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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神話 와 설화 說話
신화나 설화는 둘다 실재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로
신화는 어떤 관행이나 신앙,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설화는 일정한 구조와 형식을 갖춘 꾸며낸 이야기이다.
신화는 신앙이나 자연현상과 관련되어 권위를 가지게 되어 사실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고
설화는 꾸며낸 이야기로 소설처럼 인식되고 있다.
1. 신화 神話 myth
1) 신화란?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한 실제적 사건으로 구성되며,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는 때로 이 땅의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의 해석 작업은 일찍이 시작되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화를 풍자적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19세기,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로 여겨지며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 실제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특히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학(mythology)이라는 말은 신화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특정의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지닌
신화들의 집대성을 의미한다.
신화의 전거는 확실히 진술되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신화들은 일상적인 인간생활과 거리가 멀지만 그 기반이 되는 신이나 초인들의 특정한 사건·조건·행위 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사건들은 역사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점의 상황을 다루며, 주로 우주창조나 선사시대
초기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신화는 인간의 행동이나 제도, 우주적 상황에 관한 원형들을 제시해준다.
신화의 특성은 다른 종류의 문학에서도 발견된다.
원인론적인 이야기는 자연·인간·사회·삶에 관한 여러 측면의 기원과 원인들을 설명해준다.
옛날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존재·사건 들을 다루지만 신화에서와 같은 권위는 없다.
중세의 무용담과 서사시는 권위와 사실성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신화에 대한 현대적 연구는 19세기초 낭만주의 운동과 함께 일어났으나, 신화의 해석작업은 이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2) 신화의 역사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의 영향을 받아 신화를 풍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에우헤메로스(BC 300경 활동)와 같은 역사가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원래는 단순한 영웅이었다고 믿었다(그리스 신화). 19세기에 비교언어학이 발달하고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 즉 신화에 대한 학문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낭만주의 시대 이래로 모든 신화연구는 비교연구방법론을 이용했다. 빌헬름 만하르트, 제임스 프레이저 경, 그리고 스티스 톰프슨 등은 민담과 신화의 주제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있어 비교연구의 접근방법을 썼다. 브로니수아프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일상적인 사회적 기능들을 완수하는 측면을 강조했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한 구조주의자들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신화들의 형식적인 관계와 유형을 비교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상징적 의사소통이란 문화의 역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작용에도 기반을 둔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초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관과 함께 신화를 억압된 관념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했던 것이다.
카를 융은 이러한 초역사적·심리학적 접근을 보다 확장시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이론을 주장했고 신화에 암시되어 있는 집단무의식과 원형들을 연구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와 종교사가인 미르케아 엘리아데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는 종교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해야 하며 비종교적인 범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 '신화 및 의식(儀式) 학파'(Myth and Ritual School) 학자들은 모든 신화가 그에 상응하는 의식(儀式)에 대한 '해명'으로 작용하거나 이미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신화와 의식 사이에 흔히 어떤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중 어느 것이 우선이었는지는 결코 단언할 수 없다.
신화를 수반하지 않는 의식은 있을 수 없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차적인 의식조차 없는 신화는
있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寶庫)로 여겨지므로 우주를 지배하고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우주창조에 관한 신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왕의 정통성 또는 세계의 안녕이 보장되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야기된다(우주생성신화).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인간과 사회제도의 기원에 관한 신화가 있다.
종말론적인 신화는 다른 신화들이 영원과 지상에서의 시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반해 세계의 종말을
다룬다.
신화는 때로 이 땅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해준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적인 요소는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발견된다.
역사적 변증법이 그 궁극에 도달할 때의 국가의 소멸 및 이상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언은 종종 종말론적 신화의 예로 언급되어왔다.
또한 현대 물리학·생물학·의학과 기타 학문들의 패러다임과 모델에서도 신화와 유사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
3. 한국의 신화
한국의 신화는 건국신화·성씨시조신화·마을신화·무속신화로 나눌 수 있다.
건국신화는 나라를 세운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고조선은 〈단군신화〉가 있고, 고구려는 〈동명왕신화〉, 신라는 〈혁거세신화〉·〈석탈해신화〉·〈김알지신화〉가 있으며, 가야는 〈김수로왕신화〉가 있다.
