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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산 김씨(善山 金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선산 김씨 내 김선궁 계열 일선 김씨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30세로 시조 김선궁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고려 개국(開國) 삼한통합익찬공신(三韓統合翊贊功臣)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을 지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의 시호(諡號)를 받은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삼는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계통을 이어오고 있는 집단이다.
선산 김씨 내 김추 계열의 들성 김씨는 경순왕의 8자 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를 시조로 삼고, 그의 16세 후손인 고려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 김문(金文)의 손자 김기(金起)가 고려 말 선산으로 낙향하면서 선산을 본관으로 계통을 잇는 후손들의 집단이다.
즉, 이들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다.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조상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같은 성씨를 쓰며 마치 두 집안이 동성동본(同姓同本)인양 오인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선산 김씨(善山 金氏)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선산 김씨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 일어나게 된 것은, 선산(善山)에 뿌리를 두면서부터이다. 선산(善山)의 고호가 일선(一善)이어서 본관을 일선(一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조에 들어 선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혼동이 발생되었다.
2. 본관 선산에 대해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했었고, 614년(진평왕 36)에 일선주(一善州)로 승격되었다가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어버렸다. 그러다 757년(경덕왕 16)에 부활해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했다가,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강등을 당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一善縣)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시 지선주군사(知善州郡事)로 승격되었다. 조선 초 태종 치세에 당시 시점 기준으로 주요 지역이 아니라고 판단한 곳에서 주(州)자를 죄다 떼내었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되었다가 2년 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6년 고종 말기에 행정대개편을 통해 도호부가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면서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선산면, 옥성면, 도개면, 해평면, 산동면, 고아면, 구미면, 장천면, 무을면이 되었다. 1963년에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8년에 시로 승격하여, 선산군과 분리되었다. 선산군의 중심지인 선산면은 1979년에서야 선산읍으로 승격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 다시 말해, 도농통합으로 인해,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하여 지금의 구미시가 되었다. 선산군청은 구미시청 선산출장소로 쓰이고 있다. 일선이었든, 선산이었든 어찌 됐건 간에 '선(善)' 하나만은 신라, 그것도 삼국통일 이전의 원신라 때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
선산 김씨의 본관인 선산읍이 이렇게 된 이유는 경부선이 선산읍이 아닌 왜관을 거쳐갔기 때문도 있고, 박정희의 고향이 바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 즉 지금의 구미시 일대였기 때문이다. 근대에 와서는 경부선의 일부분이 구미 쪽으로 이설되어 선산은 또 외면 받았다. 경상북도 산업화의 중심도 구미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구미국가산업단지까지 들어서는 등으로 구미면 → 구미읍 → 구미시까지 폭풍성장을 거쳤지만, 선산읍은 아예 군도 사라지고 선산읍으로만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셈이다.
3. 계열
일선 김씨와 선산(들성) 김씨 두 집안은 공교롭게도 성도 본관도 똑같지만 엄연히 별개의 성씨다. 일선이라는 게 워낙 오래전 삼국시대 때 지명인지라 어딘지 쉽게 알기 어려워 선산으로 바꿔 부르다 보니, 현재는 일선 김씨와 선산 김씨로, 또는 들성 김씨와 선산 김씨로 두 집안 모두 혼용하고 있다. 결국 김해 김씨처럼 통혼은 가능하되 시조가 다른 두 계통이 이조 동본동성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잘 모르는 후손들이 상대 집안을 같은 집안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도 왕왕 일어나며, 역사 연구나 인구 파악을 할 때도 혼선을 빚는 원인이 되기 일쑤다.
3.1. 김선궁(金宣弓) 계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초명이 김선(金宣)이며, 고려조에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 門下侍中)을 지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의 시호가 내렸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숭선(嵩善. 지금의 경북 구미시) 지방 전투에 병사를 모집함에 김선궁(金宣弓)이 고을 아전(衙前)으로써 응모하니, 고려 태조는 자신이 쓰던 활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 주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졌다. 선주(善州)는 일선(一善)의 고호이다. 아들 김봉문(金奉文)도 아버지 뒤를 이어 일선(一善)에서 아전(衙前. 지방 지배자)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일선(一善)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조선 태종 때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선산(善山)으로 하였다. 혹칭 일선 김씨(一善 金氏)라 한다. 김선궁의 《순충공 신도비명》(順忠公 神道碑銘)에도 처음 적(籍)을 일선(一善)에 두어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나, 조선 태종 때 지명이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선산(善山)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14세 김제(金齊)는 자(子)는 윤집(允楫) 호(號)는 백암((白巖)으로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군청벽에 도해 벽상시 27자를 남기고 바다로 들어갔다.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증직되고 시호가 충개공이며 안동 고죽서원, 고창 운곡서원, 울진 운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呼船東問魯連津(호선동문노연진) 배를 불러 동쪽 노중련의 나루를 물으니,
五百年今一介臣(오백년금일개신) 오백년 고려조의 한사람 신하로다.
