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매월 마지막 토요일은 수필 제출일이다. 그래서 그 주간에는 벼락치기라도 하듯 글쓰기에 전념하게 된다. 당연히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목요일. 평소보다 초안이 늦게 완성되었다. 휴대폰 노트에 쓴 초안을, 제대로 된 공간에 옮기려다 키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글 전체가 사라져 버렸다. 혹시 휴지통에 들어있는 건 아닌가 하여 그곳부터 뒤져 보았지만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쓴 글인데 이토록 한방에 허무하게 사라질 수가. 인터넷을 뒤져 복구하는 법을 찾아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내가 사용한 휴대폰 노트는 메모장 같은 임시공간이라서 키보드 오조작으로 사라진 내용은 복구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최후의 보루인 아들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해 보았으나 결론은 '복구 불가'라는 재확인뿐이다.
문제는 눈앞이 캄캄한 것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잠깐 눈앞이 캄캄했다는 데 있다. 한참을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눈을 감았다. 남편은 옆에서 안타까운 듯이 몇 마디 하다가 허탈해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 덜렁거리다 자주 글을 삭제하는 남편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글의 제목이 <기억을 부르는 소리>였다. 소쩍새 소리, 바람 소리, 금요일 오후의 소리가 순차적으로 기억을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이었다. 그것들과 연관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다시금 감정과 생각을 끄집어내기에 너무 지쳐 버렸다. 결미가 마음에 들지 않아 퇴고를 거치며 슬슬 다듬을 작업만 남겨 두었건만... 어이없는 상실감은 쉬이 복기도, 복구도 허락하지 않는다.
몇 번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겨우 진정하여 이 심정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그동안 글을 대하는 내 자세부터 생각나면서 하나둘 불만스러운 행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맞는지, 어쩌다 얻은 문인이라는 타이틀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듯 문장을 술술 풀어낼 능력도 없으면서 겉멋만 든 것은 아닌지. 내가 만약 유명작가라서 출판사나 신문사로부터 글 청탁을 받았다가 이런 사태를 당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계약 관계에 있고 사회적 위상이 있는 작가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똑같은 작업을 재개하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납기일이 있지만 강제성은 없는 수필 합평 모임이기에 이렇게 넋 놓고 한탄할 틈도 있고 다른 소재로의 글쓰기 전환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내 수준과 위치를 말해주는 듯하다. 산고에 버금가는 수고 끝에 얻은 창작물을 한순간 키보드 조작의 실수로 잃어버린다는 것은 작가정신이 투철한 사람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리라.
글이 사라지고 나서 온갖 상념이 줄을 잇는다. 이번 수필 합평 모임에는 올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인들이 합류하여 수필 합평 광경을 참관할 거라고 했다. 조금 전 날아가 버린 글을 생각해 보니 혹여라도 그들을 의식하여 폼나는 글을 쓰기 위해 겉멋을 부렸던 건 아닌가 싶다. 5년 전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 무엇보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글쓰기를 통해 살아갈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었다. 등단하면 내 마음에 흡족한 글을 많이 쓸 수 있길 바랐다. 열심히 쓰다 보면 누군가가 내 글에 공감해주고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도 내 글을 지면에 자주 발표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한 번씩 10 폰트 크기로 A4지 한 장 반 분량에 불과한 수필을 쓰면서 산고에 버금가는 노고는커녕 납기일을 지켜 글을 제출하는 꾸준함조차 가져 본 적이 있던가? 역량 있는 문인들로부터 내 글에 대한 합평을 받으면서 그들의 의견을 진중하게 반영하여 좀 더 글의 향상을 꾀하려 노력해 본 적이 있던가? 과연 지면에 발표할 정도로 글다운 글을 쓴 적이 있던가?
글이 사라진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기억을 부르는 소리>는 다음 달이고 훗날이고 다시 쓰면 될 터이다. 사실 그 글을 쓰면서 내가 억지 감정을 끌어들이고, 문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면서 글을 쥐어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단 나에게도 감동이 없었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당분간 글쓰기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나의 바닥을 보는 일이 통쾌하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지금이 그 시간이고 그래서 후련한 것이리라. 내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감히 누구의 마음을 움직이려 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