북부여 및 동부여와 관련된 〈금와신화〉의 내용도 일부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들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사기〉 등에는 주몽·혁거세·석탈해 등의 신화만 전하고 다른 자료에 일부 신화 내용이 전한다.
(탐라지〉 등에 전하는 제주도의 〈삼성신화〉는 지금은 고·양·부 3성의 시조신화로 남아 있으나
건국신화의 흔적이 엿보인다.
고려의 건국신화는 〈고려사〉에, 조선의 건국신화는 〈용비어천가〉에 전하나, 이들 신화는 신화시대
이후의 것이어서 인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태봉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신화는 두 인물이 세운 나라가 일찍 망하면서 곧 전설화되었다.
건국신화는 대개 국가시조신에 대한 제의에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화의 주인공이 실존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건국신화는 3대기(三代記)적 서술(〈단군신화〉·〈동명왕신화〉), 천부지모(天父地母:〈단군신화〉) 또는 천부수모(天父水母:〈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김수로왕신화〉)적 사상, 그리고 난생신화(〈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수로왕신화〉)적인 특징이 있다.
성씨시조신화는 각 성의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이들은 족보나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알려진 것으로는 남평문씨·창령조씨·파평윤씨·배씨·서씨·고령나씨·단양장씨 등의 자료가 있다.
건국신화의 일부도 신화의 주인공이 왕가의 시조적 성격을 가지므로 넓은 의미에서 성씨시조신화로
볼 수 있다. 조상신에 대한 신화인 제주도의 조상본풀이들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마을신화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 대한 신화이다.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일월산 황씨부인〉·〈연평도 임경업장군〉 등의 신화가 알려져 있는데, 제주도의 본향당신본풀이들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당신본풀이들은 주로 무당이 본향신에 대한 굿을 할 때 구송하는 것이므로 무속신화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무속신화는 무당이 굿을 하면서 구송하는 신화이다.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여, 신에게 인간의 수복장수를 빌어주는 제의인 굿을 행하면서 신들의 내력담인 신화를 구송한다.
학술용어로는 서사무가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본풀이라고 한다.
신화의 발생을 종교적 의례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무속신화는 한국신화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이들은 문헌에 정착하기보다는 무당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왔다.
본토의 무속신화도 중요하지만, 제주도의 큰굿에서 불리는 신화들은 신화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다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신화의 본질은 신의 일에 기원하여 인간이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세계 및 인간사회의 여러 의식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제주도 큰굿 내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신화의 내용은 대개 신들의 출생, 성장, 공적, 신으로의 좌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인격화되어 있지만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세습무가 강하며,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고형의 문화가 잔존할 가능성이 있다.
본토의 무속신화에 제주도 큰굿 내의 신화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들 신화는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행했다는 열두거리 큰굿과 관련하여 발생·형성된 것이 현재 섬지방인 제주도에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우리 민족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전하는 신화인 〈천지창조신화〉·〈인간탄생신화〉·
〈사후세계신화〉·〈농경기원신화〉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설화 說話 story, narrative
1) 설화란?
설화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신변잡담이나 말로 전하는 역사적 사실 등은 설화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설화 가운데 사실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사실 자체를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흥미와 교훈을 위해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화는 구전됨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해 가는데, 설화의 구전은 일정한 몸짓이나 창곡(唱曲)과는 관계없이 보통의 말로써 이루어지며 이야기의 구조에 힘입어 전승된다.
즉, 화자는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을 그대로 기억하여 고스란히 그것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핵심되는 구조를 기억하고 이것에 화자(話者) 나름의 수식을 덧붙여서 전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설화는 구전에 적합하게 단순하면서도 잘 짜인 구조를 지니며, 표현 역시 복잡하지 않다. 이 점이 구조와 표현에 있어서 복잡성과 특수성을 갖는 소설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설화는 율격을 가지지 않고 보통의 말로써 구연되기 때문에 산문적 속성을 지닌다.
이 점에서 서사민요·서사무가·판소리 등과 같은 율문서사(律文敍事) 장르들과 구분된다.
설화는 이야기를 하고 들을 분위기가 조성되면 언제든지 구연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어느 일정한
기회에 구연하는 노동요·무가·가면극과 다르다.
설화는 반드시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서, 화자가 청자를 대면하여 청자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구연된다.
일반적으로 화자와 청자의 신분은 민중이라고 일컫고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설화 중에는 양반이나 지식인 사이에서 발생하여 전승되는 것들도 제법 많다.