可使孤魂能不死(가사고혼능불사) 외로운 이 영혼이 죽지 않고 남는다면,
願隨紅日照中垠(원수홍일조중은) 붉은 해를 따라가 님 계신곳 비추리.
14세 김주(金澍)는 김제(金齊)의 동생으로 고려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예의판서로 하절사로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선이 개국하자 서신과 의복을 아내에게 보내고 돌아오지 않았다. 선산 월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김선궁의 손자 김흥술(金興述)은 삼사우윤(三司右尹) 김봉문(金奉文)의 아들로, 호장(戶長)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특히 김흥술의 13세손 김숙자(金叔滋)와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은 가문을 빛낸 인물이 되었다.
김숙자(金淑滋)는 야은(冶隱) 길재(吉再)로부터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이어 받았으며,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을 역임하고, 낙향해서는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았다. 낙봉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은 조선 초기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로 공조참판·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낙향해서는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수립하는 데 주력하면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金馹孫) 등 여러 제자들을 가르쳐 중앙 관료로 대거 진출시켜 사림파를 형성해 훈구파와 대립하다 무오사화를 당하여 엄청난 화를 입었다. 문충공(文忠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금오서원(金烏書院)등에 배향되었다. 김흥술의 후손 김교(金嶠)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서(判書)였으며, 공신으로서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양공(良襄公)이다.
3.1.1. 분파
1.백암파(白巖派) : 14세 김제(金濟) 또는 김제해(金䶒海).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 증 가선대부 예조참판. 시(諡) 충개공, 서원 배향
2.농암파(籠巖派) : 14세 김주(金澍). 고려 예의판서 황명 예부상서. 시(諡) 충정공, 서원 배향
3.문대공파(文戴公派) : 18세 김응기(金應箕).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우의정. 시(諡) 문대공, 서원 배향
4.간의공파(諫議公派) : 12세 김우류(金右鏐). 고려 우간의 대부 우문관 직제학, 지제고 봉익대부
5.화의군파(和義君派) : 13세 김달상(金達祥). 고려 지밀직사사 부대피난 일등공신, 신축호종 일등공신 화의군
6.낭장공파(郞將公派) : 13세 김달경(金達卿). 고려 중랑장
7.취수공파(醉睡公派) : 17世 김수양(金粹讓). 통훈대부 행 보령현감
8.송천공파(松川公派) : 23세 김천일(金千鎰). 통훈대부 풍기군수 성균관 사예, 춘추관 편수관 예빈사정
9.성암파(省庵派) : 22세 김효원(金孝元). 통정대부 영흥도호부사,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세자 좌부빈객, 알성 문과 장원
10.소암파(素庵派) : 22세 김이원(金履元).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세자사,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사 홍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숭양부원군
11.곤육재파(困六齋派) : 22세 김의원(金義元). 수세자 시강원 보덕, 지제교 겸 춘추관수찬관
12.대장군파(大將軍派) : 9세 김창서(金昌緖). 고려 검교 흥위위 대장군
13.우윤공파(右尹公派) : 12세 김득자(金得資). 고려 삼사우윤
14.양양공파(良襄公派) : 17세 김교(金嶠). 정헌대부 병조판서 적개 일등공신,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 시(諡) 양양공(良襄公)
15.정조공파(正朝公派) : 12세 김연(金延). 고려 정조(正朝)
16.강호파(江湖派) : 16세 김숙자(金叔滋). 중훈대부 성균관 사예, 증 중직대부 예문관 직제학 겸 춘추관 기주관,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지춘추관사, 증 이조판서 양관대제학, 시(諡) 문강공, 서원 배향
17.과당공파(苽堂公派) : 17세 김종유(金宗裕). 선교랑(宣敎郞)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교수(敎授)
18.점필재파(佔畢齋派) : 17세 김종직(金宗直). 정헌대부 형조판서,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시(諡) 문충공, 서원 배향
