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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54기 김승욱입니다. 지난 6월 ER강사이자 샤모니 클라이밍 송금진 센터장님을 중심으로 샤모니 클라이밍 회원이자 54기 동기인 이지우, 송주현과 울릉도 송곳봉으로 개척등반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작성한 등반기로 많이 부족할테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다른 대원 등반기도 올라올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06.04(화)
울릉도행 배가 다음날 아침 일찍이라 오늘 저녁에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시간이 다가와 암장으로 가는 길에 좋은 냄새가 뒤를 돌게 만든다. 길거리에서 숯불에 닭꼬치를 팔고 있다.
그 냄새가 정말 예술이라서 저녁을 먹었지만 참을 수 없어서 포장해서 암장에서 먹는데 오랜만에 닭꼬치라 그런가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06.05(수)
새벽 02:40 후포항에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배에서 슬슬 신호가 온다.
늦은 새벽이라 여객터미널은 닫혀있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멀리 보이는 24시 편의점 마지막 희망이다. 온 힘을 다해 걸어갔더니 무인 편의점이다...
시작부터 액땜을 제대로 하고 그냥 참고 얼른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차 뒷자리에서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자세로 잠을 자니 몇 번이고 잠에서 깬다. 제발 빨리 아침이 오길 바라면서 억지로 잠을 잤다. 아침이 밝아오고 차에서 내리니 온몸이 찌뿌둥... 밖에서 비박한 주현이 형 따라서 밖에서 잘걸 후회하며 전날 참았던 화장실을 가니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승선 시간을 기다리는데 몸이 계속 찌뿌둥하고 잠이 안 깨는 느낌이라서 승선 후 바로 잠을 청했다.
잠을 자는 중간에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누워서 자니 형들이 알피니스트라고 웃는다 나는 알피니스트의 기본 소양이라며 아무 데서나 잘 눕고 잘 자야 한다고 농담하며 잠에서 깼다.
문제는 그렇게 편하게 누워서 잠까지 잤는데 컨디션이 계속 나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 깨달았다. 몸살이 오고 있구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살이라니...
평소에 한 번을 안 아프다가 꼭 이럴 때 아프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며 ‘제발 오늘 하루만 아파야 한다. 등반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 생각에 평소 아파도 약을 잘 안 먹지만 하루 종일 거의 도핑 수준으로 약을 때려 넣었다.
하선 후 벽 앞 베이스캠프에 도착 후 송곳봉과 첫 만남 그 크기가 막막해진다 저걸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며 주현이 형과 금진이 형은 작년과 다른 어프로치 길을 찾으러 나서고 지우 누나와 나는 짐 배분을 시작했다.
형들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생각이 들 때쯤 내려왔다. 길이 생각보다 안 좋아서 지우 누나는 그냥 대기하고 길이 안 좋다는 말에 나는 약간에 걱정과 함께 짐 데포를 위해 출발했다. 올라가면 갈수록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 평소보다 짐도 무겁게 느껴지고 너무 힘들다 형들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 자책할 겨를도 없이 따라가니 드디어 1P 시작점에 도착했다. 도착 후 형들이 위를 보라고 해서 위를 보니 머리 위 펼쳐지는 대천장이 형들이 하던 얘기가 과장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며 감탄하며 넋 놓고 있으니 형들이 준비 후 1P를 출발했다.
이제 나는 내려갈 시간이다. 형들한테 죽지만 말라고 말을 전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까 너무 힘들어 정신없이 올라와서 그런가 길이 헷갈린다. 분명 왔던 길은 지나친 거 같고 이 길이 아닌 거 같은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 이때 수백 번 고민했다 다시 돌아가서 길을 찾을까 그냥 사람 흔적을 따라갈까 슬쩍 보니 아래로 멀리 도로가 살짝 보인다. 이 길을 따라가도 금방 내려가겠구나. 하며 사람 흔적을 따라가니 중간에 길이 끊기고 엄청난 풀들이 나를 환영해 준다. 그렇게 당황하며 30분 동안 풀들과 싸우며 알바를 했다. 몸이 아픈 것도 짜증 나는데 길을 잘못 든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 있는 욕 없는 욕 온갖 욕을 하며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 지우 누나를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그렇게 알바한 얘기와 엄청남 크기에 대천장 얘기를 하고 저녁에 먹을 식량을 사러 마트로 나섰다. 마트에서 장을 보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약을 사기 위해 근처 약국을 여쭤봤더니 마트 사장님께서 근처에 약국이 없으니 본인 약을 주시겠다며 건네받았다. 시골 인심에 감동하며 베이스캠프로 돌아와서 다시 잠을 잤다.
