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지의 여사잠도
고개지는 장화가 쓴 여사잠을 그림으로 그렸다. 여사잠은 진나라 때의 문인 장화가 ‘궁녀가 왕을 보필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하는 내용이다.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하였고, 그림마다 여사잠의 내용이 적혀있다.
고개지는 이 그림에서 여인을 날씬하게 묘사했다. 옷자락도 바람에 날리도록 묘사했다. 이 부분은 한나라 때보다 진일보 했다.
< 여사잠 >
가남풍은 가황후의 본명으로 진(晉)나라 평양 양릉에서 태어났다. 진왕 사마소의 모사 가규의 손녀이고 가충의 딸이었다. 진무제 태시 8년 태자비로 책봉되고 혜제가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양태후는 진무제의 황후로서, 가황후의 시어머니이다.
양태후의 아버지 양준이 진혜제의 시대를 열고 정치를 보좌했다. 양척은 외척의 세도 정치를 펼쳤다. 황후 가남풍은 종실의 번왕들에게 상경하여 양준을 제거하라는 밀서를 만들어 보냈다.
초왕은 황궁 경호대의 도움을 받아 양준을 잡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양태후까지 죽였다. 양준의 세력을 제거한 후 황후 가남풍은 번왕을 제거하고 직접 권력을 장악했다.
가황후는 혜제가 확실히 우매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황후는 추녀였으나 반짝이는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 의도적으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시행하였다. 권력을 잡자 음란한 행위를 저질렀다. 미색이 뛰어난 소년도 여러 날이 지나 싫증이 나면 죽여서 버리니 살아서 궁 밖으로 나간 소년이 없었다. 가후의 이런 음란한 행위는 2달이 지나자 궁중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가후의 표독한 성정이 두려워 조심했다.
시어머니인 양태후를 역적 집안으로 몰아 잔인하게 처단한 일 등, 가황후는 중국 역사에 대표적인 악녀가 되어버렸다.
서진의 장화는 가황후의 일을 기록하여 궁중 여인의 훈계한 글이 여사잠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고개지의 여사잠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