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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 희년왕국은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차례>
1. 12지파의 토지분배와 왕의 토지 정탐
2. 에스겔 토지분배는 신약시대에 유효한 제도
3.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드러나는 에스겔 "희년왕국"
에스겔 희년왕국의 재확인, 왕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이유, 왕의 토지와 용도
4. 왕의 토지와 위치 정탐
5. 서편 왕의 토지와 위치 정탐(아스돗 항구와 서편 평야지대)
6. 동편 왕의 토지는 예루살렘이 주축이다.
예루살렘의 위치, 예루살렘의 지리적 특징과 수도의 기능, 예루살렘의 세계적(종교적, 지정학적) 위상
7. 예루살렘은 왕의 토지로 성취된다.
8. 동편 왕의 토지는 베들레헴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예비된 땅이지만, 멀고 먼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다윗왕의 출생지,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성취될 곳
9. 베들레헴 땅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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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지파별 토지분배와 토지 정탐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겔 47:14)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겔 47:22)
에스겔 토지분배는 예물로 드릴 거룩한 땅의 위치가 먼저 정해지고, 이 예물로 드릴 땅 중에서 왕에게 분배할 토지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북쪽부터 단지파가 분배를 받고 그다음은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루우벤, 유다지파의 순서로 분배된다. 그다음이 이스라엘의 중심부 지역으로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를 두고 다시 남쪽으로는 베냐민지파부터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지파의 순서로 분배된다.
이러한 에스겔 토지분배는 크게 보면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와 비슷하다. 분배 대상 토지는 전체 면적도 비슷하다.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 그다음 길갈, 그리고 실로에서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토지를 분배했지만, 에스겔 토지분배는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게 아직 정복하지 못한 토지를 미리 분배하였으나, 에스겔 토지분배는 영토 전체가 회복되어 분배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후수아의 때에 요단 동편에서 분배를 받았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 서편, 곧 본토로 이동 편입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했던 원래의 토지가 영토로 확정된 것을 의미한다.
12지파 중 요셉지파가 두 분깃을 차지하는 것도 같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직과 성전 종사자로 원래 12지파와는 다른 별개의 대우를 받는다. 레위인은 기업을 분배받는 대신 12지파가 납부하는 헌금에 대한 재정 집행권을 가지고 있고, 생활비는 그 헌금 수입에서 충당한다.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와 에스겔 토지분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에스겔이 말하는 토지분배는 여호수아가 토지를 분배한 것과 비교하면 같은 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 역시 상당수 있다. 이것은 에스겔 성전이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여 같은 점이 있으나 다른 점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차이를 에스겔 토지분배와 비교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같은 점>
①야곱의 12 아들이 중심이 된 12지파를 따라 분배하였다. ②분배받은 토지의 전체 면적이나 국경이 비슷하다. ③분배방식은 제비를 뽑아서 분배한다. ④요셉지파는 두 몫을 분배받는다. ⑤레위지파는 12지파와는 별도로 거룩한 땅의 일부를 기업으로 분배받았다.
거룩한 땅과 왕의 땅 배치도 | ||||||
지중해 |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지파 | 요단강 . 사해 | ||||
왕의 땅 | 레위인의 땅 | 왕의 땅 | ||||
사독 자손 ■성전 사독 자손 | ||||||
경지 | 성읍 | 경지 | ||||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지파 |
<다른 점>
(1) 에스겔 토지분배에서는 레위지파는 사독자손들과 함께 12지파와는 별도의 예우를 받는다. 여호수아 토지분배에서 레위지파는 각 지파가 제공한 48성읍을 지역별로 분배받아서 그 지역을 따라 흩어져서 살아야 했었다. 그러나 에스겔 토지분배에서는 예물로 드린 땅, 곧 거룩한 땅 내 성전부지에 연접하여 모여 살게 된다. 그리고 레위인들에게는 전의 법으로 정결하게 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게 했다(겔 43:10~12). 이것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성전에서 행해지는 각종의 제사제도가 정상화 되고, 그만큼 성직자들의 생활도 안정이 보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에스겔은 제사장직에 종사하는 사독자손과 성전업무를 관장하는 레위인을 수차례 언급하면서 그들이 지켜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겔 44:9~31).
(2) 여호수아의 때에 유다지파는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했으나 북쪽으로 옮겨갔고, 예루살렘 북쪽에 있던 베냐민지파는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북쪽에서 종교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에브라임지파와 므낫세지파는 그들의 종교적 중심지 세겜(왕상 12:1~9)에서 사마리아 북쪽으로 옮겨서 배치했다. 그리고 세겜은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과 유다지파가 분배를 받도록 하였다. 지리에서 있을 수 있는 종교와 정치적 분열을 사전에 예방한 토지분배다.
그리고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는 성전부지가 있는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에 경계가 연접하도록 하여 그 위치를 근접시켜 분배했다. 이것은 통일왕국이 주전 931년경 남북으로 분열할 당시 두 지파는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제사와 왕통의 정통성을 지켰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배치다.
그래서 에스겔의 토지분배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지파별 배치로 보인다. 그리고 유다지파에게 분배되었던 예루살렘 남쪽 지역은 분할하여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지파 등 다섯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3) 왕에게도 토지를 분배하였고, 왕에게도 희년법의 준수 의무가 주어졌다. 왕은 백성들이 기업을 잃고, 흩어지지 않도록 통치를 해야 한다(겔 46:18).
