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닷컴> 칼럼
신무문관: 영운경불의(靈雲更不疑)
[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4.
성찰배경: 부처님오신 날에 즈음해 우리 모두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일생에 관해 세밀히 살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세존의 바른 깨달음[正覺]과 그 이후의 전법여정이 종교를 넘어
지구촌 길벗들에게 두루 통할 수 있는 영성지도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2500여 년 전 보리수 아래서의 정각은 불교의 출발점이라 사료됩니다.
또한 불교의 여러 갈래 가운데 선종(禪宗)의 수행자들 역시 깨침의 증거의 하나인
‘오도송(悟道頌) 짓기’를 포함해 정각 체득 가풍을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한편 칼럼의 순서상 마침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 선사나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선사에
필적할 만한 역량을 갖춘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에 관해 다룰 차례이기도 해서,
이번 글에서는 세존의 정각과도 맞닿아 있는 역대 조사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애송되고 있는 그의 오도송과 선풍을 중심으로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 깨침에 대한 고찰
깨침에 관한 기연은 ‘소리를 듣고 깨치다[聞聲悟道]’를 포함해 다양한데, 여기에서는 이 가운데
‘사물을 보고 깨치다[見色明心]’에 관한 대표적인 동양과 서양 사례를 다루고자 합니다.
동양 사례: 영운경불의(靈雲更不疑)
먼저 <조당집(祖堂集)> 제19권에 기록되어 있는, 위산 선사께서
영운 스님을 인가(印可)하는 대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운 화상은 위산 선사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영운 선사의 휘(諱)는 지근(志勤)이며, 복주 출신이다.
대위산(大溈山)의 위산 선사 문하에 입문해 스승의 법문을 들으며 밤낮으로 피로함도 잊고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을 간절히 그리워하듯이 치열하게 수행을 하니, 그와 견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우연히 어느 봄날 복사꽃이 무성하게 핀 것을 보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즉시 게송을 한 수 지었다.
30년 동안 지혜의 보검(寶劍)을 찾아 헤매던 나그네여.
그 몇 차례나 꽃이 피고 또한 가지에 새잎이 돋았던가?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다음부터
지금까지에 이르기까지 다시 의심 없네.
[三十年來尋劍客. 幾逢花發幾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그러다 어느 날 영운 스님이 위산 선사께 자신의 깨달은 선지(禪旨)가 담긴 이 게송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 ‘인연 따라 철저히 깨달아 통달한 경계는 영원토록 후퇴해 사라질 수 없느니라.[從緣悟達 永無退失.]
그대가 이제 이미 그와 같으니 스스로 잘 지켜 지니며 향상(向上)의 길을 걷도록 하여라.’라고 격려하셨다.”
군더더기: 참고로 영가현각(永嘉賢覺, 665-713) 선사는 스승 없이 홀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깨달은 체험을 바탕으로 지은 가장 긴 오도송이 담긴 <증도가(證道歌)>를 저술하였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 가운데 핵심은 깨침과 상보적(相補的)인 다음 구절이라 사료됩니다.
다만 근본(根本)을 깨닫고 나면 지말(枝末)은 근심하지 않네.
마치 맑은 수정구슬[琉璃]이 보배의 달을 머금은 듯하니
지금 이 순간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이 여의주를 바르게 통찰하고 나면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 결코 쉼 없으리.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含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歇.]
한편 종달 선사께서도 80세가 되던 해에 출간한 회고록 <인생의 계단>을 통해
‘재득조주무자(纔得趙州無字) 일생수용부진(一生受用不盡)’이란 게송을 제시하셨는데,
이를 풀어서 새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까스로 조주 선사의 ‘무(無)’자(字) 화두를 투과한 이후, 이 통찰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일깨워주기 위한 이타자리(利他自利)의 삶을 일생 동안 쉼 없이 살았노라!”
서양 사례: 지식과 지혜의 극명한 차이[知智懸隔]
한편 필자가 삼십여 년 간 몸담았던 서강대학교는 예수회라는 가톨릭 수도회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서강대학교 교육 이념의 밑바탕에는 ‘온몸을 던져 이웃돕기’를 포함해 참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셨던
설립자이신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영성체험이 깔려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성지순례 도중 만레사라는 작은 마을에서 묵상기도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하느님과의 일치체험, 즉 진정한 참나를 체득하게 됩니다.
그후 이 체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예수회가 있게 되었는데,
그는 만년에 쓴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20대에 만레사라는 시골 마을의 어귀에 있는 동굴에서
1년 정도 지내던 어느 날 마을을 끼고 흐르고 있는 카르도넬 강변을 거닐다,
강물에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이때의 일순간의 체험은
내가 지금 62세까지 배운 모든 지식을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는다고 해도 결코 체득할 수 없는 지혜로운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덧붙여 지금까지 필자가 접했던 깨침 체득에 관한 사례들 가운데 동양과 서양을 통틀어,
비록 그 경지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표현이라 사료됩니다.
(생략)
◇ 영운 선사의 선풍 엿보기
<조당집祖堂集> 19권 ‘영운화상’ 편에서 그의 선풍(禪風)을 다음과 같이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불자(拂子) 세우기 계승
(생략)
영운려마(靈雲驢馬)
영운 선사께서 제창한 ‘영운려마(靈雲驢馬)’ 공안은 이조 말기
경허성우(鏡虛惺牛, 1846-1912) 선사로 하여금 크게 깨닫게 한,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화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운 선사께서 처음에 영응사(靈應寺)를 창건하고 나중에 영운(靈雲)에 머무르니, 뛰어난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 처음 뵈러 와서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如何是佛法大意.]’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당나귀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말의 일이 닥쳐오는구나.’[驢使未了 馬使到來]”라고 제창하셨다.
군더더기: 자! 여러분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영운 선사의 이 제창에 대해 어떻게 응대해야
당나귀니 말이니 하는 분별에서 자유로운 ‘려마불이(驢馬不二)’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생략)
결국 모름지기 우리 모두 진정한 불제자라면 일상 속에서 날마다 치열하게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걸으며,
임종하기 전 반드시 어느 때인가 문득 모든 사려분별이 철저히 끊어진,
석가세존의 정각과도 맞닿아 있는 ‘다시 의심 없는 경지’로 나아가야겠지요!
<불교닷컴> 원문 기사자료: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52237
법경 노사님의 칼럼을 통해 이냐시오 성인의 깨달음 체험을 접하게 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원문 보기: 통찰과나눔/통보선 - <불교닷컴> 칼럼 54. 신무문관: 영운경불의(靈雲更不疑) (seondoho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