설화가 문자로 정착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진 것도 양반이나 지식인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문헌설화는 이미 구전을 벗어나고 가변성이 제거되어 엄밀하게 따지면 이미 설화가 아니나, 문자로
정착되기 전에는 구비전승되었을 것이고, 설화로서의 구조와 표현이 의식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설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설화라는 용어 대신에 고담(古談)·석화(昔話)·민담(民譚) 등을 쓰기도 하나 고담·석화에는 그 용어
자체에 시간적인 제약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민담은 설화의 하위분류 가운데 하나인
민담과 혼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화의 대치어로는 부적당하다.
설화의 분류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학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보통 신화(神話, myth)·전설(傳說, legend)·민담(民譚, folktale)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 셋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서로 넘나들기도 하고 상호 전환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같은 3분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설화의 하위 분류를 동물담·소담·형식담·신이담·일반담으로 나누는 5분법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3분법설을 따라 설화의 하위 종류에 대한 대체적인 차이를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승자의 태도
신화의 전승자는 신화를 진실되고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상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아 꾸며낸 이야기라고 인정할 수 있어도, 신화의 세계는 일상적 경험 이전에 또는 일상적 합리성을 넘어서서 존재한다고 믿고 그 진실성과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을 때 신화는 신화로서의 생명력을 갖는다.
개천절이 국경일로 유지되는 한 단군신화(檀君神話)는 아직도 신화인 것이다.
전설은 전승자가 신성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나 진실되다고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전설의 세계는 일상적 경험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설의 진실성은 끊임없이
의심된다.
‘사실이 아니고 전설일 따름이다.’라는 말이 가능하나, 전설은 사실로서의 근거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증거물이 이를 입증한다.
민담의 전승자는 민담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되다고 믿지도 않는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을 적에……”라고 시작할 때부터 민담은 사실이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임을
화자는 선언한다.
신성한 무엇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실의 전달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흥미를 주기 위해서
민담은 구연된다.
(2) 시간과 장소
신화는 아득한 옛날, 일상적인 경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태초에 일어난 일이고, 특별히
신성한 장소를 무대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단군신화의 태백산·아사달은 신성한 장소의 좋은 예이다.
신화의 진실성과 신성성은 그러한 시간과 장소가 갖는 진실성이고 신성성이기도 한 것이다.
전설은 구체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장소를 갖는다.
“이조 숙종대왕 시절 서울 남산골에……”라고 시작되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전설이 가지는 진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구실을 한다.
민담에는 뚜렷한 시간과 장소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옛날 옛적 어느 곳에……”라고 하는데, ‘옛날 옛적’은 신화의 경우처럼 태초라는 뜻이 아니라 서사적인 과거일 뿐이고, ‘어느 곳’은 화자가 이야기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옛적’과 ‘어느 곳’으로 화자나 청자의 직접적인 경험과는 구별되는 작품 세계를 자유로이 이룩할
단서가 마련된다.
(3) 증거물
신화의 증거물은 매우 포괄적이다.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천지가 바로 증거물이고, 국가창건 신화에서는 국가가 바로 증거물이다.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라는 의식이 바로 단군신화의 증거물이다.
전설은 이와 달리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가진다.
바위에 관한 전설은 바위 일반을 증거물로 삼을 수는 없고, 어느 곳에 있는 어떤 모양의 바위만이 증거물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바위는 다른 바위와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기에 화자가 늘 주목해 왔거나 쉽사리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그 생김새는 누구나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일수록 유리하다.
전설의 증거물은 자연물인 경우도 있고 인공적인 경우도 있고 인물인 경우도 있는데, 어느 것이나 전설을 떠나서도 알려질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전설은 이러한 증거물을 가짐으로써, 이미 알려진 근거에 호소해 진실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거물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유래나 특징을 이야기로 꾸며낸 것이며, 증거물이 실재하니 이야기 역시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꾸며낸 의의가 있다.
증거물을 상실한 전설은 전승이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
민담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 완결되며 증거물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더러 증거물을 갖는다 해도 널리 존재할 수 있는 현상, 예를 들면 수숫대가 빨갛다든가, 수탉이 하늘을 보고 운다는 것 등이고,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첨부된다.
