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미(白眉)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白 : 흰 백(白/0)
眉 : 눈썹 미(目/4)
(유의어)
계군고학(鷄群孤鶴)
계군일학(鷄群一鶴)
군계일학(群鷄一鶴)
낭중지추(囊中之錐)
발군(拔群)
압권(壓卷)
절윤(絶倫)
추낭(錐囊)
추처낭중(錐處囊中)
출중(出衆)
학립계군(鶴立鷄群)
눈썹은 얼굴에서 비중은 작지만 전체의 균형을 좌우한다. 눈썹이 나방의 더듬이처럼 어여쁘고 눈초리가 가는 미인을 아미만록(蛾眉曼睩)이라 한다.
눈썹이 허옇게 센 사람은 옛이야기에 나오는 신선처럼 특출한 재주를 가진 것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독특한 구실을 하는 눈썹에 보통 사람보다 흰털이 많을 때는 재주가 많았던 모양이다.
흰 눈썹(白眉)이란 말은 여럿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가리켰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나 용중교교(庸中佼佼), 학립계군(鶴立鷄群) 등과 같은 뜻으로 쓴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촉한(蜀漢)의 재주가 많았던 마씨(馬氏) 다섯 형제 중에서도 눈썹 속에 흰털이 난 마량(馬良)이 가장 뛰어난데서 유래한 말이다.
유비(劉備)의 촉나라에서 문무를 겸비한 이름난 참모였던 마량은 제갈량(諸葛亮)과도 친구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오형제중 넷째였던 마량이 가장 어질고 덕이 높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털이 섞여 있었다.
마량은 자가 계상(季常)이고 오형제 모두 상(常)자가 들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오상(五常)이라 불렀다. 오형제 모두 인물이 출중하고 학문도 깊었다.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을 가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馬氏五常 白眉最良/ 마씨오상 백미최량).
마량은 유비가 소열제(昭烈帝)에 오르자 시중(侍中)에 임명됐고 첫 임무로 남쪽에서 괴롭히던 만인(蠻人)들을 달변으로 설득시켜 복속시키고 돌아왔다. 삼국지(三國志) 촉서 마량전에 실려 있다.
촉나라는 후일 오(吳)나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관우(關羽)의 원수를 갚고 빼앗긴 땅을 찾으려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조급해진 유비가 군사인 제갈량과의 상의도 없이 출정한 223년의 이릉(夷陵)전투에서 패배하고 마량도 전사하고 말았다.
마량의 동생 마속(馬謖)은 또 다른 성어로 유명하다.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장안(長安)으로 향하던 중 마속에게 군량 수송로인 가정(街亭)을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마속은 지시를 어기고 위군을 역습하다 참패했다. 막역지우 마량의 동생이자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다. 유명한 고사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리들 속에서 우뚝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실을 다지지 않고 튀는 행동으로 주목을 끌다간 얼마 안 가 외면 받는다.
차근차근 실력을 닦아 남이 인정하는 실력이 될 때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인 관계서나 큰 조직에서나 순리에 맞아야 함은 다름이 없다.
백미(白眉)
백미(白眉)는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지편(蜀志篇) 마량전(馬良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천하가 위(魏), 오(吳), 촉(蜀)의 세 나라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일이다.
유비(劉備)는 적벽대전(赤壁大戰) 후(後) 형주(荊州), 양양(襄襄), 남군(南郡)을 얻고 군신(群臣)을 모아서 앞으로의 계책을 물었다.
이때 유비(劉備)를 두 번이나 구하여 준 이적(伊籍)이 “새로 얻은 땅들을 오래 지키려면, 먼저 어진 선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유비(劉備)가 이적(伊籍)에게 물었다. “어진 선비가 누구요?”
이적(伊籍)이 “형양(荊襄) 땅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가 모두들 재명(才名)이 있는데, 가장 어진 이는 양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난 양(良)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라고 합니다. 또 향리(鄕里)에서도 ‘마씨집 오상(五常)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가 있는 마량이 제일 뛰어나다.(馬氏五常白眉最良)’고 합니다. 공께서는 어찌 청하여 오지 않으십니까?”
유비(劉備)는 즉시 마량(馬良)을 청하여 오게 했다.
