 문왕이 中古요, 공자가 下古이다"라는 三古의
해석을 연결해 보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釋]은 '三古'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소리는 '석'이 되어 '석 삼(三)'을 나타내고, 뜻은 선성선사(先聖先師)가 되어 태양신(삼신)을 나타
내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샤카 무니(Sakya muni)의 샤카(Sakya)를 그 많은 글자 중에 '釋'으로 옮긴 데에는 풍류의 후광을 빌리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며, 그 의도는 성공하여 석가모니가
환웅전(大雄殿)을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제석천왕'은 지금도 무당들이 목메게
부르는 '삼신제석(三神帝釋)'의 다른 이름이다.
'제석천왕'에 '태양신'의 뜻이 있어 브라만교의 태양신인 '인드라'와 뜻이 같기 때문에 죄없는
일연이 욕을 먹었던 것은, 순전히 족보를 간수못한 한겨레의 책임일 뿐이다. 더구나 브라만교가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후신(後身)으로서, 인드라가 곧 제석천왕이므로 <삼국유사>의 기록은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진실만을 기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환인이 태양신이라는 학설에 대하여 최인(崔仁)씨는, "민족사의 출발이나 민족의 본질을 철학적
으로 논할 일이지, 해가 뜨고 날이 밝고 어둡고 하는 미물 짐승들의 오관이나 본능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사의 모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하였다 하는데, 이는 철학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학이란 자연현상의 인간적 의미를 언어를 사용한 논리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시대 그사람들에게 필요한 철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정령
신앙이 미개인의 소박한 신앙형태라고 평가되지만,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하여 환인이 정령신앙을 만들던 시대로 데려갔을 때, 그들이 어떤 철학을 만들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살아있는 후손들의 민족적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조상들의
위업을 모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 발견과 농경의 시작(신석기 혁명), 그리고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과 자연현상과의 관계규명
등은 뉴턴 물리학이나 상대성이론 등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업적인 것이다. 그런 업적을 이룬
주체가 바로 우리의 직계조상인 국조삼신이라는 사실, 그것을 밝혀주는 문화유산이 풍류인 것이며,
그 풍류의 최초형태가 '햇님'이라는 낱말로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다.
환인은 또한 인류 최초로 철학을 창시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태양이 생명력의 근원이며, 또 지구
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의 유발자(誘發者)요 주재자라는 사상은 지금 행세하는 모든 철학의
근원이며, 아직도 그 뜻을 모두 밝혀내지 못한 심오한 진리체계이다. 이책도 그 진리의 한 단면
이라도 더 개척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환인이 한 자연인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고대사회에서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을 것이고,
환인의 이런 업적을 기리는 뜻으로 태양신이 지상에 강림한 신인으로 숭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그의 후손들에 의해 태양신의 칭호는 세습되었을 것이며, 이런 과정을 거쳐
환인이 우리민족의 조상신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여진다.
환웅은 우리말 '하늘(天)', '큰 불(大火)', '한울(大城冊: 큰 울타리)'등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다.
이때의 하늘이나 큰불이 태양신의 상징임은 '桓雄'이라는 글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桓'이 태양의
뜻임은 여러번 강조되었고, '雄'은 '클 굉(宏)'자와 '새 隹(추)'자를 합친 글자로서 '큰 새(大鳥)'
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큰 새'가 바로 태양을 가리키던 대붕(大鵬) 또는 봉황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이 사실을 통해 환웅이 환인의 권위를 계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환웅에 대한 역사적 사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웅녀(熊女)'에 대한 부분이다.
웅녀는 단군신화에 기록된 대로, 환웅과 동침하여 단군을 낳은 우리민족의 대성모(大聖母)가 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녀에 대한 연구는 웅녀가 곰이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수준을
간신히 넘어선 실정이다. 웅녀가 곰을 토템으로 하던 부족의 여인이었다는 주장이 한때 널리 믿어
지기도 하였으나, 최근의 연구는 이 곰(熊)이 신(神)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감(ㄱ+아래ㅏ+ㅁ)'의
한자표기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이렇게 볼 때 웅녀는 '여신'이 된다.
