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학의 성격 논쟁
1. ‘민속학’은 보통 벽지에 숨어있는 풍속을 연구하거나 남아있는 민중들의 유무형적인 전승을 통해 민족 고유의 특질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민속’의 핵심을 ‘古俗’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며, 고속에는 민족이 오랫동안 유지지속하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이 담겨져 있다고 가정한다. 민족 고유의 특정적 성격이 기층적 삶을 유지하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본질적 특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태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2. 이러한 민속학의 주류적 연구태도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역사와 문화를 연구했던 손진태였다. 손진태는 해방후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주장하면서 민속학의 목표와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지었다. “민속학은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여기서 민족이라고 하는 술어는 지배 귀족계급을 포괄하는 광의의 말이 아니요, 민족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과 상공어민 및 노예 등 피지배계급을 의미하는 것이니, 따라서 민족문화란 것은 귀족문화에 대한 일반 민중의 문화를 이르는 것이다.” 이렇듯 손진태에게 ‘민속학’은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것이며, 그것의 대상은 민중을 중심으로 한 기층문화가 되는 것이다.
3. ‘본질주의’와 함께 민속학의 또 다른 중요한 패러다임은 ‘복원주의’이다. 급속하게 변모하는 현대문명의 침투 속에서 무너져가는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존가치가 있고 민족적인 본질을 지닌 민속을 찾아 보존하고 더 나아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원주의적 목표는 해방 이후 ‘민속경연대회’를 통해 각 지역의 민속예술이나 민속놀이를 찾는데 주력하게 하였고 그 중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것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세력은 실제로 각 지역에서 문화를 계승하였던 민중이 아니라 문화재 지정을 위해 규칙을 제정하고 거기에 맞춰 풍속을 재구성했던 전문가들이었다.
4. 이러한 사례를 <봉산탈춤>이나 <강릉단오제>를 통해 알 수 있다. <봉산탈춤>은 민족문화를 복원하려는 민속학자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된다. ‘봉산탈춤’이 탈춤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공연이 전국적으로 방송되었고 국민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봉산탈춤’ 복원에 노력을 기우렸던 송석하는 경성에서의 공연을 추진했고 식민지 정부 또한 조선민중들에게 효과적인 오락수단을 제공하여 민심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하였다. 해방 후 벌어진 ‘민속경연대회’ 또한 민족문화의 복원 및 국민들의 정서함양을 위한 국가적 목적을 위해 실행되었으며, 이때 우수 민속으로 지정된 것들을 결정한 사람들은 민속학자들이었다. 그들의 관점을 통해 경연대회 수상작이 결정되었고 그것은 연이어 ‘무형문화재’로 선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5. <강릉단오제> 또한 민속학자의 영향력이 얼만큼 민속의 원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 민속학자 임동권은 무형문화재 선정을 위해 풍속의 의미를 재구성하였고 단오굿의 순서를 바꾸었으며 당시 상황에 맞게 단오굿의 특징을 정리하였면서 ‘단오굿’에서 ‘단오제’로 명칭을 바꾸었다. 민속학자의 기획 속에서 새롭게 ‘기록된 원형’이 수립된 것이다. 단오제의 세부적 구성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선정을 계기로 또다시 미세한 변화를 겪게 된다. <봉산탈춤>이나 <강릉단오제>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본래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형’에 대한 집착은 민중의 민속에는 어떤 중요한 민족적 핵심이 있으며, 그것은 외형의 변화 속에서도 내면 속에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는 나치즘 민속학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민속문화 사례를 통해 현재의 형태는 과거의 원형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상황과 다양한 콘텍스트의 교섭을 통해 끊임없이 변모하였고 새롭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6. 민속학자 남근우는 『한국 민속학의 재고』라는 책에 실린 논문들을 통해 한국 민속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본질주의와 복원주의적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원형의 민족문화에 대한 환상은 과학적 정밀성을 상실한 낭만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복원’에 중점을 두고 시행되고 있는 경연대회나 무형문화재 정책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민속의 근본적 성격을 왜곡하고 민속학자들의 권력이 개입된 ‘만들어진 민속’의 형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민속학의 목표가 ‘잔존하고 있는 고속’을 통해 민족문화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수립하겠다는 형이상학적 신화에 사로잡혀 ‘과거’에만 집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7. ‘과거학’으로서의 민속학은 사실 지속불가능한 학문이 되고 있다. 민속의 특성상, 기록된 문헌의 수는 극히 희소하고 문명의 변화 속에서 남아있던 농어촌의 민속 또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아있는 민속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는 민속학의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과거학’에서 ‘현재학’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학’으로서의 민속학은 현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적 태도를 역동적으로 탐색하고 그것을 통해 문화적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도시 민속학’이 새롭게 대두되고 ‘역사민속학’이 등장하였으며 ‘비교민속학’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것은 ‘민속학’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8. 남근우는 특히 일상적인 민중들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서 민속학의 새로운 과제를 찾는다. 과거의 것에서 민족문화의 본질이나 원형적 문화 추적이 어렵다면 현재 만들어진 형태가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기능을 하고 있으며 그것에 미친 정치권력의 성격은 어떤가에 대한 연구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반본질주의 민속학의 지향할 바는 민속의 ‘구제 보존론’이나 관변 축제화, 문화 유산화 등과 같은 기왕의 체제지향적인 실천이 아니라 생활현장의 중층적이고 다성적인 주체들이며, 그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미시적 현장성에 대한 응시와 비판적 이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실천적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9. 남근우의 저작을 통해 얻게 된 정보는 현재 내가 탐구하고 있는 가면극의 형태가 어떤 원형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계보적 접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형태 수립에 어떤 집단이 관여하였고 그들의 권력과 영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였으며 그런 과정에서 지역적인 변화에 끼친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었는가를 현재 만들어진 형태에서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가면극의 지역적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함으로써, 가면극이 각 지역에서 형성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핵심과 함께 차이를 가져온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현대적 적용이었던 ‘마당극’의 가치와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 또한 민속학적 접근일 것이다.
첫댓글 - 민속학과 가면극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