백미(白眉)
유비(劉備)의 촉(蜀)나라에 문무를 겸비한 마량(馬良)이라는 이름난 참모(參謀)가 있었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한번은 세 치(三寸)의 혀 하나로 남쪽 변방의 흉포한 오랑캐의 한 무리를 모두 부하로 삼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덕성(德性)과 지모(智謀)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오형제 중 맏이 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백미(白眉)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들 오형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유명한 마속(馬謖)을 포함하여 모두 재주가 비범했는데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씨네 오형제 중에서 백미(白眉)가 가장 뛰어났다며 마량을 특히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백미(白眉)란 같은 부류의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로부터 같은 형제뿐만이 아니라,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白眉)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고 어떤 작품이나 물건 등에도 다른 것보다 뛰어난 가치와 볼거리가 있는 것을 백미(白眉)라고 칭하고 있다.
백미(白眉)
백미(白眉)는 하얀 눈썹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무리나 대상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또는 진수나 정수 등을 가리키거나 지칭할 때 등에 쓰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말이니 굳이 비슷한 사자성어를 대어 본다면 군계일학(群鷄一鶴) 정도 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이 말의 유래는 마량의 형제들이 여럿 있었는데, 마량은 눈썹이 하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형제들 중에서 마량이 가장 여러모로 뛰어났는데, 그래서 백미(白眉)라는 말이 이런 뜻으로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량의 형제들이 모두 범상치 않고, 뛰어난 인물들이었는데, 모두 형주 사람들로 유비에게 끝까지 충성을 한 형제들이었다. 마량의 막내인 마속(馬謖)의 경우에도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는 재주가 너무 승한 인물이었다.
유비는 그를 중용하지 말라며 제갈공명에게 유지를 남겼지만, 제갈공명은 한사코 출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그에게 1차 위정벌기때 가정전투를 맡겨, 결국 그는 패전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
형주(荊州)에서 관우(關羽)와 마량은 가끔 바둑을 두기도 했었는데, 촉(蜀)으로 유비와 함께 떠난 방통(龐統)이 죽자, 형주를 지키던 제갈공명은 형주를 관우에 맡기고, 촉으로 유비를 도우러 가게 된다.
그래서 형주는 관우의 소관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위나라의 공격을 가끔 받게 되었다. 위군(魏軍)과 싸우다가 관우는 팔에 화살을 맞았는데, 독이 있었던지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갔다.
별주부전(鼈主簿傳)에도 등장하는 화타(華陀)가 관우가 그렇게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에 몸소 치료하기 위해 형주를 찾았는데, 관우를 상처를 보더니 이미 독기가 뼈까지 침투한 뒤라서 살을 도려 내고, 뼈를 깍아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관우에게 보통 사람은 참기 힘든 일이니 몸을 기둥에 묶고 고정을 시킨 후에 치료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관우는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팔을 내밀고, 한 손으로는 마량과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살을 째고, 뼈를 도리는 화타(華陀), 그런데 환자는 되레 관우가 아니라 화타인 것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바둑에 몰두하는 관우 마침내 치료가 끝나자 화타는 관우같은 환자는 처음 보았다면서, 환자들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일 동안은 분기를 내지 말고, 자중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관우는 그후 오(吳)나라 육손(陸遜)의 계략에 말려서 결국 형주를 거의 대부분 잃고, 폐성이나 다름이 없는 맥성(麥城)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화기가 솟아 상처가 도지고 말았다.
그가 육손에게 패한 것은 위쪽의 위나라에 만 신경을 쓰고 있었고, 후방의 오나라에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후방의 오나라의 침공이 있으면 곧바로 봉화를 띄우기로 해놓았는데, 그 봉화대를 지키는 장수들은 관우의 미움을 사서 일부터 후방으로 보낸자들인데, 야밤에 몰래 기습한 오나라 군이 먼저 봉화대를 점령하자, 문책성 인사격인 후방의 장수들은 오나라에 거의 투항하고 말았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오나라에 의해 형주가 다 날아가도 관우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봉화대 이상가는 장치나 장비가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 신뢰하는 것보다 항상 챙기는 일은 지금에 있어서도 어떤 일에나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우는 오나라 도독(都督)으로 임명된 육손이 새파란 젊은이였기에 아주 깔보고 봉화대와 더불어 오나라에 대해 더욱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잘못이라고 생각 되어진다.