'감'이 '큼(大)'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라는 주장을 채택한다면, 웅녀는 '큰 여자'가 되어 '큰 남자'
를 뜻하는 환웅과 짝을 이루게 된다(雄의 글자 뜻은 '수컷 웅'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웅녀'가 '감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단군신화에서 웅녀의
위상은, 환웅의 아내가 아니라 단군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중점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사실은 '감녀'의 속뜻이 '감모', 다시말해 '큰어머니' 일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감모'를 '곤모(坤母)' 또는 '고모(古母)'로 바꾸어도 문제가 없게된다. 이렇게
추적하는 이유는 앞의 '태고와 반고'에서 설명된 '곤모'와 한겨레의 대성모인 '웅녀'를 연결시키기
위해서이다. 풍신(風神)의 본래 뜻인 대붕이나, 봉황의 어릴 때 모습인 북명(北冥)의 물고기 곤
(鯤)이 우리민족의 첫어머니인 웅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글쓴이의 최종결론이다.
웅녀를 이렇게 이해하자면 단군신화에 곰과 함께 등장하는 호랑이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하는데,
이 호랑이는 바로 중국 고대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서왕모(西王母)'의 상징이다. 하신은 <신의
기원>에서 서왕모가 태음신(太陰神)으로서 곧 월신(月神)이며, 복희와 한몸으로 그려지는 여와
(女蝸)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대(漢代)의 전화(벽돌그림)에서는 서왕모의 몸 아래에 항시
호랑이가 그려진다고 한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호신(虎神)의 이름이 '우토(于兎)'로 발음된다는
사실이다. '우토'는 한자어로는 아무런 뜻을 찾을수 없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표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뿌리를 우리말에서 찾아야 옳고, 우리말에서는 태음신이나 지신의 뜻을 대표하는
후토(后土)를 쉽게 연상시키는 '웃터(上土)'라는 말이 있다. 즉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실체는 당시 영토권을 행사하던 여신족(女神族)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환국 단군신화의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一熊一虎)"는 박용숙 선생의 주장대로 "곰은 검은머리
검은 눈의 황인종이고, 범은 노랑머리 파란 눈의 백인종으로 이해된다." 이 해석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태백산 신시가 이 두 인종이 뒤섞여 살면서 영토분쟁을 일으키던 그런 지역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역은 르네상스 이전에는 지중해 연안의 서남아시아와
동북아프리카 외에는 없었다.
환국 신시의 위치가 지금의 중동지방이라는 선생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정확한 것이다. 여기서
'한편으로는' 이라고 단서를 붙인데에는 이유가 있으니, <한단고기>의 기록을 참고할 경우 이
간단한 구절에 1,500년이라는 시간공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삼계(三界)에 대한 설명
에서 다루기로 한다.
단군신화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환웅이 바로 지황이라는 것이다. 환웅에
대한 기록에 범과 곰이 같이 나타나고, 그들이 아이 낳을 자격을 얻기위해 수행하는 여자들이며,
환웅이 그들에게 자격을 갖추는 방법을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등은 환웅이 여신전을 관장
하던 지황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웅과 웅녀의 '웅'은 우리말로 읽으면 같은 소리가 된다. 이는 환웅(桓雄)을 환웅(桓熊)으로 써도
된다는 뜻이다. 즉 웅녀는 본래 '감녀'의 뜻도 되지만, 환웅의 여인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웅(熊)의 본래뜻을 찾아보면 더 확실해진다. 곰은 옛날에 능(能)으로 썼으며,
웅(熊)은 본래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곱게 빛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는 바로 대화신(大火神)
인 태양신의 이미지인 동시에, 지황의 또다른 직무인 야금장(冶金匠)과 관계되는 상징인 것이다.
이 점을 지원해 주는 말이 바로 '서자(庶子)'이다.
단군신화의 '서자(庶子) 환웅'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서(庶)'의 글자뜻은 '불을
켜 둔 집' 또는 '불씨를 모시는 집'이다. 따라서 박용숙 선생이 다음과 같이 설파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견해라 하겠다.