3.1.2. 인물
3.1.2.1. 고려
김봉술(金奉術) : 김선궁(金宣弓)의 장자, 문하시중(門下侍中), 시호 장절공(壯節公), 이후 6대 실전(失傳)
김봉문(金奉文) : 김선궁(金宣弓)의 차자, 삼사우윤(三司右尹), 안일호장(安逸戶長)
김흥술(金興述) : 김봉문(金奉文)의 아들, 호장(戶長), 일파를 이룸
김흥림(金興林) : 김봉문(金奉文)의 아들, 대호군(大護軍)
김임남(金任南) : 김흥림(金興林)의 손자로 상장군·판도판서(版圖判書)
김광의(金光義) : 문화왕후의 조부로 상서좌복야 상주국 화의현개국백(尙書左僕射 上柱國 和義縣開國伯)에 봉해짐
김원숭(金元崇) : 선주(善州). 선산) 출신의 호족으로 문화왕후의 아버지, 수태위 겸 시중 상주국 화의군개국후(守太尉 兼侍中 上柱國 和義君開國候)에 봉해짐
문화왕후(文和王后) 김씨 : 아버지가 김원숭으로 성종비
김득충(金得忠) : 9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상주국태자태사(上柱國太子太師)
김계수(金季壽) : 13세,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김원로(金元老): 13세. 고려 예의판서
김제(金濟) : 14세, 김주의 형, 고려 말 절신(節臣), 증 예조참판, 시호 충개공(忠介公)
김주(金澍) : 14세,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 고려 말에 사신(使臣)이 되어 중국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가 개국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음, 시호 충정공(忠貞公), 서원에 배향
3.1.2.2. 조선
김자연(金子淵) : 증 정헌대부 예조판서 행 가선대부 이조참판
김효정(金孝貞) : 김제의 손자, 문과 급제, 정헌대부 이조 판서(吏曹判書)·집현전, 예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 시호 문정공(文貞公), 서원 배향
김안생(金安生) :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김경생(金京牲) : 가선대부(嘉善大夫) 행(行) 이조참의(吏曹參議) 경연(經筵)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예문관 직제학(藝文館 直提學)
김장눌(金長訥) : 통정대부(通政大夫) 상주목사(尙州牧使) 겸(兼) 경상도(慶尙道) 우병영(右兵營) 상주진관(尙州鎭館)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 중직대부(中直大夫)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김지눌(金地訥) : 정헌대부 한성부 판윤 겸 판의금부사
김지경(金之慶) : 김주의 손자, 대사간·강원도관찰사·개성유수 등을 역임, 시호 경질(景質)
김응기(金應箕) : 김지경의 아들, 문과 급제, 우의정·좌의정·영중추부사, 학식이 넓어 천문·지리·수학에도 정통, 시호 문대(文戴), 서원에 배향
김경직(金敬直) : 김주의 10세손, 문과 급제, 사도시정(司導寺正), 서원에 배향
김효원(金孝元) : 김선궁(金宣弓)의 20세손, 문과 급제, 삼척부사(三陟府使), 호당(湖堂), 서원에 배향, 일파를 이룸
김이원(金履元) : 김효원의 동생, 문과 급제, 병조판서, 판중추부사
김세렴(金世濂) : 김효원의 손자, 문과 급제, 호조판서(戶曹判書), 호당(湖堂), 시호 문강공(文康公)
김극빈(金克鑌) : 김효원의 조카, 선조조(宣祖朝)의 부마(駙馬) 일선위(一善尉)에 봉해짐
김익용(金益容) : 김효원의 9세, 문과 급제, 판서(判書), 제학(提學)
김극빈(金克鑌) : 정근옹주 부마, 선조의 서녀 사위
김승순(金承順) : 숙신옹주 부마, 정종의 외손녀 사위
김숙자(金淑滋) : 김흥술(金興述)의 13세손, 문과 급제, 사예(司藝), 시호 문강공(文康公), 서원에 배향,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음
김종직(金宗直) : 김숙자의 아들, 문과 급제, 형조판서(刑曹判書), 시호 문충공(文忠公), 서원에 배향,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으로 추앙, 무오사화
김교(金嶠) : 김흥술의 14세손, 조선 무과 급제, 정헌대부 병조판서, 적개 일등공신,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시호는 양양공(良襄公)
김수양 (金粹讓) 성종당시 보령현감을 지냄 그후 무오사화에 족형이 부관참시를 당하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남 호는 취수정(醉睡亭)
3.1.2.3. 근·현대
김건희: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영부인
김교락: 독립운동가
김교흥: 정치인
김광용: 체육인. 축구선수
김동리: 소설가
김동영: 정치인
김동석: 정치인
김대식: 군인. 전 해병대 사령관
김대호: 방송인
김범부: 정치인
김봉환: 정치인
김성호: 정치인
김양호: 정치인
김영상: 정치인
김영선: 정치인. 창원시 5선 중진 의원
김영운: 연예인. 슈퍼주니어의 전 멤버
김영환: 정치인. 전 충청북도지사
김영철: 법조인. 전 법무연수원장
김우석: 정치인
김윤환: 정치인. 전 신한국당 대표
김이원: 독립운동가
김정훈: 연예인. UN의 전 멤버
김종택: 언어학자. 전 한글 학회 회장
