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世界)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의 소령(所領)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무시(無始) 이래(已來) 그 마왕(魔王)의 권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4.20 조회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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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이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적인(賊人)·강도(强盜)·야습(夜襲)·호랑(虎狼)·사자(師子) 등(等)보다도 당시(當時)의 몽고(蒙古)의 공격(攻擊)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니라. 이 세계(世界)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의 소령(所領)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무시(無始) 이래(已來) 그 마왕(魔王)의 권속(眷屬)이니라. 육도(六道) 중(中)에 이십오유(二十五有)라고 하는 감옥(監獄)을 짓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들여 보낼 뿐만 아니라, 처자(妻子)라고 하는 굴레를 씌우고 부모(父母) 주군(主君)이라고 하는 그물을 하늘에 치고 탐진치(貪瞋癡)라는 술을 마시게 하여 불성(佛性)의 본심(本心)을 어루꾀느니라. 오직 악(惡)의 안주(按酒)만을 권하여 삼악도(三惡道)의 대지(大地)에 엎드려 자게 하고, 간혹 선심(善心)이 있으면 장애(障碍)를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악(惡)에 떨어뜨리려고 생각하여 이루지 못하면 점차 속이기 위하여 비슷한 화엄경(華嚴經)에 떨어뜨렸는데 두순(杜順)·지엄(智儼)·법장(法藏)·징관(澄觀) 등(等)이 바로 이것이니라. 또 반야경(般若經)에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惡友)는 가상(嘉祥)·승전(僧詮) 등(等)이니라. 또 심밀경(深密經)에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惡友)는 현장(玄裝) 자은(慈恩)이니라. 또 대일경(大日經)에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惡友)는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智證)니라. 또 선종(禪宗)에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惡友)는 달마(達磨)·혜가(慧可)·등(等)이니라, 또 관경(觀經)에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惡友)는 선도(善導)·호넨(法然)이니라. 이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 지자(智者)의 몸에 들어가서 선인(善人)을 속이는 것인데 법화경(法華經) 제오권(第五卷)에「악귀(惡鬼)가 그 몸에 들어감」이라고 설(說)해져 있음은 이것이니라.
설사(說使) 등각(等覺)의 보살(菩薩)이라 해도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대악귀(大惡鬼)가 몸에 들어가서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묘각(妙覺)의 공덕(功德)을 장해(障害)함이니 어찌 하물며 그 이하(已下)의 사람들에 있어서랴. 또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 혹(或)은 처자(妻子)의 몸에 들어가서 부모(父母)나 남편(男便)을 속이고, 혹(或)은 국왕(國王)의 몸에 들어가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위협하고, 혹(或)은 부모(父母)의 몸에 들어가서 효양(孝養)하는 자식(子息)을 책(責)하는 일이 있느니라.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위(位)를 버리려고 하시자 나후라(羅睺羅)를 잉태(孕胎)하였으므로 정반왕(淨飯王)이 이 아이가 출생(出生)한 후(後) 출가(出家)하라고 충고(忠告)하시자 마(魔)가 아들을 억류(抑留)하기를 육년(六年)이니라. 사리불(舍利弗)은 옛날 선다라불(禪多羅佛)이라고 하는 부처의 말세(末世)에 보살행(菩薩行)을 세워서 육십겁(六十劫)을 경과(經過)하여 이미 사십겁(四十劫)이면 백겁(百劫)이 될 것이므로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 보살행(菩薩行)을 성취(成就)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였는지 바라문(婆羅門)으로 되어 눈을 구걸(求乞)하자 어김없이 빼어 주었으나 그로부터 퇴(退)하는 마음이 생겨서 사리불(舍利弗)은 무량겁(無量劫) 동안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었느니라. 대장엄불(大莊嚴佛)의 말(末)의 육백팔십억(六百八十億)의 단나(檀那)들은 고안(苦岸) 등(等)의 사비구(四比丘)에게 속아서 보사비구(普事比丘)를 미워하였으므로 대지미진겁(大地微塵劫) 동안 무간지옥(無間地獄)을 경과(經過)하였느니라. 사자음왕불(師子音王佛)의 말(末)의 남녀(男女)들은 승의비구(勝意比丘)라고 하는 지계(持戒)의 승(僧)을 의지하여 희근비구(喜根比丘)를 비웃었으므로 무량겁(無量劫) 동안 지옥(地獄)에 떨어졌느니라.
