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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열사烈士(?) 들릴라
Samson-장사
삼손의 머리카락-힘의 원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from Dan to Beersheba-도처에
기브아Gibeah-악한 도시의 본보기
삼손과 헤라클레스는 닮은 데가 많다. 먼저 둘 다 힘이 장사인데다가 성격도 포악하다.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은 일도 같고, 돌기둥을 무너뜨린 사건도 동일하다. 성서나 그리스 신화를 다룬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서 이 둘을 구분해 내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삼손Samson'은 힘이 센 ’장사壯士‘의 대명사가 된다. 세계적인 여행용 캐리어 상표인 ’샘쏘나이트Samsonite‘도 삼손에서 차용된 것이다. 자고로 캐리어란 튼튼해야 하니까.
그런데 삼손의 충동적이고 방탕한 행동을 보면, 그는 그저 싸움을 즐기는 평범한 인간일 뿐 한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 판관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다른 판관들처럼 백성들이나 병사들을 이끌고 외적에 대항한 적이 없다. 성서에 나타난 이야기만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그는 오로지 괴력과 특유의 저돌성으로 홀로 이민족과 싸움을 벌인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민족 공공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살해한 사이코패스 같은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삼손에 대한 이야기는 참혹하면서도 극적인 부분이 많다. 그래서 훗날 회화, 오페라, 연극, 영화 등 여러 분야에 이 이야기가 도입됨으로써 삼손은 성서적 의미보다 예술 분야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성서는 판관 무리에 뜬금없이 이 무뢰배를 끼워놓았을까? 당시 이스라엘에는 군사를 이끌만한 영웅이 없었으며, 이미 블레셋 세력이 강해질 만큼 강해져 아주 특별한 방법을 써야만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삼손이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의 원주민인 블레셋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책략 때문이었는데, 당시 백성들이 또 하느님을 잊고 이방신 즉 블레셋 인들이 숭배하는 다곤Dagon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곤 Dagon은 밀턴의 <실락원>에서 타락천사로 그 모습이 물갈퀴를 가진 인어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성서에서 종종 ‘갑돌인Caphtor'으로 표현되는 블레셋 인들이 그리스 출신 해양민족이었음을 암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Caphtor란 말이 ’크레타Creta 섬 출신‘이라는 뜻이라고 우기는 학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곤 신은 21세기에 다시 부활하게 되는데, 컴퓨터 게임에서 제법 큰 힘을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컴퓨터 게임에는 그리스신화나 북유럽신화 또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차용한 영웅 또는 괴물의 이름이 아주 많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핍박 받을 만큼 받았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여기신 하느님. 시쳇말로 ‘도꼬다이獨體(どくたい)’ 판관을 하나 만들어 백성들을 구출하기로 작정하고, 한 여인에게 사자를 보내 장차 백성을 구하게 될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계시를 내린다. 더하여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칼로 머리를 깎지 말 것을 주문한다.
아이가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질 나실(나지르Nazir, 영어로 Nazarite)인이란 뜻이었다. 히브리어로 영적으로 ‘구별된 자’ 일반인과는 달리 영적 생활을 하도록 정해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서 민수기에 나실 인으로서의 자격 요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민수기 기록에 따라 머리를 깎지 않은 것 외에는 삼손이 과연 성서에 최초로 나실 인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가진 자격이 있는 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그 자격 요건이란, 남녀 불문하고 나실 인의 서원을 하고, 자신을 주께 떼어 바치고, … 포도주와 독주에서 자신을 갈라놓아야 하며, …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등등인데 과연 삼손이 그러했던가?
아무튼 열 달 후 여인은 건강한 사내아기를 순산했고, ‘태양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삼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느님은 여인에게 평생 아기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나실 인에게 괴력을 부여하는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장성한 삼손은 일단 블레셋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역시 불손한(?) 블레셋 민족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기 위한 성서 저자들의 덫이었을 게다.
그건 그렇고, 결혼 때부터 삼손의 만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피로연 자리에서 삼손이 서른 명의 블레셋 인들과 베옷 30벌과 나들이옷 30벌을 걸고 수수께끼 내기를 한 사건을 이른 말이다. 먼저 삼손이 수수께끼를 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문제를 푸는 데 일주일이면 되겠지?"
수수께끼라 할 깜냥도 되지 못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기가 막히게도 언젠가 삼손이 봤다는 ‘죽은 사자 몸에 벌이 모여들어 만든 꿀’이란다. 길거리에서 아이가 막대사탕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가정하자. “키 작은 사람이 거리에서 먹고 있는 게 뭐게?” 과연 이런 물음이 수수께끼가 될 수 있는가? 이 말도 안 되는 수수께끼를 놓고 블레셋인들이 나흘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답이 나올 리 없다. 결국 이들은 삼손의 아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그녀는 울면서 남편에게 답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했으며, 삼손은 기어이 천기누설(?)을 하고 만다.
