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참당암
2026년 09월 19일(토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입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중간 정도 가다가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약 300m 지점에 선운사 참당암이 있습니다. 참당암 중앙에 대웅전이 있습니다.
선운사 산내 암자인 참당암은 신라고찰로 지금은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으나 본래는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참당암은 애초 선운사의 본찰이었다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 점차적으로 규모가 작아지고 선운사가 산중 중심 도량이 되면서 사세가 기울어지면서 선운사 산내암자로 되었다고 합니다.
참당암은 산내 암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본래 참당사(懺堂寺)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렸던 지장참회도량의 거찰로 도솔암의 천장지장보살과 선운사의 금동지장보살 모두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선운사와 도솔암의 명성에 밀려 사람들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웅전, 약사전(지금의 지장전)과 명부전 같은 특이한 기법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참당암으로 올라갑니다.
참당암
중심 법당 대웅전을 중앙에 좌측에 응진전, 명부전을 두고 우측에 산신각이 배치되었으며 대웅전 뒤로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3층석탑
참당암 삼층석탑 받침을 새로 만들어 탑을 앉쳤습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매 칸마다 4분합문을 달았습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다포식 건물입니다.
참당암 대웅전 (보물 제803호)
선운사(禪蕓寺)에 속해 있는 암자인 창당암(懺堂庵)의 대웅전(大雄殿)입니다. 선운사(禪蕓寺)는 신라 진흥왕이 절을 세웠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 고승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합니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탄 것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광해군 11년(1619)에 끝을 맺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운사(禪蕓寺)에는 원래 많은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운암·석상암·참당암·도솔암만 남아 있습니다.
참당암(懺堂庵) 대웅전(大雄殿)은 의문화상(義雲和尙)이 신라 진평왕의 시주로 지었다고 하는데 여러 차례 수리를 거친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의 것입니다. 규모는 정면 3칸·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 양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물을 수리할 때 고려시대의 부재를 재활용한 것이라 짐작합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내부에는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1900년에 후불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연꽃을 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주위를 10대 제자, 4대 보살, 사천왕, 팔부중 4위, 천인 2위가 둘러싼 영산회상도로 1900년에 조성된 것입니다.
석가여래
석가여래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고 왼손은 다리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관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보관의 정수리에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다니며 연꽃, 감로수병 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오른쪽에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협시보살 · 대세 · 세지(勢志) · 득대세지(得大勢志)보살 등으로도 불립니다.
마하살타마바라발다(摩訶薩馱摩婆羅鉢多) · 마하나발(摩訶那鉢) 등으로 음사하며, 왼쪽의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함께 아미타삼존불(三尊佛)을 이룹니다.
서방 극락세계에 있는 지혜 및 광명이 으뜸인 보살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지혜의 빛으로 널리 중생을 비추어 삼도(三途)를 떠나 무상(無上)한 힘을 얻게 하고,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魔軍)을 항복시키는 큰 위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형상은 정수리에 보병(寶甁)을 이고 천관(天冠)을 썼으며,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을 때는 항상 합장하는 모습입니다
칠성탱
2016년에 제작된 것으로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치성광여래를 가운데로 좌우에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합장한 자세로 협시하고, 좌우에 칠여래와 칠원성군을 배치하였으며, 상단에 남극노인성과 삼태육성 그리고 28숙을, 하단에는 자미대제와 좌우 보필성을 표현하였습니다.
신중탱화, 우은당(遇隱堂) 대선사 진영
신중탱은 2021년에 조성된 것으로 화면 상단 꼭대기 중앙의 작은 원 안에 예적금각을 그렸고, 그 아래 범천과 제석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중을 배열하였으며, 하단 중앙에 위태천 동진보살을 두고 옆에 시중드는 동자를 배석시켰으며, 그 밖에 좌우로 팔부중과 무기를 든 신장을 표현하였습니다.
우은당(1888~1967) 대선사는 23세에 영광 불갑사에 출가한 스님은 1930년 이후 입적할 때까지 참당암 주지로써 소임을 다하였으며 특히 6.25 전쟁 이후 사찰 재건에 지대한 공을 남겼습니다.
응진전, 명부전
3칸은 응진전 4칸같은 3칸은 명부전입니다.
명부전도 특이한 형태의 전각입니다. 가로로 긴 형태의 명부전은 지붕은 낮고 기둥간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명부전과 응진전의 한지붕 두가족임을 알게됩니다.
총 6칸의 건물이지만 각 3칸씩 응진전과 명부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측 3칸 응진전은 기둥 간격이 우측 3칸 명부전 보다 기둥 간격이 좁습니다.
응진전(應眞殿) 편액
응진전에는 수미단 위에 석가불좌상을 주존불로 하여 좌우에 협시보살이 앉아 있고, 그 좌우로 500나한상을 빽빽하게 조성하였으며, 입구의 좌우에는 소조불로 되어 있는 인왕상 1쌍이 세워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두 손을 다리 위에 올려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살짝 굽힌 형태를 하였고, 좌우의 원형 보관을 쓴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은 통견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손의 위치를 대칭으로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습니다.