1~2시간을 자니 형들이 내려왔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다. 하루 종일 빵 두 조각, 죽 한 그릇 먹은 게 다인데 앞에 오겹살을 두고 씹어도 맛있는지 모르겠고 형들이 재밌는 얘기를 해도 웃음이 나오질 않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표정이 다 죽어갔다고 했다)
정말 몸이 많이 안 좋구나 생각에 억지로 음식을 집어넣고 약을 먹으며 제발 내일은 아프지 말자 기도하며 일찍 잠에 청했다.
06.06(목)
새벽 4시 형들이 깨운다. 어제 길이 좋지 않아 지우 누나가 같이 짐을 옮기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짐을 옮기려 일찍 일어났다. 그렇게 일어나서 화장실만 다녀와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올라가니 배만 살짝 아프고 컨디션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등반 시작하는 날 안 아파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형들의 등반이 시작되고 홀통을 띄워주고 하산을 시작했다.
오늘 어프로치 길에서는 비몽사몽해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겠다. 다짐하며 길을 잘 살피며 올라와서 금방 다시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 지우 누나와 아침을 먹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카페를 갔다. 경치가 정말 끝내준다.
(벽에서 봤던 경치보다 카페에 풍경이 더 좋았다) 카페를 갔다가 주변을 조금 구경하며 형들 가져다줄 꽈배기와 호떡을 사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형들을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등반이 엄청 빠르다. 무조건 빠르게 끝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점심도 먹고 낮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배가 살짝 아파 화장실을 2~3번 왔다 갔다. 몸 상태가 100% 회복되길 빌며 시간을 보내니 오후 5시쯤이 되었다.
아까 봤던 형들 등반 속도가 빨랐기에 무조건 오늘 등강한다는 생각으로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여기서 어프로치를 기다렸다면 지우 누나와 나는 편하게 하루를 지냈을 텐데 나의 실수이다.)
그렇게 벽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7P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린다.
날이 점점 어두워질 때 금진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7P에 큰 나무가 길을 막고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오늘 못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그냥 다시 내려가서 기다려. 우리는 그 험한 길로 올라오는 오프로치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벽 앞에서 자기로 결정 하고 얘기를 하는데 바로 5~10m 뒤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내 키만 한 낙석이 떨어졌다.
순간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거기는 화장실로 쓰던 곳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살고 싶었다. 자리를 옮겨 지루함에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는 중 배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나서 방귀를 뀌려고 힘을 주는데 방귀가 나오질 않는다. 인생을 살며 처음 겪은 일이다. 배는 가스가 차서 아픈데 방귀는 나오지 않고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누나에게 말해서 배도 눌러보고 우여곡절 끝에 방귀가 나왔다.
정말 인생 살면서 방귀가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허허…그렇게 잘 준비를 마치고 자려는데 잠이 안 온다 그렇다고 지우 누나랑 떠들자니 하루 종일 얘기하니까 소재가 떨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지루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06.07(금)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모기들이 귓가에 맵 돌아서 새벽 5시쯤 기상하였다. 모기향을 아무리 피워도 모기들이 덤벼든다. 점점 짜증이 나서 결국 복수를 위해 고통스럽게 잡기에 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짜증과 지루함이 날 미치게 만든 거 같다. 그렇게 모기들과 한바탕 전쟁을 버리고 형들을 기다리며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렀다.
기다리다 지쳐 잠시 눈을 붙이고 잠을 자며 휴식을 청했다. (알고 보니 형들이 늦잠을 잤다….)