관우가 죽지 않았고, 형주를 끝까지 지켜내었더라면, 이릉전투도 없었을 것이며, 나아가 촉한(蜀漢)이 통일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자 발판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어쨋든 마량은 나중에 촉한(蜀漢)의 황제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로 출병을 했다가 연전연승을 했는데, 그후 싸움을 하지 않고, 성문을 꼭꼭 닫은 오나라에 대해 싸움을 걸어보았는데, 연패를 거듭한 오나라 군은 싸우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더운 날씨에 촉의 군사들은 나무 숲 등지에서 쉬고 있었는데, 마량은 촉군의 형세를 도본(圖本)으로 떠서 성도의 제갈공명에게 가져간다.
그러자 제갈공명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이제 촉한은 끝이 났구나 하는 넋두리를 하게 된다. 마량이 왜냐고 물었더니 육손이 화공을 쓰면 촉군은 어김없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육손은 화공을 써서 유비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막심한 패전을 하였다. 그후 유비는 백제성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을 나오지 않았다.
한편 관우는 제갈공명이 장수는 목숨을 너무 중히 여겨도 되지 않지만, 너무 가볍게 여겨도 안되는 것이라고 하며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고 촉으로 떠난다.
과연 관우는 목숨을 너무 초개같이 여겨서, 결국 그 무엇의 가치보다 위에 있는 도원결의(桃園結義)에 의해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한편 촉과 오가 서로 부서져가는 모습은 가만히 있는 위로써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준 셈이었으며, 제갈공명이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서 위나라를 공격하였던 일도 결국 사마(司馬) 가문의 입지만 넓혀 주었다.
위(魏), 촉(蜀), 오(吳)의 후대 황제들이 한결같이 흐리멍텅하고 주색에 빠져 있었으니, 곧 사마의(司馬懿)의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진(晉)을 세우고, 세 나라를 모두 통합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진나라 역시 오랜 전란으로 통일이 되자마자 곧 굳건히 천년만년 지속될 나라의 기틀은 마련하지 않고, 곧 안주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 후의 시대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였으며, 우리나라와는 고구려(高句麗)와 그 국경을 맞대하고 있었다.
또한 이 때에 백제(百濟) 또한 대륙에 진출하였던 시기라고 여겨진다. 백제의 대륙 진출에 대해서는 역사가 깊이 잠을 자고 있고, 그 종적이 묘연하니 알 수 없어도, 신빙성을 둘 수 있음은 소소한 문헌들의 것인데, 부정할 수 없어도 사실이라 크게 주창할 수 없음이 크게 안타깝다.
천수백년을 두고 회자되어 온 백미(白眉)란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것이 사전의 내용이다. 어쨋든 마량 또한 그의 형제들 또한 지금으로 치자면 나라와 같은, 마치 서양의 절대 왕정과 같은 왕정시대에 애국심과 같은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잃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 형제가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 이전에 높이 살만한 일이다.
그런데, 조조(曹操) 등에는 변절하는 인사가 있었으나, 유비 밑에서는 그리 대단한 변심자가 없었으니, 이 또한 사람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 큰 것이지 원래부터 반골(叛骨)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렇게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무게가 있을 것 같다.
어쨋든 삼국의 세 나라가 싸우는 통에 진(晉)나라가 통일을 했다. 세 나라가 무너진 것이 모두 황제가 환관, 또는 애첩에게 매달려 국가의 안위와 주색을 맞바꾸고, 아첨하는 사람은 늘이고, 진언하는 사람은 멀리하거나 죽임을 내렸으니, 이렇게 해서는 나라들이 애시당초 안 망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동양의 고대 왕정국가들은 내부의 분란이 있거나, 또는 주군된 자가 아둔하거나, 또는 주색을 탐닉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일들이 생기는 것이니 이런 일들을 족히 말기적 현상이라고 봄직도 한 것 같다.
하여튼 백미(白眉)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수신(修身)에도 자신의 식견에도 스스로의 학식에도, 자신의 덕에도, 그리고 세상의 약속에 대한 준수와 더불어 되도록이면, 지행일치(知行一致) 언행일치(言行一致) 하는 일은 굳이 겉으로 도드라지는 것 이외에 더 큰 백미(白眉)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일생동안 자신의 밖을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는데,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어떻게보면 그 의미만 알아들을 뿐, 그 하나하나 세세한 것들까지 이해하기라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여하튼 백미(白眉)의 뜻이라는 것은 이런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해본다.
