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최초 언론인이자 최초 운동권이었다” 인보길 회장 감옥서 '독립정신' 집필...대한민국 건국이념 완성 대한민국의 시작은 어떠했는가, 대한민국의 건국의 주역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 한 가운데 서있는 인물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이자 초대대통령으로 섰던 이승만 말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우후죽순 일어났던 수십 개의 국가들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에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건국 과정에서의 이승만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되새기고,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와 바로세우기를 하자는 취지로, 자유한국청년회가 11일 한글회관 카페 ‘자유’에서 제1회 자유한국 청년학당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건국정신> 세미나를 주최했다. 세미나는 매월 한 차례씩 열리며, ‘이승만 건국정신’에 대한 세미나는 12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개최된다.
건국이념보급회 대표, 이승만 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발제자로 나서, 이승만의 출생과 성장기, 활동기 등에 대한 반추와 당시 구한말의 급변하던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밝혔다. 발제 후 인 회장은 청중들과의 자유 토론을 통해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건국신화의 시작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인 회장은 발제 서두에서 “이승만은 모든 임시정부의 대표였다”고 밝히며 구체적으로는 “1919년 4월 23일 한성 임시정부 집정관 총재/연해주 임시정부 대표, 1919년 9월 11일 상해 통합임정 대통령,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을 맡았다”고 지적했다. 인 회장은 이어 “고구려는 주몽, 고려는 왕건, 조선은 이성계라면, 대한민국의 시조는 이승만이다”라고 주장했다. 인 회장은 1875년 이승만의 출생 시기부터 역사를 되짚어 가면서 “당시의 조선 정국은 정한론, 운양호사건,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청국의 직접통치체제, 조미 수호조약, 갑신정변 실패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고 밝히면서, 밖으로는 빅토리아의 대영제국,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일본, 비스마르크의 독일, 러시아의 극동 진출 등으로 인해 해외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 회장은 대한제국에 대하여 “자의반 타의반이라기 보다는 러시아의 위성국으로 규정되고 러시아가 하자는 대로 선포된 체제가 대한제국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 회장은 “이처럼 제국주의 치하로 물들어 가고 있는 대한제국 시대 한복판에서, 23세의 언론인 이승만은 최초의 민간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하는 등 1년간 3개의 신문을 창간하고 이를 포함한 4개의 신문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인 회장은 “독립신문은 미국 시민권자인 필립 제이슨(서재필)이 창간했지만, 독립신문의 제작 및 운영에도 이승만이 깊숙이 관여했으며, 이승만은 근현대적 의미에서 조선 최초의 언론인이나 다름 없었다”고 지적했다. 언론인으로서의 몇몇 에피소드를 밝히면서 인 회장은 “이승만은 최초의 언론인이자 최초의 운동권이었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고종이 부산 영도를 러시아에게 비밀리에 조차하려는 움직임을 미리 알게 된 이승만은 일종의 특종을 잡아서 언론활동을 통해 연일 비판을 해댔다. 갖은 시위, 집회를 열어 고종의 영도 조차 시도를 비판하는 운동을 가열차게 행했다. 이승만은 구한말 러시아의 제국주의식 움직임에 반발하여, 언론인이자 시위운동권으로서 활동한 것이다. 이후 박영효를 총리에 앉히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무산된 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성감옥에서 이승만이 체험하며 갈고 닦았던 시간에 대해 인 회장은 “29세의 이승만이 공화주의를 총정리하고, 기독교문명권과 ‘외교 독립론’을 확립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이념을 완성한 시기였다”고 밝혔다. 인 회장의 자세한 설명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성감옥은 이승만에게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전 일종의 훈련기간으로 작용했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감옥 교회와 감옥 학교를 세웠으며, 도서실 신문논설을 집필하고 영한사전을 편찬했다. 청일전쟁기 등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개화파 40여명을 전도해서 평생의 동지로 삼았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승만은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불굴의 선지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훗날 대한민국 건국의 중심 이념으로 작동한 ‘독립정신’을 집필했다. 독립정신의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 회장은 독립정신의 결론과 실천강령에 대하여 이처럼 밝히고 나서, 이승만이 집필한 독립정신의 의미에 대하여는, “자유민주공화국 체제, 자주외교와 독립운동의 방법, 글로벌 수출입 시장 경제론, 교육 및 학문 차원에서 선진국민 만들기로 정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인 회장은 “이승만은 말로 살아간 사람이다. 말을 하고 그 말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이승만은 총이나 칼 없이, 전쟁이나 전투 없이 말과 글을 통해 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그것도 최단 기간 내에 나라를 건국했다”고 밝히며,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건국에서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이승만의 활동과 국내외 역할, 그 의미에 대한 강연은 10월 제2차 자유한국 청년학당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건국정신> 세미나에서 펼쳐진다.
2015.04.18 뉴시스 다음뉴스 오후 서울 종로구 샘터빌딩에서 열린 도서출판 기파랑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기파랑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대표이사... 조선일보 전직 사우모임 '조우회' 송년의 밤에 300여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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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전 국회의장 인지연(41) 북한인권법 통과 모임(NANK) 대표 - 2014.1.7.조선外 http://cafe.daum.net/bondong1920/8dIJ/2323 김지호 객원기자 인씨는 대학에서 의류직물학을, 대학원에서는 서양 정치사상을 공부했다. 부친은 인보길 뉴데일리 사장이다. 30대 초반만 해도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며, 북한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인지연(45) 대한애국당 시울시장 후보 - 2018.4.23.여성 http://blog.daum.net/soonchang4623/2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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