이튿날 피로연에 참석했던 블레셋 인들은 의기양양하게 삼손에게 답을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제 아내로부터 정보를 빼냈다는 걸 알아채고 화가 났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삼손은 지키려 한다. 아마 강도짓을 해서라도 노름빚은 갚아야 하는 게 삼손의 인생철학이었던 모양이다.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근처 블레셋 마을을 습격하여 서른 명을 때려죽이고 옷을 빼앗아 온 것이다. 그런데 삼손의 장인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도망간 줄로만 알고 그만 삼손의 하인에게 딸을 줘 버렸다. 꼭지가 돈 삼손, 그런 망발을 두고 볼 위인이 아니다. 여우 3백 마리를 잡아 그 꼬리에 불을 달아 블레셋 인들의 밭으로 내몰았으니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추수를 앞둔 곡식이 몽땅 타버렸다.
이에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장인과 한때 부인이었던 여자를 죽이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라진 삼손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당시 블레셋 인들에게 쩔쩔매던 이스라엘 인들은 그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굴에 숨어 있던 삼손을 밧줄로 꽁꽁 묶어 그들에게 넘겼다.
하지만 삼손을 몰라도 너무 모른 블레셋 인들이었다. 힘도 힘이지만, 하느님이 보호하던 나실 인이 아니었던가. 힘도 주지 않았는데도 묶여 있던 밧줄이 마치 불에 탄 실처럼 변하더니 몸에서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러자 삼손은 옆에 있던 나귀의 턱뼈를 들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으니, 무려 1천 명이 넘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손에 죽었다. 한 사람이 단시간에 저지른 기록적인 대학살이었다.
그 사건 이후, 삼손의 눈에는 봬는 게 없었다. 문자 그대로 안하무인, 거처를 옮긴 곳은 가자의 한 창녀의 집. 한 때, 그를 노리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습격을 받았지만, 이 역시 간단하게 물리친다. 그 집 문과 두 개의 기둥을 뽑아 어깨에 짊어지는 시위 하나로 해결되었다. 삼손의 괴력에 질려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포악한 성품과 괴력을 가진 삼손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여자였다.
소렉 골짜기에 살던 절세가인 들릴라Delilah란 블레셋 여인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 이름 뜻이 가히 충격적이다. ‘바람둥이’라는 뜻이란다. 영국 출신 가수 탐 존스Tom Jones가 먼저 불렀고, 조영남이 번안해서 부른 ‘딜라일라Delilah’ 가사를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1994년에는 같은 이름의 제목 ‘딜라일라’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고혹적인 비밀첩보원 딜라일라(킴 캐트럴 분)가 수소폭탄의 주재료인 플로토늄을 불법 밀매하려는 범죄조직에 위장 취업하여 이를 막는 일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플로토늄의 밀매대상자가 PLO 즉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테러범들이었다. 유대계가 득세하고 있는 할리우드Hollywood 영화답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스라엘이 개발한 순항미사일의 이름까지 딜라일라이다. 터보제트엔진을 사용해서 최대 250㎞목표까지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정밀타격 무기로서 F-15나 F-16에도 장착이 가능하단다. 이래저래 들릴라는 이스라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여인인 것 같다.
그런데 들릴라라는 이 여자, 아무래도 아프로디테의 벨트(여성의 치명적인 매력을 일컫는 말) 하나쯤은 차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영웅치고 미인을 좋아하지 않는 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를 만났던 놈치고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못 느낄 정도로 들릴라의 매력은 대단했다. 삼손은 영웅이니 더욱 당연했고…. 아무튼 처음 만나던 날부터 삼손은 아예 그녀의 집에 눌러앉아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의 일상은 굳이 여기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안 봐도 비디오’이니까.
호시탐탐 삼손을 노리고 있던 블레셋 인들에게 그 정보가 흘러들었다. 그들은 궁금했다. 대체 그 괴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그래서 같은 민족인 들릴라를 매수하여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을 알아오게 한다. 자신의 비밀을 쉽게 가르쳐 줄 삼손이 아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들릴라의 아양과 눈물에 못 이겨, 결국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고 만다.
여기서 나온 말이 ‘삼손의 머리카락’, 풀이하면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일본과 한때 그들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제 비밀은 탄로 났다. 잠이 든 사이에 머리카락을 모두 깎이게 되고, 삼손은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붙잡혀서 두 눈이 파였고, 가자의 감옥에서 청동족쇄를 차고 채찍질을 받으면서 연자방아를 돌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치욕의 순간에서도 삼손은 하느님께 진심으로 회개했다. 알게 모르게 그의 머리카락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충분히 자랐을 때였다. 마침 블레셋 인들이 다 모여 다곤 신전에 큰 제사를 바치게 되었다. 성대한 연회가 끝나자, 그들은 삼손에게 모욕을 주려고 그를 끌어내어 연자방아를 돌리게 했다.
