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현경의 고백, 이제 기도부터 먼저 하게 돼요.
참하고 단아한 배우 이현경의 눈길 너머로 ‘시루섬의 그 어머니’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한국 섬 선교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1891~1950). 동란 와중에 공산주의자의 핍박으로 순교한 그녀가 이현경의 연기로 다시 살아나 거울 앞의 국화보다 진한 향기를 냈다. 예수 향기 같았다.
한국CCC 설립자인 고(故) 김준곤 목사, 성결교회 원로 이만신 목사, 치유목회연구원장 정태기 목사(문준경의 시조카)를 비롯한 수십 명의 목회자들이 문 전도사를 통해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김우현 감독의 영상이 포함된 책 <천국의 섬>을 통해 알았던 일이다. 한숨짓는 이들을 구성진 찬송으로 위로하고, 굶주리면 먹이고 병들면 품에 안고 울었으며, 섬마을 산모에게는 산파이기도 했다는 한국판 마더 테레사, 이현경은 바로 그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시루섬’의 주연을 맡았다.
KBS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에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시루섬’ 제작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서로 믿음을 격려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깜짝 고백까지 한 이현경을 갓피플이 만났다.
연기자로서 실존 인물, 그것도 순교까지 한 하나님의 사람을 연기하는 기분이 특별했으리라 생각됩니다.
94년 MBC 공채 23기로 데뷔한 후로 제 오랜 기도제목이 어떤 인물의 일대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20대 초반에 무용가 최승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봤는데, 언젠가 나도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 소망을 놀랍게도 최초의 기독교 드라마에서, 그것도 문 전도사님 같은 분의 역할을 주심으로 이뤄주신 거예요.
사람의 일대기를 연기하려면 연기자의 감정선이 다양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삶의 굴곡도 경험해보고 연륜도 좀 있어야 하는데, 제 삶은 비교적 평탄했어요.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삶이 힘든 분들에겐 비할 바 아니지만, 제게도 그전엔 겪어보지 못한 좀 힘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전에는 대본을 봐도 모르겠던 감정선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앞으로 나이가 들면 더 많이 느끼겠지만, 문 전도사님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고난 없이, 어려서 이런 역할을 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만, 제 개인의 경험조차도 이 역할을 위해 준비시키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문준경 전도사 역할을 하면서 특별히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드라마를 하기 전까지는 문 전도사님을 잘 알지 못했어요. 증도에 촬영하러 가서 직접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같은 여자로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사람이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다른 이를 보면 대개 부러워하고 질투하지 더 도와주려고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전도사님은 남편의 아이이지만 내 아이도 아닌데 그걸 받아주기도 하고, 가보니 지금이야 뻘밭 사이에 길이 나 있지만, 전도사님은 그 옛날 길도 없는 진흙 길을 다니면서 지역의 산파 역할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우리는 봉사를 해도 사실은 나 중심이고 심지어 나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는데, 전도사님은 ‘나’는 없고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신 거예요.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게 자식을 향한 어머니 같은 마음, 바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주신 예수님 같은 마음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나 싶었어요.
자살 시도 장면 촬영을 위해 차가운 바닷물에 연거푸 뛰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초겨울 때라 너무 추웠어요. 제가 추위도 많이 타고요. 하지만 극 중에서 시아버지 역을 한 송재호 장로님이 그 장면을 찍을 때 제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주시고, 임동진 목사님, 정영숙, 고은아 권사님 같은 선배님들의 기도 덕분에 무사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힘든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어요. 다른 드라마 같으면 시리즈에 두세 번이나 나올까 싶은 거친 씬(Scene)이 거의 매 장면에서 나오는 거예요. 세상 드라마를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면 체력이 딸려 못했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가 없었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일 신기했던 건 날씨였어요. 짧은 기간 거의 다 야외촬영으로 진행됐는데, 한 달에 두 번 쉬던 그날에만 비가 왔어요. 또, 새벽 1시에 촬영이 끝나고 5시에 다시 나가는 스케줄이 이어질 땐데 감기몸살이 살짝 있었어요. 그래도 일어나면 말짱해지는 거예요. 내 힘으로 한 일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싶어요. 제가 바라던 배역이고 실존한 훌륭한 분을 연기하느라 마음에 부담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기도하니까, 또 그렇게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신다는 말을 들으니 제가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맡기게 되었어요. 정말 맡긴 만큼 순조롭게 촬영을 잘 마친 것 같고요.
원래 꿈은 무용가가 되는 것이었다고요?
제 삶의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생각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의 바람은 궁극적으로 다 들어주신 거지요. 예를 들어 저는 무용가가 되고 싶어 무용과에 지원했는데, 그 문을 막으신 대신 배우가 되게 하셨거든요. 처음엔 무용가가 되어야 행복해질 줄 알았기에, 대학에 떨어지니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았어요. 내가 계획하고 들어가고 싶은 문이 닫힐 때가 있지만, 지나고 보면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결국엔 다른 쪽에 더 좋은 문이 열려 있는데, 내 고집만 부렸던 겁니다. 지금은 어릴 때 배웠던 무용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신앙생활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여자친구가 교회 가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어릴 때였지만 성경 말씀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대학 생활 하는 동안 살짝 갈등을 했지만, 어려서부터 가족을 전도하려고 기도했고, 지금은 오히려 동생들이 더 열심이에요. 전도하기가 쉽지 않던 남동생은 전도사가 돼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고요, 아이돌 그룹 출신에 씨씨엠 가수인 여동생 현영이는 믿음 좋은 배우 강성진 씨와 결혼해 2월에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부랑 동생이랑 저랑 다들 예능에 달란트가 있으니 가족끼리 씨씨엠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어요. 돌아가신 아빠도 생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어머니도 목회를 준비하는 아들은 못 이기시더라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언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릴 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떤 감동이나 체험이 있었으니까 믿음을 가졌겠지요. 그러다 한때 하나님을 멀리하기도 했지만, 제 중심에는 언제나 신앙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생각과 바람은 늘 믿음에 있으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또한 세상에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몇 년 전부터 제게 힘든 일이 많이 생기는데, 편한 방법으로만 예수님을 믿으려다가 힘들어지니 더 깊이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온누리교회에서 모이는 연예인들의 성경공부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8년에 성령집회에 참석했거든요.