김진형: 공공기관장. 전 한국은행 총재
김재소: 정치인
김중태: 정치인. 전 사회운동가
김창종: 법조인. 전 헌법재판관
김철수: 법학자
김충일: 정치인. 전 아리랑TV사장
김태환: 정치인
김평우: 법조인. 전 대한변협 회장
김학철: 연예인. 가수
김혜정: 음악가. 플루티스트
3.2. 김추(金錘) 계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이자 대보공 김알지의 29세손으로 경순왕과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맏딸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 김추가 일선(선산)군에 봉해진 후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선산으로 삼았다.
이후 세계가 실전되고, 고려 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김추의 16세손 김문(金文)은 슬하에 네 아들 김성원(金成元), 김성부(金成富), 김성룡(金成龍), 김성여(金成呂)를 파조로 하여 4대파로 분파하였다.
그 중 중서령공(中書令公) 김성원(金成元)의 아들 광주목사(廣州牧使) 김기(金起)가 기울어져 가는 사직을 개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선산군 옥성면 포상동 하송산 아래에 곧내 터를 잡았다.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비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당산 줄기가 사방 20리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 들성(坪城)이라 명하고 정착하여 500여년 세거지로 명성을 드높였다.
3.2.1. 분파
1.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파조 김성원(金成元)은 고려조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중서령(中書省)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 정신으로 선산(善山)에 내려와 고려 유신으로 절의를 지켰다. 화의(和義)는 선산(善山)의 별호이다. 김기(金起)의 현손 이조참판 김광좌(金匡佐)가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세인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2. 판서공파(判書公派) : 파조 김성부(金成富)는 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장자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로 밀양교수를, 차자 김경적(金敬迪)은 강화교수를 지냈다. 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 성진, 이원, 풍산, 북청, 홍원 등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며 북종파 이다.
3. 좌의정공파(左議正公派) : 파조 김성룡(金成龍)은 고려말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냈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에 이르고 화의부원군(和義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김탁(金逴)은 병조참의, 증손 김정신(金鼎臣)은 안동도호부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경기도 이천등에 세거(世居)하였다.
4. 별장공파(別將公派) : 파조 김성여(金成呂)는 고려말 별장동정(別將同正)을 지냈다.
5. 진락당공파(眞樂堂公派) : 파조 김취성(金就成)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장자이다. 일찍이 송당 박영(朴英)의 문하에 들어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워 존심양성의 방법과 관물성찰의 오묘한 뜻을 터득하고,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묘용(妙用)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평생을 학문탐구에 몰두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만년에 김정국(金正國)과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의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함으로써 약성(藥性)과 경락(經絡)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병든 사람을 많이 치료하였다. 저서로는 진락당집(眞樂堂集)이 전한다.
6. 별제공파(別提公派) : 파조 김취기(金就器)는 조선 중종조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를 지냈다.
7. 교위공파(校尉公派) : 파조 김취연(金就硏)은 조선 중종조의 여절교위(勵節校尉)를 지냈다.
8. 찰방공파(察訪公派) : 파조 김취련(金就鍊)은 조선 중종조의 이인도찰방(利仁道察訪)을 지냈다.