(4) 12지파별 분배된 토지는 각 지파별 토지가 위치만 정해지고, 정확한 경계가 없다. 지파별 경계가 지구의 위도나 경도를 나타내듯이 직선으로 표시되고 있다. 원래 토지는 산과 강, 평야나 계곡 등 자연 지형을 따라서 분배되어야 자연스럽다. 토지의 경작과 활용이 그 지역과 지형적 특성을 따라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겔 토지분배는 이러한 자연적 지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또 이스라엘 12지파는 나라의 패망과 포로 생활로 오래 흩어져 살아서 지파별 혈통이나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에스겔 토지분배가 구약시대에 실제로 지파별로 분배될 땅이라기보다 신약시대에 성취될 희년법을 반영한 상징적 내용으로, 그 희년의 때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5) 외국인에게도 땅을 분배해야 한다. 토지를 제비 뽑아 분배할 때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도 차별 없이 토지를 분배하라고 한다. 외국인이 토지를 분배받을 자격은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은 토지의 분배 조건이 단순 거주나 일시 거주의 허용을 넘어선다. 이스라엘이 외국인에게도 같은 기업을 주고, 영구 거주의 자격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외국인에게도 자국민으로 신분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아주 획기적인 조치에 해당한다. 외국인에게 단순히 신분을 보장하는 것 이상의 배려다. 토지의 분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으므로 경제적으로 같은 자격과 대우를 받는 것이다. 곧 외국인에게 하는 토지분배는 그 후손에게 상속권을 주어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것이 선민사상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자신들을 타국인과 격리하고, 보호하는 습성이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전통적 이스라엘 민족은 옷차림부터 다르며, 외국인과는 섞이기를 꺼리며, 종교적 색채가 강하여 외모로도 그들의 특성은 쉽게 드러난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따돌림을 받거나 미움을 받기 쉽다.
그런데 에스겔 토지분배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도 외국인에게 문을 열게 하는 제도이다. 외국인에게도 자국의 영토에서 영구 거주를 허용하고, 경제생활을 함께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외국인에게 닫아두었던 마음과 편협한 행동들이 풀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도 세계인의 일원으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구약시대처럼 율법에 매여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서 그들도 자유인으로서 세상의 기독인들과 함께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2. 에스겔 토지분배는 신약시대에 유효한 제도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살펴본 (1)~(5)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구약시대에 시행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언제이든 반드시 성취되고, 실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토지분배와 희년제도는 천상에서보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지상왕국에서 필요한 규례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토지분배와 희년제도는 신약시대에 복음으로 시행이 되어야 할 제도로 보아야 한다.
에스겔 성전이 지어진 바는 없지만, 그 상세한 구조를 측량하여 보여 준 것은 이 성전의 주인으로 오실 메시아를 보여주고, 메사아를 통하여 신약시대를 미리 예고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에스겔이 본 이스라엘의 회복과 토지분배도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 복음시대를 예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군주제도를 싫어하며, 신약시대에는 그런 군주제도가 폐지될 것을 알면서도 왕에게 토지를 분배하라고 한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이 세상에 진정한 왕으로 오신(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세상 통치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12지파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의 사회적 혼란과 가족 해체 등으로 지파별로 신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토지를 12지파에게 분배하라고 하는 것은, 12지파를 복원시키는 것보다 신약시대에 걸맞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복원시키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품으시고, 그들을 속량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속해 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12지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12제자를 세우므로(막 3:13, 눅 6:12~16) 대체되었다 볼 수 있다. 이스라엘 12지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는 희년왕국이 도래하면 24장로의 신분으로 왕의 통치를 보좌할 것으로 보인다(계 11:16,17).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외국인에게도 땅을 분배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문부터 열어가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것은 복음시대에서나 가능한 획기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국인도 자신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고 수용할 수 있는 변화는,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서 굳은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에스겔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야 가능할 것이다(겔 36:26,2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을 그 속에 두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너희가 열조에게 준 땅에서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8)”고 하신다.
그래서 에스겔이 말하는 왕에 대한 토지분배도 왕이 있었던 율법시대를 염두에 두기보다 신약시대에 왕으로 오신(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3.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드러나는 에스겔 "희년왕국"
드린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 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쪽으로 향하여 서쪽 국경까지와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국경까지니 그 길이가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겔 45:7)
에스겔 토지분배는 예물로 드릴 거룩한 땅의 위치가 먼저 정해지고, 이 예물로 드릴 땅 중에서 왕에게 분배할 토지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 위치는 거룩한 땅을 중앙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국경까지다. 동쪽은 거룩한 땅(성읍 기지 포함)과 연접하여 요단강과 사해까지, 서쪽은 거룩한 땅을 사이에 두고 지중해까지다.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왕에게도 토지를 분배하며, 희년법의 준수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왕의 토지는 이스라엘 중심부 거룩한 땅의 동서로 총면적 약 887k㎡ 면적이다. 그리고 이 땅은 왕과 그 후손에게 대대로 상속권이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분배해야 할 왕의 토지(동편과 서편)
지중해 | 서편 왕의 땅 (아스돗 항구와 서편 평야지대) | 레위인의 땅 | 동편 왕의 땅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 요단사해 | ||
사독 자손 ■성전 사독 자손 | ||||||
경작지 | 성읍 | 경작지 |
에스겔의 왕토와 희년왕국의 재확인
군주가 만일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군주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군주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라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겔 46:17,18)
필자는 에스겔서 46:17,18에서 왕에게 기업을 분배하여 희년법 준수 의무가 주어지고, 왕은 백성들이 산업을 떠나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희년법 통치를 실현하는 나라를 “희년왕국”이라고 한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바알신과 이방 제도를 따랐고, 하나님이 제정하여 준 희년법은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패망했다. 그런데 이렇게 왕이 희년을 지키고, 그 희년법을 집행하는 통치권이 주어진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획기적인 것이다. 이것은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사 58:12),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실제로 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사 61:1~4, 눅 4:18,19).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는 왕이라도 조상들이 분배받은 토지를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왕의 신분으로 기업을 분배받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이다. 백성들에게 분배될 토지가 왕에게도 분배되면, 왕의 가족들과 신하들은 분배받은 토지를 경작하여 생업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분배받은 기업은 왕의 후손들에게 상속권이 주어진다. 이것은 12지파에게 분배되는 토지가 가족들이 생업을 위해 경작하고, 거래도 할 수는 있지만, 상속권은 소멸하지 않고 대대로 이어지는 것과 성격이 같다.
