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 서품 받고 하루가 지났다.
1998년 2월 12일,
대구 계산 주교좌성당.
그 성당 제단에서 어릴 적 첫영성체를 하고
국민(!)학교 4학년부터 복사도 하였다.
학창 시절 그리고 신학생 시절에도
성당제단을 오르락거리기는 하였었다.
그 날은 달랐다.
내가 제단의 중심에 있었고
많은 선배 신부님들은 제단을 가득 채웠다.
나의 첫 미사 봉헌!
말씀과 성체로 함께 계시는
그분의 사제가 된 것이다.
선배 신부들의 첫미사에 가면
눈물바다가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너무 말짱해서인지
미사가 끝난 뒤 어느 선배신부님께서
'오늘 새신부는 10년 차쯤 된 것 같다'면서
장난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첫미사를 봉헌하던 날,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감사와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시편 8,5)라는 서품성구처럼
인간으로서 감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의 성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님! 제가 무엇이기에
이런 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십니까?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일까?
아직도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로 살고 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한다.
첫미사 때의 그 기억은 아련하지만,
미사를 드리기 전 항상 기도한다.
'이 미사가 저의 마지막 미사인 것처럼
봉헌합니다.'라고.
첫미사 때도 그렇게 기도했다.
그래서 그 첫미사는 나의 마지막 미사였다.
매번 드리는 미사 또한 나의 첫미사이며,
나의 마지막 미사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
낙담한 두 제자의 공허한 발걸음은
유난히 먼지를 많이 뿜어낸다.
스승 예수,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기대했었다.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었었다.
그러나 십자가 형틀에서 비참하고 나약하게
죽어버린 스승이 원망스럽다.
그들의 마음은 허탈하다 못해
자신들에게 화가 났다.
이 무슨 꼴이냐고...
그러나 예수님께서 동행하신다.
낙담과 절망, 분노와 회한의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미사를 봉헌하셨다.
그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빵을 떼어 나누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당신을 보여 주셨다.
첫미사치고는 신자들이 너무 적다.
겨우 두 명!
사제들은 모든 미사에서
예수님의 이 첫미사이자 마지막 미사,
유일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빵을 나누면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되도록 사제는 미사를 봉헌한다.
신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주님의 현존을 깨달아 가슴 벅차도록 만들기에는
아직 멀었다. 예수님의 첫미사를 흉내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그 첫미사를
봉헌한다. 그 부족함을 너그러운 신자들은
자신들의 기도로 채워주니 또 감사할 따름이다.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고 정점"이며
(교회헌장 11항)
"가톨릭 신앙의 요약이자 집약"이다.
(가톨릭 교리서, 1327)
이 구원의 성사가 없이는 교회는 죽은 공동체이다.
의무감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가 되는 순간.
미사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가 되는 순간,
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종교 분열 이후 성사에,
특히 성체성사에 집중하였다. 반대자들이 성사를
거부하고 성경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사도 같이 중요해!"에서
"성사가 중요해"로 되었다가
"성사만 중요해"가 되었던 것이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서서히 균형을 잡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지금은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도록 여러 방면으로 이끌고 있다.
말씀과 성찬은 똑 같이 중요하다.
말씀 없는 성찬은 무의미하고,
성찬 없는 말씀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둘은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하나의
예배를 이룬다."(전례 헌장 57항)
예수님은 길에서 성경을 가르쳐 주셨고
어느 집에서 빵을 나누셨다.
말씀과 성찬을 둘 다 베푸셨다.
말씀의 전례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미사를 통해 사제는 사제대로,
신자들은 신자대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신앙공동체의 미사에 함께 함으로써,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말씀과 성체를 통해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다.
과연 나는 미사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기도하는지,
거룩한 교회공동체의 일원이기를 바라는지,
각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주일미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성경을 공부한다거나 레지오 마리애에 참석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지식쌓기나 친목모임에 불과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
엠마오로 가는 길,
그 길은 실망과 좌절의 길이 아니라
기쁨의 길이며 희망의 길이다.
감사와 찬미의 길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길이다.
예수님의 첫미사,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사이다.
첫댓글 신부님, 늘 묵상할 수 있는 울림이 있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익숙함에 의해 소중함을 잊고 사는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부활절 미사에서 성체를 영하고 느꼈던 그 감격을 떠올리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빵을 나누면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시간!”
그 미사에 초대받은 우리는 참 행복합니다.
말씀과 성찬의 전례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어린이미사도 재개되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