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알고 살아야죠
박완규
아침 메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안내 말씀 드립니다.
어젯밤에 율촌 마리나 노인요양원의 사공춘 원장님을 만났는데 이 분이 한 가지 애로사항을 말씀하시네요. 추석날에 요양원에서 일손을 도와줄 자원봉사자 몇 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거기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여성분들인데 이분들이 모두 각 가정의 며느리들이다 보니 명절 때 근무할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추석날에 요양원에 오셔서 어르신의 말동무나 설거지나 청소를 도와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때는 어르신 한 분을 잃어버릴 뻔 했다고 합니다. 명절이라 내방객들은 많은데 직원들은 부족하다 보니 치매에 걸린 어르신 한 분이 요양원을 무단으로 나가신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가 늦은 밤에야 겨우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여기 마리나 노인요양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요양원에도 사람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추석날에 의미 있는 일 하나를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면 가까운 요양원을 방문하셔서 어르신들을 한 번 살펴봐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면 자식이나 가족은 있는데 일년 내내 누구 한 사람 찾아오는 사람 없이 홀로 방치된 어르신도 계시다고 합니다. 다른 어르신들은 그래도 명절이라고 자식들이 찾아오고 그러는데 이분들은 그냥 우두커니 명절을 보낸다고 합니다.
저도 추석날에 성묘 일찍 끝내고 나면 두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요양원이라도 방문해서 어르신들 말동무라도 해드리고 와야 하겠습니다.
제가 요즘 각 학교에 강의를 하고 다니느라 조금 바삐 삽니다.
지금 이 시기는 각 학교마다 학부모총회가 개최되고 있는 시기인데 그 자리에 초청강사로 초대되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진로 문제와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여수가 아닌 순천이나 인근 도시로 강의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조금 났는지 요즘은 여수에 있는 학교에서도 부쩍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학부모들에게 하는 강의 내용은 주로 이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해야 한다는 것, 선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녀들을 선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녀들을 선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선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얘기를 조단조단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6권이나 쓴 작가이다 보니 자녀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자녀들의 말하기는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등의 팁도 함께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부모들의 반응도 꽤 좋은 편입니다. 현장감 있는 얘기를 많이 해드리고 있거든요.
앞으로 남아 있는 강의만 해도 웅천초등학교, 도원초등학교, 성산초등학교, 신기초등학교, 진남초등학교 등의 강의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학교에 갈 때마다 수백 명의 어머니들이 앉아 계시는데 저는 이분들에게 아이를 공부만 하는 작은 아이로 키우지 말고 세상을 품에 안는 큰 아이로 키워달라고 당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너무 이기는 아이로 키우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험한 까닭은 양보하고 져주는 사람보다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겨서 우뚝 서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공부를 잘해서 1등만 하면 조금 나쁘게 커도 용서가 되고, 조금 잘못된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1등을 해서 세상을 나가게 되면 이 아이는 세상이 모두 그런 줄 알고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병우 수석, 진경준 변호사, 최근에 스폰서 검사로 문제를 일으킨 김형준 부장검사 처럼 이기는 것에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사람의 도리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힘과 권력이 쏠리다 보니 국민들이 이렇게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지고 살고, 밑지고 살면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5년, 10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사람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경험을 예로 듭니다. 제가 돈은 없지만 가급적 베풀고 살고 손해를 보면서 살아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저를 도우려고 애를 쓰고 저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를 쓰더라는 것입니다.
베풀고 살고 져주면서 사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져주면서 살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면 그때그때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저금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절대 손해 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맞고 오면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가서 패고 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병원비를 물어줄 테니 다시 가서 친구를 패고 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너무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드립니다. 옛날에는 공부하라고 하면 논어나 맹자 등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은 모두가 사람 되는 공부였고,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공부였습니다.
요즘 세상이 험한 까닭은 이렇게 사람 되는 공부보다 지식과 암기 위주의 공부를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많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아이는 사회에 나옵니다.
제가 정부부처에 가면 고시에 합격한 인재들과 대화할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사람들이 사회물정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고 안 된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더 우려했던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해야 할 사람들 또한 이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터무니 없는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장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일선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고달픈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서 툭툭 내리는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를 이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강의가 1시간도 금방이고 2시간도 금방입니다.
어쨌든 제 생각은 우리 어머니들이 변하면 대한민국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절대 강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어머니' 들입니다. 저같은 남편들이 무슨 힘이 있나요. 지금 세상은 어머니들이 절대 강자인 세상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변해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강자니까요. 세상이 변하려면 강한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변하지 않겠지만 우리 어머니들이 변하면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흔들어 보려고 날마다 이리 바삐 뛰어다니고 있습니다.ㅋ
농담 같이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세상의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변하는 것, 그 '나'가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빨리 변하게 되겠지요. 그 변화가 모두의 '선함'에서 비롯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하루되시기를 빕니다.
대원 (大原)
박 완 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