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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감각장소[六入]
48.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49.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1)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50.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이고, 무엇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이고, 무엇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들이 있습니다.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의 감각장소입니다.
정신·물질[名色]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일어납니다.(*2)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51.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1) ‘감각장소’로 옮긴 ‘āyatana’는 a+√yam(to extend)나 a+√yat(to stretch)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다.
베다문헌의 제의서에도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지내는 장소를 ‘āyatana’라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쪽으로 오다’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入’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또 이 단어가 장소의 의미로 쓰이므로 ‘處’라고 옮기기도 하였다.
보퉁 12연기에서는 ‘入’으로, 12처와 무색계 증득의 4처(공무변처 등)는 處’로 옮기고 있다.
역자는 감각작용과 관계된 육입이나 12처는 ‘감각장소’로 옮기고,
4처는 ‘장소’로 옮기지만 때에 따라서는 ‘처(處)’로 옮길 때도 있다.
(*2) “‘정신·물질[名色]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일어난다(nāmarūpasamudayā saḷāyatanasamudayo).’는 것은
‘정신과 물질과 정신·물질이 감각장소의 조건이 된다.’라고 『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MA.ⅰ.221)
청정도론 ⅩⅦ.204이하를 참조할 것.
정신·물질[名色]
52.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5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정신·물질[名色]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54.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신·물질이고,(*3) 무엇이 정신·물질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정신·물질의 소멸이고, 무엇이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느낌, 인식, 의도, 감각접촉, 마음에 잡도리함을 정신[名]이라 하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4)과 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들[所造色](*5)을 물질[色]이라 합니다.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일어납니다.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55.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정신·물질[名色]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정신·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3) “정신·물질[名色, nāma-rūpa]에서
[대상을 향해] 기우는(namana)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정신이라 하고,
변형되는(ruppana)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물질(rūpa)이라 한다.
이 중에서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受蘊]에, 의도[思]와 감각접촉[觸]과 마음에 잡도리함[作意]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蘊]에 속한다. 물론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에 다른 법들도 포함되지만,
이 세 가지 법들은 힘이 약한 모든 마음들에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라고 했다.”(MA.ⅰ.221)
(*4)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cattāro mahā-bhūtā]’은
땅의 요소[地大, pathavī-dhātu], 물의 요소[水大, āpo-dhātu].
불의 요소[火大, tejo-dhātu], 바람의 요소[風大, vāyo-dhātu]이다.
이 cattāro mahā-bhūtā는 중국에서 四大로 옮겨져 우리에게 익숙하다.
(*5) ‘파생된 물질[所造色]’은 upādāya rūp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것을 “여기서는 네 가지 근본물질의 적집(samūha)을 취해서(upādāya)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아비담마에서는 눈의 감각장소 등으로 구분하여 모두 23가지라고 알아야 한다.”(SA.Ⅱ.17)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모두 24가지 파생된 물질을 들고 있는데, 본 주석서는 심장토대를 제외한 23가지를 들고 있다.
왜냐하면 아비담마 7론에는 심장토대란 술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7론의 마지막인 『빳타나』(Paṭṭhāna, 발취론, 發趣論)에
“그 물질을 의지하여(yaṃ rūpaṃ nissāya).”라고 언급되는 물질을 주석서 문헌에서는 심장토대라고 해석해서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모두 24가지 파생된 물질을 최종적으로 확립하고 있다.
알음알이[識]
56.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57.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알음알이[識]를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58.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알음알이[識]이고, 무엇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알음알이의 소멸이고, 무엇이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섯 가지 알음알이의 무리가 있습니다.
눈의 알음알이, 귀의 알음알이,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 마노의 알음알이입니다.(*6)
의도적 행위들[行]이 일어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59.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알음알이[識]를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6) “여기서 알음알이는 89가지마음 중에서 삼계에 속하는 32가지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다.
‘눈의 알음알이[眼識, cakkhu-viññāṇa]’란 눈에서 생긴 알음알이, 혹은 눈으로부터 생긴 알음알이를 말한다.
‘귀의 알음알이[耳識]’ 등도 그와 같다.
그러나 ‘마노의 알음알이[意識, manoviññāṇa]는 mano(마음)가 바로 알음알이다(viññāṇa)이다.
이것은 쌍으로 된 전오식을 제외한 삼계의 22가지 과보로 나타난 마음을 두고 한 말이다.”(MA.ⅰ.222)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연기 구조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는 과보로 나타난 마음(vipāka-citta)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아비담마가 12연기를 인과의 중복된
반복으로 해석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의도적 행위[行]
60.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61.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의도적 행위[行](*7)를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62.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의도적 행위[行]이고, 무엇이 의도적 행위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의도적 행위의 소멸이고, 무엇이 의도적 행위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세 가지 의도적 행위들이 있습니다.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 말의 의도적 행위[口行], 마음의 의도적 행위[心行]입니다.(*8)
무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가 일어납니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가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의도적 행위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6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의도적 행위[行]를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도적 행위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7) ‘의도적 행위[行]’는 saṅkhāra를 옮긴 것이다.
이 상카라는 중국에서 行으로 정착되었지만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문맥에 따라 형성된 것, 심리현상, 의도적 행위, 작용 등으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서 옮기고 있다.
아래 주석서의 인용을 보면 알듯이 12연기에나타나는 상카라는 의도적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상카라를 의도적 행위[行]로 옮기고 있음을 밝힌다.
(*8) “업을 형성하는 특징을 가진 것(abhisaṅkharaṇa-lakkhaṇa)이 상카라[行, 의도적 행위]이다.
