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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할때
화제의 중심은 유고슬라비아였다.
90년 초에 비엔나에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데
유고 내전이 터지면서 난민들이 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왔고 그들이 습관대로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평온하던 오스트리아가 왠지 외국인들이 붐비면서 조금씩 각박해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종교의 교리는 세상을 좋은곳으로 인도하기위한다.
그러나 세상 싸움의 원인은 인종때문도 있지만 많은 것은 종교때문에 생기니 ???
옛 유고연방 전쟁의 원인도 파고들어가보면 종교때문이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로마 카톨릭으로 서로 분쟁이 없었다.
그러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교와 세르비아정교요 세르비아역시 세르비아정교다.
그런데 알바니아는 70%가 이슬람이고 20%정도가 알바니아정교다.
마게도니아는 그리스정교 64%, 이슬람 33% 정도로 종교가 제각각이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공산주의는 힘을 잃어갔다.
1991년 6월 유고연방의 북.서쪽 슬로베니아와와 요즘 여행지로 각광받고있는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인이 사는땅은 모두가 세르비아영토라는 슬로건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세르비아는 슬로베니아를 공격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는 90%가 슬로베니아 족이었기에 침공할 명분이 약했기에 전쟁은 10일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세르비아인이 200만명이나 살고있는 크로아티아는 상황이 달랐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살고있던 세르비아인들은 물론이고 정부군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인종청소를 단행했던 것이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다.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에서 1,800명을 보스니아에서는 25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심지어는 미래의 씨앗을 뽑아버리겠다고 어린이들까지 무참하게 죽였다.
수백년을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이처럼 잔인한 전쟁을 벌이자
오스트리아뿐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세르비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어느 마을을 공격할 경우 어린이들까지 몰살시켜버렸다.
심지어는 종군기자들까지 예외를 두지않았다.
얼마나 잔인했으면, 후에 영화로까지 나왔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수많은 전쟁난민들이 들어왔는데
전쟁난민들을 수용하는 유럽인들의 아량뿐 아니라 거쳐와 먹을 것 까지 제공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가 숙여졌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내가 설명하는 것 보다는 백과사전에 나오는 것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옮긴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영토에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일어난 전쟁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흔히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렀지만 1992년 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내전으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6개 구성 공화국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사라진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 ...
유고슬라비아는 국명이 '남(南)슬라브민족의 국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유고가 슬라브족인 세르비아인들만의 국가가 아니라 15개가 넘는 크고 작은 인종집단, 그리고 서로 갈등·대립하는 민족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전체 인구에 대한 민족별 비율은 세르비아인 약 42%, 크로아티아인 23%, 슬로베니아인 9% 등이다.
유고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나라인가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알 수 있다.
즉 유고는
하나의 국가,
2개의 문자(키릴문자와 러시아문자),
3개의 종교(그리스정교·로마가톨릭·회교),
4개의 언어(세르비아어·크로아티아어·슬로베니아어·마케도니아어),
5개의 민족(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마케도니아인·몬테네그로인),
6개의 공화국,
7개의 접경국으로 표현되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한번도 독립을 이룩하지 못하고 1918년까지 오·홍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12세기부터 1919년까지 헝가리, 오스만 터키, 오·홍제국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는 14~5세기경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에 있다가 19세기에 들어와 오·홍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산악지대의 몬테니그로만이 상당기간 독립, 유지하였다. 이러한 위치의 유고가 외부적으로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접근이 용이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국토의 70%가 험난한 산악지대여서 상호 왕래가 어려움으로 여러 민족이 고립되어 살았다. 그리고 유고 민족들 상호간의 살육전의 역사도 아주 깊고 참혹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홍제국, 그리고 오스만 터키가 패배함으로써
1918년에 남슬라브민족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왕조를 건설하였다. '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으로 불리워 졌다가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왕국'으로 개칭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연방 인민공화국'으로,
1963년부터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불리워 졌다.
【국제정치학박사, 국박대학원 교수 전정환】
님의 글퍼왔습니다
독립기념일날 오페라극장
국립 방송교향악단 지휘자인 친구는 서양속의 동양인처럼 정이많습니다.
이태리로마에서 비행기로 2시간(실제로 공중에 떠있는시간은 1시간반?) 바다를 가로지르니 알바니아였다.
마더 테레사가 마게도니아 스코페출생이지만 알바니아사람들은 - 핏줄이 알바니아기에 - 알바니아인이라 부른다.
일부 알바니아인은 세르비아땅에 살면서 - 코소보지역은 - 독립을 외치다가 인총청소를 당했다.
옛 유고연방 남부 마게도니아는 알랙산더와 마더 테레사의 고향이지만 그리스는 극구 반대한다.
마게도니아라는 나라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마게도니아와 국교를 수립하려하자 수입을 끊겠다고 압박하면서 극구 반대한다.
한국은 그리스때문에 마게도니아에는 대사관도 세우지못하고 불가리아 대사가 관리한다.
마게도니아에게 미안했던지
올해는 마게되니아에서 문화행사라도 만들려고 시도중이다.
요즘 한국 TV에 관광지로 각광받는 발칸반도와 크로아티아의 해변은 참 아름답다.
그러나 한때는 처참한 살육의 도가니였다.
혹시 여행을 간다면
여러인종들의 특징과 성격또 종교를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첫댓글 흥망성쇠는 개인이나 나라나 무상하기는 매한가지로군요! 어떻든 지휘자님이 부럽습니다. 여러가지 고초도 많이 겪으시지만 말입니다. 안성세계민속축제(2012 년) 때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바키아사람들을 처음 만나 그들의 공연을 즐겼었지요. 참으로 행운이었습니다!
안성에서 찍었던 크로아티아 사진 잘 봤습니다.
90년대 초만해도 살벌하고 먹고살기 힘든 나라였는데
요즘은 관광객이 많아져서 살만하고 특히 한국 TV에 소개된 후부터 관광객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작년에 한국인 크로아티아관광객이 24만명이나 되었다네요. "꽃보다 ~ " 땜시... 덕분에 물가는 비싸지고...
저도 세르비아에 두차례 갔었는데('96년, '12년) 첨에는 미국의 엠바고가 막 끝난 시기로 너무나 어려운 시기였지요.
이후 한 독재자가 소위 인종 청소를 전쟁도 있었고. 발칸의 역사는 말씀하신대로 인종, 종교, 역사와 경제가 얽키고 설켜
쉽게 이해하기가 힘든것 같습니다.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를 공격하기 전에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인들을 잔인하게 청소했고, 왜 그들이 코소보를 포기하지 않은지 매우 복잡하고 존망에 대한 이해들이 얽켜있기 때문이지요.
거기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순수하고 착한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