환웅이 서자라는 것은 바로 그가 월궁 출신임을 뜻하는 것인데 ...... 이 월궁은 물론 선천도
(先天圖)의 곤(坤)에 해당하는 곳으로 흔히 북천(北川) 가에 있는 곳으로 되어 있다 ...... 서자들은
모두가 한울의 서쪽에서부터 북쪽 사이에 펼쳐져 있었을 신시(神市)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신시에 살면서 온갖 잡사(雜事), 이를테면 각종 공예, 그림, 건축, 야장업 등에 종사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물론 신정시대에 있어선 모두가 신성한 것이다. 고문헌(古文獻)들에 보이는 호(胡)
라든지 월씨(月氏), 숙신(肅愼), 말갈(靺鞨), 백잔(百殘)등은 모두가 신정시대의 신시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던 신들이다 ...... 고대 그리이스의 가이아(Gaia) 신화는 이러한 서자들이 지귀(地鬼)
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 이때의 지귀라는 것은 곧 생산에 종사하는 신들을 말한다
...... 환웅이 거느렸다는 3천의 무리는 대부분 이런 지귀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앞에서 도깨비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서자란 곧 도깨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능화(李能和)가 수자리(水尺)라고
지칭한 것도 바로 이들을 뜻한다.
지금 쓰이는 문왕역 이전에 쓰였던 선천역도(先天易圖)는 복희팔괘도이다. 복희팔괘에서 곤괘는
북쪽에 배치된다. 그리고 방은 한낮에, 북방은 한밤에 배당되므로, 곤(坤)은 태양이 땅밑으로
들어간 밤에 하늘을 지배하던 신이었다. 그리고 그 신의 상징이 북두칠성이고, 북두칠성을 서양
천문학에서는 대웅좌(大熊座; 큰곰자리)라고 부르므로, 곤모신인 지황이 바로 환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삼신의 마지막은 단군, 즉 환검이다. <삼국유사>는 단군에 대하여 환검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고,
독특하게 왕검(王儉)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왕검(王儉)'은 태양신을 뜻하는 '황(皇)'의 변형체인 '왕(王)'과, 앞에서 살펴본 곤모신을 뜻하는
[감(儉)]을 합친 글자로 생각된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글자가 '왕(王)'이다. 왜냐하면 황(皇)
에서 흰 백(白)이 떨어져 나가고 왕(王)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떨어져 나간 백(白)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白'이 독립하여 단군
(檀君)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白'이 상징하는 태양신의 비중이 그만큼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능보다 통치자로서의 기능이 강조된 것이 된다.
'검(儉)'은 '사람(人)'과 '첨(僉)'을 합한 글자인데, '僉'은 '뾰족하다(尖)'는 뜻과 '조사하다'는
두가지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이 뜻들을 모두 합하면 '검(儉)'은 '뾰족한 곳에서 살피는 사람' 이라는
뜻이 되며, 이는 곧 상감(上監)이라는 임금의 칭호와 같다. 이런 칭호의 유래가 삼신산(古) 꼭대기
에서 삼계의 정사를 살피던 태양신(皇)에서 비롯됨은 자명하다.
임승국 선생이 땅의 신을 [감]이라 하고, 일본말의 '가미(カミ)'가 '꼭대기, 머리, 황(皇), 신(神)'
을 나타내는 것과, 우리말 검줄(神索), 검토(神土) 등을 예로 들면서 "'검'이 곧 '신(神)'" 이라고
주장한 것은 옳은 풀이이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단군'이 '박달임금'이 되어 '배달'의 뜻을 나타내
므로, '배달을 이어 천신과 지신을 겸한 임금'이라는 최고의 신칭(神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왕검이라는 칭호 자체가 '천지를 이어받아 천지를 합하였다'는 의미를 가진 '인(人)'의 뜻을
담고 있으므로, 단군왕검이 곧 인황(人皇)이 되는 것이다.
⑤ 복희 . 신농 . 헌원
삼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역사적 인물들이 중국 고대사의 성왕들인
태호복희(太昊伏羲) . 염제신농(炎帝神農) . 황제헌원(黃帝軒轅)이다.