그렇게 7시 30분쯤 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드디어 올라간다 생각하며 일어났는데 전화기 건너에서 들리는 형의 목소리 승욱아 차에서 보조자일 두고 온 거 가져와 정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어젯밤 어프로치를 한 번 더 하기 싫어서 모기들과 싸우며 잤는데…. 심지어 형들이 올라갈 때 가져오지 말라고 말한 보조자일을 가져오라니…. 어쩔 수 없지 체념하고 내려갔다. 그렇게 차에 도착해서 짐을 챙기고 차가 너무 뜨거워 창문을 내리려 시동을 거니 에어컨이 나온다.
분명 에어컨이 망가졌는데 마치 차가 나를 시험하듯 너무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올라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3분 정도 쉬다가 정신을 차리고 올라갔다. 어프로치만 4번… 첫날 헷갈리던 길이 마치 뒷산처럼 익숙해지고 시간도 적게 걸린다. 다 올라와서 지우 누나와 밑에서 챙긴 라면을 부숴 먹으며 기다리는데 내가 올라온 길 쪽으로 낙석이 떨어진다. 내가 5분만 늦게 올라왔다면 빈대떡이 될 뻔했다. 올라가기 전부터 겁을 잔뜩 주는 무서운 산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 진짜 금진이 형이 내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들며 반가움에 약간의 수다를 떨고 출발 준비를 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다시 금진이 형이 먼저 올라가고 지우 누나가 다음 내가 라스트였다. 100m가 넘는 등강은 처음이라 약간 걱정됐지만 금진이 형이 금방 60m를 올라갔다는 소식에 걱정이 약간 사라지고 지우 누나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지우 누나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하니 아직 올라가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
약간에 걱정이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누나에게 전화가 온다. 승욱아 다 올라왔는데 나 내려가야 될 거 같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첫 번째 등강부터 너무 힘들고 짐이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아직 한번 등강했는데 얼마나 힘들면 저런 말이 나올까 당황하여 해줄 말이 없어서 금진이 형한테 무전을 했다. 말을 전했더니 금진이 형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본인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다. 지우 누나에게 이 말을 전하니 일단 내가 올라올 때까지 생각해 보겠다고 해서 나는 등강을 시작했다.
그렇게 등강을 시작해서 5m 정도 올라갔을까? 바위를 발로 살짝 건드리니 쏙 하고 빠진다. 정말 깜짝 놀라고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며 계속 올라가 등강을 완료하니 지우 누나가 나름 괜찮아져서 올라가겠다고 한다. 등강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힘들어서 누나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다 같이 가고 싶은 맘이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대기 후 다음 등강을 시작했다.
등강을 완료하니 금진이 형과 지우 누나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래도 누나가 많이 괜찮아진 거 같아서 다행이다.
중간중간 내가 등강하면서 있던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앞에서 완료와 대기 소리만 듣고 따라서 등강 할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느끼는 감정도 처음에는 등강자일이 바위에 쓸리는 게 무섭고 천천히 해야지 생각했지만 등반이 진행될수록 무감각해지고 힘이 들어 자동으로 천천히 등강하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등반을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빠르면 오늘 안에 끝날 줄 알았던 등반이 지체되기 시작했다.
점점 어두워져서 우리는 하루 더 벽 위에서 비박하기로 결정하고 줄을 고정해 두고 비박지로 내려왔다.
전날 무거운 홀통에 화가 많이 난 형들이 식량과 물을 조금 버렸다고 해서 먹을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저녁은 햇반 3개를 계란 북엇국에 죽처럼 끓여 먹는다. 벽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부족한 한 끼라도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는 한 끼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자리가 좁아 지우 누나와 금진이 형은 위 테라스에서 잠을 자기로 해서 둘을 보내며 가져온 맥주를 나눠서 한 잔씩 먹고 잠에 들었다.
06.08(토)
비박지가 경사가 있어서 잠에서 한 번씩 깬다. 문제는 다리 쪽으로 경사가 있어 자꾸 하네스가 급소를 누른다. 정말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너무 아파서 소리 없는 몸부림을 치며 고통 속에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20분에 벨 소리에 잠이 깨서 핸드폰을 보니 지우 누나였다.