이를 위해서 모세오경은 토지의 영구 거래는 금지하는 레위기 희년법(레 25:23), 딸도 기업을 주고 경작권을 인정하는 민수기 상속법(민 27:8~11), 기업을 이어갈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신명기 계대결혼법(신 21:5~10, 룻 4:5,12) 등을 두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법을 왕에게도 특별한 준수 의무가 주어졌으므로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왕은 분배받은 토지를 통치권 수행을 위하여 왕의 재량으로 적절하게 사용할 수가 있다. 먼저 왕의 토지는 신하에게 경작하도록 땅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왕을 섬기는 신하들에게 주는 녹봉(祿俸, 급여)이나 생활비를 주는 대신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군주제도에서 왕이 신하에게 주는 일종 봉토(封土)와 비슷하다. 그러나 성경 토지제도는 이방제도와 다르다. 이방제도에서는 그 땅이 왕의 소유물이므로 자기의 땅을 신하에게 하사한 것이 되어 소유권이 이전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왕에게도 소유권은 주어지지 않으므로 신하에게 땅을 주어도 경작권만 주는 것이지 소유권 이전은 할 수 없다.
성경 희년법은 분배된 토지에서 영구적 경작권이 주어지고, 상속권도 그 후손에게 영구히 존속하게 된다. 그래서 자칫하면 희년법도 이방제도처럼 개인에게도 토지에 대한 처분권(소유권을 매각할 권리)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배받은 토지를 그렇게 생각하고, 쉽게 처분하여 땅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희년법은 그렇지 않다. 분배된 토지는 생업에 필요한 경작권만 인정한다. 그리고 그 경작권을 후손들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여 영구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에서 필요한 경작권의 변동은 시한부 거래 또는 임대로만 해결하는 것이다. 희년법은 이러한 경작권 거래 또는 임대에 대하여 땅을 팔고 산다고 말한다. 그래서 왕의 토지를 신하들에게 주었더라도 그 땅은 시한부인 경작권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희년이 되면, 왕에게 하사받은 토지는 왕에게 되돌려 주게 된다.
이스라엘 토지는 왕이든, 개인이든 희년법을 따라야 한다. 곧 분배된 토지는 경작권과 상속권만 후손에게 이어지고, 소유권이나 영구 매매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매매는 희년까지 또는 시한부 거래와 임대만 가능하다. 이것은 성경 희년법만 가진 독특한 제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왕에게도 토지를 분배하여 왕들이 희년법을 먼저 지키도록 제도화하였다(겔 46:16,17). 그리고 그 희년법을 백성들이 지켜나가도록 통치를 하게 했다(겔 45:9, 46:18). 이와 같이 에스겔 희년제도는 왕도 솔선하여 지켜야 하는 법을 두어서 레위기 희년법에서 있을 수 있었던 약점을 보완하였다.
에스겔 토지분배와 왕의 희년 준수 의무를 보더라도 우리가 레위기 희년법은 이상론에 치우친 제도 또는 현실적 실현은 불가능한 제도로 보아왔던 기존의 주장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하나님은 출애굽 직후 1445년 레위기 희년법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이 회복하여 토지를 재분배하게 되면, 그 희년법은 왕도 지켜야 할 제도로 보완되고,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현 불가능한 법을 제정했던 것이 아니다. 또 에스겔에게 870년이 지나서도 그 실현불가능한 법을 다시 지키라고 주문하실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나 명령은 사람이 지킬 수 없도록 만든 어려운 법이 아니다(신 30:11). 하나님의 계명은 “오직 말씀이 네 입과 마음에 있은 즉,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신 30:14)”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제도를 계명으로 제정하신 분이다.
왕에게도 토지를 분배하는 이유
이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줄지니라(겔 45:8)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겔 46:18)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왕에게 토지를 분배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왕이 백성들의 기업을 수탈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왕은 통치권을 행사하면서도 기업 재산권에 대해서는 자기 기업에만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왕은 백성들이 기업을 잃고 흩어지지 않도록 통치를 해야할 의무가 있다(겔 46:16~18). 이것이 에스겔서에서 왕에게 토지를 분배한 가장 큰 이유다.