백미(白眉)
백미(白眉)와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마씨 일가는 당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던 후한(後漢) 형주의 명문세가로 읍참마속의 주인공 마속은 마씨 일가 5형제 중 막내로 그리고 백미(白眉)의 주인공 마량은 장남으로 태어났다 .
그런데 기록상 남아있는 출생년도를 보면 마량이 서기187년, 마속은 서기 190년으로 3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당시의 기록이 엉터리였거나 누군가 잘못 기재한 것 아닌가 생각되는데 두 사람의 출사(出仕) 시기와 촉(蜀)나라에서의 활동상 등으로 보아 최소한 5-6살 또는 그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속에게 있어서 마량은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마량에게 있어서도 마속은 마치 자신의 부족함을 대신해 줄 남다른 동생이었던 것 같다.
마량은 백미(白眉)의 주인공답게 특히 문기(文器)에 뛰어나 후일 촉(蜀)의 시중(侍中)에까지 올랐으나, 한(漢)의 멸망과 춘추전국의 난세가 도래할 것을 미리 알고 문기와 무기의 자질을 동시에 갖춘 막내 마속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마량의 머릿속은 문기를 키워 법가(法家)를 가르치고 무기를 북돋아 병가(兵家)를 익히게 한다면 마속을 통해 이 난세에 다시 한 번 마씨 가문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므로 마속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 가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배경에는 이와같은 큰형 마량의 혜안과 문무를 겸비한 마속의 특출한 자질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백미(白眉)를 탄생시킨 마씨 집안의 자식답게 마속 또한 문기에 더 능한 현학적(衒學的) 천재로서 무기를 살려 야전에서의 경험을 쌓기보다는 주로 제갈공명의 옆을 지키며 장자방 역할에 충실했으니 이것 또한 읍참마속의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실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이론일 것이고 그 실전이란 것이 경우마다 다를 것이므로 공명의 장자방 역할에 충실하느라 다양한 실전경험을 갖지 못했던 마속으로서는 가정전투가 애시당초 능력밖의 일이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공명(孔明)에게도 있다. 공명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그렇게 뛰어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훨씬 뛰어났던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영웅 유비를 보필하면서 유비와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가 더욱 빛났던 것이다. 유비 사후 촉(蜀)의 멸망 과정을 보면 그의 능력이 별볼일 없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유비 사후를 보면 공명이 늙어서 그가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게 아니라 자신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써줄 유비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속을 죽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유비는 이미 마속이 문기에 더 능하고 대부분의 문사(文師)들은 입만 가지고 먹고 사는 존재들이므로 마속을 중히 쓰지 말라 하였다. 그것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런데 공명의 생각은 달랐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능력차이다.
유비와 공명과의 관계가 빛을 발했듯 공명 자신은 마속과의 관계를 그렇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장자방으로서의 마속은 공명을 능가했으나 제왕역으로서의 공명은 유비를 따를 수 없었으므로 마속을 죽음으로 내몰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마속은 유비 치하의 공명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으나 공명은 유비치하의 유비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유비가 가정전투에 공명을 보냈다면 패했을까? 패했다면 읍참공명(泣斬孔明)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대목이다.
유비는 수십번의 패배에서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휘하의 장수들을 죽이지 않았다. 죽이지 않고도 기강을 유지하고 전투에 임하면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명은 자신의 후계자로 키웠던 장자방 마속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채 가장 중요한 전투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참패하자 군율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참수하고 진중에 목을 내걸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할 수 밖에 없었던 공명의 촉(蜀)은 이미 망한거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미루어 짐작컨데 조조의 천하통일은 제갈공명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미(白眉)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중 가장 뛰어남을 이르는 말이다.
촉나라 유비가 형주를 다스릴 때였다. 형주에는 자(字)에 모두 상(常)이 들어가는 다섯 형제가 있었다.
형주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불렀는데 하나같이 재주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눈썹이 흰(白眉) 마량의 재주가 특출났다.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서 형주 사람들은 그를 흰 눈썹, 즉 백미라고 불렀다.
유비는 그에게 두루 중책을 맡겼고, 제갈량은 마량과 의형제를 맺었다.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참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마속은 마량의 동생이다.
같은 또래, 또는 같은 분야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사람을 백미(白眉)라고 부르는 건 삼국지 촉지 마량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쓰임이 넓어져 현재는 사람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일컬을 때도 백미라는 표현을 쓴다. 백미는 재능에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거지가 시기하는 사람은 백만장자가 아니다. 그건 자기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거지다.”
