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감(李克堪) 1427년(세종 9)∼1465년(세조 11). 조선 초기의 문신.
시호: 문경(文景) 勤學好問曰文。心能制義曰景。1465년(세조 11) 증시
학문을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한 것을 문(文)이라 하고,
마음이 능히 의리를 제어한 것을 경(景)이라 한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덕여(德輿). 우의정 인손(仁孫)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경사(經史)를 읽으면 대의를 통하였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집현전에 발탁되었고, 1447년에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수찬에 임명되었으며, 1448년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이 새로 설치되자 우찬독(右贊讀)이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 문종이 즉위하자 경연사경(經筵司經)을 지내고, 이듬해 대제학 정인지(鄭麟趾)의 추천으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55년(세조 1) 검상이 되었고, 즉위에 즈음하여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녹훈되고,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왕세자가 책봉되었을 때 보도(輔導)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1458년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이조참판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460년 북정(北征)때에는 기무를 관장하였다.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수찬하였으며, 《치평요람(治平要覽)》‧《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을 교정하여 간행하였고, 1461년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북정록(北征錄)》을 찬진하였다.
문경공(文景公)이 지는 시
*차 대동강 누선 운(次大同江樓船韻)
강 위에 눈이 녹아 강물이 많아졌는데 / 江上雪消江水多
밤이 되어 죽지가(竹枝歌)를 부르는 소리 들리네 / 夜來聞唱竹枝歌
그대와 이별한 뒤 생각이 어찌 다하랴 / 與君一別思何盡
천 리의 봄마음은 푸른 물결을 보내노라 / 千里春心送碧波
*담담정(淡淡亭)
저녁볕은 서녘으로 지고 물은 동녘으로 흘러 / 夕陽西下水東流
아득한 강과 산은 한없는 근심일세 / 渺渺江山無限愁
이 몸은 지금부터 백구주에 부치리라 / 天地有窮吾亦老
천지도 끝이 있고 나도 또한 늙나니 / 此身從付白鷗洲
*의정부 연정(議政府蓮亭)
못에 가득한 연잎은 납작납작 덮였는데 / 滿池荷葉正田田
붉은 분 세 줄 대모의 자리일세 / 紅粉三行玳瑁筵
우습구나, 중서의 옛날 미친 손이 / 堪笑中書舊狂客
풍정은 줄지 않았는데 벌써 머리 세었구나 / 風情不減已華顚
*진 고려사절요 전(進高麗史節要箋) -이극감(李克堪)-
신 등은 저으기 생각하오면, 편년(編年)은 좌씨(左氏)에서 근본되고 기전(紀傳)은 마사(馬史 사기)에서 시작되었사온데, 반고(班固) 이후로부터는 역사를 기술하는 자가 모두 마사를 조술(祖述)하여 어기지 못하는 것은, 그 규모가 워낙 광범위하고 저술이 완전히 구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나 너무도 한만하여 궁구하기 어려운 걱정이 있음을 면치 못했으니, 이것이 사가(史家)가 서로 장단점이 있어, 편벽되게 폐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려가 당(唐) 나라 말기에 일어나서 웅무(雄武)로써 여러 흉적을 무찌르고 관대함으로써 많은 인심을 얻어, 마침내 큰 업을 세워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며, 교사(郊社)를 세우고 장정(章程)을 정하고 학교를 일으키고, 과거(科擧)를 마련하고 중서성(中書省)을 두어 정무를 총괄하게 하니, 체통이 매인 데가 있고, 안렴사(按廉使)를 보내어 주(州)ㆍ현(縣)을 관찰하게 하니 탐관오리가 횡행하지 못하고, 부위(府衛)의 제도는 병력(兵力)을 농민에게 붙이는 법을 얻었고, 전시과(田柴科)는 벼슬한 집안에 세록(世祿)을 주는 뜻이 들어 있고, 정형(政刑)이 닦아지고 품식(品式)이 구비되어 안팎이 편안하고 민물(民物)이 풍성하니, 태평의 정치가 극히 성했다 할 수 있습니다.
중엽(中葉) 이후로는 능히 담당하지 못하여, 안으로는 폐행(嬖幸 궁중의 측근)에게 현혹되고, 밖으로는 권간(權姦 권신과 간신)에게 제재를 받게 되고 강적(强敵)이 서로 침략하여 난리를 일으켰으며, 가성(假姓)이 왕위(王位)를 도적함에 이르러서는 왕씨의 종사(宗社)가 이미 혈식(血食)을 받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옵니다. 공양(恭讓)이 반정(返正)하였으나 마침내 혼미하고 나약함으로써 스스로 멸망의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개 하늘이 진주(眞主)를 내어 우리 백성을 편안히 하려는 것이오매 진실로 인력으로 할 바가 아니옵니다.
태조 강헌대왕께옵서 처음으로 재신(宰臣)에 명하여 《고려사》를 찬수하게 하셨고, 태종 공정대왕께옵서 또 명하여 그릇된 대문을 교정하게 하셨으나 마침내 성취하지 못하였고, 세종 장헌대왕께옵서 신성(神聖)의 자품으로써 문명의 교화를 밝히시어, 신 등에게 명하여 요속(寮屬)을 뽑아서 사국을 열어 편집하게 하시고, “먼저 전사(全史)를 편수하고 다음으로 편년에 미치도록 하라.” 하시옵기로, 신 등은 삼가 명령을 받들어 조금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사온데, 불행히도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문득 여러 신하를 버리셨사옵니다.