9. 문간공파(文簡公派) : 파조 김취문(金就文)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어려서부터 형 김취성과 함께 송당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그 학통을 이었다. 1537년(중종 3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전전하다가 사성(司成)이 되었다. 명종대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568년(선조 1)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집으로서는 구암집(久庵集)이 전한다.
10. 참봉공파(參奉公派) : 파조 김취빈(金就彬)은 조선 명종조의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3.2.2. 인물
3.2.2.1. 고려
김천(金遷): 시조 김추의 아들, 대광문하시중(大匡門下侍中), 일선백(一善伯)
김숙(金塾): 공부상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김지(金篪): 이부시랑 부지전리사(副知典理司事)
김미연(金亹然): 봉익대부 한림학사(翰林學士)
김주(金疇): 간의대부 예부시랑(禮部侍郞)
김선공(金善公): 중현대부 병부상서(兵部尙書),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
김숭(金崧) :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김인선(金印宣) : 집현전태학사
김열(金 烈):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김문(金文) :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
김성원(金成元) : 서운관정, 중서령(中書令)에 추증
김기(金起) : 중서령 김성원의 아들, 고려 말에 등제하여 정순대부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이르렀으며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고려가 망하자 슬퍼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선산(善山)에 은거(隱居) 종신(終身)하였다.
김성부(金成富) : 전의부정(典醫副正), 조선조 정헌대부 호조판서(戶曹判書)
김성룡(金成龍) : 산원동정(散員同正), 조선조 대광보국숭록대부 좌의정(左議政)
김성여(金成呂) : 별장동정(別將同正), 평안도 정착
3.2.2.2. 조선
김경도(金敬道) : 화의군 김기 아들, 태조조 조산대부 밀양교수(密陽敎授)
김경적(金敬迪) : 화의군 김기 아들, 태조조 교수
김탁(金逴) : 태종조 병조참의(兵曹參議)
김극려(金克麗) : 태종조 정략장군(定略將軍)
김극간(金克簡) : 태종조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김극관(金克寬) : 태종조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濠君)
김진덕(金振德) : 세종조 성균진사(進士)
김승경(金承敬) : 단종조 과의교위(果毅校尉)
김정신(金鼎臣) : 안동도호부사(安東都護府使)
김중양(金仲陽) : 경성판관(京城判官)
김중곤(金仲坤) : 절충장군(折衝將軍)
김광좌(金匡佐. 1466∼1545) : 화의군 김기(金起)의 현손, 충무위(忠武衛), 증이조참판, 들성에 세거하던 선산 임씨 상장군(上護軍) 임무(林珷)의 사위로 처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들성에 입향
김취정(金就精): 중종조 병조정랑(兵曹正郞)
김취성(金就成. 1492 ~ 1550) : 조선 전기의 학자,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장자,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일찍이 박영(朴英)의 문하에 들어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워 존심양성(存心養性)의 방법과 관물성찰(觀物省察)의 오묘한 뜻을 터득하고,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묘용(妙用)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평생을 학문탐구에 몰두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만년에 김정국(金正國)과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의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함으로써 약성(藥性)과 경락(經絡)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병든 사람을 많이 치료하였다. 저서로는 『진락당집』이 있다.
김취문(金就文. 1509 ∼ 1570)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菴), 김광좌(金匡佐)의 아들, 어려서부터 형 김취성과 함께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그 학통을 이었다. 1537년(중종 3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전전하다가 사성(司成)이 되었다. 명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568년(선조 1)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집으로서는 《구암집》(久庵集)이 전한다. 시호가 정간(貞簡)에서 문간(文簡)으로 바꾸었다.
