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열차 안의 모든 승객들, 그들은 각자 앉은 자리에서 쓰러진 채 피를 토하고 코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칸 첫 번째 좌석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호스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그는 눈을 뜬 채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열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가방은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가방 사이로 새나오는 무색, 무취, 무미의 바이러스는 이미 전 열차를 뒤덮고 있었다.
오송 질병관리국에 있던 영찬은 동영상에서 경원의 마지막 고백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영상을 내 동료이자 지기인 김영찬 연구원에게 전한다. 이는 마치 내가 마지막을 대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사실 나는 너무 많은 바이러스를 대하는 바람에 몸에 암세포가 가득하다. 이미 말기이기 때문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가뜩이나 심장도 안 좋은데 말기 암이라니. 나는 죽기 전에 진정 인류가 반드시 살아남기를 희망하며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영찬은 박경원의 마지막 고백과 더불어 비밀을 누설하는 동영상에 몰입하느라 발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데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한의 손아귀에 들린 젖은 거즈가 그의 입을 감싸며 시큼한 약물냄새가 순식간에 영찬의 코를 자극했다. 그는 그대로 온몸에 마비가 일어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검은 정장 차림의 키가 큰 남자는 의식을 잃은 김영찬을 들쳐 업었다.
그는 박경원의 노트북을 한 손으로 거머쥐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질병관리국 직원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모두 텔레비젼의 긴급뉴스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뉴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는 모든 직원들을 공포에 빠지게 할만했다.
“호남선 KTX가 선로를 벗어나 전복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열차는 군산역에서부터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모든 역을 통과해 질주하다가 목포 역을 지나 선로를 벗어나면서 전복됐다고 합니다."
*
오후 5시 25분경
수한은 강기슭에서 힘겹게 기어 나왔다.
그는 겨우 길가로 올라와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길가에서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한 그는 동전을 넣고 임재문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곧바로 상황을 보고했다.
"국장님. 신정혜 요원에게 보고들은 바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신팀장?"
"우리가 애초에 이송했던 MI변종 바이러스는 가짜였습니다. 그 가짜를 탈취한 테러범은 CIA 호스 맥거번 요원입니다."
"그럼 진짜는 어디있는 겐가?"
"진짜는 질병관리국 오석만 소장, 김병연 실장, 박경원 연구원이 정부를 속이고 빼돌리려는 것을 CIA 호스요원이 알아채고 2차 탈취를 위해 김병연을 납치한 뒤 박경원으로부터 바이러스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호스요원을 제압하는 것을 실패하고 열차 밖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이렇게 목숨은 부지한 상태입니다."
"이런! 어쨌든 자네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네. 일단 서울로 넘어오게. 넘어오자마자 삼성동 코엑스 맞은편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공중전화로 와서 다시 전화하게."
"알겠습니다."
국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수한은 얼굴에서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인근 병원이나 약국이라도 찾아야겠어."
그는 웃통을 벗어서 상의 속옷만 빼놓고 다시 입었다. 그리고 흰 속옷으로 피가 흐르는 머리를 압박하며 길가로 나가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마침 역전 사거리 코너에 약국을 발견하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차량이 한적한 도로를 가로질러갔다.
약국에서 산 약품으로 간단히 치료를 마친 그는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택시를 세웠다.
"서울로 가주시겠습니까?"
택시기사는 왠 행운인가 싶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이!"
수한은 택시기사에게 쓴 미소를 지었다.
출발하기 시작한 택시기사가 라디오를 틀었다. 그런데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심각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현재 목포역으로 파견된 기자들은 연락이 두절되어서 저희는 다시 헬기로 투입되어 목포역 근방을 공중 촬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탈선한 열차가 역 방제턱을 뚫고 역전 광장 한 가운데 전복되어 있으며, 열차에서 연속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들은 보이는데 소방 대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있고... 저기... 출동한 경찰 대원들까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소방대원들도 역시 땅에 엎드려 자고 있는 듯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지금 마치 일대에 엄청난 신경가스가 퍼져 중독되어 쓰러진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상황을 짐작하기도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파견되는 사람들마다 족족히 연락이 두절되어 저희 기자들은 군 헬기를 동원해 촬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아주 위급해보입니다. 목포역 일대 전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헬기는 목포 시내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지금 아래의 상황이 심각합니다."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어 저기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왜 뛰어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뒤에 쫓아오던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
"세상에! 세상에 ! 마... 마치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그 앞 도로 차량들은 정신없이 서로 들이 받고 있습니다."
잠시 라디오에서 헬기와 바람소리의 소음은 들려오는 가운데 기자의 목소리만 끊겼다. 잠시 후 다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말로는 형언 할 수는 대재난 상황입니다. 목포역 일대는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도로 위의 수많은 차량들의 사고가 빗발치고, 길을 가는 사람들이 모두 길 위에 쓰러져 있습니다."
위이잉~
쾅!
"이런, 세상에! 옆에 있던 헬기가 추락을...추락을 했습니다. 추락한 헬기는 KBC전용 헬기입니다. 무슨 일로 추락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일단 방송을 중단하고 저희는 이곳을 벗어나겠습니다. 이상 YCN 김진행 기자였습니다."
운전기사는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면서 다른 방송을 찾아보려고 채널을 계속 돌렸다. 그러다가 한 방송채널에 고정되면서 또 긴급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호남선 새마을호가 전복된 목포시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위독한 가스가 분출되어 사망자들이 계속해서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파견된 KBC전용헬기에 탑승했던 저희 방송국 기자의 수신음이 끊기자 SBC 출동헬기의 기자가 저희 측 헬기 추락사고를 촬영하는 장면이 SBS TV를 통해 생중계 됐습니다. 저희는 바로 SBC로부터 촬영된 녹화테이프를 입수해..."
택시기사는 다시 채널을 돌리며 SBC로 라디오 수신을 맞췄다. 라디오에서 지지직 소리가 나며 SBC생중계 녹화현장으로 수신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가 큰소리로 전달되고 있었다.
"저희는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을 타고 목포시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하는데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지금 목포시 전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경가스로 추정되는 물질이 목포시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목포시의 대로에서 대형사고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많은 차량들이 방향을 잃고 서로 부딪히고 시내 상점 부수고 들어가거나 인도를 달리는 차들이 가드레일에 부딪히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길가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듯 해보입니다. 아.... 잠시 후 대통령의 긴급 발표가 있겠습니다. 본부로 연결하겠습니다."
지직....
"예, 여기는 SBC본부입니다. 지금 다시 청와대로 오태선 기자에게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태선 기자."
"네, 지금 오현우 대통령의 긴급상황에 대한 전 격 발표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