분명 4시에 기상이었는데 주현이 형과 나는 알람을 맞출 정신도 없이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짐을 주섬주섬 챙겨 테라스에 잘 데포시켜 놓고 위로 올라가 이번 우리의 루트 이름이 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전 안에 끝낼 수 있다는 기대와 내려가서 오징어회에 소주 한잔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등강을 시작하였다.
중간에 지우 누나가 11P 등강 중 낙석이라고 소리친다. 다행히 멀리 떨어져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마치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주먹보다 약간 작은 돌멩이가 떨어져 내 귀를 때린다. 귀에서는 삐 소리와 함께 정신 차려야지 생각이 들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등강을 진행했다.
그렇게 오늘의 등반 시작점인 13P에 하여 등반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등반을 진행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체된다. 11시부터 비 소식인데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비 소식은 다행히 2~3시로 밀렸다) 옆에서 지우 누나가 몇 시쯤 내려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난 적어도 6시에는 내려가서 오징어회 먹을 거라며 대답했다. (이때까지는 아직 희망이 가득했었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등반을 이어 나가며 몇 번이나 이번이 마지막 피치일거야! 라는 말을 하며 나아갔지만 야속하게도 송곳봉은 쉽게 정상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16P 등강하며 종료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스탠스가 불안한 좁은 길을 지나다가 추락을 해버렸다. 분명 두께가 굵은 나무 밑동을 밟았는데 밟는 순간 난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무가 썩어 있었나 보다. 약 2~3m를 떨어지며 엉덩이를 부딪쳤지만 엉덩이로 떨어져서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번 등반 중 선등자는 한 번도 추락하지 않았는데 내가 첫 추락을 해버렸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추락 후 종료점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주현이 형이 정상을 밟았다. 이제 끝이구나 생각이 들며 금진이 형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금진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정상부가 너무 좁고 낙석이 많아서 둘은 밑에 있으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안전이 우선이고 나는 아니지만 누구라도 성공적으로 정상을 밟았으니 만족하며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형들이 하강을 시작하는데 아까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불길한 예감과 함께 바람과 함께 거세지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나무와 풀이 많아 자일을 회수할 때 변수도 많고 하강도 위험한데 날씨까지 안 좋아지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형들이 내려와 다 같이 하강을 시작했다.
하강 순서는 첫 번째 하강을 제외하고 금진이 형, 지우 누나, 나, 주현이 형 순서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하강은 나와 지우 누나가 동시에 외줄 하강하기로 하여 내가 먼저 내려와서 대기하는데 위에서 얼굴만 한 낙석이 떨어진다. 누나가 낙석이라고 외쳐 살짝 피해 얼굴 바로 앞으로 지나갔다. 맞았으면 크게 다칠뻔한 상황인데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첫 하강이 끝나고 두 번째 하강을 위해 금진이 형이 내려가며 가능한 많은 나무를 정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대기하는 부분이 바람이 모이는 곳이라 점점 추워진다. 대기가 길어지면서 정말 너무 추워서 최대한 몸을 움직이면서 열을 내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행히도 추위만 빼면 2번째, 3번째 하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중간중간 주변을 살피니 모두가 넋이 나가 있다. 나도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있어 다른 사람을 많이 챙겨줄 여력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지 말라고 깨우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주현이 형은 많은 선등으로 지쳤을 것이고 난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았던 거 같은데 추위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생각 들어 주변을 챙기지 못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주변을 챙겼더라면 더욱 안전한 하강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번째 하강 이후 자일이 회수하는데 어딘가에 걸려버렸다. 주현이 형이 자일 하나를 끊고 나는 옆에서 끊어진 자일로 하강하기 위해 세팅을 하는데 남은 자일 하나가 7.9mm인데 정말 안 끊어진다.
그렇게 주현이 형이 온갖 욕과 온 힘을 다해 끊었는데 금진이 형이 밑에서 한마디 말을 건넨다.