석가여래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소백오백나한좌상
오백나한좌상은 해학적인 면모와 친근한 인상으로 중생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100여 존상이 남아 있으며 비교적 작은 크기임에도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굴은 둥글거나 각진 형태 등 다채롭게 표현되었으며, 미소를 머금은 입가와 짧은 수염 등에서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집니다. 단순하게 처리된 옷주름과 편안하게 앉아 있는 자세는 나한 특유의 소박한 마감을 잘 보여줍니다.
인왕상
문 앞에 험상궂은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쥔 인왕상이 좌우로 새워져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삭박한 모습의 지장보살이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보주를 받쳐 들었고, 좌우에서
두 손을 모은 무독귀와과 합장한 도명존자가 협시하며 서 있고, 그 앞에 동자를 세웠습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보살을 가운데로 좌우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주위를 시왕과 권속들이 배치된 지장시왕탱화입니다.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지장 삼존상 좌측에는 홀수(1, 3, 5, 7, 9)대왕이 우측에는 짝수(2, 4, 6, 8, 10)대와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시왕 양끝에 귀왕, 판관, 사자 그리고 장군을 세웠습니다.
판관상
판관상은 관복을 갖추고 두 손을 포갠 자세로 시왕의 판결을 보좌하는 역할을 나타냅니다.
사자상은 두루마리를 들고 전령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판관상과 사자상에서 보이는 단정한 얼굴과 간결한 복식 표현 등은 17세기 후반 불석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조각승 유파에 따른 도상과 조형 감각의 전승 양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현왕도
현왕도는 융희 4년 경술(1910)에 제작된 것으로, 의자에 앉은 현왕을 중심으로 판관, 녹사, 동자 등 권속이 둘러싸여 망자를 심판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참당암 지장전
정면 3칸, 측면 2칸에 자연기단 위에 덤벙주초로 두리기둥을 하고 있으며, 다포형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풍판이 옆에 달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약사전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선운사 지장신앙의 핵심전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
편액은 근예 김유연(槿叡 金柳延)선생이 쓰고 청원스님이 새겼습니다.
대웅전 오른쪽 위에 참당암의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는 납석제(臘石製)의 좌상으로서 높이 80㎝, 무릎폭 50㎝입니다. 이 존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이마에 테를 두르고 있는 점, 두건의 아래 자락이 어깨를 덮고 있는 점, 가슴에 늘어뜨린 목걸이 장식이나 두터운 귀 부분 등이 선운사 금동보살좌상과 흡사합니다.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031호)
수인은 이례적으로 왼손이 무릎 위에서 촉지인(觸地印)을 짓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두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돌로 된 지장보살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운사 참당암 약사전안에 있는 이 불상은 높이 80cm이며 무릎의 폭은 50cm입니다. 머리에 두건을 썼으며 이마에는 목이 좁은 띠를 둘렀습니다.
이마에 백호가 있고 얼굴은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양볼은 상당히 살이 쪄 있습니다. 양귀는 눈썹꼬리 윗부분에서부터 어깨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가냘프게 처리되어 있고 눈은 반쯤 뜨로 이쓰며 눈꼬리는 위로 치켜 올라가 있습니다.
콧날은 오똑하며 어깨는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유연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배쪽으로 구부려 엄지와 인지 및 장지로 보주를 들고 있고, 왼손은 무릎위에 가볍게 올려 놓았습니다. 발은 결가부좌를 하고 무릎과 다리위에 덮여진 의상의 주름은 매우 두껍게 되어 있습니다.
지장전 내부에는 현세의 중생들에게 가피(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힘을 내려주시는 일)를 내려주시는 석조지장보살좌상(지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지장전 안 석조지장보살좌상, 광배를 제외하고 온전히 남아있는 불상으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조성되었고 키는 80cm에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해준다는 보주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1m크기의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를 완전하게 갖추었고 외관은 선운사 금도지장보살좌상과 흡사합니다.
창당선원
창당선원 편액
대웅전 향 좌측 언덕 위에 산신각을 세우고 산신당 편액을 걸었습니다.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초익공 양식의 공포를 하고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입니다.
산신당(山神堂) 편액
운궁형 닫집으로 장엄하고 불단을 설치하였으며, 산신탱화와 함께 영가를 봉안하였습니다.
산신탱
산신이 표주박과 부채를 매단 지팡이를 들고는 호랑이를 타고 어디론가 행차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금어 상봉이 화승 영학과 함께 2017년에 제작하였습니다.
산신당 건립 시주비
해우소
해우소(解憂所)편액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이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도솔선원을 비롯해 공양간과 승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찰 입구에 밀호가람성신지위(密護伽藍聖神之位)라고 새긴 위패를 표지석처럼 세워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