인간은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은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러러보고 존경한다. 시기의 대상은 자기보다 처지가 조금 나은 사람, 자기와 엇비슷한 사람이다. 그러니 당신이 누군가를 시기한다면 그건 당신이 기껏해야 그와 같거나 그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니체는 “경기는 완벽하게 이길수록 좋다”고 했다. 그래야 상대가 아쉬움으로 상처받지 않고 승자를 오롯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인생이란 게임에서 완승하려면 갈고 닦아야 한다. 재능을 닦고, 학문을 닦고, 인품도 닦아야 한다.
백(白)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희고, 흑(黑)은 아무리 감춰도 검다. 인품은 안으로 품을 때 더 깊어지고, 말은 한 박자 늦출 때 더 믿음이 생기고, 행(行)은 한 걸음 빠를 때 더 나아간다.
광이불요(光而不耀), 노자는 “빛나도 눈부시지는 말라”고 했다.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남이 알아주는 게 진짜 백미다.
백미(白眉)
원래는 형제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의미가 확대돼 여러 사람이나 사물 중 가장 출중한 존재를 가리킬 때 쓰인다.
촉나라 마량(馬良)이라는 사람은 다섯 명의 형제가 있었다. 형제들의 이름에는 모두 상(常)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들 형제를 '마씨 五常'이라 불렀다.
다섯 형제들은 모두 재주가 뛰어나 명성이 자자했다.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마씨의 오상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白眉가 가장 훌륭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백미는 어렸을 때부터 눈썹에 흰털이 나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백미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백미 일화는 나중에 세상에 두루 퍼져 형제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 중 능력이나 솜씨가 출중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사물이나 문장, 예술작품 등에도 적용돼 빼어난 경우 백미라고 한다. 비슷한 뜻으로 영탈(穎脫)과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있다.
영탈은 영탈이출(穎脫而出)의 준말로 뾰족한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 말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자성어가 낭중지추(囊中之錐)다. 뜻풀이도 똑같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뛰어나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군계일학은 닭의 수많은 무리 가운데 한 마리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이른다.
백미와 대(對)가 되는 말에는 난형난제(難兄難弟)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간 어떤 것이 더 낫고 낮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나 솜씨, 가치가 막상막하다는 얘기다.
▶️ 白(흰 백)은 ❶상형문자로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희다, 밝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白자는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白자는 촛불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갑골문에 나온 白자를 보면 타원형 중심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촛불의 심지와 밝게 빛나는 불빛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白자는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자는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곤 했다. 손톱이나 쌀알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白자가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을 보면 본래는 촛불을 그렸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白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白(백)은 (1)백색(白色) (2)백지 (3)백군(白軍) (4)성(姓)의 하나 (5)백국(白國). 곧 벨기에 등의 뜻으로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분명하다, 명백하다 ④진솔하다 ⑤밝다, 밝아지다 ⑥빛나다 ⑦비다, 가진 것이 없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탄핵하다 ⑨흘겨보다, 경멸하다 ⑩흰빛 ⑪백발(白髮) ⑫대사(臺詞) ⑬술잔 ⑭비단(緋緞), 견직물(絹織物) ⑮볶은 쌀 ⑯소대(小隊: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⑰거저, 대가(代價) 없이 ⑱부질없이, 쓸데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흴 호(皓),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흑(黑)이다. 용례로는 흰 눈을 백설(白雪),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빛깔이 흰 종이를 백지(白紙), 흰 빛을 백색(白色), 대낮을 백주(白晝), 흰 빛깔의 기를 백기(白旗),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늙은이를 백수(白叟),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을 고백(告白),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깨끗하고 흼 또는 죄가 없음이나 공명정대함을 결백(潔白),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음을 공백(空白),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을 자백(自白), 검은빛과 흰빛으로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흑백(黑白),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일컫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또는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을 이르는 말을 백운고비(白雲孤飛),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아무 것도 없거나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백지상태(白紙狀態),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흰 모래톱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백사청송(白沙靑松),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수건달(白手乾達), 서로 백발이 되기까지 사귀어도 마음을 알지 못하면 새로 사귄 것이나 같다는 뜻으로 친구가 서로 마음을 몰랐던 것을 사과하는 말을 백두여신(白頭如新),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마비마(白馬非馬),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흰 옥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옥무하(白玉無瑕) 등에 쓰인다.