상세하게 설하면 몸에서 일어난 의도적 행위들을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 kāya-saṅkhāra]’라 한다.
몸의 문에서 몸의 암시라 불리는 움직임으로 일어난 욕계의 큰 유익한 마음 8가지와 해로운 마음 12가지인
20가지 몸의 의도들(kāya-sañcetanā)을 말한다.
‘말의 의도적 행위[口行, vacī-saṅkhāra]’란 말의 문에서 말을 내뱉음으로써 생긴,
[즉 말의 암시(vacī-viññatti)에서 생긴] 20가지 말의 의도들을 말한다.
마음에서 생긴 의도적 행위들을 ‘마음의 의도적 행위[심행, citta-saṅkhāra]’라 한다.
몸과 말의 문에서 움직임을 짓지 않고, 조용히 생각하면서 일어난 세간적인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의 29가지 마음의 의도들을 말한다.
[즉 이 상카라는 업을 짓는 마음이기 때문에 욕계 속행(자와나]의 29가지 마음을 두고 한 말이다.]”(MA.ⅰ.222~223)
주석서는 이 상카라(行)를 몸의 의도(sañcetanā)와 말의 의도와 마음의 의도만으로 설명하고 있다.
의도는 업과 동의어이며 이것은 因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것도 아비담마가 12연기를 인과의
중복된 반복으로 해석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여기서도 상카라를 의도적 행위로 옮기고 있다.
무명(無明)
64.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65.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무명(無明)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66.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명(無明)이고, 무엇이 무명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무명의 소멸이고, 무엇이 무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괴로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9)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aññāṇaṃ),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일러 무명이라 합니다.
번뇌[漏](*10)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납니다.(*11)
번뇌가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이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무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67.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무명(無明)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무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9) “‘괴로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dukkhe añāṇaṃ).’는 것은
괴로움의 진리[苦聖蹄, dukkha-sacca]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리석음(moha)을 두고 한 말이다.”(MA.ⅰ.223)
(*10) ‘번뇌로 옮긴 아사와(āsava)는 ā(향하여)+√sru(to flow)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흐르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원래는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오랫동안 발효된 술을 뜻했다고
주석가들은 말한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해로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정착이 된 것이며,
중국에서는 번뇌(煩惱)라고 옮겼다.
이런 마음상태를 아사와(āsava, 흘러나오는 것)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도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악취 나는 술과 같기 때문이다.
주석가들은 불교식으로 해석하여 이것을 아사와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하는 것으로는 최고로 높은 세상까지 흘러가고
법(현상)으로는 고뜨라부(種性)의 영역까지 흘러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경에서 번뇌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의 셋으로 나타난다.
한편 아비담마에서는 여기에다 사견의 번뇌를 더하여 네 가지 번뇌로 정착이 되었다.(Dhs.195 {1096}}
(*11) “여기서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는 함께 생긴 조건(sahajāta-paccaya) 등으로 무명에게 조건이 된다.
그러나 무명의 번뇌는 오로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paccaya)으로 무명에게 조건이 된다.
이전 [생]에 일어난 무명이 무명의 번뇌이다.
이것이 다음 [생]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무명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된다.”(MA.ⅰ.223~224)
이처럼 어느 한 생의 무명은 그 전생의 무명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다.
그래서 본경 §70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이처럼 무명의 첫 시작점(pubba-koṭi)이 알려지지않는다.
그것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윤회는 그 시작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번뇌[漏]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는
이 가르침은 『청정도론』 ⅩⅦ.36에서 ‘무명도 상캬 학파에서 주장하는 쁘라끄르띠처럼
윤회의 근본원인(mūla-kāraṇa)이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해소시키는 경전적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무명은 윤회를 설명할 때 출발점(sīsa-bhāva)이 되는 것일 뿐 이것이 근본원인이 아니며,
무명은 이처럼 번뇌를 조건으로 생기는 조건발생이라는 것이다.
번뇌[漏]
68.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69.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번뇌[漏]를 꿰뚫어 알고, 번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번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70.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漏]이고, 무엇이 번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번뇌의 소멸이고, 무엇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세 가지 번뇌들이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와 존재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입니다.
무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납니다.(*12)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번뇌가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13)
71.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번뇌(漏)을 꿰뚫어 알고, 번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번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설했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크게 기뻐했다.
(*12) “여기서 무명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에게는 함께 생긴 조건 등으로 조건이 되고,
무명의 번뇌에게는 오로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다음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무명이 여기서 무명의 번뇌다.
이전 [생]에 일어난 무명이 다음 [생]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무명의 번뇌에게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MA.ⅰ.224)
(*13) “이 번뇌의 부분은 연기의 가르침에서 맨 처음인 무명도 조건[緣, paccaya]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윤회(saṃsāra)는 그 시작이 없다는 것(anamataggatā)이 증명되었다. 어떻게?
번뇌가 일어남으로 무명이 일어난다. 무명이 일어남으로 번뇌가 일어난다.
이와 같이 번뇌가 무명의 조건이 되고, 무명도 번뇌의 조건이 되어 무명의 첫 시작점이 알려지지 않는다.
그것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윤회는 그 시작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와 같이 본경에서는 열 가지의 업의 길, 음식, 괴로움, 늙음, 죽음, 태어남, 존재, 취착, 갈애, 느낌, 감각접촉,
감각장소, 정신·물질, 알음알이, 의도적 행위, 무명, 번뇌의 열여섯 부분을 다루었다.”(MA.ⅰ.224)
바른 견해의 경(M9)이 끝났다.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89-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