(4) 주인공 및 그 행위
신화의 주인공은 신이며, 그의 행위는 신이 지닌 능력의 발휘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은 보통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성한 자라는 뜻이지, 인간과 구별되는 절대적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전설의 주인공은 구체적·역사적 인물로서, 그의 행위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던 관계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전설의 주인공은 신화나 민담의 주인공보다 왜소하며, 예기치 못했던 관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인간보다 사물이 중심이 된 전설도 있다.
민담의 주인공은 일상적인 인간이다.
비록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의 심리상태는 일상적인 차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민담은 주인공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타인과 부딪쳐도 타인은 중요하지 않으며, 난관에 봉착하여도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만다.
그의 행위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5) 전승의 범위
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
민족적인 범위에서 진실성과 신성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한 민족의 신화가 다른 민족의 것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다른 민족에게는 신화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신화는 민족의 고대사, 실제적인 혹은 가상적인 역사와 관련을 가지고 민족적 융합을 위해서 신성성이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씨족적·부족적 신화도 있으나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될 때 신화로서의 생명은 확대된다.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대체로 지역적인 범위를 갖는다.
증거물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면 전국적인 전설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증거물은 일정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이다.
한 지역의 전설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전체에게 알려져 있고 지역적인 유대감을 가지게 하는
구실을 한다.
민담은 지역적인 유형이나 민족적인 유형은 있어도, 어느 지역이나 민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승은 공동의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며, 분포는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특정 민족에게 흥미로운 민담이라면 약간의 수정만 가해도 다른 민족에게도 흥미로운 민담일 수 있다.
이상으로 신화·전설·민담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설화 가운데에는 신화·전설·민담 중 두 가지 이상에 관련되는 것도 많으며, 이 셋 중 어느 것에도 포함시키기 곤란한 것도 있고, 야담·일화 등도 포괄하면서 구전설화와 문헌설화까지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설화를 삼분하여 분류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설화의 분류 방법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2. 설화의 역사
설화자료의 채록은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 등의 역사서나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읍지와 같은 지리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본격적인 설화집 간행은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慵齋叢話≫,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村談解頤≫ 등이 대표적이고, 이들에 이어 17세기 전반에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譚≫이 나타났고, 19세기에는 ≪계서야담 溪西野談≫·≪청구야담 靑邱野談≫·≪동야휘집 東野彙集≫·≪동패낙송 東稗洛誦≫ 등의 설화집이 나왔다.
개화기 이후의 설화집은 주로 한국을 외국에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선교사들이 서구어로 간행하거나
한국통치의 부산물로 일본인이 일본어로 간행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은 동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원래 이야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고쳐져
있어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은 편이다.
이 무렵에 간행된 설화집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은 심의린(沈宜麟)의 ≪조선동화대집 朝鮮童話大集≫인데, 설화력(說話歷)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한국인의 손으로 이루어졌고, 92편이나 되는 많은 설화가 채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손진태(孫晉泰)의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은 일본어로 씌어졌다는 흠은 있으나 최초로 설화력이 명기되어 있고, 또 한국의 대표적인 민담이 154편이나 수록되어 있어 자료집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학술연구에 이용할 만한 자료집의 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69년부터 1981년까지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각 도별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가 간행되었으며, 개인과 학회에 의한 조사 보고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1979년에 시작하여 1980년부터 자료집이 나오기 시작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 韓國口碑文學大系≫는 전국의 각 군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자료집으로서, 구연 현장의 상황, 제보자, 그 지역의 역사·사회·문화 등을 수록하고, 구술자의 원문을 그대로 채록하는 등 자료 수집의 표본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설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료 수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화의 전승 기반인 공동체의 해체, 대중매체의 확산으로 인한 직접적인 접촉 기회의 축소, 기록문학이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전담해 가고 있는 점 등으로 설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설화를 연구하고 전승하기 위해서는 현지 조사를 통한 자료의 채록이 무엇보다 시급히 요청된다 하겠다.
설화는 인류의 지혜와 정감이 농축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지속성과 변화를 수반하면서 전승된 구비문학이다.
한때 설화는 웃음거리와 심심파적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에 소홀히 다루어지거나 기록문학의 보조 수단으로만 이용된 적도 있었으나, 설화는 그 자체로서 문학성을 지니며, 소설 등 여타의 기록문학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설화 자체에 대한 연구와 문학의 원천 및 문학사의 원류를 규명하는 연구의 두 갈래 작업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