순간 직감적으로 자신의 힘이 되돌아온 것을 느낀 삼손은 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굵은 돌기둥에 기대어 쉬는 척하다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러고는 두 기둥을 껴안고 힘을 주었더니, 굉음과 함께 기둥이 쓰러지더니 신전 전체가 폭삭 가라앉아 버렸다. 이 때 신전에 있다가 돌에 깔려 죽은 블레셋 사람은 3000명이나 되었다.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에 대해 팔레스타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어떤 해석이 나올까? 자기 민족을 학살한 외부 세력을 몸으로 유혹하여, 그를 잡아 감옥에 넣은 그녀. 어찌 보면 민족을 위해 한 몸 희생한 열사烈士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12대 판관 삼손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무정부 시대
삼손의 이야기는 끝이 났으나 판관기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을 좀 더 기술한 다음, ‘룻기’로 넘어간다. 자, 삼손이 3000명이나 되는 블레셋 인들을 죽였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판관기의 마지막 절은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했더라.”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절박했던 당시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말씀은 곧 이스라엘 민족이 무정부 상태, 무법과 무질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때에 단Dan 지파는 정주할 땅을 찾고 있었으니, 이는 그때까지 그들의 모든 상속지가 그들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음이라.”라는 말씀 역시 그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시기가 판관시대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성서 상 삼손 이야기 이후에 실린 것이니 만큼, 삼손의 활약이 블레셋 세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단 지파가 블레셋을 피해 북쪽 땅을 정찰했던 것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단 지파는 북쪽 해안 지방에서 라이스란 도시를 발견한다. 당시 이 도시에는 페니키아Phoenicia 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훗날 이들은 세력을 넓혀 지금의 레바논·시리아·이스라엘 북부 등 지중해 동쪽 해안 지대에 걸쳐 페니키아란 도시국가를 세웠고, 지중해 무역을 독점함으로써 지중해 연안 넓은 지역에 카르타고를 비롯한 식민지를 건설했다. 또한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표음 문자를 그리스에 전하여 오늘날 그리스 로마 문자의 근간을 이루게 한 민족이기도 했다.
단 지파가 라이스를 눈독 들인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가나안 최북단으로 변방이었다는 점과, 자신을 포함하여 우선 가나안을 차지하고 있는 셈족 계열이 아닌 아리안 계열이어서 다른 종족과 유대가 없었기에 그들이 정착하기에 안전하다고 여긴 것 같다. 단 지파는 정찰대의 보고에 따라 그곳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북행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웃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있었다. 이들이 단의 정찰대에게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의 이주 병력은 동족인 에이브람 파의 재산을 약탈하고 인명까지 손상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하긴 단 지파였던 삼손을 묶어 블레셋 인들에게 양도했었던 사람들 역시 동족 유다 파였으니, 단 지파는 이미 동족의 배신을 맛본 터였다.
단 지파는 에브라임 파를 공격했던 것처럼 라이스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 도시를 세워 지파 이름 그대로 ‘단’이라고 했다. 단은 당시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했으며, 남단에는 브엘세바Beersheba가 있었다. 이로써 ‘단에서 브엘세바까지from Dan to Beersheba’라고 하면 이스라엘 전역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다시 ‘도처到處에’ ‘곳곳에’라는 뜻의 부사구로 쓰이게 되었다.
판관기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이야기는 왕권 확립 전의 이스라엘의 혼란과 무법 상태를 더욱 비감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에브라임 파 사람이 첩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베냐민 파의 중심지인 기브아에 도착하여, 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밤 베냐민 파 무뢰배들이 습격하여 첩을 겁탈하였고, 결국 그 여인을 죽음을 맞고 만다. 이로 인해 ‘기브아Gibeah’는 ‘악한 도시의 본보기’라는 뜻을 가지게 되니, 후세에까지 그 이름이 더럽혀지게 되었다.
기브아의 만행이 알려진 이후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실제로는 에브라임 파)들이 모여 보복을 결정했다. 그 결과 기브아는 폐허가 되었으며, 베냐민 파는 겨우 600명만 살아남아 존속할 수 있었다. 뒷이야기가 더 가관이다. 나머지 지파들은 그래도 같은 민족인데, 베냐민 파를 유지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쪽에 자기네 파 여자를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어떻게든 종족 보존을 위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어떤 맹세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야베스 길리앗에 군대를 보내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잡아다가 베냐민 파에 안겼다. 그리하여 왕권시대의 첫 이스라엘 왕이 베냐민 파에서 나오는 영광을 얻게 된다. 잔인한 이야기로 점철된 판관기도 이로써 끝을 맺는다.
첫댓글 늘~~ 감사!!
우리 이 카페에서만 읽을 수 있는,
2,000여 년을 오가며 전하는 '삼손과 드릴라' 이야기.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즐겁게 한참 읊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삼손과 들릴라 잘 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