하나님은 군주제도를 원하지 않으신다. 주전 1445년 희년법 제정 당시는 군주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왕과 왕의 기업, 그리고 왕의 희년법 준수 의무에 대한 규례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지도자의 지도력 부재와 사사들의 무능함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백성들은 군주제도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군주제도의 약점을 알려주며, 이를 엄하게 경계하신다(삼상 8:8). 왕이 백성들을 보호하기보다 산업을 수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백성들이 군주제도를 굽히지 않자 하나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다(삼상 8:22). 그러나 이스라엘은 군주제도를 시행하면서 많은 폐단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원하므로 군주제도를 허락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통하여 군주제도의 폐단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의 경고대로 군주제도는 그 권력을 왕이 백성들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 대표적 사건이 나봇의 포도원 강탈 사건이다(왕상 21:1~16). 아합왕의 처, 악녀 이세벨이 바알신을 북이스라엘로 끌어드렸고, 나봇의 포도원은 왕의 권력에 의하여 강탈을 당해야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바알신의 추종과 왕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억압 정치는 북이스라엘 뿐 아니라 남유다까지 오염시켰다. 이것을 보통 ‘아모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행위(악행)’라고 한다(미 6:16).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희년법을 파기하여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다. 하나님은 지금 왕들이 이제는 그런 권력 남용을 하지 못하도록 왕에게도 기업을 주고 지킬 의무를 주었다. 그래서 왕은 희년법을 지켜서 백성들이 다시는 흩어지지 않도록 통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에스겔서에서 왕에게 토지를 분배한 가장 두드러진 이유다.
왕의 토지와 용도
군주가 만일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겔 46:47)
왕의 토지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북이스라엘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신하들을 위한 나물밭으로 삼고자 하였다(왕상 21:2). 나라가 커지고, 왕권이 강화되니 왕궁에 거처하는 신하도 늘어난다. 그래서 아합왕은 신하들이 먹어야 할 채소와 그 채소를 재배할 나물밭이 필요하였다. 아합은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팔거나(매매) 바꿔달라는(代土) 요청을 하였다. 이를 거절당한 왕은 권력을 이용하여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나봇을 모함하여 억울하게 죽게한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밭에서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왕상 21:19,23). 그리고 연이어서 아합 왕조도 멸절하였다.
그래서 에스겔 토지분배는 왕에게 필요한 토지를 분배하여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없도록 예방을 한 조치다. 왕은 자신의 기업을 경작하여 생업을 해결해야 하며, 통치권을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토지도 미리 확보해 두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의 토지는 왕의 사유지라기보다는 왕이 통치권을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공공용지로 분배된 토지라고 보아야 한다. 왕의 토지는 왕과 가족이 생존에 필요한 개인용지, 왕의 통치권 수행에 필요한 공공용지, 그리고 왕이 공공경제 필요한 산업용지 등으로 구분하여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통치권을 수행하는 왕과 가족에게도 기업이 있어서 백성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도록 하였다. 왕의 토지는 공직을 수행하는 신하들에게 희년까지 경작권을 줄 수도 있게 했다. 기업이 없을 수 있는 가난한 자나 이방인이 있으면 왕의 토지가 복지수단으로도 활용이 될 것이다. 이런 것 역시 신하와 약자들의 생활을 보장하여 왕의 통치조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왕의 토지는 구약시대 필요한 군주제도와 관련된 제도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군주제도는 다윗 왕정이 무너진 이후 다시 세워진 예가 없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필요했던 군주제도와 왕의 통치는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왕권이 넘겨졌다. 그래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새로운 복음시대의 통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서가 보여주는 왕의 토지는 군주제도가 사라진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것이 복음시대에 맞도록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에스겔이 말하는 왕의 토지는 복음시대에 맞도록 적절한 적용 방식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4. 왕의 토지분배와 위치 정탐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겔 48:21,22)
이제 왕에게 분배할 토지와 그 위치 등을 알아볼 차례다. 에스겔서에서 나타난 왕의 토지는 이스라엘 영토의 중심부, 곧 12지파에게 분배될 토지의 중간(사이)이라는 위치만 정해져 있고, 정확한 장소를 얄려주지 않는다. 여기에 필자는 이스라엘의 지리나 지형을 잘 알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지금 언급하는 왕의 토지에 대한 위치 표시는 확실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왕의 토지는 정확한 위치를 모르므로 이스라엘이 실제로 분배할 때가 되면 정책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말하는 왕의 토지는 그러한 실정을 고려한 추정이며, 여기서는 설명을 위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분배해야 할 왕의 토지(동편과 서편)
지중해 | 서편 왕의 땅 (아스돗 항구와 서편 평야지대) | 레위인의 땅 | 동편 왕의 땅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 요단사해 | ||
사독 자손 ■성전 사독 자손 | ||||||
경작지 | 성읍 | 경작지 |
왕의 토지는 이스라엘 12지파 토지의 중심부와 동서국경 정중앙에 위치한다. 그래서 왕의 토지는 중앙에 성전부지가 있는 거룩한 땅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남북으로는 북쪽 7지파와 남쪽 5지파 사이에 있다. 북쪽 7지파와 남쪽 5지파는 여기서 남북으로 13.3k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연접한 경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동서국경의 길이를 현재 예루살렘이 위치한 지역을 기준으로, 동서의 길이는 80km라고 보자. 그러면, 왕의 토지는 그 중앙 지점에 위치한 13.3km를 제외한 양편의 길이에 해당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서편의 아스돗(아슈도드)에서 동편의 기브츠 마을이 있는 칼리아까지 총 80km이다. 이 거리에서 왕의 토지는 중앙지역으로 추정되는 기랏여야림 부근의 거룩한 땅(성전부지, 사독 자손, 레위인, 성읍 기지 등) 13.3km를 제외한 전체 토지다. 너비(폭)는 거룩한 땅과 연접하여서 네모반듯하여 역시 13.3km다.
그러면 총면적은 동서 양쪽을 합하여 887k㎡다. 이 면적은 12지파 중심부에 있는 전체 면적 1,064k㎡ 중, 중앙지역에 있는 거룩한 땅 177 k㎡ 면적을 제외한 전역의 땅이다(왕의 토지 887k㎡ = 중심부 총면적 1,064k㎡ - 거룩한 땅 177k㎡). 지금의 가자지구가 365k㎡의 면적이므로, 왕의 토지는 그 2.4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왕에게 분배한 토지가 이렇게 넓은 면적일까? 의구심이 생긴다.