주상 전하께옵서 선왕의 뜻을 계승하시어, 신 등으로 하여금 일을 끝마치게 하시므로 일찍이 선왕에게 명령을 받은 이상 감히 황당하고 고루함을 들어 굳이 사양하지 못하옵고, 이듬해 신미년 가을에야 완성을 보았습니다. 이에 또 사적의 세교(世敎)에 관계되는 것과 제도의 모범될 만한 것을 주워 모아 번잡을 피하고 간략을 취하여, 연대를 표시하고 기사를 서술해서 열람에 편의하도록 만들고 보니 4백 75년 간의 22왕의 사적이 포괄(包括)되어 빠짐이 없고, 자상하고 간략한 것이 모두 들어 사차(史家)의 체가 비로소 대강 갖추어진 듯하옵니다. 비록 문장이 저속하고 기차(紀次)가 해정하지 못하오나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함에 있어서는 조금이나마 치도(治道)에 보익되는 바 있사오리니, 한가하신 겨를에 때로 관람하시어 옛날을 상고하는 거룩한 덕을 힘쓰시고 세상을 경륜하는 큰 정책을 넓히어, 이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그 은사를 받게 하시면 이만한 경행이 없겠사옵니다.
*훈사발(訓辭跋) -이극감(李克堪)-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군주로서 큰 공덕이 있지 아니하면, 하늘이 큰 운수를 붙여주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직 그 공덕이 이미 깊어 하늘이나 사람에게 뜻이 맞은 까닭으로, 그 자손으로 하여금 나라 일을 이어받은 이들이 선왕의 가르침을 끊이지 않을 것 같으면, 하늘이 반드시 이들을 보호하고, 사람이 반드시 사랑하고 떠받들어, 오직 그 선세(先世)의 묵은 덕을 잊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하물며 거듭 빛내고 덕에 맞아 크게 나타나고, 크게 이어받음에 있어서야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우리 전하께서 귀 밝게 들으시고 눈밝게 보시며 신기로우시고 호반스러우셔서, 다시 가문의 난을 평정하시고 집을 화하게 하시며, 나라를 일으키시어 문교를 숭상하시고 무비(武備)를 신칙하시며, 음식을 박하게 하시되 귀신을 공경하시고, 의복을 소박하게 입으시되 농상(農桑)을 중히 여기시고, 궁실을 꾸미는 일 없으시고 가까운 사람에게 빌려 주는 바 없으시며, 선왕의 법을 지키시기에 조심하시고, 신하의 말에 애써 다하시어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시고 자랑하지 아니하시었고, 항상 겸손하게 여기시어 오히려 한 지아비라도 그 살 곳을 얻지 못할까 염려하셨다.
왕세자께서 영유(英猷 뛰어난 꾀) 숙성하시고 날이 갈수록 경광(耿光 밝은빛 또는 덕이 성한 모양)에 가까워, 참으로 밖의 사람의 보도를 기다릴 정도가 아닌데, 전하께옵서 신을 재주가 평범하고 소견이 좁고 학식이 적다 아니 하시고, 신으로 하여금 시강(侍講)이 되게 하시고, 하루는 훈사(訓辭) 열 장[十章]을 친히 지으시어 친히 세자에게 주시고 그 끝에 발을 짓도록 신에게 명하심에, 신이 엎드려 세 번 네 번 사양하는 말씀을 드렸다. 글은 간략하지만 뜻이 원대하고, 열 장에 지나지 아니하옵니다만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도리가 이미 갖추어져 있사오니, 크도다, 성인의 말씀이시여, 참으로 성자(聖子)와 신손(神孫) 천만세의 대훈(大訓 크신 가르침)이옵나이다. 옛날 당태종(唐太宗)은 제범(帝範 임금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지어서 태자에게 내려주어, 고종(高宗) 같은 사리에 어둡고 약한 이로서도 영휘(永徽) 초년의 정사에 오히려 정관(貞觀)의 유풍이 있었으니, 제범의 도움이 없지 아니하옵나이다.
우리 세자의 영명하신 자질로서, 친히 전하의 깊고 밝으신 가르침을 받자옵고, 또 훈사를 마음에 새겨 잊지 않으시고 항상 조심하시어 감히 소홀히 하지 아니하온즉, 이른바 거듭 빛내고 덕에 맞으며 크게 나타내고 크게 잇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중화(重華 거듭 빛남. 또는 순(舜)을 가리킴)의 다스림을 오늘날 다시 보게 되오니, 무엇이 이보다 더 다행이겠습니까.
서거정이 지은 만사 동년(同年) 이 판서(李判書) 극감(克堪) 를 곡(哭)하다.
웅대했던 평생의 뜻을 / 磊落平生志
출세하여 일찍 펼 수가 있었으니 / 蜚騰早得施
공명은 그대가 응당 자부하련만 / 功名君自許
의기는 내가 진작부터 알았었네 / 意氣我曾知
기린각엔 초상이 걸리던 날이요 / 麟閣圖形日
백옥루엔 기문을 짓는 때로다 / 玉樓作記時
병중이라 상여줄은 잡기 어려워 / 病中難執紼
눈물을 뿌리며 만사만 쓸 뿐이네 / 揮淚獨題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