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플랜 없는 선교
회사나 기업, 학교와 모든 비영리단체들은 발전과 운영을 위한 장•중기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다. 그 마스터플랜에 근거해서 매년, 매월, 매일의 계획표가 나오며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 계획표대로 준행하면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훌륭히 감당하는 것이 된다. 이미 작성되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손에 쥐어져 있는 마스터플랜으로 일하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인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3년 세월을 밖에서 떠돌며 사역을 계속하는 고통과 기쁨, 고뇌와 감격, 좌절과 희망에 부침하며 지내고 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서 동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지에 다녀왔다. 마음은 터질 듯이 아프고 바로 보따리를 싸서 떠나고 싶은데 결정적인 확신이 서지 않아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긴 기다림 끝에 이웃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사회를 익히는 중인데 들려오는 모든 소식이 어둡다. ‘불가능’이라는 속삭임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차라리 시도하기 전에 접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흔들림을 당하면서도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어디를 가든지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가며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자리에 쓰임을 받는 것’이다.
지금 나는 스스로 마스터플랜을 기획할 수 없는 종으로서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 자신을 향한 마스터플랜을 속히 보여주시라고 땡깡을 부리는 중이다. 하나님께 ‘발령장’을 쓰시고 사인을 해서 보내주시면 앞뒤 돌아보지 않고 아무 미련 없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겠다고 아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선교에는 마스터플랜이 없다.
물론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편에는 인간의 구원을 향한 마스터플랜이 있다. 그러시기에 예수께서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성에 머물라.”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자신들의 마스터플랜이 없었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하면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을 시작하게 된다.
바울사도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깨달았다.
회심 후에 자기 열정으로 용감하게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언하였으나 그를 박해자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였다.
후에 이방인의 사도라는 확신을 가진 그는 바나바의 인도 아래 사이프러스 섬으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성공적으로 일정을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
그는 2차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바나바와 나뉘었으며 1차 전도여행을 했던 지역을 돌아 본 후부터 헤매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시아주의 동남쪽과 중앙지역(서쪽 바다,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이스와 마주보고 있는 큰 주의 이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터어키 중앙에 있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돌아다니다가 지쳤다. 그 후 일행은 무시아로 가서 흑해 연안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드로아까지 내려갔는데 전도할 길이 막막하여 좌절하며 낙심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인 환상을 보았고 그는 환상대로 마게도냐로 가서 그리이스의 도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깨달았다.
마스터플랜이 없는 선교사는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초라하고 불쌍하다.
본향을 향해 가면서 집도절도 없는 나그네로 사는 고통과 고독을 고스란히 맛보아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길을 가며 유야무야한 존재로 사는 것이다.
아 아
내 남은 삶의 마스터플랜을 스스로 기획하는 종이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컷 마음껏 하며 내 마음대로 사는 종이 되고 싶다!
그러나 종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무수히 바친 기도와 약속, 서원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 감격과 감동, 환희와 자유, 은혜와 은총, 축복과 위로를 잊고 싶지 않다.
그 고난과 시련, 불같은 연단과 훈련, 숨 막힌 침묵과 막막한 기다림, 수모와 멸시의 시간들 또한 버리고 싶지 않다.
종으로서 주인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며 간절히 기도한다.
끝까지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기다리며 순종하는 종으로 살게 해달라고.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마스터플랜을 믿으며 나의 모든 욕망과 취미, 선호를 내려놓는다.
세상 모든 기업, 기관과 단체들의 마스터플랜처럼 눈에 확 들어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확신하며 흔들리며 부대끼는 나의 마음을 모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바친다. 나의 시간과 공간이 주인께서 보여주시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대로 춤출 날을 기다리며, 안과 밖에서 침투해오는 소리와 환영들을 십자가에 놓는다.
기다림은 바보스럽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인’을 위한 순백의 기도다.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우담 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