그런데 왕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도다. 그러면 군주제도가 필요 없는 신약시대는 에스겔이 말하는 왕의 토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것인지, 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5. 서편에 자리 잡은 왕의 토지와 위치 정탐
이스라엘 영토 중심부에서 서편의 왕의 토지는, 거룩한 땅 서편 경계를 연접하여 지중해까지 전부다. 추정이지만, 기랏여아림 숲지대를 지나서부터 지중에 해변까지다. 왕의 토지는 동쪽과 서쪽 전체 면적이 887k㎡이므로, 서편 왕의 토지는 그 절반인 443.5k㎡인 셈이다. 서편 왕의 토지에 있는 중심 도시는 예로부터 유명한 항구 도시 아스돗(아슈도드)이 있다. 아스돗은 이스라엘에서 수입되는 해외 물자의 6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항구 도시다.
이 서편 지역은 예로부터 블레셋을 비롯한 외세의 침입이 잦았다. 처음에는 단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 단지파는 이 지역을 점령하지 못하고 북쪽 라이스로 옮겨갔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유대지역에 속하는 쉐펠라(저지대)지대다. 그러므로 서편 왕의 토지는 물이 있고, 토질이 좋아서 농산물이 풍족한 평야지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지역은 아스돗을 비롯하여 주위에 가드, 가사, 에글론, 에스글론 등에 블레셋이 거주하여 '불레셋 5대 도시'로 불리어져 왔다.
이렇게 외세의 침략이 잦은 지역을 왕의 토지로 분배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지역을 왕의 기업이 있는 통치권역으로 두어 왕의 주도로 그 지역을 평정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왕의 주도란, 경우에 따라 무력도 필요는 하겠지만, 그 기조는 평화의 통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왕의 통치는 무력보다는 평화적 통치가 목적이고, 수단이어야 한다. 왕의 임무는 무력이 이니고, 섬김과 평화다(마 20:25~28). 물론 이런 평화의 통치는 현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성취될 때를 염두에 두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평야지대로 농업이 발달하고, 아스돗 항구를 비롯한 해안지역은 무역과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 지역이 왕의 토지로 분배되면 이곳은 왕이 주도하여 국가경제를 주도할 기간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지리적 여건도 갖추었다. 서편 지형에 맞는 지역 경제와 왕에게 분배된 공유지의 용도가 국가 중심의 산업기지를 구축하기에 용이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곳은 포도원을 비롯한 과일 생산이 많는 지역이다. 그래서 이 지역이 왕의 기업으로 분배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포도원 경제법을 실현할 수 있는(마 21:41) 지리적, 제도적 환경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 통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6. 동편의 왕의 토지는 예루살렘이 주축이다.
예루살렘의 위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예루살렘은 지중해로부터 약 63km 떨어진 해발 약 85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다(수 18:28). 그러나 주전 1445년경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진입할 당시는 높은 산지에 진을 친 여부스를 정복하지 못하였다(수 15:63, 삿 1:21).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주전 1000년경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그 성을 정복하였다(삼하 5:6).
이브라함 시대에 예루살렘은 평화의 왕이 살렘이 거주하여 ‘살렘’이라고 하였고(창 14:18), 여호수아 10:1에서 처음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다. 예루살렘은 시온산(언덕)의 이름을 따라서 ‘시온성’이라고 불렀고, 다윗이 정복한 도성이므로 ‘다윗성’이라고도 한다(삼하 5:7~9). 거룩한 성이기도 하다(마 4:5).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으로 높은 곳에 있고, 주위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외부의 침입이 어려운 천연 요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고, 모두가 그곳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오늘날까지 50여 차례가 넘은 외세의 침략으로 여러 번 정복을 당하고, 파괴되는 비운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예루살렘은 무엇보다 다윗 왕과 관련이 깊다. 여호수아의 때부터 예루살렘은 정복하지를 못했다. 여부스 족속은 창세기 15:21에서부터 쫓아내어야 할 가나안 7족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난공불락의 요새, 높은 산지를 점령하고 있어서 공략하지 못했다.
그러나 출애굽 후 445년이 지나서 다윗이 왕이 되어서야 여부스 족속을 그 땅에서 몰아낼 수가 있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기랏여아림에 있던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왔기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비로소 통일왕국에서 왕의 통치를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게는 성전을 짓게 허락하였고, 솔로몬은 왕궁까지 지어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왕의 치세를 보여주었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시작한 다윗 왕조가 바벨론에게 패망하기까지 수도로 있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었던 장소, 다윗 왕조가 오래 기간 존속했던 곳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상징적 도시다.
예루살렘의 지리적 특징과 수도의 기능
예루살렘은 높은 산악지대다. 예루살렘은 높은 산악지대로 물이 귀한 곳이다. 그런데도 다윗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첫째 이유는 예루살렘이 높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외부인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유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먼저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다음은 통일왕국의 왕으로서 남과 북에 다윗의 통치력이 미치려면 이곳이 중심지라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적당한 위치다. 그리고 다윗은 성전을 지은 터와 왕궁이 자리 잡을 부지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는 이미 땅을 모두 분배한 후이므로 분배된 개인의 땅을 성전과 왕궁 부지로 쉽게 확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정복하지 못한 여부스 족속을 물리친 후 그 땅 시온성을 수도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크게 동 예루살렘과 서 예루살렘으로 나눈다. 동 예루살렘은 옛 예루살렘(Old City)이라고 하며, 1967년 이전까지 요르단 통치하에 있었으며, 예루살렘성과 동쪽의 감람산, 힌놈의 골짜기 등이다. 동 예루살렘은 성전산이 있는 구시가지를 말하며,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고 하면, 보통 동 예루살렘, 옛 시가지를 말한다.
