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홍콩에서 만난 사람 / 김석수
지난해 홍콩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항공권 50만 장을 무료로 주는 공모 행사를 했다. 코로나로 줄어든 관광객 수를 늘려서 위축된 경제를 살리려는 하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응모했더니 운 좋게도 당첨이 됐다. 홍콩은 20년 전 3년 동안 근무해서 낯익은 곳이다. 아내는 우리가 살던 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저녁 무렵 ‘첵랍콕’ 국제 공항에 도착해서 고속 기차로 ‘센트럴(Central)’까지 갔다. 예약한 호텔이 ‘사이잉푼(Saiyingpun)역’ 근처라 ‘아이랜드라인(Island Line)’ 지하철로 갈아탔다.
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도로 양쪽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지만 어두컴컴했다. 비(B) 출구로 나와야 했는데 에이(A)로 나온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구글 앱으로 지도를 보니 호텔로 가는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우리가 안내해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그녀는 언덕을 오르내리고 모퉁이를 돌아서 10여 분쯤 지난 뒤 호텔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다음날 ‘타이쿠싱(Taikushing)’으로 갔다. 아이들과 함께 살던 곳이다. 자주 다녔던 ‘시티플라자(City Plaza)와 쿼리베이(Quarry Bay)’를 먼저 찾았다. 두 곳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지하도를 지나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학교 근처를 지나서 바닷가로 나오니 하얀 유람선이 구룡반도와 홍콩섬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아내와 저녁 먹고 늘 산책하던 길이다. 맛집으로 알려진 메밀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편의점 쪽으로 갔다. 시원한 국물에 국수를 듬뿍 넣어 주던 집이다. 면발이 씹히는 맛이 조금 차지고 질긴 듯한 느낌이었다. 식당은 없고 그 자리에 ‘스타벅스’가 있다.
20년이면 두 번이나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다. 내가 즐겨 들렀던 그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거나 문을 닫은 것이다. 다른 맛집이 있을까 해서 이곳저곳 둘러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한다. 맛집은 포기하고 끼니를 때우려고 바닷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경양식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길모퉁이를 돌자, 누가 등 뒤에서 불렀다. 좀 전에 내가 물어봤던 사람이 우리를 따라온 거다. 그녀는 근처 유명한 맛집이 있다며 안내해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신호등을 세 번 건너서 ‘사이완호’ 시장 쪽으로 갔다. 그녀는 20여 분 동안 멈추지 않고 갔다. ‘혹시 사기꾼이 아닌가?’ 하고 한순간 의심이 들었다. 대낮에 큰길 옆인데 설사 사기를 친다 해도 까짓것 문제 없을 거라고 하면서 줄곧 그녀를 따라갔다. 말을 걸어보니 영어가 서툴다. 그녀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와서 산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중국말로 대꾸했더니 유창한 중국어로 이곳 생활이 힘들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남편 따라 왔는데 친구도 없고 자식들은 중국에 있어서 늘 외롭다고 한다. 그녀가 알려 준 식당은 ‘사이완호 트램’ 정거장 앞에 있다. 손님이 열 명쯤 들어갈 수 있는 허름한 집이다. 국수에 교자(餃子)를 넣은 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다. 한 그릇에 7천 원이다. 육수(肉水)가 시원하고 면발의 쫄깃한 식감이 뛰어났다. 한 대접 먹고 나니 예전에 자주 다녔던 맛집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착한 그녀를 조금이나마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일요일에 아내가 아이비시(IBC)에 가자고 했다. 그곳은 홍콩 사람과 외국인이 함께 다니는 교회다. 담임 목사는 미국인이다. 주일이면 우리 가족은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그 교회에 다녔다. 구글 앱으로 지도를 검색해 보니 호텔에서 교회까지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빠르다.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에버딘(Aberdeen) 쪽 왕척항(Wong Chuk Hang) 거리로 갔다. 오랜만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행히 쉽게 교회가 있는 사우스마크(South Mark) 빌딩을 찾았다. 입구를 찾으려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중년 남자가 다가와서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도 아이비시에 처음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뒤 다른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고 예배당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여자에게 20년 전에 이곳에 왔다고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우리를 스콧(Scott) 목사에게 소개했다. 그는 “2년 전에 미국에서 이곳으로 왔다.”라고 하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가 이 교회에 다닐 때 담임 목사였던 에모리(Emory) 안부를 물었더니 “그는 하와이에서 목회 활동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조금 있으니, 케냐에서 온 흑인 존(John)이 크게 웃으면서 “이게 누구냐?”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있다. 세월은 속일 수 없다더니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있어 늙수그레했다.
예배 끝 무렵에 사회를 보는 케네스(Kenneth)는 우리 부부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20년 전에 다녔던 교회에 다시 찾아온 '한국 친구'라고 소개했다. 모두가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예배가 끝나자 리바이(Levie)가 내게 다가와 웃으면서 “정말 오랜만이군요.”라고 인사한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난 중국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이 교회에 다녔으며 내과 의사다. 그의 부인인 비비안(Vivenne)도 함께 왔다. 아내도 그녀와 많은 추억이 있다며 반가워한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그는 내게 홍콩의 아름다운 전경이 실려 있는 앨범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예전에 같이 교회에 다녔던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생활 어떠냐?”라고 하면서 홍콩에 자주 놀러 오라고 한다.