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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수염을 허리까지 길러 어찌보면 대단히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사도괭이었지만 주름살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와 독사의 그것처럼 번
뜩이는 날카로운 눈빛의 풍채좋은 사도괭은 가만히 있어도 주위사람
들을 저절로 긴장시키며 약간은 사이한 듯한 기도를 풍기는 인물이었
다.
강운을 아래 위로 훑어보던 사도괭은 특별히 내공을 익혔다거나 무공
을 익힌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린 사도괭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수하에게 무
언가를 지시했고 그의 명령을 받은 수하는 재빨리 명단을 집어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름을 밝혀주시오! “
“강운”
심드렁한 표정의 강운의 한마디에 명단을 들고 있는 사내가 가볍게
인상을 찡그렸다. 한참동안 명단을 뒤로 넘기며 강운의 이름을 찾아
헤매던 사내가 마침내 명단을 덮으며 사도괭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분타주님! 명단에는 강운이라는 이름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
수하의 보고를 받은 사도괭은 예상을 했었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약간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데리고 와라! “
“복명! “
재빠른 동작으로 장내에서 사라진 사내는 얼마 후 제대로 윤곽을 구
분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얼굴이 부어오른 3명의 사내를 데리고
사도괭의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비단 얼굴이 부어오른 것 외에도 팔 다리가 부러졌는지 제대
로 된 걸음을 걸을 수 없어 보였기에 누군가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몸을 운신할 수 없을 지경의 3명의 사내들은 사도괭의 부름으
로 강운의 정면에서 그를 한참동안 관찰하는 척 하다가 이내 희열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도괭을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부, 분타주님! 저놈이 확실합니다. 저희들을 이꼴로 만들어 놓은 놈
도 저놈이었습니다. “
“흐음.. 확실한가? “
“예! 확실합니다. “
침음성을 흘리며 사도괭은 다시 한번 강운의 면면을 세세하게 살펴보
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무공을 익힌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단호한 경비무사 3명의 확답과 돌아가고 있는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강운이 첩자라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지만 그
의 마음을 찜찜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첩자가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
았다는 것이었다.
“감옥에 가둬라. “
찜찜하긴 했지만 범인이 확실시 되어버린 이런 상황에 강운을 곱게
놓아준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 강운을 잡아들여 배후의 인
물을 캐내기 위해 심문을 할 목적으로 사도괭은 수하들에게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다소 긴장감이 풀어진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화운문의 제
자들은 사도괭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대열을 정비하며 강운
의 모든 퇴로를 막아버림과 동시에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 들어갔다.
조금 전 망신창이가 된 세 명의 사내가 나타날 때부터 강운은 일이 꼬
이고 있다는 것을 눈채 챘고 지금 자신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화운문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짜증이 묻은 음성으로 백호에게
말을 했다.
[백호 너가 만든 일이니까 알아서 책임져! ]
잠자코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백호
는 강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즐거운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물론, 주위에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멍멍하는 개 짖는 소리로 들
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강운은 백호의 그런 모습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강운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해보인 백호는 드디어 몸을 풀 수 있다는
생각에 뒷발로 가볍게 땅을 세 번 긁은 다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신형을 감쪽같이 감춰버렸다.
그리고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널부러지
는 화운문의 제자들이 있었다. 긁히고 옷이 찢어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3장이 넘게 뒤로 튕겨 날라가는 제자들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에게
물렸는지 피가 흘러내리는 팔 다리를 부여잡고 땅 바닥을 데굴데굴
굴르는 제자들도 많이 나타났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정도로 짧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운을
포위하기 위해 배치됐던 인원의 과반수가 넘는 인원이 지금 피를 철
철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궁수 부대의 뒤로 튕겨 날라가
있는 모습을 보며 사도괭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구경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웬 강아지 한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대며 강운의 앞으로 나설
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그였지만
곧 이어 그 강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하얀 빛무리를 이루며
수하들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 하얀 빛무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땅바닥을 구르는 제자들이 넘쳐났다.
하나같이 당장 운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그렇다고 누
구 하나 죽을 정도로 다친 사람 또한 없어 보였다.
그저 멍하니 허깨비처럼 움직이고 있는 백호의 잔영만을 열심히 눈으
로 쫓으며 무거운 신음성만 흘릴 뿐이었다.
너무도 어이없게 포위조의 일선이 무너지고 모두가 얼이 빠져 있을
때 백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강운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들어
냈고 뿌듯한 표정으로 강운에게 고개를 돌려 칭찬 받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칭찬을 기다리는 백호에게 돌아오는 건.
[아얏! 왜 때려? ]
강운의 무서운 알밤이었다.
별로 아플 것 같지도 않은 강운의 알밤이었지만 백호는 앞발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거리며 바닥을 뒹굴며 엄살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닥을 구르며 죽는 소리를 하고 있는 백호를 향해 한심한 표정을 보
내고 있던 강운은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혀를 차야 했다.
대충 백호에게 일을 맡겼으니 어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을 해 두
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그냥 멍든 상황에서 쓰러져 있다면 외
관상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백호가 저질러 놓은 일은 온통
피를 철철 흘리게 만들어 그 시각적 효과가 엄청났던 것이다.
주변 땅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채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화운문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강운은 머리를 짚었다.
백호도 바닥을 구르며 엄살을 피우던 것을 멈추고 강운을 향해 날카
로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해명을 해보라는 것이다.
백호의 날카로운 눈빛에 강운은 그 보다 훨씬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
주었고 이내 꼬리를 내리는 백호에게 신경질 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백호 너! 누가 이렇게 피바다로 만들라고 했어? 그냥 가볍게 몇 대
두들겨 패서 기절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 ]
[그거야 운이가 해결하라고 했으니까.. ]
부릅떠진 강운의 커다란 눈에 백호는 슬며시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운과 오랫동안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이럴 때는 그냥
꼬리를 내리고 가만히 있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