서 예루살렘은 서편 지역으로 신 예루살렘(New City)이라고 부르며, 19세기 이후 유대인이 이곳에 들어와서 정착한 곳이다. 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로서 정치, 행정, 종교의 중심지이며, 입법, 사법, 행정의 3부 관서, 히브리대학, 국립박물관, 유대교 랍비 본부, 세계 시온주의 본부 등 중추 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그 대신 상업과 문화, 이스라엘의 외교와 통상의 중심지는 해안 도시인 텔아비브(Tel Aviv)다.
예루살렘의 세계적(종교적, 지정학적) 위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상장하는 대표적 명칭이다. 예루살렘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친 성전산이 있고,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유대교의 본산지다. 예루살렘은 지금도 주전 691년 이후 지은 이슬람 황금사원이 들어서 있다. 그들도 황금사원을 성스러운 장소로 삼고 있다.
예루살렘은 세계 기독인들에게도 특별한 장소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의 신분으로 입성하여 공식적으로 취임을 한 곳이다(마 21:4~11). 그리고 왕의 신분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을 당했다(막 15:22). 그리고 감람산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승천한 곳이며,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는 그곳으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있는 장소다(행 1:11).
7. 예루살렘은 왕의 토지로 성취된다.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겔 37:25)
에스겔은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영원한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겔 34:23,24, 37:24,25). 그던데 다윗은 주전 1000년 경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통치하고 죽었다. 지금 에스겔이 말하는 예언의 시기는 다윗 시대보다 430년이 지난 주전 570(573)년경이다. 그런데 "다윗이 영원한 왕의 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왕으로 오신다는 예언이다. 그가 다윗 왕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통과 족보를 이어서 왕으로 오신다는 말이다(눅 1:32,33, 3:23) .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리면, 또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오면, 그들은 자자손손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다윗이 영원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 왕가의 혈통을 이어서 이 땅에 왔으며, 다윗의 통치권을 계승하여 왕권을 성취시켰다. 초림 시에는 왕의 통치보다는 인간의 죄를 사하는 속량이 우선이어서 왕의 통치는 제한된 사역만 하고 그친 상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초림에서 선포만 하고, 시행은 하지 못한 희년법을 세상에 내어놓고, 통치하는 세상이 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서는 예수 그리스가 시행할 희년과 그의 통치를 보여주기 위하여 왕의 토지를 분배하고, 희년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에스겔은 희년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이 땅에서 성취(또는 완성)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왕에게 분배할 토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속될 왕의 통치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윗 왕 때부터 통치하던 예루살렘이 왕의 토지로 분배되어 왕에게 귀속될 것을 계시로 보여준 것이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 함이요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시 48:2)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 10,11)
예루살렘은 에스겔 토지분베에서 왕의 토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성경 전체로 보아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의 처소로 명성이 높다. 다윗의 통치 기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의 명성이 예루살렘의 영광과 함께 했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대해서 예언한 바가 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며(눅 19:43,44),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하였다(눅 21:24). 그러나 이 말씀은 때가 차면(마 23:39) 예루살렘이 회복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예루살렘은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며(눅 24:47), 예루살렘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세계 선교의 출발지로서 지금도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예루살렘은 제일 먼저 왕의 토지로 분배되어 성취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8. 동편 왕의 토지는 베들레헴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예비된 땅, 그러나 멀고 먼 베들레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미 5:2,3)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직선 거리로 약 8km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한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항상 예루살렘이 먼저 보이고, 그 대신 베들레헴은 눈에 잘 뜨이지가 않는 곳이다. 베들레헴의 옛 이름은 에브랏이다. 에브랏은 야곱의 처 라헬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죽어 뭍인 곳이다(창 35:16,19).
베들레헴은 유다의 손자 헤르손이 출애굽 이전에 먼저 정착한 곳으로 보인다(대상 2:24, 2:51). 그러나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까지 이스라엘에서 알려진 지역이 아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도 베들레헴은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이 베들레헴에 첩을 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삿 19:1). 베들레헴은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여호수아 19:15에서 소개한 베들레헴은 나사렛 서북쪽 10km에 위치한 스불론지파의 성읍이고, 유다지파의 땅이 아니다. 사사시대에 입산이 베들레헴에서 사사가 된 적이 있으나 이 곳은 역시 스불론일 가능성이 크다(삿 12:8).
주) 사사시대 입산은 베들레헴 사람인데(삿 12:8)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유다 베들레헴’(삿 17:7, 9, 룻 1:2) 혹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창 35:19, 삼상 17:12, 미 5:2)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므로 입산의 고향 베들레헴은 ‘유다 베들레헴’이 아니라 ‘스불론 땅의 베들레헴’으로 추정된다. 입산 뒤에 나오는 엘론이 스불론 사람인 것을 볼 때 입산의 출신지 베들레헴도 ‘스불론 땅의 베들레헴’일 가능성이 크다(삿 12:12). 킹제임스 성경 사전에는 입산의 고향을 제2의 베들레헴(스불론)으로 보고 있다.