이들에 대한 국내 민족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이들이 동이족의 혈통에 속하지만 배달국
이나 조선의 방계 제후에 불과한 사람들로서, 한족(漢族)의 시조가 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며,
이는 <한단고기>의 기록에 충실한 입장이다.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로 박용숙 선생이 있는데, 선생은 "우리는 해님이 창조주이며 입법의
신이며 교육의 신임을 말하였다 ...... 복희라는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직칭(職稱)이라고
볼수 있다. 이를테면 해님이라는 신의 직능을 표상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복희라는 말이
결국 해님이라는 말의 표상이라면, 환인과 복희는 같은 직명이거나 같은 계열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다 같이 태양신이다. 그러나 하늘의 태양이 두 개가 있을 수 없듯이, 한울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를 대표하는 태양신이 이 지상에 두 개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신정적 이념으로
보면, 결국 복희와 환인은 동일 신통(神統)일 가능성이 크다." 고 하여, 환인이 곧 복희라고 한다.
이 주장은 이책에서 복희와 환인을 모두 태양신의 칭호로 본 사실과 일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단 환인을 중국에서 자신들의 시조로 빌려 쓸 때 붙인 이름이 복희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인물이 염제신농이다. 박용숙 선생은 환웅에 대한 설명에서 "<삼일신고>는
환웅을 두 번째 자리에다 모시고 그를 교화주라고 하였다. 교화란 물론 가르치는 일을 말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가르친다는 것은 재창조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것 혹은
이루어진 법칙을 다시 전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전하는 방법은 반드시 매개물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는 재창조를 하게된다.
해님이 창조의 신으로서 입법을 상징한다면, 달님은 재창조의 신으로서 생산을 상징한다.
이러한 관계는, 가령 복희와 신농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신농은 복희가 만든 팔괘를
늘여서 모두 64괘로 하였으며, 그는 그러한 괘를 가지고 농사짓는 법,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곧 복희가 첫 자리로서 해님인 것을, 그리고 신농이 두 번째 자리로서 달님인 것을 뜻한다"
라고 하여 , 환웅과 신농이 동일 신통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때의 신통은 동일인물
이라는 뜻이 아니라 동일직능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염제신농은 경농(耕農)과 의약(醫藥)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불(火)을 종족의 표지로 삼고
관직을 만들었으며, 강(姜)씨로 성을 삼았고, 호를 고신씨(高辛氏)라 하였다고 한다. 이 중에서
환웅과 염제가 동일인이거나 동일 신통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염제의 호(號)가 고신씨(高辛氏)
라는 것이다. 고(高)는 입구가 있는 높은 건물의 모양을 본뜬 글자(A)이며,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신전의 모습이다. 신(辛)은 본래의 글자 모양이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모양(B)이며, [섶(장작)]을
뜻한다.
작은 불을 피우는데 쓰므로 염제(炎帝)라는 칭호와 부합된다. 이 종족의 민요가 바로 <동경대전>
에 나오는 '파부지가(破斧之歌)' 인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환웅이 서자(庶子)라는 단군신화의
기록은 바로 이 섶과 연결된다. 섶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피우면 '서(庶)'의 뜻인 '불이 있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환웅과 신농을 연결시켜 주는 두 번째 근거는 경농과 의약이다. 여기서의 경농은
곡식을 재배한다는 뜻과 태양신족의 씨를 퍼뜨린다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이미 살펴본대로 이는
지황인 환웅의 역할이며, 또 단군신화에 환웅이 곡식을 주관하였다는 기록과도 연결된다.
환웅과 신농의 유사점은 환웅의 강세신화(降世神話)에서도 발견된다. 환웅이 땅에 내려온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기록은, 장작을 쌓아올려 화톳불을 피우면서 태양신을 맞이하였다는 신농씨족의 풍습을
연상시킨다. 즉 화톳불은 땅에 내려온 태양의 상징이요, 집 안에 모셔진 불은 땅속에 들어간 태양신
의 상징인 것이다.
환웅과 신농을 동일신으로 볼 때,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 웅녀와 여와이다. 웅녀와
여와는 모두 고대의 대성모(大聖母)로 묘사되면서도, 그 위상이 아주 애매한 여신들이기 때문이다.
위상이 애매하다는 것은, 두 여신이 모두 지황이 되어야 옳음에도 불구하고, 지황의 자리를 환웅과
신농에게 양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웅녀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여기서는 여와에 대한 하신의 고증과 주장을간단히
소개하고, 웅녀와 여와의 관련성을 찾아보기로 하자.
