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7회 지리책읽기대회 수상작 - 최우수상(중등)
수상자: 목포항도여자중학교 3학년 나지연
참가도서: <선은 장벽이 되고>
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The line becomes a river.(선은 강이 된다.)' 이 책의 제목이다. 우리 모두 ‘선’과 ‘강’이라는 두 단어의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보자.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두 단어는 곧게 뻗은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단순하게만 바라본다면 그 둘은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지도’라는 단어를 추가시킨다면 곧 그 둘이 같은 것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지도는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을 말한다. 지구에서의 강은, 지도에서 선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은 선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자는 무슨 연유로 반대로 표현하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러한 호기심은 나의 손을 책으로 이끌었고, 얼마 있지 않아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생생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나는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칸투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근무하는 국경 순찰 대원이다. 그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국경 순찰 대원들과는 다르다. 새를 죽이는 것에도 벌벌 떨 정도로 죽음에 익숙하지 않으며, 자신이 단속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은 이러한 칸투의 시점에서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발생하는 참혹함을 이야기한다.
칸투는 국경 순찰 대원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미국으로 넘어오다 적발된 멕시코 밀입국자들이다. 밀입국이 적발되면 고향, 그리고 가족의 품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죄의 무게를 덜기 위해 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다. 국경을 넘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법이 존재하기에 그들은 법에 규정된 처벌을 받게 된다. 법은 강제성을 지닌 도덕적 규범이다. 법은 모두에게 마땅히 지켜지는 것이기에 법에 무조건적으로 손발을 들 수밖에 없는 이들을 어느 정도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국경 장벽의 근본적 의의는 밀입국자와 마약 카르텔을 막는 것이다.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미국은 밀입국자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그들의 미국행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계속 이러한 사태가 지속된다면 끔찍한 결과만이 모두를 맞이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그렇고 또래 친구들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우선이기에, 타인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해 알고 있거나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멕시코 국경 이야기는 결코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미국과 멕시코에 강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38선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하루 만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사람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지만, 분단된 지 약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분단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랜 시간을 이기지 못해 하루하루 이산가족의 수가 줄어가고 있는 반면, 분단이 지난 역사가 되어 가며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늘어 가고 있다. 미국-멕시코의 현 모습이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시간이 지나도 분단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며, 우리가 겪었던 아픔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한다.
교통·통신의 발전으로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이민뿐 아니라 외국 여행도 많이 늘어가고 있다. 또한 전쟁 등 다양한 이유로 난민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자국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시대에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특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음은 누구에게나 아주 비극적이기에 그 순간이 찾아오는 장면을 잠깐이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 칸투는 국경 순찰 대원을 그만두고 미국 한 커피숍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동료인 호세를 만난다.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멕시코로 갔다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합법적 체류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절당한 것이다. 칸투를 포함한 많은 지인들이 호세를 도와주려 하지만 결국 호세는 미국에 돌아오지 못한다. 칸투는 이후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태껏 저는 거대한 거인의 발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발만 쳐다본 것이지요. 이제야 비로소 저는 고개를 들고, 저를 짓누르는 거인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이 대목은 국경에 관심은 많았지만 현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칸투 본인의 무지함을 반성하고, 국경 순찰 대원으로 일했던 시절에 만난 밀입국자들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칸투가 국경 순찰대 일을 그만두고 난 후 꾸게 된 꿈속 장면이다. 꿈속의 칸투는 황무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근무 도중에 한 사내, 한 아이와 대치하게 된다. 사내는 칸투에게 점점 다가갔고 칸투는 그에게 총을 쐈다. 그러자 아이가 칸투에게 총을 겨누지만 빗나가고 칸투는 어쩔 수 없이 결국 아이마저 쏘게 된다. 다가가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이는 숨이 붙어 있지만 칸투에게 제발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칸투는 이렇게 말한다. “이리 형제여, 이제는 우리가 서로 화해하기를 바라.” 이는 칸투의 바람이자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꿈속 마지막 말처럼 모두가 화해를 바라고 실천하는 세상이 오길 소망한다. 아이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한 것은 국경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견디기 힘들 만큼 참혹했음을 말해준다. 칸투는 밀입국자들을 단속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들을 그 누구보다도 연민한다. 칸투가 이러한 이중적인 면모로 밀입국자들을 대한 것은 그 역시 죽음이 잇따르는 현장에서 상처받았고, 그들에게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미국-멕시코 국경에서의 죽음과 같은 허망한 죽음에 대해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이유를 불문하고 이러한 죽음이 더는 이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경 장벽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오직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유뿐만이 아니다. 미국이 주장하는 장벽의 의미는 마약 유통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주장과 거리가 멀다. 국경을 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밀수업자들이 이전보다 더 큰돈을 요구하게 되었고, 불법 이민자들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상승했음을 마약 카르텔들이 알게 되어 인신 밀입국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은 동의한 적 없는 멕시코에게 국경 장벽에 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면 미국은 관세를 높이는 등의 협박과 다름없는 요구를 할 것이고 이에 멕시코도 똑같이 대응하면서 결국 미국에도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양국은 타협점을 찾아 모두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처음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에 대해 알았을 때, 장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마약 유통자와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이민자들을 막으니 미국 입장에서 장벽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마주하면서 나도 동화되어 똑같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나와 많은 국경 장벽 찬성자들은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였다. 큰 범위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상황만 고려하고 장벽으로 인해 자유를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경 장벽을 언제까지나 비난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모두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협력적인 태도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강은 흐르고 또 흐르다가 결국 크나큰 바다에 모두 모인다. 내가 저자를 통해 경험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의 실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강물에 어떠한 형태의 아픔과 고난이 담겨있든지 간에 나중에는 바다라는 하나의 개체가 되어 그 강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된다. 또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의 특성이기에 강은 절대로 바다에서 강 상류로 흐르는 법이 없다. 선이 강이 된다는 것은 국경 장벽의 가혹한 현실과 아픔을 모두 바다로 흘려보내 다시는 그것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표현이었다. 나 또한, 언젠가 그들의 자그마한 소망들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