지금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이에 해당(該當)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에는 「여래(如來)의 현재(現在)조차도 역시 원질(怨嫉)이 많은데 하물며 멸도(滅度)의 후(後)에 있어서랴」 또 가로되 「일체세간(一切世間)에 원(怨)이 많아 믿기 어려우니라」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횡사(橫死)의 재앙(災殃)을 당(當)하고 가책(呵責)·매욕(罵辱)·편장(鞭杖)·폐계(閉繫)·기아(飢餓)·곤고(困苦)·이와 같은 등(等)의 현세(現世)의 경보(輕報)를 받아 지옥(地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등(等) 운운(云云). 반니원경(般泥洹經)에 가로되 「의복(衣服)이 부족(不足)하고 음식(飮食)이 추소(麤疏)하며 재(財)를 구(求)함에도 이(利)가 없고, 빈천(貧賤)한 집과 사견(邪見)의 집에 태어나며, 혹(或)은 왕난(王難) 및 여타(餘他)의 종종(種種)의 인간(人間)의 고보(苦報)를 만나는데 현세(現世)에 가볍게 받음은 이는 호법(護法)의 공덕력(功德力)에 의(依)하는 까닭이니라」등(等) 운운(云云). 문(文)의 본뜻은 우리들이 과거(過去)에 정법(正法)을 행(行)하는 자(者)에게 원질(怨嫉)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도리어 신수(信受)하므로 과거(過去)에 타인(他人)을 장해(障害)한 죄(罪)로 미래(未來)에 대지옥(大地獄)에 떨어져야 할 것을 금생(今生)에 정법(正法)을 행(行)하는 공덕(功德)이 강성(强盛)하므로 미래(未來)의 대고(大苦)를 초래(招來)하여 소고(少苦)를 만남으로써 넘기느니라. 이 경문(經文)에 과거(過去)의 비방(誹謗)에 의(依)하여 여러가지 과보(果報)를 받는 가운데 혹(或)은 빈가(貧家)에 태어나고 혹(或)은 사견(邪見)의 집에 태어나며, 혹(或)은 왕난(王難)을 만난다 등(等) 운운(云云). 이 중(中)에 사견(邪見)의 집이라 함은 비방정법(誹謗正法)의 집이며, 왕난(王難) 등(等)이라 함은 출생(出生)하여 악왕(惡王)을 만나느니라. 이 두 가지의 대난(大難)은 각자(各者)가 자신(自身)의 몸으로써 느꼈으리라. 과거(過去)의 방법(謗法)의 죄(罪)를 멸(滅)하려고 사견(邪見)의 부모(父母)에게 가책(呵責)을 당(當)하는 것이며, 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미워하는 국주(國主)를 만났으니 경문(經文)에 명명(明明)하며 경문(經文)에 혁혁(赫赫)하니라. 자신(自身)이 과거(過去)에 방법자(謗法者)였다는 것을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이것을 의심(疑心)하여 현세(現世)의 경고(輕苦)를 견디기 어려워서 자부(慈父)의 책망(責望)에 따라 의외(意外)에도 법화경(法華經)을 버리는 일이 있다면 자신(自身)이 지옥(地獄)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비모(悲母)도 자부(慈父)도 대아비지옥(大阿鼻地獄)에 떨어져 함께 슬퍼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대도심(大道心)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각자(各者)는 힘껏 법화경(法華經)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過去)의 중죄(重罪)를 책(責)하여 끄집어 냈느니라. 비유컨대 철(鐵)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돌은 태우면 재가 되고, 금(金)은 태우면 진금(眞金)이 된다. 이번에야 말로 진실(眞實)한 신심(信心)이 나타나서 법화경(法華經)의 십나찰(十羅刹)도 수호(守護)하시게 되리라. 설산동자(雪山童子) 앞에 나타난 나찰(羅刹)은 제석(帝釋)이며 시비왕(尸毘王)의 비둘기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이었느니라. 십나찰(十羅刹)이 시험(試驗)해 보기 위하여 부모(父母)의 몸에 들어가서 책망(責望)하는 일도 있을 것이니라. 이것으로 보더라도 신심(信心)이 약(弱)하면 후회(後悔)가 있으리라. 또 전차(前車)가 뒤집힘은 후차(後車)에 대한 훈계(訓誡)이다, 지금의 세상(世上)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어도 도심(道心)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세정(世情)을 싫어하더라도 결코 싫어할 수 없으리라. 일본(日本) 사람들은 반드시 대고(大苦)를 당(當)하리라고 보이며 안전(眼前)의 일이로다. 문영(文永)구년(九年) 이월(二月) 십일일(十一日)에, 활짝 피었던 꽃이 대풍(大風)에 꺾이듯이 명주가 대화(大火)에 타버리듯이 되었으니 세상(世上)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찌 없겠느뇨.
형제초(兄弟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08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