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피아노 트리오> 콘서트
제네바 트리오라고 하니 스위스 음악가인 거 같지만 사실 공통된 문화적 배경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음악적 배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는 스위스의 후원으로 스위스 및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깊고 넓은 음악의 심연을 선사한다.
1. 공연 대강
장소 : 군포문화예술회관 철쭉홀
위치 : 경기 군포시 고산로 599
연주일 : 2023.3.23.목 7시 30분
입장료 : 30,000원
2. 감상
1)
이번 공연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슬픔의 피아노 삼중주 사단조’,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슈포어에게 헌정되었다는 멘델스존 ‘피아노 삼중주 2번, 다단조, 작품번호 66’,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란 부제가 붙은 실내악곡 중 가장 대표적인 차이콥스키 ‘피아노 삼중주 가단조, 작품번호 50’이 연주됐다.
제네바 피아노 트리오는 2009년 국제 음악 콩쿠르 수상자들로 구성돼 스위스 정부의 후원으로 결성됐다. 피아니스트 ‘이리나 슈쿠린디나’,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오스트로프스키’, 첼리스트 ‘단 슬로우츠코프스키’ 등 세 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삼중주단은 군포를 필두로 오산, 천안, 안동 등지에서도 이어서 공연한다.
2)
객석은 절반이나 찼을까. 그러나 매우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다. 공연이 다 끝나고 열렬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쳐대는 박수 소리, 연주자들은 두 번이나 앵콜에 응해 멘델스존 음악을 추가로 선물했다. 바이올린 주자가 영어로 관객과 소통하였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공연은 중간에 멘델스존 연주가 끝나고 휴식 시간 15분을 가진 후 2부에서 차이콥스키 곡이 연주되었다. 피아니스트는 중간에 의상도 더 짧은 옷으로 갈아 입고 열연하였다. 반백을 넘어선 나이로 춥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악보도 없이, 빠져들어 주변 공기까지 연주하는 듯 열기를 끌어올렸다.
3)
아마 멘델스존의 화려한 곡은 양념이나 분위기의 다양성을 위한 곡인 듯, 본령은 차이콥스키였다. 혼신을 다한 연주는 숨을 쉴 수 없게 몰아부쳤다. 겨우 세 사람이 타악기도 아닌 것이 사람을 이렇게 잡고 흔들고 송두리째 제압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나중 보니 바이올린의 가는 줄이 하나 떨어져 너덜거렸다. 단정한 옷차림도 땀으로 열기로 느슨해져가며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는 그들의 놀라운 열정에서는 기량을 뛰어넘는 무엇이 보였다. 신들린 공연이었다.
때로는 음악이 아니라 토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하면서도 지루하고, 지루하면서도 압도하고, 지리멸렬한 거 같지만 결국 가닥을 추려나가는 러시아 소설, 읽고나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는 러시아 소설이 음악으로 조바꿈한 거 같았다.
러시아 소설의 무게는 공산주의로 철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설이 철학을 대신해야 하는 속사정 때문이라고도 한다. (설파샘 말씀) 정공법을 택하지 못하는 정치적 현실에서 소설로 우회하여 사상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소설에 갖가지 사상적 언설을 밀어넣어 육중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어쨌든 예술에 밀어넣는 사상의 무게가 음악이라고 예외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이번 차이콥스키 무대를 접하면서 들었다. 차이콥스키의 장대한 음악적 지평을 제대로 읽어내는, 아니 함께하는 연주, 이번 연주가 딱 그랬다.
차이콥스키와 이들 연주자들은 동질적인 그룹이다. 내 곡을 연주하는데, 어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엔나에서 모짜르트교향악단이 모짜르트를 연주하면서 보여주었던 신명과 같은 원리이다. 내 것을 연주하는데 거릴낄 것이 있겠는가.
우리 k-팝이 세계를 휩쓰는 것은 우리 음악이어서일 것이다. k-팝 작곡자에 외국인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우리 음악이니 자신감있게 해석하고 젖어들게 연주하고 자신있게 변주하면서 세계인의 신명을 흔든다.
클래식음악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려면 우리 작곡가의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 이강숙 전 서울대 음악과 교수도 누누히 그렇게 말했다는데. 우리 생각과 정서를 담은 음악 작곡이 클라식 영역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다. 대부분 서양 작곡자 음악을 피동적으로 연주할 뿐이다. 1등이 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 내 곡'을 감동적으로 연주하는 '제네바 피아노 트리오'의 연주를 만난 것은 너무 큰 행운이었다. 아직 이들의 공연을 볼 기회가 남아 있다면 놓치지 마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음악 문외한인지만 오히려 문외한으로서의 감동을 서술하고자 했으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널리 혜량해 주실 것도 아울러 부탁드린다.
#러시아음악 #피아노삼중주 #군포문화예술회관 #스위스트리오 #제네바피아노트리오 #차이콥스키 #러시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