▶️ 眉(눈썹 미)는 ❶상형문자로 눈썹의 형상이다. 그래서 눈을 더 그려넣어 눈썹을 표시했다. ❷상형문자로 眉자는 '눈썹'을 뜻하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眉자를 보면 目(눈 목)자 위로 눈썹이 그려져 있었다. 소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변형되면서 지금의 眉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眉자가 들어간 글자 중에는 여럿 중에 '가장 으뜸이다'는 뜻으로 쓰이는 백미(白眉)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촉나라 때 마량(馬良)의 5형제 중 흰 눈썹을 가진 량(良)의 재주가 가장 뛰어났다는 데서 온 말이다. 그래서 眉(미)는 ①눈썹 ②노인(老人), 눈썹 긴 사람 ③언저리 ④가장자리 ⑤둘레 ⑥미녀(美女) ⑦알랑거리다 ⑧교태(嬌態)를 부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눈썹먹 대(黛)이다. 용례로는 두 눈썹의 사이를 미간(眉間), 이마의 눈썹 근처를 미우(眉宇), 눈섭과 눈 또는 얼굴 모양을 미목(眉目), 눈 같이 흰 눈썹을 미설(眉雪), 눈썹 모양 같이 된 초승달을 미월(眉月), 두 눈썹의 사이를 미심(眉心), 미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미채(眉彩), 새의 눈 위에 세로 박인 무늬를 미반(眉斑), 미인의 눈썹을 미부(眉斧), 눈썹과 눈을 이르는 말을 미첩(眉睫), 눈썹 모양과 같이 생긴 논밭을 미전(眉田), 짐승의 꼬리에 난 털을 미모(眉毛), 수염과 눈썹을 수미(鬚眉), 근심에 잠긴 눈썹 또는 근심스러운 기색을 수미(愁眉), 머리와 꼬리 또는 처음과 끝을 두미(頭眉), 초승달 모양의 눈썹을 곡미(曲眉), 미인의 눈썹을 가리키는 말을 유미(柳眉), 흰 눈썹 곧 노인의 눈썹을 상미(霜眉), 아주 빼어나게 아름다운 눈썹을 수미(秀眉), 노인의 눈썹 중에서 가장 긴 눈썹을 수미(壽眉), 좌우의 두 눈썹을 양미(兩眉), 긴 눈썹을 이르는 말을 장미(長眉), 눈썹을 그림 또는 그린 눈썹을 화미(畫眉), 가는 눈썹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섬미(纖眉), 좌우의 두 눈썹을 쌍미(雙眉),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백미(白眉), 눈썹에 불이 붙은 것같이 매우 위급함을 초미(焦眉), 눈썹을 마주 친다는 뜻으로 서로 가까이 지냄을 이르는 말을 박미(拍眉), 마음의 근심을 푸는 일을 개미(開眉), 바싹 가까이 닥침을 박미(迫眉), 삼가 얼굴을 뵘을 배미(拜眉), 고개를 숙임 또는 굴복함을 저미(低眉), 찡그렸던 눈썹을 바로 폄 곧 마음이 안심하는 일을 전미(展眉), 눈살을 찌뿌림을 빈미(顰眉), 눈썹을 찡그림 또는 그 눈썹을 추미(皺眉), 두 눈썹 사이가 좁은 인상을 축미(蹙眉), 버들잎의 푸른 모양 또는 푸른 눈썹이란 뜻으로 화장을 한 눈썹을 취미(翠眉), 눈썹이 가고 눈이 온다는 뜻으로 서로 미소를 보냄을 이르는 말을 미거안래(眉去眼來), 눈썹과 눈이 수려하다는 뜻으로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미목수려(眉目秀麗), 눈썹이 타게 될 만큼 위급한 상태란 뜻으로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매우 다급한 일이나 경우를 비유한 말을 초미지급(焦眉之急),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일컫는 말을 거안제미(擧案齊眉), 맑고도 밝은 눈과 성긴 눈썹을 일컫는 말을 낭목소미(朗目疎眉), 눈썹이 타는 재액이라는 뜻으로 매우 급하게 닥치는 재앙을 이르는 말을 연미지액(燃眉之厄), 맑고도 밝은 눈과 성긴 눈썹이라는 뜻으로 청수한 모습을 이르는 말을 낭목소미(朗目疎眉),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편다는 뜻으로 고고하여 굽히지 않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을 앙수신미(仰首伸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