라이터 없어? 주현이 형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때 순간 머리에 식량 담당이라 불을 피우기 위해 가지고 있던 라이터가 스쳐 지나가서 어? 나 라이터 있어! 라고 무의식중에 해맑게 대답했고 주현이 형이 진작 말하지 하면서 진심으로 한 대 때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대만 맞은 게 다행이다.
그렇게 10P 종료점에 도착했다. 전날 빠른 하강과 수목이 많아 회수가 불가능 할거라 판단하여 픽스해 놓은 자일을 끊어진 자일로 교체하기로 하여 내가 마지막에서 자일을 회수하며 하강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지우 누나와 금진이 형이 전부 내려가고 주현이 형이 내려가길 기다리는데 밑에서 온갖 욕을 다하면서 내려가는 주현이 형의 소리가 들린다. 맨 처음에 무슨 일 생겼나 걱정했지만 잠시 후 욕에 원인을 알았다.
금진이 형이 하강 라인이 꼬이지 않도록 픽스한 자일이 너무 팽팽해서 하강자일이 잘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기존 픽스 자일을 회수하기 위해 자일을 정리하면서 내려가야 하는데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고 (헤드렌턴을 비박지에 두고왔다…) 중간중간 나무에 걸려 정리해둔 자일이 빠지고… 정말 욕이란 욕은 다 했다.
그렇게 비박을 했던 곳까지 내려오니 비도 점점 잦아든다.
이제 정말 조금 남았다! 생각하며 금진이 형이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밑에서 금진이 형의 욕이 들린다.
다음 하강 포인트를 위해선 옆으로 트래버스 해야 하는데 비 때문에 바위가 미끄러워 옆으로 이동이 어렵다 심지어 형이 홀통까지 가지고 내려가서 그 무게 때문에 더욱 상황이 지체되었다.
그렇게 금진이 형을 기다리며 지루함이 밀려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졸음이 쏟아져서 주현이 형과 잠시 비박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떴는데 30분이 삭제되었다.
정신을 차리니 주현이 형도 자고 있길래 난 졸지 않은 척하며 형 여기서 자면 죽어요. 라고 형을 깨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금진이 형이 다음 하강 포인트에 도착해서 2번에 하강만을 남겼고 시간은 이미 우리에 계획과는 한참 빗나가 살아서만 내려갈 수 있길 빌며 어느새 하강을 진행하여 마지막 하강 포인트에 도착했다.
마지막 하강 포인트는 오버행이라서 스탠스가 전혀 없기에 나의 도착과 동시에 금진이 형이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금진이 형이 캠에 몸을 맡기며 대기하는데 순간 캠이 살짝 돌아갔다.
단전에서 울어져 나오는 욕과 한숨을 쉬며 정말 무서웠지만 내가 여기서 호들갑을 떨면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방전된 지우 누나가 멘붕이 올 거 같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주현이 형이 내려왔다.
그렇게 지우 누나는 내려가고 주현이 형한테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나 하강 한번 남고 죽을뻔 했다고 살고 싶다고 말하며 기다리니 지우 누나가 금방 내려갔다.
마지막 하강은 주현이 형이 홀통을 매달고 하강을 진행해서 무게 때문에 마지막 회수가 어려워 내가 마지막 회수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회수하는데 방금 전 캠이 돌아가서인지 어둠 속 헤드랜턴 하나에 의존하며 공중에 혼자 매달려 있어서인지 실수하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갑자기 물밀려 들어오듯 들어와 끝까지 정신 차리자 되새기며 하강했다.
그렇게 우리는 약 11시간에 하강을 종료하였고 이제 하산만 조심히 내려가자 생각에 하산을 시작했다. 내가 지우 누나를 데리고 길을 찾으면서 앞서가고 금진이 형과 주현이 형이 홀통을 끌며 하산을 시작했다. 거의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길이 안 좋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데 비까지 내리니 길이 정말 미끄럽고 위험해졌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누나에게 위험한 부분을 알려주면서 내려갔지만 조심하라고 말하는 부분마다 누나가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조심하라고, 미끄럽다고 말해주는 거 외에는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약 30분 정도 내려왔더니 어두워서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쪽 부분은 맞는데 돌 사이에 꺾여서 들어가는 입구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주현이 형이 뒤에서 너무 많이 옆으로 온 거 아니냐고 하지만 분명 이 근처가 맞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약 10분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근처를 뒤져서 결국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미끄러운 수풀 사이를 지나며 모두가 많이 넘어졌지만 그렇게 밟고 싶던 평지를 드디어 도착하였다.