유다지파에 속한 베들레헴은 룻기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룻기는 사사시대 후기에 쓴 책이다. 룻기에서 베들레헴은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토지를 무르기 하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보아스를 기생 라합의 후손으로 소개하고 있다(룻 4:20, 마 1:4). 기생 라합은 가나안 땅 점령 당시 여리고성에서 정탐꾼을 숨겨주어서 성을 함락시키는데 공을 세운 이방 여성이다. 그런데 기생 라합과 결혼한 살몬은 사사시대 초기 인물이었고, 보아스는 시사시대 후기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사사시대 초반부 인물 살몬에서 후반부 인물인 보아스까지 많은 대수가 생략되었다. 족보 연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사사시대 초기부터 후기까지 약 300년간 족보의 대수나 이름이 빠져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으로 사시시대 초기의 살몬(살마)에서 후기의 보아스까지 약 300년간을 말하고 있다.
주) 박윤식, 영원한 언약의 약속(구속사 시리즈 5권), 도서출판 휘선, 2020, 217쪽.
역대기 족보는 살마를 “베들레헴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다(대상 2:51). 여기서 베들레헴은 지명이고, 아버지라는 명칭은 그 지역에 사는 처음 조상(시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은 살몬으로 추정한 바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까지 언급하는 것은,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 이때가 주전 700년 경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미가의 예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처럼 베들레헴은 그 당시 작은 마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역대기 2장에서 유다지파의 족보를 보더라도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었으며, 이주민이던 겐 족속을 비롯한 여러 족속들이 섞여서 살았던 곳이다(대상 2:50~55).
주) 사사시대의 베들레헴 땅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려면, ㄱ. 사사시대에 족보상의 시조가 살마(살몬)와 기생 라합이라는 것, ㄴ. 300년 간 사사시대의 족보가 단절된 이유, 그리고 ㄷ. 다윗의 증조부(오벳)가 엘리멜렉의 혈통과 기업을 잇지 않고 보아스의 혈통과 기업을 잇게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출생지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룻 4:11)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삼상 17:12)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다윗의 출생지가 베들레헴이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기까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가진다. 살몬은 사사시대에 유다지파의 혈통을 이은 시조이고, 보아스의 조상이다(룻 4:210. 보아스는 살몬의 후손으로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의 할아버지다(룻 4:22). 이새의 막내아들(여덟 번째 또는 일곱 번째)이 다윗이다(삼상 16:11~13).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미리 예비를 하셨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부터 두 정탐꾼을 숨겨주어(수 2:1) 이스라엘이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고, 살몬과 함께 사사시대를 열었으며, 보아스가 그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다.
사사시대 후기에 룻이라는 모압 여성이 엘리멕렉의 며느리가 되어 베들레헴으로 들어왔고, 구원자 보아스를 만나서 한 가정을 일으킨다. 그 방법은 모세오경과 성경의 희년법이 정해놓은 토지 무르기와 계대결혼이었다. 여기서 룻과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며, 뒷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이방 여성인 기생 라합, 그리고 모압 여성인 룻의 후손이다. 윗대 조상들은 기근을 피하여 기업을 팔고(룻 4:3, 원문은 팔려있으니), 모압으로 이주를 했다. 거기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두 아들까지 모두 죽어서 가정이 몰락한다(룻 1:1~5). 이런 나오미의 가정에 기생의 후손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고, 계대결혼을 감행하여 몰락한 한 가정을 일으켰다. 그래서 라합과 룻은 이방여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때나 그 이후나 기업 무르기나 계대결혼은 하기를 꺼린다. 기업 무르기는 필려있는 형제의 기업을 내가 값을 치러서 되찾아주는 것이다. 계대결혼은 형제 중에 끊어진 대(씨, 혈통)를 대신 이어서 아버지의 기업에 대한 상속권을 이어주는 것이다. 형제의 대가 끊어지면 형제에게 돌아갈 상속권이 내게 돌아오므로, 살아있는 형제는 죽은 형제의 대를 이어주는 계대결혼을 피하게 된다. 유다의 아들 오난이 형수 다말에게 대 잇기를 거부하다가 죽었고(창 38:8~10), 룻의 토지 무르기를 해야 할 아무개도 그렇게 거부했다(룻 4:6). 그러나 룻과 보아스는 이러한 기업 무르기와 계대결혼으로 한 가정을 되살려내고, 그 가정에서 왕이 태어나게 하였다. 아니 하나님이 그런 룻과 보아스의 순종을 보시고, 그들의 후손에게 왕이 탄생하는 복을 주신 것이다.
그 당시만 하여도 베들레헴은 잘 알려진 곳이 아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과 인근 지역이지만, 이 당시는 여부스 족속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어서 관심 밖에 있는 곳이다. 그러나 라합은 이방 여성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수 2:11~16). 모압 여성인 룻, 그리고 기업 무르기를 한 보아스는 희년법의 순종으로 에브랏에서 유력한 자가 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룻 4:11).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성취될 곳이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마 1:1)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아를 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메시아가 언제 오며, 어디로 올지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 메시아를 세상에 보냈지만, 이스라엘은 그 메시아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지만(사 7:14),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출생지를 물었을 때, 비로소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소동하기 시작한다. 율법학자들이 성경을 살피며 조사를 해보니 미가서 5:2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인 것을 알았다.