㉠ 한묘(漢墓)에서 출토한 벽돌그림에서 여와는 항상 복희와 몸이 이어져 교미하고 있으며,
양자는 모두 인수사신(人首巳身)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다만 복희의 손에는 태양을 받들고 있고,
여와의 손에는 달을 받들고 있다. 이로서 볼 때 여와는 달의 신이다. 그리고 고대전설 속에서
여와는 인류의 어머니로 받들어지고 있다.
㉡ 여와는 음제(陰帝)로 복희를 보필하여 통치하는 자이다. <회남자; 남명훈>
㉢ 달의 신 여와는 고대종교 중에서 가뭄과 홍수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논형; 순고편>에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면서 개지 않으면 사(社)를 공격하고 여와에게 제사지냈다"는 한대의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 천지는 처음에 완전하지 않았으므로 여와씨가 오색돌을 단련하여 빠진 곳을 보충하고, 거북의
다리를 잘라 사극을 세웠다. <박물지>
이 중에서 웅녀와 연결가능한 부분은 첫째, 복희와 몸이 이어져 교미하는 모습이다. 이는 환웅을
신농과 연관시킨 바로 앞의 설명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환웅이 환인의 아들
이었고, 고대에 각 부족은 태양신을 시조로 삼고 그 추장은 태양신으로 자기 이름을 지었던 풍속이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여와와 교미하고 있는 복희는 실제로는 환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견해를 지원해 주는 기록도 있다. "태호제 포희씨는 ...... 호를 황웅씨(皇雄氏)라고도
한다(<주역; 계사하정의>)", "호를 황웅씨(黃熊氏)라 한다(<예기; 월령정의>)"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기록들이 삼신일체의 관념이 형성된 이후의 기록인 점을 감안한다면, 복희와 환웅을 동일한
태양신으로 보고 태음신과 태양신의 결합 자체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이 이런 기록들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와와 웅녀의 두 번째 관련성은 곤모(坤母)에서 찾아진다. 인류의 어머니로서 음제(陰帝)이며
만물을 화육하는 존재는 지덕(地德)을 지닌 곤모이며, 여와와 웅녀는 곤모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여신의 셋째 관련성은 거북에서 찾아진다. 곤모가 위치한 북방은 고분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에서 현무(玄武)의 자리이며, 이 현무는 신령스런 거북이다. 이 거북은 또한 북두
칠성으로 상징되는바, 거북의 형상은 몸통과 머리 . 꼬리 . 앞뒷다리의 일곱 부위로 나눌 수 있고,
이는 북두칠성의 일곱 별에 대응된다. 북두칠성은 큰곰자리이고, 이는 웅녀의 칭호에 붙은 '곰'의
참뜻인 것이다.
결국 환웅과 웅녀를 일체로 묶으면 지황에 배정되는 두 인물인 신농과 여와를 하나로 묶은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이는 태양신의 신전과 고모신의 신전이 하나로 합해지면서 환국보다 강력한
통치체제인 배달국이 성립되었던 역사기록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각기
다른 신화의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남은 황제헌원은 단군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황제는 하신의 고증에 따르면 태양신
이며, 복희와 여와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전설이 태양신과 고모신의 결합을
뜻한다는 점에서 단군신화와 다를바 없다. 또 단군왕검의 칭호 중에서 왕검은 태양신과 고모신의
결합을 나타내며, 단군의 단(檀)은 丹(붉을 단; 붉다 =밝다), 旦(아침 단; 아침은 밝다), 東(동녘 동;
해돋는 땅의 나무 = 박달나무) 등으로 바꿀수 있다. 이 글자들이 모두 태양의 뜻이 있으므로, 황제
(黃帝)가 태양신을 나타낸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중국역사에 나타나는 삼황의
전설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삼신의 신화가 같은 뜻의 다른말로 전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남은 문제는 과연 한족(韓族)과 한족(漢族)의 어느쪽이 삼신의 정통을 이은 종족인가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 문제를 밝히기 위해 살펴볼 내용이 삼한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왕(三王), 즉
동이와 조선의 삼한관경이다.
(향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