김종무(金宗武. 1548 ~ 1592) : 구암 김취문의 아들, 자헌대부 이조판서(吏曹判書) 증, 임진왜란 당시 상주 북천전투에서 순국,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
김석지(金錫祉) : 중종조 통정대부 공조참의(工曹參議)
김중립(金中立) : 가선대부 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使)
김전 : 선조조 통정대부 동부승지(贈 通政大夫 同副承旨)
김창욱 : 선조조 통정대부 공조참의工曹參議)
김예(金醴) : 광해조 장령(掌令)
김천영(金天英) : 김취빈(金就彬)의 손자,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 성균관 전적
김태웅(金泰雄) : 광해조 가선대부 공조참판(工曹參判)
김양선(金揚善) :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증손자, 조선 후기 문신, 동강 김우옹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6년(광해군 8)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감찰·형조좌랑을 거쳐 경상도도사를 역임
김하량(金廈樑) :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1632년(인조 10) 식년문과 병과 급제, 안동부사·판결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 예조판서에 추증
김탁(金濯) : 효종조 통진현감(通津縣監)
김하천(金廈梴) : 현종조 통정대부 사헌부장령(通政大夫司憲府掌令) 강릉부사(江陵府使)
김원섭(金元燮) : 한성우윤 김하량(金廈樑)의 아들,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에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세하자 관직에서 쫓겨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1692년 대신 민정중(閔鼎重)의 죄를 논하다가 단천으로 유배되었고, 이후 경흥으로 유배지를 옮겨 6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 1699년 풀려났으며, 1710년 공주 보문산의 오두막에서 사망하였다.
김세영(金世榮) : 숙종조 절충장군 용양위부사직(龍驤尉副司直)
김홍수(金弘壽) : 경종조 문과급제, 무과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상주(金相冑) : 경종조 통정대부 사복시정(司僕侍正)
김의련(金宜鍊) : 영조조 사복시정(司僕侍正)
김택화(金宅和) : 영조조 통정대부 명천도호부사(通政大夫 明川都護府使)
김이일(金履逸) : 영조조 통정대부 좌승지(左承旨)
김몽화(金夢華) : 문간공 김취문의 후손, 1754년(영조 30) 4월 문과 급제, 한림·설서·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김면항(金勉恒) : 정조조 진사, 증 호조참판
김전(金 㙉) : 정조조 중추부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김성진(金聲振) : 교위 김취연의 후손, 1801년(순조 1) 문과 급제, 사헌부감찰, 경상도도사를 역임
김희태(金希台) : 순조조 통훈대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김이선(金利善) : 순조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김석모(金錫模) : 헌종조 양사아장 사헌부 집의(司憲府 執義)
김기호(金璣昊) : 헌종조 통정대부 중추부사(中樞府使)
김기석(金基碩) : 고종조 가선대부 동돈영(同敦寧)
김수목(金秀穆) : 고종조 가선대부 동돈령(嘉善大夫 同敦令)
김기로(金基老) : 고종조 통정대부 부호군(副濩君)
김하용(金夏容) : 고종조 한림 통정대부 비서원승지(秘書院承旨)
김오영(金旿永) : 고종조 통정대부 의관(議官)
김준용(金濬容) : 고종조 통정대부 의관(議官)
김병기(金秉基) : 고종조 가선대부 예조참판(禮曹參判)
김병용(金秉庸) : 고종조 봉상사 부제조(奉常司副提調)
김만용(金晩容) : 고종조 통정대부 부호군(副濩君)
김용동(金龍東) : 고종조 통정대부 부호군(副濩君)
김우식(金佑植) : 고종조 통정대부 울산군수(蔚山郡守)
김재희(金載熙) : 고종조 통정대부 의관(議官)
3.2.2.3. 근, 현대
김관묵 : 독립운동가
김관용 : 광역자치단체장. 전 경상북도지사
김관용 : 독립운동가
김계란 : 연예인. 피트니스 방송인
김덕 : 국무위원. 전 장관 및 부총리
김립 : 독립운동가. 본명 김익용(金翼容)
김명자 : 정치인. 제17대 국회의원
김민재 : 연예인. IDID 멤버
김병진 : 경영인. 전 대림그룹 회장
김봉률 : 독립운동가
김상조 : 경제학자. 전 경제부총리
김성묵 : 독립운동가
김석조 : 법조인. 미국 뉴욕주 변호사. 전 하버드대 로스쿨 연구교수
김성조 : 정치인. 제16, 17, 18대 국회의원
김소혜 : 연예인. 아이오아이 전 멤버
김수원 : 독립운동가
김수호 : 독립운동가
김승목 : 정치인. 제8, 10, 11대 국회의원
김영득 : 독립운동가
김우동 : 정치인. 제3대 국회의원
김정묵 : 독립운동가
김종호 : 군인. 전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김재명 : 독립운동가
김판철 : 독립운동가
김한정 : 정치인. 제20, 21대 국회의원
김희목 : 독립운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