메시아가 태어날 베들레헴은 700년 전에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예언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베들레헴을 메시아의 탄생지로 준비를 하셨다. 그래서 일찍부터 보잘것없는 모압 여성 룻과 기생 출신 라합의 후손 보아스를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오게 했다. 여기서 족보의 계승은 아들을 낳아서 혈통을 잇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혈통의 계승 못지 않게 한 가정에 분배된 기업을 잃지 않고, 그 상속권을 이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계대결혼으로 혈통을 잇고,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있을지라도 팔려있는 형제의 기업을 무르기 하여서 한 가정의 경제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 3:23)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의 부친인 헬리의 계보를 잇는다. 그런데 마태복음 족보는 요셉이 야곱의 계보를 잇는다. 그래서 겉보기로 요셉의 부계 혈통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가 육적인 혈통을 따라서 기록된 것이 아니고, 한 가계에 분배된 기업에 대하여 그 상속권 계보를 따라서 기록한 것이다. 그 대신 마태복음 족보는 다윗의 왕통에 근거하여 통치권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두 족보는 족보의 기록 목적이 다르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헬리는 마리아 부친이며, 요셉의 장인이다. 민수기 기업 상속법은 아들이 없을 경우 그 기업은 딸이 상속하게 되어있고, 이런 경우 딸을 같은 소속 지파 남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민 27:8, 36:7,8). 지금 마리아의 부친 헬리는 아들이 없으므로 기업을 딸, 마리아에게 상속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마리아는 같은 유다지파인 요셉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헬리의 기업과 상속권은 사위인 요셉에게로 넘어간다(눅 3:23).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런 사례가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여호야긴(여고냐)의 후계자인 스알디엘과 그 아들 스룹바벨이 상속법에 따른 결혼이거나 계대결혼법에 따른 결혼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스룹바벨의 후계자인 레사도 친아들은 아니므로 사위 계보로 장인의 상속권을 이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한 가정의 혈통보다 기업의 상속권을 우선시하여 그 상속권을 이어온 계보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주제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상세한 것은 필자의 다른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누가복음이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다윗 왕가의 혈통보다 기업을 지켜온 계보를 따랐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윗의 후손들이 희년법을 따라서 기업을 지켜온 곳이 베들레헴이다(눅 2:4). 예수 그리스도는 조상들이 희년법을 따라서 기업을 지켜온 한 가계와 베들레헴을 택하여 이 땅으로 오셨다(눅 2:11).
9. 베들레헴 땅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요, 주인이시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눅 2:4)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오신 곳이 바로 베들레헴 땅이다. 이곳은 다윗의 후손들이 기업을 지켜 왔고, 특히 마리아에게 상속될 베들레헴 기업을 이어왔다. 요셉과 마리아가 만삭의 몸으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이동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한 대도 끊어진 사례가 없이 예수 그리스가 탄생할 때까지 이어져 왔다. 그들은 희년법의 영속성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족보는 같은 다윗의 후손 족보라도 이름이 빠진 곳이 많다. 바알 숭배가 심할 때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사의 이름이 빠졌으며, 이런 족보의 누락(생략)은 포로기 전후에도 몇 차례 번 더 있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희년법을 중시하며, 그 법에 순종한 족보나 가계를 따라 사역자를 불러 세우고, 그에 따른 복을 주고 계신다. 이것이 누가복음 족보가 보여주는 구속사의 주된 흐름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여준 토지분배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전제되어 있다. 그 회복된 땅에 에스겔 성전을 보여주면서 제사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고, 그 회복된 땅과 구역을 측량으로 보여주면서 율법과 희년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고 회복된 땅을 12지파에게 평등하게 분배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 토지분배에는 계명을 어겨서 흩어져서 사는 일이 없도록 지파별 구역과 위치도 이를 감안하여 정해주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중요시 할 땅이 바로 왕의 토지로 분배되어야 할 베들레헴이다.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갓난아이 시절, 2년 남짓 살았던 땅이다. 그 후로는 헤롯의 살해 음모로 애굽으로 피난해야 했고(마 2:13,16),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보복이 두려워서 베들레헴을 두고 나사렛으로 가서 살아야만 했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생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베들레헴은 더 큰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에서 행하신 첫 사역이 희년의 선포이었다(눅 4:16~19). 그러나 희년은 나사렛 주민들의 불신과 반발로 인하여 시행하지 못했다. 희년은 원래 백성들이 법에 따른 자발적인 순종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과 희년을 스스로 이루어주지는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은혜의 해”는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은혜의 해는 하나님이 공짜로 희년을 성취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4:19에서 말하는 희년은 원문이 “은혜의 해”가 아니고, “승락(승인, 열납)의 해(the aceptable year)”로 번역을 하고, 그렇게 이해를 해야 한다. 희년은 사람들이 이 법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일 때 하나님이 그 순종의 결과를 보고, 이를 인정하여 받아드리는 때를 말한다. 희년의 순종은 행동의 주체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희년의 성취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 계명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것이 희년의 본래 의미인 ‘자발적 희년’이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했으면, 교회는 성령의 법을 따라서 성도들이 자발적 희년을 실현해야 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초기에 자기 재산을 내어놓고, 이를 소비 생활에 충당하는 초보적 단계만 이행하고 그쳤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알리는 복음을 세계로 전파하기에 바빠서 희년은 일단 덮어둔 상태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여준 토지분배에서 왕의 토지는 큰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스라엘이 회복하여 에스겔 토지분배가 현실화된다면, 왕의 토지로 분배해야 할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이루지 못한 기업의 상속권을 되찾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원래 다윗 왕가의 기업으로, 그 기업의 상속자요,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베들레헴 기업이 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회심과 직접 관련되는 것이므로 큰 주제에 속한다.
그런데 아직은 이스라엘의 회심이 어렵고, 베들레헴에 대한 통치권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베들레헴은 지금도 이방인의 수중에 들어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회복되었듯이, 베들레헴도 언제인가 회복되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땅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왕의 토지로 넘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게에게 왕의 토지로 주어지고,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은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처럼 천군 천사와 함께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이 찬송이 베들레헴에서 불려질 때 이스라엘 땅은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는 모두가 그 기쁨을 함께하며 나눌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기쁨)로다(킹제임스 성경, 눅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