손기철 장로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날이었는데, 그때 성령님이 저를 찾아주셨어요. 제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오는데 제 감정을 제가 주체할 수가 없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에 휩싸인 거예요. 한 시간을 넘게 울면서 기도하는데 머리로는 이해도 설명도 하기 힘든 경험이었어요. 저는 제 이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날 함께 했던 동료들 사이에 저의 성령세례가 큰 화제가 되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그 뒤로 속으로만 기도하던 제가 통성기도를 하게 되고, 사람을 대하는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화되는데 어찌나 급하게 변화가 되는지요. 마치 오래 서서히 끓던 물이 갑자기 세진 불에 끓게 되는 것처럼 말예요. 물론 체험에만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말씀도 정말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요, 형식적으로 주일예배 가던 모습도 많이 달라졌어요. 작년에는 신년특별새벽기도회도 완주했는데, 올해는 너무 추워서 집에서 인터넷으로 신년새벽예배를 드리긴 했지만요.
말씀을 많이 보셨다고 했는데, 좋아하는 구절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는 말씀을 힘들 때마다 묵상해요.
살면서 어떨 때가 힘이 듭니까?
힘든 상황보다는 마음이 더 문제인 것 같더군요. 같은 상황에서도 요동치는 마음이 다르거든요. 결국 근심은 내 마음에서 오는 것 같고요. 그 요동을 잠재우려고 기도하는데, 배우들이 대개 감정이 예민해요. 그러니까 연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작은 일에도 크게 슬플 때가 있어서, 그 요동의 폭을 줄여달라고 기도해요.
혼자보다는 삼겹줄이 낫다는 말씀이 있듯이, 힘들 때 서로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최근 사귀는 분이 있다고 밝혀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밝힐 생각까진 없었는데, ‘시루섬’ 기자회견장에서 어느 기자분이 대뜸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보기에 저도 모르게 있다고 말했어요. 좀 지혜롭게 돌려서 설명해도 괜찮았겠는데, 그만 다들 눈치 채도록 밝힌 거예요. 나중에 그(뮤지컬 배우 민영기)가 말하길, 만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했으면 오히려 섭섭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많은 믿는 여성들이 배우자 기도를 많이 한다는데, 제 주변의 탤런트 윤유선 언니나 박탐희 씨를 보면 아주 디테일하게 배우자 기도를 했더라고요. 유선 언니가 제게도 그렇게 기도해보라고 권해서 열 가지 정도, 같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고 하는 일이 비슷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또 내 기준이지만 좀 유치한 것까지 넣어서 기도제목을 적어보았어요. 그게 그 남자에게 거의 다 맞아요.
성령체험 이후 결혼과 삶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지셨지요?
그럼요. 동생네 사는 거 보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함께 함으로 행복해지는 알콩달콩한 가정의 꿈을 꾸어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힘든 일이 생기거나 고민이 많아지면 친구들과 먼저 나누곤 했어요.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내가 풀어보려는 것밖에 안되고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선배들이 조언은 해줄 수 있지만 마음만 잠시 편해질 뿐이고. 그래서 요즘엔 전화를 하려다 말고 먼저 기도를 하게 돼요. 내 생각이 들면 기도로 빨리 내려놓으려 하고요. 제 성격이 원래 돌다리도 두드려봐야 하고, 좋은 일에도 걱정거리를 먼저 찾는 편이거든요. 어떤 일이 생기면 일단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하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먼저 기도부터 하게 됩니다.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시루섬>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빈민구제와 선교에 힘쓴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그린 한국 최초의 기독교 드라마. CBS가 2009년 창사 55주년 기념으로 제작, 지난 12월 14,15일에 방송했다. 드라마의 제목 ‘시루섬’은 증도의 옛 이름으로 원래 비가 와도 물이 잘 고이지 않아 물이 귀한 섬이라는 의미이지만, 극 중에서는 떡시루에 떡을 쪄내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듯이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됐다. 예수 복음과 생명의 떡이라 할 그 떡시루를 찌고 나른 이가 곧 문준경 전도사.
열일곱 나이에 시집갔지만 남편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며 남편 첩의 아이를 제 손으로 받아 길러주기까지 한 박복(薄福)한 여인, 차가운 바다에 고단한 몸을 맡기려던 문준경은 성결교회 부흥사 이성봉 목사를 통해 예수를 만났고, 오늘날 증도를 복음화율 90퍼센트 이상의 예수 성지가 되게 한 밀알로 추앙받고 있다. 문 전도사는 나이 마흔 넘어 경성성서신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한 후 임자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방축리교회 등을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혼란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킨 문 전도사는 결국 1950년 증도에서 순교했다.
순교자의 삶을 그린 만큼 출연진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들로 구성됐는데, 문준경 역에는 탤런트 이현경, 연기자이며 목회자인 임동진 씨는 이성봉 목사 역을, 신신애 씨가 무당으로, 송재호, 정영숙, 고은아 등도 출연했다. CBS가 2010년 영화 개봉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니 드라마를 미처 보지 못한 이들은 기다려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