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여행기
이영호
교장실에서 나를 찾는다고 해서 가보니 교장 선생님이 나보고 그동안 우리 학교의 대학입시 지도로 고생이 많았다며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라고 한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12월 3일부터 5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이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9월부터 남북분단 50여 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물꼬를 트는 등, 남북 관계를 급진적으로 진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집념으로 이루어낸 성과이다.
금강산 관광에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 드디어 출발 날짜가 내일이다. 선례임에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여행 준비를 하여 집결지인 강남 현대 백화점 주차장에 7시까지 늦지 않게 택시를 타고 도착하였다. 인솔 책임자에게 신고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먼저 온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2003년 12월 3일, 오전 7시 50분에 버스는 출발, 금강산관광 코스가 처음에는 동해항에서 북한의 장전항까지 배로 이동 군사분계선을 넘었는데, 이번부터는 해로관광을 중단하고 육로로 민통선 군사분계선을 넘게 된다고 한다.
12시쯤 통일전망대에 도착 점심을 한 후, 강원도 고성군 육로 버스로 이동하기 시작 민통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입국수속 후 DMZ 경유하여 북측 땅에 들어서자 북측 군인들의 엄중한 검문검색을 받기 시작, 오후 6시경 온정각에 도착하였다. 가는 도중에 북한 무장군인들의 여러번의 검문검색이 있었고 입국심사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온정리 장전항 내 바지선 위에 5층 건물인 해금강호텔이 있고, 지나서 온정각에 있는 금강산호텔로 우리를 안내한다. 북측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이 묵었던 호텔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온 선생님에게 특별히 우대해서 김정숙 호텔로 모신다고 하면서 안내한다.
안내원이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모두들 기쁨조 인지 이쁘다. 호텔에서 숙소로 안내하는 도중, 갑자기 전깃불이 나가서 배정을 못 하고 촛불을 켜고 기다렸다. 북한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30분 후 자가 발전기로 전기가 들어와서 배정을 받았다. 나는 6층에 배정받았는데, 2인 1실로 깨끗하고 아늑하다. 합숙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호텔 룸으로 나와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냥 있기도 뭣하고 해서 합숙 선생님과 같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온정각 룸에서는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건너편에 식당 간판이 줄지어 있어 그곳으로 가서 민족 식당에 들렀다. 식당의 종업원은 우리들을 환영하며 좌석으로 안내한다. 안주와 북한 소주를 주문했다. 한잔할 때마다 종업원이 옆에 서서 잔을 채워준다. 앉으라고 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계속 서서 시중을 든다.
종업원은 대부분 조선족이라고 한다. 남한에서 온 선생님인 줄 알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 남북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그것에는 동감한다. 같이 온 선생님이 아는 선생님 3명을 불러 다섯 명이 되었다.
노래방 기기도 있어 우리는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고 종업원들에게 노래 신청하면 꼭 북한 노래를 부른다. 나올 때 술값은 공동부담을 하기로 했다. 우리 한화가 아닌 달러를 받는다. 일 인당 25불을 부담했다. 두 종업원에게 팁을 주려고 하니 주인의 눈치를 보며 받지 않는다.
12월 4일, 오늘부터 관광이 시작된다. 오전 7시까지 식사, 8시에 온정각에서 버스로 구룡연 입구 주차장에 도착, 구룡폭포를 다녀오는 코스다. 구룡연을 향해 걷기 시작, 군데군데에 여자들이 커피나 음료수를 팔고 있다. 한참을 걷다가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고 해서 삼록수라 이름을 붙인 곳이다. 이 물을 마시면 10년은 젊어진다고 해서 한 바가지 떠서 마셨다.
비봉 폭포는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꼬리를 휘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 옛 선녀들이 춤추다 목욕했다는 옥류탕 검푸른 물로 보아 수심이 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낙하하는 높이 74m, 넓이 4m의 구룡폭포는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 폭포 밑에는 13개의 구룡연이 있고 그 위에 여덟 개의 맑고 푸른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 해발 880m에 상팔담(上八潬)이 있다. 세계에서 보기드문 특징을 갗춘 폭포이다. 무엇보다 눈에 뜨인 우람한 바위와 벽면에 대형 붉은 글씨, 위대한 수령 김일성, 김정숙 만수무강, 찬양하는 글들이다.
온정각으로 오는 길목에 신계사(神溪寺)에 들렸다. 버스는 우리를 사찰 입구에 내려주었다. 현재 절을 지키고 있는 스님이 우리들을 맞아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세존의 정기를 이어받아 신라 법흥왕 6년, 보온 스님이 창건한 신계사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절이었는데, 6, 25 전쟁 때 소실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계종 총무원이 북측과 협의해 대웅전만 복원해놓은 상태다. 고승인 석두(石頭), 효봉(曉峰)스님 등을 배출한 곳이라고 한다.
하산하여 버스를 타고 차창 너머로 보는 온정리 마을 집들은 지붕과 벽이 퇴색되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집 같아 보이고, 초등학교라고 하는 낡은 건물이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드물게 보인다.
온정각에 도착하니 12시다. 오후에는 현대 아산에서 운영하는 온천장에 들려 노천탕을 오가며 그동안의 피곤했던 몸을 풀었다.
오후 4시 30분부터 평양 모란봉 교예단, 서커스 공연이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있었다. 북한을 대표하는 교예단이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인민배우, 공훈 배우들 초일류 배우들의 공중회전, 널뛰기, 장대 재주, 봉 재주 등 매공연 마다 가슴 졸이는 감동과 감탄을 자아낸다. 관람하는 동안 가슴이 뭉클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12월 5일, 어제저녁 식사 때 인솔 팀에서 일정상 2개 조로 나누어 만물상과 삼일포와 해금강 돌중에 택일하라고 한다. 나는 삼일포와 해금강을 택했다. 8시에 출발 버스는 해금강과 삼일포를 향해 달린다.
논밭을 지나고 해변가를 지나 30분 거리에 해금강에 도착, 바다를 향해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북한 감시원들이 경고를 한다. 군사적 기밀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시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삼일포로 향했다.
삼일포는 관동 팔경중의 하나로 신라시대 4국선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고 해서 삼일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일포에는 큰다리가 연결되어있다.
1시 음식점에 들려 평양냉면, 뷔페식 둘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냉면은 조금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나는 기다렸다가 냉면을 먹었다.
2시 숙소에 들러 귀국 준비를 하면서 매점에 들러 북한 들쭉술 두 병을 샀다. 오후 4시에 출국 수속을 하는데 검색대에서 까다로운 북한 세관원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남한에서 온 동포인데 웃는 얼굴로 친절을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귀국 후 저녁 식사는 홍천 음식점에서 하면서, 인솔 책임자인 장학관의 이번 행사를 무사히 끝나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씀과 해단식을 가졌다. 9시경에 서울 도착,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10시에 집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이 짧고 한정된 장소였지만, 무엇보다 관광 기간에 긴장되고 국경을 통과하는 것, 전혀오염 되지않은 아름다운 산과 물, 북한은 여전히 사회주의의 폐쇄된 사회에서 엄격한 감시를 받아 가면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민족이지만 경계해야 하는 우리들이 너무나 서글프다.
이념적인 대립으로 남북이 갈라진 체 반세기가 넘도록 지내온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이 없이, 법을 다루거나 집행하는 것이라든지, 개인의 영달과 이기적이고 썩어빠진 정치를 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 고통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어 이산가족의 슬픔을 해결하고 복잡한 절차 없이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003.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