06.09 (일)
평지를 밟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차로 향해 짐 정리를 간단하게 하고 22시간을 굶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주인은 그 새벽에 거지꼴을 한 4명이 먹을 것을 쓸어 담는 걸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먹을 것을 사서 er 선배님이 알려주신 숙소를 찾아 이동했다.
알려주신 집은 못 찾았지만. 다행히 근처에 민박이 있어 들어가서 편의점에서 산 음식들을 조리해서 먹는데 너무 굶어서 그런가 분명 너무너무 맛있는데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음식뿐만 아니라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을 거 같았던 맥주와 막걸리도 피곤해서인지 한입을 먹자마자 취기가 올라와서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졸음이 쏟아졌다.
형들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고 누나와 나는 찜찜한 느낌에 샤워를 했다. 누나가 다 씻기를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누나가 불러도 일어나질 않아서 엄청 흔들었더니 그제야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바로 쓰러지듯이 잠을 잤다. 잠을 자는 중간에 자리가 너무 좁아 조금 올라가려고 벽을 발로 밀었더니 종아리에서 쥐가 올라와 다시 한번 고통 속에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형들도 중간에 쥐가 나서 한 번씩 일어났다고 한다. 모두가 정말 힘들었구나 생각하며 간단하게 씻고 어젯밤 찾지 못한 선배님 댁으로 가니 진수성찬이 펼쳐졌다. 특히 수육과 홍합밥이 일품이었다.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배 선착 시간이 다가와 항구를 갔다가 선배님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는데 불과 40분 전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선배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승선 후 너 나 할 거 없이 바로 잠에 들었고 도착 1시간 전쯤 일어나 간단하게 빵을 먹고 포항에 도착하였다. 이때까지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여운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중간에 휴게소도 들며 간단하게 음식도 먹고 돌아간다는 기쁨과 함께 의정부에 도착하여 집을 들어와 씻고 잠자리에 누워 잠을 자려 하니 너무 편안한 잠자리에 오히려 적응이 안 돼서 불편한 느낌도 잠시 바로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 잠시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우리의 일정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무리 소감
이번 등반에서 나는 정말 한 게 없다. 첫날 몸 상태가 안 좋아 걱정도 끼치고 후반부에 예정이었던 홀링도 중간 테라스에 짐을 데포 해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하강할 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보다 힘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챙기기는커녕 나 하나 챙기기 바빴다. 이렇게 냉정하게 따지자면 도움이 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짐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마지막 하산에서 10분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길을 찾은 것도 뭐라고 해야지 하는 맘이 있었던 거 같다.)
이렇게 더 잘할 수 있었을 거 같은 후회가 있는 등반이지만 이런 등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은 뿌듯하고 의미 있는 등반이었다.
모든 부분을 챙기고 이끌어준 금진이 형, 인공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선등하느라 고생한 주현이 형, 나도 이렇게 힘든데 놀랍도록 잘 따라온 지우 누나까지 이 사람들이기 때문에 계획과 많이 틀어져도 다툼 한번 없이, 다친 곳 없이 평생 추억이 될 등반을 만들 수 있었던 거 같다.
고생한 우리 등반팀에게 수고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등반기를 마칩니다.
첫댓글 후기 리얼하게 쓰셨내요. 좋은 추억거리 오래동안 간직되겠어요.
모두 수고 많았읍니다. 몇년전 도전했다가 낙석때문애 포기했었는데
와 정말 대단합니다.^^ 울릉도 바위 한번 가보고 싶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등반기 잘 감상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등기반와 너트브에 송곳봉 등반 대담 영상도 잘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